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환의 아이 : 하
치넨 미키토 지음, 민경욱 옮김 / 더픽션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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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괜찮다는 말이 무기가 될 때. <몽환의 아이> 하권 서평

앞서 상권 서평을 먼저 올리고 이어서 하권을 쓰고 있어요. 상권 서평을 못 보신 분들은 그거 먼저 보고 오시면 이해하시기 편하실 거예요. 드라마도 막장 아닌 이상 재미있는 건 정주행하듯이요.



네 명의 환자, 같은 날 같은 지역에서 발병한 이레스, 도쿄 서부의 연쇄살인. 상권을 덮을 때만 해도 선이 다 보인다고 믿었어요. 그런데 하권 막바지에서 그 선들이 한 점으로 모이는 순간, 앞에서 읽은 장면들의 의미가 통째로 바뀌었습니다. 영화도 쉬었다가 다시 보면 앞부분이 잘 이해 안 돼서 두 번 보는 경우가 있잖아요. 이 소설도 연속으로 읽지 않는 이상 다시 읽거나 찾아보고 싶은 부분이 생기는 구간이 있습니다.

하권은 제3장 '몽환의 연주회'로 시작합니다. 조종석과 법정을 지나온 독자 앞에 이번엔 연주회장이 열려요. 잠든 사람의 내면이 만든 세계가 왜 하필 그 모양인지, 그가 살면서 무엇을 가장 붙들고 있었는지가 공간의 형태로 드러나는 설정인데, 세 번째에 이르면 이 규칙이 장난이 아니라는 게 확실해집니다. 작가는 무대를 지어놓고 그 무대의 문턱과 막힌 문을 전부 감정의 이름으로 부릅니다.



조종석, 법정, 연주회장. 세 곳을 차례로 지나고 나면 자기 안에는 어떤 방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어요. 저는 그게 좀 궁금했습니다.

제4장 '몽환의 부식'은 제목 그대로입니다. 앞 장들이 한 사람씩 구해내는 이야기였다면 여기서는 지켜온 게 조금씩 갉아먹혀요. 병원 안의 긴장, 특별 병실에 숨겨진 정체불명의 환자, 학대당한 채 실려 온 소년. 세 갈래가 동시에 조여드는 구간이라 읽는 속도가 저절로 빨라졌습니다.

그리고 막간 4.

이 소설에서 막간은 장식이 아닙니다. 분량은 짧은데, 다 읽고 나서 저는 앞으로 되돌아가 병실 장면들을 다시 확인했어요. 누가 말하고 있었는지, 왜 이 대목이 하필 여기 놓였는지가 드러나는 순간 앞의 이야기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늦은 시간이었는데 그 자리에서 잠이 달아났습니다. 이런 것 때문에 두꺼운 소설을 못 놓는 것 같아요.

제5장 '그리고, 몽환의 끝으로'는 해답의 장입니다. 독립된 사건처럼 굴러가던 환자들 이야기가 하나로 합쳐지고, 소설이 앞에서 세워둔 규칙을 하나도 어기지 않은 채 끝까지 밀고 갑니다. 저는 판타지가 섞인 미스터리를 읽을 때 늘 이 지점을 봅니다. 초자연적 설정을 깔아놓고 결말에서 편의대로 비틀어버리면 앞의 긴장이 전부 헛것이 되니까요. 치넨 미키토는 그러지 않습니다. 쿠쿠루, 마부이, 마부이구미가 마지막까지 자기 법칙대로 작동해요.



책을 보면서 이런 생각도 들더군요. 나를 살린 사람과 나를 부순 사람이 같은 사람일 때, 그다음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쉬운 답을 내놓지는 않는 거 같더라고요. 은인이면서 가해자인 존재를 끝까지 한 사람으로 그려낼 뿐이에요. 나이를 먹을수록 이게 남의 일이 아니게 됩니다. 나를 키운 방식과 나를 상하게 한 방식이 사실 같은 것이었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되는 일이 있잖아요. 미워하자니 내가 지워지고, 감사하자니 상처가 억울해지고. 그 사이에서 어느 쪽으로도 쉽게 기울지 않는, 그런 느낌이 들더군요.

상권에서 누군가를 안심시키던 "괜찮아"라는 말이, 하권에서는 방향이 정반대로 바뀌어 돌아옵니다. 같은 말이 위로도 되고 무기도 된다는 걸 두 권을 들여 보여줘요.



에필로그의 마지막 풍경은 꼭 천천히 보세요. 인물의 마음이 지금 어떤 상태인지 작가가 한마디도 설명하지 않는데, 하늘 색이랑 바다 색만 보고 있으면 그게 전해집니다. 설명 없이 색으로만 마무리하는 방식이 저는 참 좋았어요.

옮긴이의 말도 빼놓지 마시고요. 민경욱 번역가는 원제 '무겐노아이(ムゲンのi)'를 처음 봤을 때 몽환의 세계에서 활약하는 주인공 아이의 이야기라서 '몽환의 아이'로 읽는 줄 알았는데, 마지막에 이르러 다른 의미를 발견했다고 밝혀둡니다. 무겐노아이는 무한한 사랑이기도 합니다. 제목이 두 번 읽히는 셈이에요. 이걸 본문 다 읽고 마주하면 감상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정주행하듯이 상권부터 하권까지 이어서 보시면 몰입감도 있고 재밌습니다.

감정을 아끼는 편은 아닌 거 같아요. 후반부로 갈수록 눈물의 밀도가 높아지고, 인물들이 자기 상처를 말로 풀어내는 장면이 꽤 깁니다. 절제된 미스터리를 좋아하시면 과하다 느끼실 수 있어요. 상권을 안 읽고 하권부터 집으면 거의 아무것도 성립하지 않는다는 점도요. 두 권을 한 작품으로 보고 들어가셔야 합니다. 두께도 보통 소설책보다 제법 있는데, 저는 이 분량이 낭비로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앞을 그만큼 쌓아뒀기 때문에 마지막이 성립하는 구조라서요.

저 같은 경우는 며칠 연속으로 틈틈이 시간 날 때 읽었는데, 그게 맞았던 것 같아요. 띄엄띄엄 읽으면 하권의 회수 장면들이 힘을 잃거든요. 주말 하나 끼워서 계획 잡으시면 리듬이 안 끊깁니다.

2020년 일본 서점대상 후보작이고 국내에는 이번에 처음 소개됐습니다. 상하권 표지가 이어지는 한 장의 하늘 그림이라 나란히 꽂아두면 그 자체로 그림이 되고요.

트릭이 어떻게 짜였나보다 저 사람은 왜 저럴 수밖에 없었을까가 더 궁금해지는 소설이었어요. 오래 붙들고 읽을 한 질이 필요하신 분한테도 좋을 것 같고요. 상권만 집어 들까 망설이고 계시면 두 권 같이 데려오시는 게 낫습니다. 상권 덮고 하권 사러 나가는 일은 생각보다 괴롭더라고요.

다 읽고 표지를 한참 들여다봤습니다. 제목이 처음과 다르게 읽히는 경험, 오랜만이었어요. 두 권 나란히 꽂아두고 나니 좋은 책을 만난 거 같아서 좋았습니다.

마지막 몇 장이 앞의 이야기를 통째로 다시 읽게 만듭니다. 제목까지 다시 읽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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