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많이 할 수 있지만, 다 하지 않습니다
온선(온라인선생님) 지음 / 모티브 / 2026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할 수 있다고 다 할 필요는 없더라고요, <더 많이 할 수 있지만, 다 하지 않습니다> 서평


주황색 표지 한가운데에서 사람 하나가 책상에 팔을 늘어뜨린 채 엎드려 있어요. 머리 위에는 딱 한 칸 남은 배터리가 떠 있고요. 제목이 <더 많이 할 수 있지만, 다 하지 않습니다>인데, 그림과 제목을 같이 보자마자 이건 내 얘기다 싶더라고요.


오늘이 추석 연휴 첫날이에요. 목요일인데 출근을 안 한다는 것만으로도 벌써 반은 쉰 기분입니다. 그래서 이번 명절 목표도 이 책 제목에서 빌려왔어요. 송편, 더 많이 먹을 수 있지만 다 먹지는 않겠습니다. 물론 해봐야 알겠지만요.

저자 온선(온라인선생님)은 혼자 일한 지 8년, 유튜브 구독자 24만 명과 함께해 온 분이에요. 스마트폰이며 AI며 어려운 걸 가장 쉽게 알려주던 분이 AI 덕분에 일은 빨라졌는데 하루는 오히려 좁아졌다고 털어놓는 책입니다. 기술을 누구보다 먼저 써본 사람의 고백이라 그런지 첫 장부터 귀가 솔깃하더군요.


시작은 가벼운 질문 하나예요. "AI랑 같이 쓰면, 하루에 몇 개 정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반응이 올 만한 유튜브 대본 하나에 하루가 꼬박 걸리던 시절이었는데, 저자는 "하루에 세 개 정도는 가능할 것 같아요. 물론 해봐야 알겠지만요"라고 조심스럽게 답합니다. 정해진 목표도 아니었고, 어디까지 되는지 가늠해 보자고 나눈 대화였대요.

그런데 그 숫자가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고 해요.

"가능할 수도 있다"던 말은 시간이 지나면서 "가능하다"로 줄어들고, "주제마다 다르다"는 조건은 흐려지고, 결국 "이제 세 개는 할 수 있잖아요"라는 말이 되어 돌아온다는 거죠. 직장 생활을 좀 해본 사람이라면 이 흐름이 너무 익숙할 거 같아요. 회의 때 "한번 해볼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하고 던진 말이 어느새 다음 분기 목표 칸에 들어가 있는 그런 일이요. "숫자는 한 번 입 밖으로 나오면 힘을 갖는다"는 문장에서 괜히 뜨끔했어요.


다른 페이지보다 천천히 정독하듯 읽었던 부분은 바로 다음 꼭지 '아무도 몰아붙이지 않는데, 속도는 올라가 있다'였어요. 처음에는 보안 문제로 회사 자료를 넣지 말라는 공지가 먼저 나와요. 시간이 지나면 조심하라는 말 옆에 적극적으로 활용하라는 말이 붙고, 개인의 실험이던 일이 어느새 팀의 역량으로 평가받게 되는데요. 이 과정이 차근차근 그려지는데 요즘 사무실 공기를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았습니다.


"어느 한 사람이 나를 몰아붙이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전체적인 속도는 올라가 있다."

회사는 더 빠른 보고서를, 발주자는 더 빠른 초안을 기대하고, 주변 동료들은 더 빨리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고요. "어제의 속도는 성실함이었는데, 오늘의 속도는 느림처럼 보일 수 있다"는 대목에서는 중년 직장인으로서 살짝 서운한 마음까지 들더라고요. 성실함 하나로 버텨온 세대한테는 꽤 아픈 말이라서요.


책 중반으로 가면 저자 개인의 이야기가 더 진하게 나와요. 유튜브를 오래 하다 보니 책을 쓰자는 제안, 사업을 하자는 제안, 강의 요청, 콘텐츠 협업, 해외 진출이나 마케팅 제안까지 계속 들어왔다고 하는데요. 좋은 제안일수록 거절이 더 어려웠다면서 속마음을 그대로 꺼내 놓습니다. "이걸 거절해도 되나. 다음에 또 이런 기회가 올까. 너무 까다로운 사람처럼 보이지 않을까."

거의 제 속마음 받아쓰기 수준.


저자가 좋았던 건 거절을 멋있게 포장하는 편이 아닌 거 같다는 점이에요. 돈이 괜찮으면 고민했고, 이름 있는 곳이면 더 고민했고, 규모가 커 보이면 한 번 더 흔들렸다고 솔직하게 말하거든요. 그렇게 거절을 반복하고 나서야 남은 일들의 공통점이 보였고, 그게 다섯 개의 질문으로 정리됩니다. 다시 고를 수 있는가, 내 방식으로 만들 수 있는가, 한 번 만든 것이 오래 남는가, 깊이 들어갈 여지가 있는가, 지금 내 삶의 시기와 맞는가. 처음부터 세워둔 원칙이 아니고 부딪히면서 뒤늦게 보인 기준이라는 설명이 오히려 믿음직스러웠어요.


그중 '한 번 만든 것이 오래 남는가'를 설명하면서 저자가 일할 때 종종 일타쌍피를 생각한다고 하는 대목이 있어요. 명절이면 화투판 옆을 서성이게 되는 아재로서 이 단어가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더군요. 영상이든 강의든 한 번 만들어두면 직접 설명하지 않는 시간에도 누군가에게 닿는다는 뜻인데, 들인 시간이 한자리에서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은 회사 일에도 그대로 통하는 거 같아요.


마지막 질문을 설명하는 자리에서는 "나는 아이를 키우고 있다"는 한 줄이 나오고, 거기서부터 글의 온도가 조금 달라집니다. 어떤 날은 아이 일정에 맞춰 움직여야 했고, 어떤 날은 촬영이나 강의보다 집안일이 먼저였다는 이야기예요. 같은 일도 어떤 시기에는 가능하고 어떤 시기에는 어렵다는 말은 나이가 들수록 더 와닿아서, 이 부분은 한 줄 한 줄 따라가듯 읽게 되더라고요.


요즘은 들어온 제안을 AI로 표를 만들어 단가, 일정, 수정 범위, 2차 활용 여부, 필요한 에너지까지 나란히 놓고 볼 수도 있대요. 그런데 저자는 "표가 일을 골라주지는 않았다"고 말합니다.


솔직히 제일 찔렸던 건 12장이었습니다. 네 살 아이 치약 하나 고르려고 GPT에 물었다가, 다른 AI에도 묻고, 검색을 다시 하고, 후기까지 찾아보다 보니 선택지가 줄기는커녕 오히려 늘어났다는 이야기예요. 얘한테도 물어보고 쟤한테도 물어보면 더 좋은 답이 나올 것 같은 그 마음. 결국 동네 엄마들 단톡방에서 누군가 추천해 준 치약을 샀다는 대목에서는 웃음이 터졌어요.


웃고 나니 좀 따끔하더라고요. 뭐 하나 고르려다 비교하고 또 비교하다 지치는 게 남 얘기 같지 않아서요. 저자는 그 시간이 전부 헛수고는 아니었다고, 덕분에 불소 함량이나 성분표에서 뭘 먼저 봐야 하는지는 알게 됐다고 공정하게 짚어요. 그래도 끝내 필요했던 건 이 정도면 괜찮다고 넘어갈 수 있는 감각이었다는 거죠.


"AI가 줄여준 시간은 자동으로 내 시간이 되지 않았다."

에필로그는 아이가 "엄마, 이걸로 책 만들어줘"라고 말하는 장면으로 열려요. 동물이 나왔다가 친구가 나왔다가 주인공이 갑자기 다른 곳에 가 있는, 앞뒤가 딱 맞지 않는 이야기인데도요. 예전 같으면 '나중에 해보자', '엄마가 시간이 되면 해줄게' 하고 넘겼을지도 모른다는 고백 뒤에 저자는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나는 무엇을 다시 해보고 싶었을까.' 바쁘다는 이유로, 어렵다는 이유로, 잘하지 못할 것 같다는 이유로 접어두었던 것들을 다시 꺼내보고 싶어졌다는 대목에서는 마음 한쪽이 따뜻해지는 느낌이 들었어요. AI 덕분에 무엇을 더 해낼지보다 무엇을 다시 해볼 수 있을지를 묻는 쪽으로 이야기가 흘러가는 게 참 좋았습니다.


AI를 누구보다 먼저 써온 사람이 속도를 줄이고 선을 긋는 이야기를 한다는 점에서, 흔한 AI 책들하고는 결이 좀 다른 거 같아요. 회사를 그만두라고도, 더 버티라고도 하지 않고, 회사 안에 있든 밖에 있든 내 일의 크기와 속도는 내가 정해보자는 쪽이라 월급쟁이가 읽어도 부담이 없더라고요. 크기도 두께도 보통이라 손에 들기 편하고, 꼭지가 짧게 나뉘어 있어서 한 꼭지씩 끊어 읽기도 좋습니다. 표지에는 내 일의 기준을 직접 정해보는 5단계 워크시트 '나의 일 기준 키트'가 QR로 들어 있다고 소개돼 있는데, 읽고 나서 내 기준을 직접 써볼 수 있다는 점에서 소장할 이유가 하나 더 생기는 느낌이에요.


바람이 제법 선선해진 추석 연휴 첫날, <더 많이 할 수 있지만, 다 하지 않습니다>를 떠올리며 이번 연휴에는 할 수 있는 걸 다 하겠다고 욕심내지 않기로 했습니다. 표지 속 그 사람처럼 방전되기 전에 저도 배터리 칸 좀 넉넉히 채워둘 생각이에요. 좋은 책을 만나서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다들 보름달처럼 넉넉한 한가위 보내세요.


할 수 있는 게 많아진 시대에 어디까지 할지는 내가 정해도 된다고 다정하게 말해주는 책


#더많이할수있지만다하지않습니다 #온선 #온라인선생님 #모티브 #자기계발 #자기계발에세이 #AI시대 #일하는방식 #시간관리 #번아웃 #직장인책추천 #거절하는법 #일의기준 #나의일기준키트 #신간도서 #책추천 #서평 #서평단 #북스타그램 #BOOKU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