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원시인 수면법 - 잠까지 완벽할 필요는 없다
메레인 판더라르 지음, 고현석 옮김 / 21세기북스 / 2026년 8월
평점 :
"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표지를 먼저 보게 되는 책이 있습니다. <원시인 수면법>이 그랬어요. 잠을 다룬 책이라면 보송한 침구나 달빛 정도를 떠올리게 되는데, 이 도서의 얼굴은 청록빛이 도는 밤의 숲입니다. 물기 어린 잎사귀 사이로 흰 글씨가 두껍게 박혀 있고, '시'자 안쪽에 사람 하나가 서 있어요. 누워 있지 않고 서 있다는 점이 눈에 남았습니다. 아래쪽 띠지에 적힌 "완벽한 잠을 목표로 삼는 순간, 잠은 휴식이 아니라 과제가 된다!"라는 한 줄은 이 책이 하려는 말을 거의 다 담고 있고요. 손에 쥐면 좁은 판형에 제법 도톰해서, 오래 붙들고 읽기에 편안한 두께였습니다.

저자 메레인 판더라르는 네덜란드 수면의학센터에서 오래 일한 수면 치료사입니다. 동시에 이십 대에 심각한 불면을 겪은 환자이기도 했어요. 책 안에서 그 시절을 숨기지 않고 꺼내 놓는데, 무용 공연을 준비하며 스무 명에게 안무를 가르치던 무렵 음악과 동작이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다고 합니다. 건강도 관계도 일도 안정적이었는데 잠만 자지 못했고, 수면치료사로서 스스로에게 숙면을 선물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다고 적어 두었습니다. 치료사가 자기 침대를 먼저 고백하고 시작하는 책이라, 첫인상부터 경계심이 좀 풀렸어요.
첫 장은 예상과 다른 곳에서 출발합니다. 잠을 잘 자는 법이 아니라 우리 몸이 어떤 밤에 맞춰 만들어졌는지를 먼저 훑어요. 조상들의 조상은 나무 위 둥지에서 잤고, 이유는 명확합니다. 높은 곳에 있으면 포식자를 피할 수 있으니까요. 졸다가 갑자기 떨어지는 느낌에 깜짝 놀라 깨는 근육 수축, 이른바 수면놀람증이 그 시절의 흔적일 수 있다는 설명이 나오는데 이 대목에서 책이 확 가까워졌습니다. 따분하지만 중요한 회의 중에 고개가 꺾이는 장면을 저자가 예로 드는데, 그 민망한 순간조차 나무에서 떨어지지 않으려던 반응의 잔재라는 이야기니까요.
지금까지 발견된 가장 오래된 침대는 이십만 년쯤 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풀과 나뭇가지, 잎사귀로 만들어 동굴 안에 두었고 그 위에는 벌레를 쫓는 식물이 놓여 있었어요. 잠자리를 조금이라도 낫게 만들려는 손길이 그렇게 오래됐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뭉클했습니다. 고고학자들은 침대 층층에서 재도 발견했다는데, 잠을 자고 난 뒤 깔개에 불을 질러 벌레를 쫓았던 흔적이라고 하고요. 지금 이 의식을 되살린다면 아침마다 태울 침대를 싣고 쓰레기장으로 향하는 자동차 행렬이 생길 거라는 농담까지 붙여 두는데, 이런 유머 덕분에 사백 쪽 가까운 분량이 무겁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책의 무게중심은 제4장에 있습니다. 전통 생활을 유지하는 부족 사회에는 '불면증'이라는 말조차 없는 경우가 많다는 관찰에서 시작해서, 밤중에 깨는 일을 고장으로 여기지 않는 태도가 어떻게 가능한지를 짚어요. 저녁형 인간은 늦게까지 경계를 유지하고 아침형 인간은 새벽에 깨어 무리를 지켰으며, 그 사이의 공백은 얕은 잠을 자는 사람들이 메웠다는 가설이 이어집니다. 그리고 이렇게 적혀 있어요. "얕은 잠을 자는 사람들은 어쩌면 동굴 속에서 모두를 지켜 낸 '슈퍼 히어로'였는지도 모른다." 저자 스스로 다소 냉소적인 위로로 들릴 수 있다고 먼저 인정하고 꺼내는 문장인데, 그 조심스러움까지 포함해서 좋았습니다.
같은 장에서 마음이 가장 오래 걸린 곳은 따로 있었어요. 잠을 못 자는 사람에게 주변이 건네는 선의가 오히려 절망이 될 수 있다는 대목입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 마음을 놓아 버려야 해, 나도 가끔 잠을 못 자. 저자는 이런 말들이 대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잘라 말합니다. 할 수 있는 건 다 해 봤는데도 나아지지 않을 때 사람은 자기가 무기력하다고 여기게 되고, 주변이 그 힘듦을 가늠하지 못할 때 더 외로워진다고요.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의 무력감도 함께 그려 두는데, 잠은 잘 잤냐는 아침 인사에 돌아오는 대답을 한 줄로 떼어 놓았습니다. "최악이었어. 당신은?" 짧은 대화 한 토막에 그 집의 아침 공기가 다 들어 있는 것 같았어요.
그렇다면 왜 현대인만 이렇게 잠들기 어려운가. 이 책의 답은 잠 자체가 아니라 잠을 대하는 방식에 있습니다. 스필먼과 글로빈스키의 모델을 빌려 타고난 수면 성향, 실직 같은 촉발 사건, 그리고 문제가 생긴 뒤에 새로 만들어지는 사고방식과 행동을 나눠 설명해요. 마지막 항목이 핵심입니다. 왜 아직도 깨어 있지, 이러다 내일 망치겠어 같은 걱정, 시계를 자꾸 확인하는 습관, 오늘은 꼭 숙면해야 한다는 기대 같은 것들이요. 뇌는 이런 생각을 진짜 벌어진 일처럼 받아들여서, 일을 망칠 거라고 생각하는 순간 이미 스트레스 반응을 시작한다고 합니다. 포식자를 떠올리는 것만으로 몸은 포식자가 눈앞에 있는 것처럼 반응한다는 설명이 붙는데, 이 책에서 포식자라는 말이 어떻게 쓰이는지가 여기서 드러납니다.

뒤쪽으로 갈수록 실천 쪽으로 내려옵니다. 잠들기 한 시간 반쯤 전부터 하루를 차분히 정리하라는 권유가 나오고, 그 본보기로 주/호안시 부족의 저녁이 등장해요. 선선해지고 어두워지면 모닥불 앞에 둘러앉는데, 낮에는 채집 계획이나 사냥 전략 같은 실용적인 이야기를 하다가 밤에는 대화의 성격이 바뀐다고 합니다. 모닥불 대화의 팔십 퍼센트 이상이 상징적인 이야기이고 대개 배울 만한 교훈을 담고 있으며, 낮에 직접 부딪치던 갈등이 밤에는 이야기 형태로 풀려 나온다고요. 관찰한 연구자는 "그들은 그날의 문제들을 불씨와 함께 사라지게 했다"라고 표현했습니다. 인터넷과 소셜미디어 이후 우리의 실용적인 정보 흡수가 하루의 마지막 순간까지 이어진다는 문장이 바로 뒤에 놓여 있어서, 이 대비가 오래 남았어요.
의자에 앉아 하는 호흡 연습도 소개되는데, 억지로 리듬을 만들지 말고 자연스러운 호흡을 따라가라는 당부가 붙습니다. 침대가 아니라 의자에서 연습하라는 조건도 일관돼요. 그리고 이 장에서 저자가 얻었다는 깨달음 하나가 특히 오래 남았습니다. 밤에 사람을 깨우는 것이 꼭 부정적인 생각만은 아니라는 것, 즐거운 활동이나 창의적인 일도 속도를 늦추지 않으면 잠을 밀어낸다는 것이요. 속도를 줄이다 보면 열패감이 들 수도 있지만, 한계를 인정하면 오히려 여유가 생기고 뇌는 더 안전한 환경에 있다고 여기게 된다는 설명이 따라옵니다. 마흔 후반쯤 되면 이 문장이 다르게 읽힙니다. 잠을 못 자는 게 아니라 무언가를 더 하겠다고 선택한 대가라는 관점 전환이니까요.
마지막 장은 균형을 이야기합니다. 성인의 최적 수면 시간이 여덟 시간이라는 생각은 십구 세기 초의 낡은 관념에 기반한 과장된 믿음으로 보인다고 단언하고, 조상들의 평균은 여섯에서 일곱 시간 사이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정리해요. 나이가 들수록 밤잠에서 자주 깨는 현상을 파수꾼 가설로 설명하는 대목도 여기 있습니다. 노인들이 위험 신호에 더 쉽게 깨어났고 그 예민함이 무리를 지켰다는 이야기인데, 새벽에 눈이 떠지는 변화를 쇠퇴의 신호로만 읽지 않게 해 주더군요. 필요한 수면의 양이 삶의 시기마다 달라질 수 있고 어떤 시점에는 이전보다 적게 자도 충분할 수 있다는 문장도 같은 자리에 놓여 있습니다.
책 전체를 관통하는 비유는 식사입니다. 좋은 식사에는 준비가 필요하고, 시작하기 전에 어느 정도 배가 고파야 하고, 몸이 심하게 긴장해 있으면 진수성찬 앞에서도 제대로 먹지 못한다는 이야기예요. 허기가 수면 압력에 해당한다고 보면 그림이 선명해집니다. 감자칩 반 봉지를 먹은 뒤 형편없이 조리된 음식을 꾸역꾸역 삼키려는 상황이 곧 우리가 잠에게 요구하는 것과 같다고요. 산업사회에서 잠이 일종의 패스트푸드가 되어 버렸다는 진단으로 이어지는데, 빠르고 즉각적인 효과를 기대하는 방식이 새로운 기준이 됐다는 말이 뼈아팠습니다.

다 좋았느냐 하면 걸리는 데가 하나 있었어요. 여덟 시간이라는 기준을 낡은 관념이라며 물리친 책이 정작 뒤쪽에서는 꽤 촘촘한 숫자를 내놓습니다. 잠들기 두세 시간 전부터 주변 밝기를 촛불 열 개 정도로, 잠자리 들기 한두 시간 이내에는 격렬한 운동을 피하고, 침상 시간은 주 단위로 십오 분에서 삼십 분씩 조정하라는 식으로요. 대부분 환경에 관한 조건이고 잘 잤는지를 채점하는 항목은 아니니 성격이 다르긴 합니다. 다만 숫자에 예민한 사람이라면 이 안내마저 새로운 체크리스트로 삼기 쉽겠다 싶었어요. 통제를 내려놓으라는 권유와 구체적인 지침 사이에서 어느 쪽으로 기울지는 결국 읽는 사람 몫으로 남습니다.
서평단으로 여러 책을 만나다 보면 읽고 덮으면 끝나는 책과 생활 어딘가에 남는 책이 갈리는데, 이번 한 권은 후자에 가까웠어요. 잠을 잘 자게 해 주겠다고 약속하는 대신 잠을 채점하지 말라고 말하는 쪽이라서 그런 것 같습니다. 여덟 시간을 채웠는지 헤아리는 습관이 오래된 분, 새벽에 눈이 떠지는 일이 잦아져 내심 신경 쓰이는 분이라면 얻어 갈 문장이 많을 거예요. 수면 관련 정보를 찾다가 자극적인 제목들 사이에서 지쳤던 분에게도 좋은 정리가 됩니다. 저자가 마지막에 붙여 둔 당부처럼, 숙면이 힘든 밤에는 원시인이라면 어떻게 했을지 한번 물어보는 정도가 이 책이 권하는 전부입니다.
책 끝에서 저자는 자기처럼 당신도 특별한 원인이 없어 보이는데 잠들기 어려운 날이 있을 수 있다고 적어 둡니다. 치료사가 끝까지 독자 옆자리에 앉아 말하는 방식이 이 책의 결을 잘 보여 준다고 생각했어요.
9월 중순을 넘기면서 밤공기가 눈에 띄게 선선해졌습니다. 해도 부쩍 일찍 저물고요. 계절이 알아서 어두워지고 서늘해지는 이 시기가, 잠에 관한 책을 읽기에는 가장 좋은 때가 아닐까 싶습니다. 오늘 밤에는 몇 시간을 잤는지 세는 대신 불빛 몇 개만 미리 꺼 두려고 합니다.
잠을 더 잘 자는 기술 대신, 잠을 채점하지 않는 태도를 배우게 하는 다정한 수면 과학서.
#원시인수면법 #SleepLikeaCaveman #메레인판더라르 #고현석옮김 #21세기북스 #수면과학 #불면증 #교양과학 #진화심리학 #수면의질 #8시간수면 #수면습관 #밤중각성 #수면일지 #장동선추천 #북유럽카페 #서평단 #책추천 #독서기록 #네이버블로그서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