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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이 운명을 이긴다 - 기회를 행운으로 바꾸는 작은 행동의 힘
티나 실리그 지음, 이수경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6년 8월
평점 :
"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엘리베이터가 덜컹 멈춰 서는 장면으로 이 책은 시작합니다. 낯선 여성이 비상 정지 버튼을 누르고, 옆에 있던 남성이 산업 스파이냐고 날카롭게 묻습니다. 지목당한 사람은 저자 본인이에요. 대학을 졸업하고 들어간 첫 직장에서 상사는 경쟁 스타트업이 주최하는 콘퍼런스에 스탠퍼드대 박사 과정 학생인 척 참석하라고 지시했고, 경험 없는 사회 초년생이던 그는 토를 달지 않고 알았다고 답했습니다. 시카고까지 날아가 발표마다 질문을 던졌는데, 나중에 보니 그 분야를 꽤 아는 사람만 던질 수 있는 질문이었던 겁니다. 주최 측이 회사에 확인 전화를 걸었고, 정체가 드러난 그는 멈춘 엘리베이터 안에서 실토한 뒤 건물 밖으로 거칠게 쫓겨납니다. 그 순간 속으로 내뱉은 말은 운도 없다는 탄식이었고요.

운을 다루는 책이 이렇게 망신스러운 실패로 문을 연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어요. 티나 실리그는 <스무 살에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로 오래 읽힌 저자인데, 10년 만의 신작에서는 곧바로 자기 실수담을 꺼내 놓습니다. 그리고 원인을 상사나 업계 관행 쪽으로 돌리지 않아요. 자신의 핵심 가치관에 대해, 그 가치관이 시험대에 오를 때 어떻게 행동할지에 대해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적습니다. 상사를 기쁘게 하려고 충동적으로 움직였다는 인정까지 덧붙이고요.
여기서 등장하는 비유가 책 전체의 골격이 됩니다. 배가 안정성과 복원력을 유지하려고 밑바닥에 싣는 중량물이 밸러스트인데, 분명한 가치관이 그 무게추와 같다는 겁니다. 눈앞의 제안이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신념과 맞는 것인지, 항로를 벗어나게 하는 유혹적 방해물인지 분별하게 해준다는 설명이에요. 첫 장 머리에 적힌 한 줄이 이 책의 입장을 요약합니다.
"행운은 옳다고 믿는 가치관을 지켜 격랑에도 흔들림 없이 나아가는 사람의 편이다."

속도나 방향보다 무게를 먼저 이야기한다는 순서가 좋았습니다. 표지의 청록빛 물결도 잔잔하다기보다 계속 움직이는 수면처럼 보이는데, 그런 수면 위에서는 결국 배 밑에 뭘 싣고 있느냐가 남는다는 얘기니까요.
다만 저 엘리베이터 장면을 읽으면서 조금 다른 생각도 들었어요. 상사의 지시를 받은 사회 초년생이 그 자리에서 거절하기 어려운 위계도 분명히 작용했을 텐데, 책은 그 몫을 거의 다루지 않습니다. 미심쩍은 요청을 판단해줄 조언자 그룹을 곁에 두라, 누군가 잘못된 선택으로 떠밀 경우를 대비해 탈출 전략을 마련해두라는 조언도 옳기는 한데, 그런 그룹을 가진 사람과 갖지 못한 사람의 조건 차이는 개인의 결심으로 메워지지 않습니다. 사표를 던지고 나온 저자 남편의 일화 역시 결단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려워 보였고요. 한국 직장의 공기를 아는 독자라면 이 대목에서 저와 비슷한 유보를 느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이 도서가 실천만 밀어붙이지 않는다는 걸 뒤쪽에서 알게 됩니다. 3부에 회복을 다룬 장이 있는데, 여기서 저자는 실험실 냉동고에서 복어 독 시약병이 모두 열린 채 비어 있는 것을 발견한 대학원 시절을 꺼냅니다. 몸에는 별 이상이 없었지만 공포가 사라지지 않아 실험실 근처에만 가도 공황 상태에 빠졌고, 그 상태로는 졸업 연구를 끝낼 수 없었습니다. 그가 택한 방법은 체계적 둔감화였어요. 여러 주에 걸쳐 실험실에 조금씩 가까이 가고, 작업대에 다가가는 연습을 하고, 마지막에는 새로 채운 시약병 쪽으로 조금씩 더 다가갔습니다. 불안해질 때마다 멈춰서 물을 천천히 마시고 병원 응급실 쪽으로 걸어갔다는 문장, 실제로 가지는 않았지만 지척에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안심이 되었다는 문장에서 이 책의 온도를 봤습니다. 두려움을 의지로 눌러 없앤 기록이 아니라 거리를 조금씩 줄여간 기록이라 믿음이 갔어요.

같은 장에서 권하는 도구가 실패 이력서입니다. 성취를 나열하는 이력서의 반대편에 서서, 망친 경험과 좌절한 경험, 실패한 경험을 각각에서 배운 점과 함께 정리하는 겁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할 가능성이 낮아진다는 효용도 있지만, 시간이 한참 흐른 뒤까지 실수를 곱씹으며 괴로워할 가능성이 낮아진다고 적어둔 쪽이 마음에 남습니다. 스탠퍼드에서 강의하는 맷 에이브러햄스가 들려준 실패의 금요일 이야기도 재미있어요. 금요일마다 전 직원이 모여 그 주에 한 가장 큰 실수를 발표하고, 투표로 뽑힌 사람에게 저녁 식사 비용쯤 되는 상금을 주는데 같은 실수로 두 번 받을 수는 없었다고 합니다. 한국의 많은 사무실에서 이 제도를 그대로 옮기면 아무도 손을 들지 않을 것 같기는 합니다. 실수를 공개해도 불이익이 없다는 전제가 먼저 마련되어야 작동하는 장치인데, 책은 그 순서까지는 깊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회복을 다룬 장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결국 회복력은 실패를 피하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역경을 이겨낼 도구를 가졌음을 아는 데서 온다."
편집에서도 이 문장을 여백 한 면에 크게 다시 앉혔더군요. 도구를 가졌음을 안다는 표현이 위로가 됩니다. 무너지지 않는 사람이 되라는 요구가 아니고, 무너진 다음에 쓸 물건이 손에 있다는 확인에 가깝잖아요.

마지막 장은 가면 증후군을 다룹니다. 최근 문헌 고찰에서 설문 대상자 1만 4,000명 중 82퍼센트가 살면서 이 감각을 경험했다고 답했고, 연령대와 성별에 상관없이 고르게 나타난다고 해요. 저자는 이 증후군이 우울증과 불안, 낮은 자존감과 강한 상관관계를 보이며 만성 스트레스와 번아웃으로 이어진다는 연구를 먼저 밝혀둔 다음에야 관점을 뒤집자고 제안합니다. 그 순서가 성실해서 뒤따르는 주장도 받아들일 만했습니다.
이 장에서 가장 오래 붙잡힌 대목은 무술 이야기였어요. 가라테 8단인 사범이 제자의 동작을 보며 정확하지만 방식이 틀렸다고 자주 말한다는데, 결과가 좋아 보여도 동작에 명확한 의도가 담기지 않으면 수행의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뜻이었습니다. 무술에서도 인생에서도 의도는 식별 가능하다는 문장이 붙어 있고요. 책의 첫 장에서 충동적 반응과 숙고를 갈라놓았던 이야기가 마지막 장에서 다시 돌아온 셈입니다. 처음과 끝이 같은 축을 붙들고 있어서 구성이 단단해 보였어요.
공항 일화도 하나 적어둘게요. 낯선 남자가 맷 에이브러햄스에게 다가와 <불안을 이기고 당당하게 말하는 법>의 저자가 맞냐고 묻고는, 그 책을 샀는데 읽지 않았지만 큰 도움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읽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도움이 되었느냐는 물음에, 그런 주제를 다룬 책이 존재하는 걸 보고 자신만 그런 게 아니구나 알게 되어 혼자 힘으로 극복해보기로 했다고 답했다는 거예요. 이 책도 어떤 독자에게는 그런 방식으로 쓰일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저자가 자기 이야기를 꺼내는 대목도 짚고 싶어요. 익숙하지 않은 주제의 강의를 시작할 때 자격 미달인 것 같은 기분을 느끼지만 그 감정이 자연스럽다고 여기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공동 강사나 초빙 강연자를 찾는다고 합니다. 시간이 흘러 지식과 경험이 웬만큼 쌓이면 그런 안전장치를 없앨 수 있다는 말까지 덧붙이고요. 혼자 감당하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허락처럼 읽혔습니다. 물론 겸손해져서 덜 말하게 된다는 걸 이점으로 꼽은 부분은 조직에 따라 다르게 작동할 겁니다. 먼저 입을 여는 사람에게 기회가 돌아가는 자리에서는 그 겸손이 손해로 남기도 하니까요. 장을 닫는 인용은 엘리너 루스벨트의 말입니다. "당신이 두려워하는 일을 매일 하나씩 하라."
판형과 두께가 부담 없는 정도라 마음 편히 펼쳤는데, 막상 읽어보니 앉은 자리에서 쭉 넘기는 종류는 아니었어요. 장마다 세 가지 질문이 붙어 있습니다. 강인한 회복력을 발휘할 때가 언제인지, 안전지대 밖으로 나가 기회를 만난 경험이 있는지 같은 것들이요. 연필을 들고 답을 적으며 가는 안내서에 가깝습니다. 서평단으로 여러 책을 만나다 보면 읽고 덮는 책과 붙잡고 쓰게 되는 책이 갈리는데, 이 한 권은 후자에 속했습니다.
권하고 싶은 사람을 굳이 정리하지는 않겠습니다. 되는 일이 없다는 생각이 잦아진 시기라면 첫 장의 무게추 이야기가 먼저 닿을 테고, 실수 하나를 오래 품고 있는 사람이라면 실패 이력서 쪽부터 읽어도 괜찮습니다. 회의실에서 자기 자리를 의심해본 적 있는 연차라면 마지막 장을 먼저 펼치는 순서도 나쁘지 않아요. 어느 쪽으로 들어가도 항해라는 비유가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9월 중순이 되니 아침저녁 공기가 먼저 달라집니다. 여름 동안 미뤄둔 일들이 슬쩍 떠오르는 철이기도 하고요. 이런 계절에는 크게 방향을 틀기보다 배 밑에 뭘 싣고 있는지 확인하는 일이 더 맞는 것 같습니다. 돛은 그다음에 펼쳐도 늦지 않겠지요.
운을 기다리는 마음을 다루는 책이 아니라, 흔들릴 때 붙잡을 무게추와 다시 일어설 도구를 손에 쥐여주는 안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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