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석자의 시대 - 사건에 휩쓸리지 않고 구조를 읽는 법
김준현 지음 / 어깨위망원경 / 202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사람이 바뀐 걸까, 판이 바뀐 걸까? 김준현 <해석자의 시대> 서평


9월도 마지막 주에 들어섰네요. 화요일이면 한 주가 겨우 시동이 걸리는 날인데, 아침저녁 바람이 제법 서늘해서 긴팔부터 찾게 됩니다. 생각이 이리저리 흩어지기 쉬운 환절기에 결이 참 좋은 책을 만난 거 같아요.


표지를 펼치기도 전에 커다란 카메라 렌즈 하나가 정면에서 이쪽을 빤히 쳐다봅니다. 그 위로 "왜 세상은 이토록 어지러운가?"라는 문구가 떡하니 얹혀 있고요. 뉴스 몇 꼭지만 넘겨 봐도 머리가 지끈거리는 요즘이라, 이 질문에 대답해 보겠다는 책이면 손이 먼저 가더라고요. 렌즈가 워낙 커서 들고 있으면 제가 찍히는 기분인데, 다행히 초상권 청구서는 날아오지 않았습니다.


<해석자의 시대>는 세상을 11개의 층으로 잘라서 들여다보는 책이에요.


세계, 감각, 지식, 과학, 기술, 경제, 문화, 법, 정치, 권력, 판단.


아래층이 위층의 가능성을 먼저 깔아 주고, 그 위로 차곡차곡 올라가는 단면도입니다. 층마다 붙은 한 줄 설명이 꽤 맛깔나요. 감각은 "오감이라는 좁은 창문"이고, 문화는 "우리는 원래 이렇게 산다"는 기본값이고, 권력은 "누가 케이크를 자를 것인가"라는 분배의 룰이라고 하죠. 케이크가 나오니 딱딱한 권력 얘기가 괜히 동네 생일잔치처럼 들리기도 하고요.


정치는 평론가가, 경제는 경제학자가, 문화는 비평가가 따로따로 말하는 세상이 있죠. 저자는 이걸 "각자의 방송국이 각자의 주파수만 송출하는 셈"이라고 표현합니다. 정보가 산더미처럼 쌓여도 지도가 없으면 길을 찾을 수 없다는 말도 덧붙이고요. 그래서 독자에게 '구조적 렌즈'를 건네고 싶다고 하는데, 그 말을 듣고 나니 표지의 커다란 렌즈가 이해되더군요. 멋 부리려고 박아 둔 그림은 아니었던 거 같습니다.


저자는 자신을 오래 관찰하고, 책을 읽고, 여러 개념을 연결해 보고, 추론하기를 즐기는 사람일 뿐이라고 소개해요. 거창한 직함을 늘어놓지 않으니 오히려 귀가 솔깃해집니다. 이런 시선이 생긴 계기도 책 세 권이었대요. 리처드 탈러의 <넛지>는 인간이 정말 자유롭게 선택하는지를 물었고, 로렌 슬레이터의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는 인간이 자기 마음의 주연인지를 물었대요. 유현준의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는 도시가 왜 하필 이런 모양인지를 물었고요. 식당 메뉴판의 순서, 스마트폰의 기본값, 골목의 너비 같은 이야기는 결국 한 문장으로 모입니다. "배치가 바뀌면, 세계가 바뀐다."


요즘 서평단을 하면서 분야를 가리지 않고 이 책 저 책 받아 읽는 입장이라, 이 대목이 은근히 부럽고 반가웠어요. 따로따로 읽은 책들이 어느 날 한 줄로 꿰어진다니, 책 읽는 사람한테 이만한 보상이 또 있을까 싶더라고요.


프롤로그 한쪽에는 매일 같은 시간에 출근하고, 같은 장소에서 일하고, 같은 시간에 퇴근하는 하루가 그려져요. 거대한 톱니바퀴 속 부품, 컨베이어 벨트 위를 흘러가는 제품. 직장 생활을 오래 한 사람한테는 따로 설명이 필요 없는 그림이죠. 그렇게 반복되는 하루 속에서 저자의 머릿속에 질문 하나가 맴돌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왜 어떤 변화는 세상을 통째로 뒤집고, 어떤 변화는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나는가.


맛보기로 하나 꺼내 보면, 이 책의 첫 사례는 동네 놀이터의 깍두기예요. 세발뛰기를 하다가 어린 동생이 끼워 달라고 하면 네 발까지 봐주던 그 규칙 말입니다. 이기는 게 목적이었다면 할 수 없는 선택인데, 그 시절엔 다 같이 노는 게 먼저였다고 하죠. 저자는 그때의 놀이 문화를 이렇게 요약해요. "완벽히 공정하진 않아도, 같이 놀 수 있으면 된다." 이 문장 하나로 골목 어귀 흙바닥이 눈앞에 그려지는 거 같았어요.


놀이가 온라인으로 옮겨 가면서 판이 바뀝니다. 판정은 시스템이 하고, 전적과 랭킹은 영구히 남고, 초보자는 팀의 승리를 갉아먹는 걸림돌이자 민폐가 돼요. 취업 이야기로도 이어지는데, 예전엔 합격이든 불합격이든 전화 한 통으로 끝났다는 대목에서 웃음이 났어요. 지금은 합격자 스펙이 커뮤니티에 올라오고, 나와 그 사람의 차이가 숫자로 비교되죠. 저자는 공정성에 대한 요구가 커진 까닭을 세상이 더 잘 보이게 된 데서 찾더라고요.


저자도 처음엔 사람을 의심했다가 곧 세대를 의심했다고 털어놓아요. 요즘 MZ세대들은 이기적이야, 우리랑 달라. 회식 자리에서 한 번쯤 들어 봤을, 어쩌면 제 입에서도 나왔을 말이라 뜨끔했습니다. 사람이 바뀐 걸까, 판이 바뀐 걸까. 이 질문 앞에서 괜히 뒤통수를 긁적이게 되는 사람이 저 하나는 아닐 거 같아요.


<해석자의 시대>가 한 번 크게 방향을 트는 곳은 2부의 '역류' 장입니다. 앞에서는 아래에서 위로 솟구치는 흐름이었다면, 여기서는 꼭대기의 정치와 권력이 물길을 거슬러 내려와요. 저자는 이걸 하류로 흐르면서도 곳곳에 소용돌이를 만드는 강물에 빗대더라고요. 규제를 두고는 브레이크이면서 핸들이고 도로공사이기도 하다고 말합니다. 자율주행차가 사고를 내면 책임을 누가 지는지, AI가 그린 그림의 저작권은 누구에게 있는지 같은 질문에 답이 서야 기술이 달릴 도로가 깔린다는 거죠.


"법은 언제나 상처가 난 자리에 붕대를 감는 방식으로 진화해 왔다."


뉴스에서 뒷북 행정 소리가 나올 때마다 혀만 차던 사람으로서, 이 문장 앞에서는 잠깐 말을 아끼게 되더라고요. 누군가 피해를 입고 나서야 법이 움직이는 게 꼭 누가 게을러서만은 아닐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청나라의 쇄국 정책과 20세기 후반 한국의 반도체·통신 투자를 나란히 놓은 대목도 있어요. 둘 다 위층에서 내려온 힘인데 결과는 정반대로 갈렸으니, 그 차이가 어디서 생겼는지 궁금해지고요.


천천히 정독하듯 읽었던 곳은 3부의 AI 장이었어요. 저자는 AI의 출발점을 사람처럼 '생각'하는 데서 찾지 않고, 압도적인 확률로 '맞히기'를 하는 데서 찾습니다. 그렇게 분류하고 예측하고 결정하는 데 드는 '판단의 가격표'가 뚝 떨어지면, 노동이 짊어지던 두 가지 역할이 흔들린다고 해요. 하나는 소득이고, 다른 하나는 "무엇을 하며 사는가"라는 정체성이에요.


두 번째 이야기에서 생각이 많아지더군요. 이 나이쯤 되면 처음 만난 사람 앞에서 하는 자기소개가 곧 회사 이름과 직함이잖아요. 일이 삶을 떠받치는 중심축이었다는 문장이 남 얘기로 들리지 않았습니다. 저자는 그 빈자리를 채울 후보로 이야기와 놀이를 꺼내 들어요. 이야기를 소비하는 인간 '호모 나랑스', 놀이하는 인간 '호모 루덴스'. 드라마, 게임, 스포츠, 스트리밍, 밈, 팬덤까지 전부 여기에 들어간다고 하니 범위가 생각보다 넓습니다.


예전엔 퇴근하면 유튜브만 켜 놓다 잠드는 게 일과였는데, 요새는 새 책부터 집어 드는 쪽으로 바뀌었거든요. 이것도 제 나름의 놀이 찾기였나 싶어서 혼자 슬며시 웃었습니다.


AI 판사 이야기에 이르면 앞에서 만난 깍두기가 불쑥 다시 떠오릅니다. 같은 규칙을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하는 '보편성'의 체제와, 상황과 서사를 따지는 '맥락'의 체제가 맞서는 대목이에요. 저자가 든 비유가 참 알아듣기 쉬웠어요. "어린아이와 어른에게 똑같은 양의 밥을 제공하면 어른은 배가 고플 것이다."


놀이터에서 시작한 질문이 법정 문턱까지 걸어온 셈.


손익이라는 오래된 기준이 AI 앞에서 흔들린 뒤 그 자리에 무엇이 올라서는지, 저자가 내놓는 답은 의외로 우리 일상 가까이에 있더라고요. 그 답은 책에서 직접 만나시는 편이 훨씬 즐거울 것 같습니다.


솔직히 걸렸던 건 제 쪽 사정이에요. 개념어가 촘촘하게 이어지는 대목에서는 읽는 속도가 저절로 느려지는 편이었거든요. 그래도 마리오네트를 조종하는 천장 위의 얇은 실, 나무의 나이테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다 숲이 불타는 걸 놓친다는 비유 같은 게 틈틈이 손잡이가 돼 줬어요. 덕분에 어렵다는 기분까지는 가지 않았어요.


두께는 보통 인문서보다 날씬한 편이라 출퇴근 가방에 넣어도 부담이 없어요. 11개 층을 한 줄씩 풀어 둔 부분은 뉴스가 뒤죽박죽으로 느껴질 때 펼쳐 보는 약도로 쓰기 좋겠더군요. <해석자의 시대>는 책장에서 손이 제일 잘 닿는 칸에 꽂아 두고 싶어요.


선선한 바람이 드나드는 9월 끝자락에, 머릿속에 엉켜 있던 전선을 한 가닥씩 풀어 본 기분이에요. 11층까지 계단으로 올라온 셈인데 다리는 멀쩡하고 머리만 운동한 느낌이랄까요. 쓸 만한 렌즈 하나 챙긴 가을이라 든든합니다.


골목의 깍두기에서 AI 판사까지, 사건 아래 깔린 판을 11층 렌즈로 읽어 보게 해 주는 책.


#해석자의시대 #김준현 #어깨위망원경 #인문교양 #사회교양서 #구조를읽는법 #11층구조 #깍두기 #공정성 #AI시대 #기본소득 #호모루덴스 #규제 #세대갈등 #책추천 #신간도서 #직장인독서 #가을독서 #서평 #BOOKU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