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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원래 좀 유치한 거야!
땃꾸 지음 / 모티브 / 2026년 9월
평점 :
"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모기가 왜 졸린지 아세요? 땃꾸 <사랑은 원래 좀 유치한 거야!> 서평
모기가 왜 항상 졸려하는지 아세요?
피로 가득해서랍니다. 저 같은 아재가 회식 자리에서나 던질 개그인 줄 알았는데, 한창 연애 중인 커플이 서로 주고받는 개그더라고요. 오늘이 10월 첫날인 데다 목요일이에요. 주말은 코앞인데 몸은 딱 피로로 가득한 모기 신세라 그런지 더 크게 웃었던 것 같아요.
이번에 만난 책은 인스타툰 작가 땃꾸의 <사랑은 원래 좀 유치한 거야!>입니다. 제목부터 대놓고 유치해지겠다고 선언하는 책이라, 펼치기 전부터 웃음이 났어요. 그냥 읽고 덮는 그림 에세이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연인 둘이 마주 앉아 빈칸을 채워 가는 커플 사랑 기록장이더군요.
구성부터 재미있어요. 짧은 인스타툰 한 꼭지가 지나가면 둘이 함께 채우는 페이지가 사이사이에 끼어 있어요. 그중 하나가 서로가 선호하는 스킨십을 확인하는 페이지예요. 손잡기, 포옹, 쓰다듬기, 뽀뽀를 싫음부터 완전 좋음까지 다섯 칸으로 나눠 두고, 한 사람은 주황색 동그라미에, 한 사람은 파란색 동그라미에 표시하게 되어 있어요. 이런 빈칸 페이지들이 매번 같은 틀로 나오지도 않더라고요. 좀비 이야기 뒤에는 "만약 세상이 끝난다면, 우린 어디서 만날까?"라는 페이지가 나와요. 각자 가장 먼저 갈 장소, 엇갈렸을 때의 최종 재회 장소, 도착했는데 네가 없다면 남길 쪽지까지 채우게 되어 있어요. 점수표였다가 메모지였다가 넘길 때마다 모양이 바뀌니까, 다음엔 또 뭐가 나올지 기다려지는 맛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말하는 사람이 바뀝니다.
(밥)과 (배려)는 여자친구 목소리로 흘러가고, (예뻐하기)에 오면 남자친구 쪽으로 마이크가 넘어가요. 남자친구 까깨꾸는 오늘 뭐 먹었는지, 물은 얼마나 마셨는지를 꼬치꼬치 챙기는 사람이에요. 여자친구 대답은 "시리얼하구.. 또 과자랑.."이고요. 그래도 그 잔소리가 싫지 않아서 괜히 행복해진다고 하니, 읽는 제 입꼬리도 같이 올라가더군요. 싸울 일을 애초에 만들지 않는 사람이라는 대목에서는 회사 생각이 났어요. 이런 동료가 한 명만 있어도 목요일 오후쯤 바닥나는 체력이 좀 버틸 만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땃꾸 쪽은 반대로 애정 표현이 꽤 화끈한 편인 거 같아요. "온도니가 참 탐스럽뇨" 하면서 철~썩. 남자친구가 "나도.. 예뻐해줄 거양!!" 하고 덤벼 보지만, 정신 차려 보면 어느새 또 예쁨받는 쪽이 되어 있어요. 표현 방식이 좀 달라도 이 사람이 행복하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다는 남자친구의 속말을 보니, 두 사람이 왜 잘 맞는지 살짝 알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극 안정형과 극 장난형.
다른 꼭지보다 천천히 정독하듯 읽었던 부분은 두 사람이 처음 만나는 (첫 만남)과 (계기)예요. 대학교 동아리에서 "저 혹시 펜 하나만 빌려주실 수 있나요?"라는 한마디로 시작된 인연이에요. 남자친구는 전역하고 복학한 참이었고, 여자친구는 2학년이었대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열렸던 동아리 회식 날, 두 사람은 우연히 맞은편에 앉게 돼요. 쭈뼛거리던 여자친구에게 남자친구가 "이것도 드세요" 하며 그릇을 먼저 내밀고요. 그 쑥스러운 미소에 마음을 가다듬을 틈도 없이 반해 버렸대요. 그때 여자친구 속마음이 "...선녀인가?"인데, 옆에서 큐피드가 "오늘도 한 건 했구만~" 하고 날아다녀요.
앞에서 밥을 챙기던 그 남자친구가 사랑의 시작도 그릇 하나로 열었다는 게 좋았어요. 이 사람의 다정함은 처음부터 밥으로 말하는 쪽이었구나 싶어서요. 그 뒤로 연락은 역시 여자친구가 먼저 했어요. "아 몰라 보내 이씌" 하고 전송을 누르고, 양치하다 문자를 받은 남자친구는 "잠깐만 대박"을 외쳐요. 이야기는 거기서 한 해의 마지막 날로 이어지는데, 그 장면은 직접 보시는 편이 훨씬 달달할 것 같아요.
사십 대 후반 아재 입장에서 이 대목이 좋았던 건, 시작이 거창한 이벤트가 아니고 펜 한 자루와 그릇 하나였다는 점이에요. 회사 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뭐든 크고 확실해야 움직인다고 믿게 되잖아요. 그런데 사람 마음은 이렇게 작은 데서 먼저 기울어지는구나 싶더라고요.
(좀비)도 좋았습니다. 두 사람에게 요즘 가장 뜨거운 대화 주제가 좀비 아포칼립스에서 살아남는 방법이래요. 물부터 확보해야 한다, 무기랑 방어구도 챙겨야 한다며 한참 떠들어요. 그런데 결국 제일 먼저 정해 둔 건 세상이 무너져도 다시 만날 장소였어요. 그리고 이런 문장이 나와요. "사실 정말 두려운 건 좀비가 아니라, 살아남은 세상에 네가 없다는 사실일 테니까." 유치하게 시작했다가 한 줄로 쑥 들어오는 게 이 책의 특기인 것 같아요. 그러고는 바로 "녜암..! 만약을 대비하는 거예오!"로 다시 유치해지고요.
맛보기로 하나 더 소개하면 (이상형)이에요. 함께한 시간이 길어지면서 예전엔 못 하던 질문도 하게 됐대요. 그래서 여자친구가 "자기 진짜 이상형이 뭐야? 거짓말 없이!" 하고 물어요. 막상 물어 놓고 보니 자기와 정반대인 대답이 나오면 괜히 슬플 것 같았나 봐요. 무서운 얼굴로 "대답.. 잘하는 게 좋을 거야.." 하고 살짝 위협을 가해 줍니다. 결국 나온 대답은 "자기가 내 이상형이 됐오..!"이고, 돌아온 평가는 "좋은 대답이군"이에요. 협박 끝에 나온 모범답안인데도 돌고 돌아 서로의 곁에 있는 우리가 진짜라는 말로 닫혀요. 웃다가 괜히 흐뭇해지더군요.

(통화)에서는 남자친구가 친구들과 시끌벅적하게 어울리는 자리에서도 아무렇지 않은 척 전화를 걸어요. "자기 목소리 듣고 싶었어." 옆에서 친구들이 "쟤 누구랑 전화 함?", "여친", "아" 하고 넘어가는 컷이 은근히 웃겨요. 그걸 또 땃꾸는 "왜 사랑해가 안 나오지~?" 하며 실컷 놀리고, 남자친구는 "아앙 사, 사랑행..!" 하고 항복하죠. "놀려서 미안해. 그런데 네가 먼저 나한테 예쁜 짓 했잖아." 이 문장 하나에 두 사람의 연애가 다 들어 있는 느낌이었어요.
솔직히 걸렸던 건 딱 하나, 말투예요. "먹었오", "고맙뇨", "거양" 같은 혀 짧은 말투가 처음 몇 꼭지까지는 아재 눈에 좀 간지럽더라고요. 그런데 희한하게 금방 적응이 됩니다. 중반쯤 가니까 이 말투가 빠지면 이 두 사람이 아닐 것 같은 기분까지 들었어요. 제목에서 유치하다고 미리 경고해 줬으니 따ㅁ질 것도 없고요.
소장 가치는 뒤쪽 특별 부록에서 확실해지는 것 같아요. "연애 기억력 테스트"에는 바로 적지 말고 동시에 답을 외친 다음 적으라는 규칙이 붙어 있어요. 처음 만난 장소, 첫 데이트에서 먹은 음식, 먼저 고백한 사람, 첫 연락처 이름, 서로의 첫인상 같은 항목이 쭉 이어지고요. 아래쪽에는 첫 데이트 메뉴를 두고 팟타이냐 떡볶이냐로 엇갈리는 두 사람 그림이 있어요. 어느 집에서든 벌어질 법한 장면이라 한참 웃었어요. 오래 만난 사이일수록 이 테스트는 꽤 치열해질 것 같더라고요. "서로에게 바라는 편지"에는 평소 말하지 못했던 소소한 것들을 적어 보라는데, 예시가 "양말 잘 벗어놓거라"와 "온도니 조금만 살살 뜯어줘.."예요. 세상에서 제일 사소하고 제일 현실적인 부탁이라 정겨웠어요.

<사랑은 원래 좀 유치한 거야!>는 빈칸이 하나씩 채워질수록 값이 올라가는 책 같아요. 손에 쏙 들어오는 판형에 보통 에세이보다 살짝 도톰한 편이라, 둘이 번갈아 펜을 쥐기에도 부담이 없어 보였고요. 기념일에 편지 한 장 대신 이 책을 건네면 받는 사람도 같이 쓸 거리가 생기니, 선물로도 꽤 괜찮을 것 같습니다.
어느새 달력이 10월로 넘어갔네요. 하루만 더 버티면 금요일인 목요일, 아침저녁 공기가 제법 가을다워진 날에 유치한 연애 이야기로 실컷 웃고 나니 마음이 한결 말랑해진 기분이에요. 저도 모기 개그 하나 써먹어 볼까 싶은데, 수컷 모기 질문이 들어오면 -500점이라니 답부터 단단히 준비해 두고 도전해 보렵니다.
펜 한 자루로 시작해 좀비 재회 장소까지 정해 두는 두 사람의 유치하고 다정한 연애를 들여다보며, 둘이 함께 채워 가는 커플 사랑 기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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