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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주워진 세계
아사쿠라 히로카게 지음, 이구름 옮김 / 해피북스투유 / 2026년 9월
평점 :
"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버려진 페트병 같은 우리에게, <우리가 주워진 세계> 서평

손바닥에 올려 보면 핸드북 사이즈라 아담한데, 옆으로 돌려 보면 두께가 제법 됩니다. 들고 다니기 좋은 크기에 이만한 두께면 작은 체구에 근육을 숨긴 셈이라, 가방에 넣으니 어깨가 먼저 알아채더라고요. 책 사이에는 담당 편집자의 편지가 한 장 들어 있었어요. 스스로 '버려진 페트병'처럼 느껴졌던 순간이 있었느냐고 묻는 편지였는데, 그 질문을 품고 이야기로 들어가게 되는 구조가 꽤 근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펼친 <우리가 주워진 세계>는 크리스마스 아침, 쓰레기봉투가 터지는 장면으로 시작해요.

주인공 아사히는 도쿄의 민간 청소업체 모리야마산업에서 일하는 계약직 청소부예요. 12월 25일, 봉투 네 개를 한꺼번에 들어 올린 순간 손가락 끝에서 불길한 예감이 들고, 압축 버튼을 누르자 파열음이 연달아 터집니다. 아사히는 수류탄을 몸으로 막는 병사처럼 한 발짝 앞으로 나서요. 뒤에 바짝 붙어 따라오던 외제 SUV에 국물이 튀지 않게 하려고요. 누런 액체가 작업복을 흠뻑 적시고, 옆에 있던 동료는 한숨처럼 "끔찍한 크리스마스 선물이군." 하고 중얼거립니다.
그런데 그 SUV는 사거리에서 가속 페달을 세차게 밟고 떠나 버려요. 이 대목의 문장이 오래 기억에 남았어요.
"저 여성은 꿈에도 모를 것이다. 청소부가 몸을 바쳐 걸쭉하고 누런 액체로부터 차를 보호했다는 사실을."

직장 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이런 순간이 참 많은 것 같아요. 누군가 몸으로 막아 낸 일은 티가 안 나고, 불편했던 몇 초만 기억되는 순간들이요. 아사히는 일한 지 겨우 1년인데 파견 지역이 바뀌어도 같은 자리를 빙빙 도는 것 같다며, 어릴 적 보던 타임루프물을 떠올립니다. 1년 차가 벌써 이러면 20년 넘게 출근 도장 찍은 사람은 뭐라고 해야 하나 싶어 피식 웃다가도, 그 막막함만큼은 너무 잘 알 것 같아서 웃음이 금방 가라앉더군요.
지나가던 중학생들이 "웩, 역겨워!" 하고 코를 싸쥐는 장면도 있어요. 추운 아침인데 몸속에서는 수치심이 확 달아오르고, 아사히는 그런 처량한 마음을 흘려보내는 방법을 이미 오래전에 익혔다고 해요. 그저 눈앞의 쓰레기산에 집중하는 것. 그 요령이 어떤 건지 알 것 같아서 한동안 그 문장에 눈이 붙어 있었습니다.
퇴근한 아사히의 방은 거의 비어 있어요. TV도 없고, 소품이나 장식도 없고, 소설과 만화는 전부 전자책으로 봅니다. 로봇청소기를 돌려 두고도 직접 청소기를 밀고 밀대질까지 해요. 쓸데없는 물건이 하나도 없는 방을 보면 속이 뻥 뚫린다는 사람. 그런 사람이 장을 보러 나가려고 현관문을 여는 순간, 옆집 여자와 눈이 딱 마주칩니다.
"아……."
그 옆집 여자가 도모에예요. 청소부 앞에서 쓰레기를 집 안으로 들고 들어가려는 사람입니다. "쓰레기……군요." "네, 쓰레기예요." 하고 이어지는 대화를 보고 웃음이 터졌어요. 당황한 아사히 앞에서 전기포트를 집어 들고 "이거, 굉장하죠?" 하며 태연하게 웃는 모습이 이상하게 밉지가 않았습니다. 뒤로 가면 도모에가 엄청난 대식가라는 이야기도 나오고, 아사히와 동료 민토가 100엔짜리 회전초밥을 먹는 도모에를 흉내 내며 "살아있어서 다행이야!" 하고 웃는 장면도 나와요. 도모에라는 사람은 이런 식으로 주변 사람들의 입을 통해 조금씩 윤곽이 잡히는 것 같더라고요.
그렇다고 가볍기만 한 인물은 아닙니다. 도모에가 자기 어머니 이야기를 하면서 "버려진 쓸모없는 쓰레기를 모아 그걸 성벽 삼아 우리만의 왕국을 만들었어"라고 말하는 대목이 있어요. 동화 속 왕국 이야기를 아이에게 들려주는 듯한 말투였다고 하는데, 그 다정함 때문에 더 아프게 읽혔습니다.

<우리가 주워진 세계>만의 재미는 이 '왕국'이라는 말에 있는 것 같아요. 원제가 (ゴミの王国), 우리말로 '쓰레기의 왕국'이거든요. 도모에 모녀에게 쓰레기 더미로 만든 왕국이 있었다면, 아사히네 집에는 가족 말고는 누구도 들어올 수 없는 '청결의 왕국'이 있어요. 한쪽은 너무 채워서, 한쪽은 너무 비워서 자기를 지켜 온 사람들이에요. 장마다 첫머리에 같은 그림이 실려 있는 것도 좋았어요. 페트병 안에서 두 사람이 손을 잡고 있는 그림이 매번 나와서, 장이 바뀔 때마다 이 둘을 다시 떠올리게 되더군요. (무미 스파게티), (파르페 민트), (중간부터 본 드라마) 같은 장 제목도 하나같이 무슨 이야기일까 궁금하게 만듭니다.
가장 천천히 읽었던 부분은 4장 (파르페 민트)에서 아사히가 2년 반 만에 본가에 가는 장면이에요. 아버지가 계단에서 넘어져 입원했다는 연락을 받고 급히 내려갔는데, 알고 보니 단순 골절이었어요. 어머니는 "미안해!" 하면서, 졸업하고 한 번도 안 와서 궁금했다고 합니다. 눈가 주름이 전보다 조금 더 깊어진 것 같다는 한 줄에서 저는 오래 멈춰 있었어요.
부모님은 아사히가 교육 출판사에 다니는 줄 알아요. 최종 면접에서 떨어졌는데 붙었다고 거짓말을 해 버렸거든요. 그래서 집에 오기 전에 유난히 꼼꼼하게 몸을 씻고, 식탁에서는 어머니 눈을 피합니다. 티끌 하나 없이 반짝이는 컵에 맥주를 받아 들고 아사히는 "이제 그만해도 되지 않아요?" 하고 말을 꺼내요. 청소 말이에요. 둘뿐인 집을 왜 그렇게까지 치우냐고요. 그런데 그 말을 뱉어 놓고 스스로도 어이없어합니다. 정작 자기는 방에 티끌 하나만 있어도 못 견디는 사람이니까요.

어머니와 자신을 "아버지가 프로그래밍한 로봇청소기"에 빗대는 문장에서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그 뒤로 어머니가 아사히도 몰랐던 옛이야기를 꺼내는데, 그걸 듣고 나면 이 집의 청소가 전혀 다르게 보입니다. 아이를 위해 시작한 일이 어느새 그 자체로 목적이 되고, 결국 누군가를 집에 묶어 두는 족쇄가 되어 버렸다는 이야기예요. 저도 부모 노릇을 하는 입장이라 이 대목이 남 일 같지 않았습니다. 걱정에서 시작한 습관이 가족의 규칙으로 굳어 버리는 일은 어느 집에나 하나쯤 있지 않을까 싶어요.
1장에서 곰팡이 핀 찹쌀떡을 보고 문득 어머니를 떠올리던 장면이 이 식탁 장면과 이어지는 것도 좋았어요. 앞에서 무심히 지나간 문장이 뒤에서 다시 돌아오는 재미가 있습니다.
5장 (깨끗한 쓰레기 저택)에서는 동료 민토와 도는 수거 현장이 나와요. 재활용품 수거 날인데, 민토는 맥주캔 브랜드만 봐도 세상 형편을 알 수 있다고 해요. 작년보다 맥주캔이 줄었고, 발포주나 싼 캔 칵테일이 부쩍 늘었어요. 역을 사이에 두고 북쪽 서민 동네와 재개발된 남쪽 동네의 쓰레기가 달라지는 풍경도 나옵니다. "평소에는 그다지 의식하지 못하는 그 경계를 말없는 쓰레기가 알려준다"는 문장이 인상적이었어요. 분리수거장에 뭐가 쌓이는지로 동네를 읽는 시선이라니, 이 작가는 쓰레기를 참 오래 들여다본 사람 같습니다.
같은 날, 일용직 운전기사 사와키 씨가 자전거 탄 청년의 길을 막는 일이 생겨요. 청년은 일부러 들으라는 듯 "사회에 적응 못 하는 사람들이니까 이런 일이나 하는 거겠지" 하고 내뱉습니다. 아사히가 민토에게 들은 대로 "마지막까지 자기 자신만은 포기하면 안 된다"고 말하자, 사와키 씨가 소리를 높여요. 20년을 버틴 동네 술집은 망하고 빚만 남았고, 연금도 얼마 안 된다고요. 그리고 "나를 포기해야 이렇게라도 일하며 버틸 수 있는 거라고!" 하고 외칩니다.
그 말에 아사히는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해요. 몇 번이고 재활용되는 자원처럼 사람도 다시 일어설 수 있지만, 그 과정에서 마음은 조금씩 닳고 깎여 나간다는 생각이 이어집니다. 쉰 가까운 나이가 되고 보니 '포기하지 마'라는 말이 누군가에게는 짐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알아요. 소설이 그 말을 쉽게 편들지도, 쉽게 버리지도 않는 게 좋았어요.
민토는 그 반대편에서 균형을 잡아 주는 인물 같아요. 끝까지 정중한 말투로 사와키 씨를 대하고, 아사히가 어깨를 떨 때는 "괜찮을 거야" 하고 손을 얹어 주는 사람이에요. "그렇게 존재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해"라는 민토의 말은 이 책에서 제일 오래 붙들고 싶었던 문장이었습니다. 도모에에게도 마주해야 할 과거가 있고, 아사히는 그 길에 함께 나서요. 그 길이 어디에 닿는지는 직접 읽어 보시는 게 좋겠습니다.
솔직히 걸렸던 부분을 하나 꼽자면, 초반의 쓰레기 묘사가 너무 생생하다는 거예요. 곰팡이 핀 찹쌀떡, 누런 국물, 치킨 뼈가 코앞에 있는 것처럼 그려져서 비위가 약한 분이라면 첫 장은 조금 각오하고 들어가시면 좋겠어요. 다만 그 냄새를 한 번 통과하고 나면, 뒤에 이어지는 따뜻함이 훨씬 크게 다가옵니다.
소장 욕심도 나는 책이에요. 페트병 사이로 별이 흩어진 표지가 예쁘고, 장마다 같은 그림이 들어가 있어 책 자체가 하나의 작은 전시처럼 느껴졌어요. 핸드북 판형이라 손에 쥐는 맛도 좋고, 편집자 편지까지 끼워 두면 오래 보관하고 싶은 한 권이 됩니다.

오늘이 마침 추석 연휴가 시작되는 목요일이네요. 아침저녁으로 바람이 선선해져서 소설 속 한겨울 수거 현장이 오히려 더 또렷하게 그려지는 것 같습니다. 고향 가시는 분들은 부모님 눈가 주름을 한 번쯤 찬찬히 보게 되실지도 모르겠어요. <우리가 주워진 세계>를 덮고 나니, 버린 것과 남긴 것 사이에서 마음 한 칸이 정리된 기분이에요. 명절 끝나고 분리수거장이 산처럼 쌓일 게 벌써 눈에 선한데, 올해는 페트병 라벨만큼은 깔끔하게 떼서 내놓을 생각입니다. 책 한 권이 분리수거 교육까지 시켜 주네요. 좋은 책 만나서 연휴 시작이 든든합니다.
모든 걸 비우는 남자와 아무것도 버리지 못하는 여자가 서로의 왕국 문을 두드리는, 쓰레기 냄새 끝에 따뜻함이 남는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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