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로 읽는 수능 고전시가 - 2022 개정 교육과정 반영
이가영(seri) 지음 / 꿈을담는틀(학습) / 2015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유튜브에 올라온 짧은 영상 하나가 이 책의 이름을 여러 번 듣게 만든 계기였습니다. 서울대 나민애 교수가 자녀에게 읽히는 책으로 꼽은 세 권 가운데 하나로 <만화로 읽는 수능 고전시가>가 소개됐고, 그 뒤로 예비 고1 자녀를 둔 집들 사이에서 제목이 돌기 시작했어요. 학습서가 이런 식으로 입소문을 타는 경우는 흔치 않아서, 실물이 궁금했습니다.


먼저 한 가지만 짚고 가겠습니다. 표지와 제목이 비슷한 다른 책들이 있어서 검색창에서 헷갈리기 쉬워요. 제가 본 도서는 꿈을담는틀에서 나온 이가영(seri) 작가의 <만화로 읽는 수능 고전시가>입니다. 노란 바탕에 검은 박스로 제목을 앉히고 '최신 개정판' 딱지가 붙은 판본이고, 아래쪽 파란 띠에 "학생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고전시가, 이 책을 미리 읽으면 수업이 100배 쉬워집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주문하실 때 출판사까지 한 번 확인하시면 좋겠습니다.


손에 들고 놀란 건 부피였어요. 학습서라고 하면 두껍고 묵직한 물건을 예상하게 되는데, 판형도 두께도 가볍습니다. 책상 앞에 각 잡고 앉지 않아도 펼칠 수 있다는 점이 이 종류의 책에서는 꽤 큰 장점입니다.


작가 이력이 이 한 권의 성격을 거의 설명해 줍니다. 서울대 국어교육과를 최우등으로 졸업하고 같은 과 대학원 석사 과정을 수료한 뒤 국어 교사로 일했고, 임용 준비 시절을 그린 <고시생툰>을 네이버에 연재했던 분이에요. 지금도 현역입니다. 네이버 웹툰 <내가 키운 S급들>의 각색을 맡아 연재 중이니, 취미로 그림을 곁들인 교사가 아니라 그림으로 밥을 먹는 사람이 교단에서 필요하다고 느껴 만든 책인 셈입니다. 저자의 말에 이런 문장이 있어요. "고전시가에는 여러분이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재미있고 신기한 이야기가 가득 담겨 있습니다." 교사의 문제의식과 만화가의 기술이 한 사람 안에 있다는 게 페이지마다 드러납니다.


학습 만화는 글 작가와 그림 작가가 나뉘는 경우가 많다고 알고 있습니다. 설명은 정확한데 그림이 겉돌거나, 그림은 재미있는데 정작 짚어야 할 대목을 비껴가는 일이 그래서 생기죠. 이 도서는 구상과 작화를 한 사람이 했고, 그 덕에 컷의 리듬과 설명의 밀도가 어긋나지 않습니다. 10년 넘게 학습서 분야에서 자리를 지켜온 이유가 이쯤에 있지 않나 싶었어요.




지면은 세 층입니다. 위에 만화, 아래에 원문과 현대어 풀이. 개정판에서 새로 들어간 <관동별곡>을 보면 구성의 의도가 선명합니다. 관찰사 임명 장면에서 캐릭터가 "너 강원도 도지사 임명!"이라고 던져 버려요. 직책을 설명하느라 몇 줄을 쓰는 대신 대사 한 줄로 끝냅니다. 폭포를 그린 대목도 좋았습니다. 멀리서 들을 때는 우레 같더니 가까이서 보니 눈 같다는 구절이 컷 두 개로 갈라져 있어서, 청각에서 시각으로 옮겨 가는 이동이 그림으로 그대로 보입니다. 봉우리를 세다가 9897, 9898 하고 넘어가는 장면에서는 웃음이 났어요. 일만 이천 봉이라는 숫자가 머리로만 알던 것에서 몸으로 느껴지는 것으로 바뀌더군요.


오래 머문 자리는 화룡소였습니다. 저 늙은 용이 비를 뿌려 그늘에서 시든 풀을 다 살려 냈으면 한다는 대목인데, 여기서 만화의 태도가 달라집니다. 농담을 거두고 캐릭터가 칠판 앞에 서서 풀이 백성을 뜻한다고 알려줘요. 음애예 이온 플을 다 살와 내여사라. 수백 년 전 지방으로 내려가던 관리가 품었던 마음을 그냥 지나치게 두지 않겠다는 편집자의 판단으로 보였습니다.


향가로 넘어가면 지면 짜임이 바뀝니다. 노래가 짧으니 앞뒤를 배경 설화로 감싸고, 해설면에서 갈래와 성격과 의의를 정리하는 방식이에요. 갈래에 따라 설계를 다르게 가져간 점이 꼼꼼합니다. <제망매가>가 특히 그랬습니다. 한 나뭇가지에 잎을 그려 놓고 각각에 Me, Sister, Parents를 붙인 컷이 있는데, 가을바람에 흩어지는 잎이 곧 한 부모에게서 난 형제라는 비유가 설명 없이 전달됩니다. 끝은 "아야 미타찰아 맛보올 나 도 닷가 기드리고다"로 닫히고요. 학창 시절에는 10구체 향가라는 갈래 이름으로만 외웠던 작품인데, 마흔을 훌쩍 넘겨 다시 보니 읽히는 결이 달랐습니다.



시조 파트는 배열이 인상적입니다. 이존오의 구름, 이색의 백설과 매화, 정몽주 어머니의 까마귀, 박팽년의 까마귀가 연달아 놓여 있어서, 같은 새가 한쪽에서는 어울리지 말아야 할 무리로, 다른 쪽에서는 겉과 속이 다른 존재로 쓰이는 차이가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와요. 이색의 작품에 붉은 하늘 아래 늙은 선비가 홀로 선 그림이 있는데, 석양에 홀로 서서 갈 곳을 몰라 한다는 종장이 그 한 컷에 다 담겨 있었습니다.


그동안 받아 본 목록에 학습서는 드물어서 오히려 더 들여다보게 됐어요. 고전시가를 재미있게 만드는 일이 가능한가 싶던 의심이 페이지를 넘기면서 줄어들었습니다. 고등학교 입학을 앞둔 아이가 있는 집이라면 거실 탁자에 올려 두기 좋고, 어른이 먼저 펼쳐도 아깝지 않습니다. 뜻도 모르고 외웠던 노래들이 무슨 말을 하고 있었는지 뒤늦게 알게 되는 대목이 분명 있으니까요.



9월도 하순으로 접어들어 아침저녁 공기가 선선해졌습니다. 중간고사가 멀지 않아 아이들 책상에 문제집이 쌓여 갈 시기인데, 그 사이에 만화책 얼굴을 한 노란 표지가 한 권쯤 섞여 있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잎이 지기 시작하는 계절이라 <제망매가>의 그 구절이 더 오래 남습니다.


웹툰으로 현업을 이어가는 국어 교사가 혼자 쓰고 그려, 어렵다고 소문난 옛 노래를 시험 대비와 작품 감상 양쪽에 걸쳐 놓은 학습서입니다.



#만화로읽는수능고전시가 #고전시가 #이가영 #seri #고시생툰 #내가키운S급들 #꿈을담는틀 #고전시가의모든것 #관동별곡 #정철 #제망매가 #서동요 #처용가 #시조 #서울대교수추천도서 #나민애교수추천 #학습만화추천 #수능국어 #예비고1 #중3추천도서 #북유럽카페서평단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