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 위의 염증
김슬기 지음 / 서사원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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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표지를 처음 봤을 때 시선이 먼저 붙은 곳은 붉은 테이프였어요. 회색 바탕 위에 옥수수와 감자, 사과가 놓여 있고 그 위로 굵은 가위표가 그어져 있습니다. 몸에 좋다고 배운 것들이 줄줄이 금지 표시를 받은 그림이죠. 옆에는 기름이 흘러내리는 나무 숟가락과 고구마가 아무렇지 않게 놓여 있어서, 이 도서가 어느 쪽으로 걸어갈지 표지만으로도 짐작이 됩니다. 하단 붉은 띠에 적힌 "병원에 가기 전에 식탁부터 바꿔라!"라는 문구는 그 태도를 한 번 더 확인시켜 주고요.


손에 쥐어 보니 크기도 두께도 부담이 없습니다. 이런 종류의 건강서는 각오를 하고 펼쳐야 할 때가 많은데, 이 한 권은 앉은 자리에서 몇 장씩 넘기며 읽어 나갈 만했어요. 지은이 김슬기 님은 미국 FxNA 공인 기능영양 카운슬러로, 20대에 알코올 중독과 거식증, 폭식증을 비롯한 여러 질병을 안고 살았다고 스스로 밝힙니다. 표준 영양학 지침을 성실히 따랐는데도 몸이 나아지지 않았던 시간에서 출발해 10년 넘게 식단을 파고들었다는 이력이 서문에 먼저 놓여 있어서, 뒤에 이어지는 단호한 주장들이 어디서 나왔는지 짚어가며 읽게 됩니다.


1부의 첫머리에서 저자는 만성적인 문제라면 매일 반복하는 행위를 들여다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가장 많이 반복하는 행위는 먹는 것이니, 위염이나 관절염, 설명되지 않는 피로감이 있다면 냉장고와 팬트리를 점검해야 한다고 하죠. 그러고는 사무실 탕비실과 책상 서랍까지 덧붙입니다. 이 한 줄이 의외로 정확해서 웃음이 났어요. 집 주방은 그래도 신경 써서 관리하는데, 정작 오후 세 시쯤 손이 가는 서랍 속 간식은 점검 대상에서 늘 빠져 있잖아요.


인슐린이 작동하는 방식을 설명하는 대목은 비유가 촘촘합니다. 세포벽의 인슐린 수용체를 열쇠와 자물쇠로, 세포 안 미토콘드리아를 에너지 생성 공장으로 놓고 시작해요. 하루 세 번 혈당을 크게 올리는 음식이 들어오면 간과 근육이 받을 수 있는 용량을 넘어서고, 남은 당은 글리코겐으로, 그러고도 남으면 중성지방으로 저장된다는 흐름입니다. 이 설명의 끝에 놓인 문장이 오래 남습니다.


"당신을 토실토실 살찌워서라도 혈당 수치만큼은 정상을 유지하려는 것이 당신 몸의 간절한 바람이다."


체중이 늘어나는 일을 의지의 문제로만 읽어 온 사람에게는 시선을 바꿔 주는 말입니다. 몸이 저를 방치한 게 아니라 위험한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선택을 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니까요. 이어지는 부분에서는 공복 혈당이 당뇨병 진단에서 가장 마지막에 오르는 지표라는 지적이 나오는데, 해마다 건강검진 결과지를 받아 보는 입장에서는 이쪽이 가장 실용적인 정보였습니다. 공복 혈당 한 줄이 정상 범위에 들어 있다는 이유로 혈당 조절 능력까지 안심해 버리는 습관을 짚어 주고, 공복 인슐린 수치를 함께 확인하라고 권합니다.


다만 이 대목에서 갸웃해지는 지점도 있었어요. 검사해 보자고 권한 바로 다음 문장에서 그럴 필요조차 없다며 고탄수화물 식사를 그만두면 된다고 맺습니다. 권유의 힘은 세지는데, 방금 세워 둔 수치라는 근거를 스스로 치워 버리는 셈이라 조금 아쉬웠습니다. 같은 쪽 각주에서 인슐린 저항성은 간접 지표로 추정하는 경우가 많아 정확한 유병률을 내기 어렵다고 신중하게 적어 둔 것과 비교하면, 본문의 온도가 한참 높아요. 이 책은 전반적으로 각주가 성실한 편인데, 본문의 목소리는 그보다 늘 반걸음쯤 앞서 나가는 인상입니다.


2부에서 눈길이 오래 머문 곳은 저속노화를 다룬 챕터입니다. 요즘 이 말이 워낙 널리 쓰이니 더 궁금해서 읽었어요. 고기를 먹으면 빨리 늙는다는 주장의 근거를 따라가면 mTOR라는 단백질이 나오고, 그 이름은 1970년대 남태평양 이스터섬 토양에서 발견된 물질로 만든 라파마이신이라는 약물에서 왔다는 설명이 이어집니다. 동물 실험에서 수명이 연장된 이유가 이 약물의 mTOR 억제 작용이었고, 거기서 mTOR가 많으면 늙는다는 단순한 공식이 생겨났다는 거죠. 반론을 펴기 전에 상대편 근거를 정확히 소개하는 순서라 따라가기가 편했습니다.


저자의 반박에서 마음이 움직인 부분은 근육 이야기였어요. mTOR가 지나치게 억제되면 면역 기능과 조직, 근육 유지에 문제가 생길 수 있고 나이가 들수록 근육을 지키는 일이 중요하다는 서술입니다. mTOR를 노화와 곧바로 등치시키는 해석은 젊고 건강한 생리적 활성과 늙고 병드는 만성 과활성화를 구분하지 못한 것이라는 정리도 설득력이 있었고요. 고기의 류신 같은 필수 아미노산이 이 경로를 자극하는 건 사실이지만, 근육 단백질 합성과 회복에 바로 그 경로가 필요하다는 대목에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저자가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은 그다음에 나옵니다. mTOR가 문제라면 그것을 만성적으로 자극하는 잦은 혈당 스파이크와 고인슐린혈증은 왜 아무도 말하지 않느냐는 문제 제기죠.


다만 이 챕터 중간에 mTOR와 노화와 고기를 잇는 등식을 말하는 전문가라면 그 사람의 말은 흘려들어도 좋다는 식의 문장이 나오는데, 여기서는 조금 멈칫했습니다. 근거를 꼼꼼히 붙여 온 글이 갑자기 상대의 자격을 재단하는 쪽으로 기울면 오히려 논지의 힘이 빠지는 것 같아서요. 독자 입장에서는 판단을 맡겨 주는 편이 더 반갑습니다.


3부에서는 칼로리를 신경 쓰지 말라는 원칙이 오래 남았어요. 모든 칼로리가 동일하지 않다는 명제를 세우고, 통밀빵 한 장과 같은 칼로리의 소고기가 혈당에 미치는 영향이 전혀 다르다는 비교를 붙입니다. 통밀빵에는 탄수화물 함량만 높은 반면 소고기에는 필수 아미노산과 철분, 아연, 비타민B군이 들어 있다는 설명으로 영양 밀도라는 기준을 꺼내 놓고요. 그 끝에 놓인 문장이 이 책에서 가장 따뜻하게 읽혔습니다.


"그저 당신의 몸이 '이 정도면 충분하다'라고 생각하는 양만큼 먹으면 된다."


숫자를 세는 일에서 놓여나라는 권유인데, 20대에 하루 1,000kcal 미만으로 먹으며 매일 달렸다는 저자의 과거와 겹쳐 읽으면 결이 달라집니다. 거식증과 폭식증을 지나온 사람이 오랜 시간 끝에 도달한 자리라고 생각하면, 이 원칙은 식단 지침보다 회복의 기록에 가깝게 들립니다. 근거로 든 경험담이 본인의 이야기 하나뿐이어서 논증으로는 헐거운 면이 있지만, 그 헐거움을 감수하고라도 이 말을 꼭 하고 싶었던 마음은 전해집니다.


책 전체의 주장이 저탄고지와 카니보어 쪽으로 뚜렷하게 기울어 있으니, 읽는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폭은 다를 거예요. 저는 다섯 가지 원칙을 그대로 실행하는 것보다, 매일 반복하는 것부터 점검하라는 태도를 가져오는 쪽이 현실적이라고 봤습니다. 오래 믿어 온 상식을 한 번쯤 뒤집어 보고 싶은 사람, 아침에 일어나는 일이 해마다 무거워지는 걸 느끼면서도 검진 결과지에 정상이라고 적혀 있으니 그냥 넘겨 온 사람이라면 얻어 갈 문장이 여러 개 있을 겁니다. 정보의 밀도는 높지만 술술 읽힌다는 조한경 님의 추천사, 다루는 범위가 넓어 의료인이나 영양 전문가가 읽어도 생각해 볼 지점이 많다는 송승현 님의 평이 과장은 아니었어요. 참고 문헌과 관련 연구가 곳곳에 안내되어 있어서 더 파고들고 싶은 대목을 따라갈 수 있는 구조라는 점도 미덥습니다.


서평단으로 여러 책을 만나다 보면 읽고 나서 무언가를 고쳐야 할 것 같은 부담만 남기는 경우가 있는데, 이 한 권은 조금 달랐어요. 무엇을 끊으라는 말보다, 내 몸이 보내던 신호를 잘못 읽어 왔을 수 있다는 관점을 먼저 건네줍니다.


9월 중순인데 낮에는 아직 늦더위가 남아 있고, 아침저녁으로만 바람의 결이 바뀌었습니다. 여름 동안 헐거워진 식습관을 정리하기에 적당한 시기이고, 겨울 오기 전에 몸의 기준을 한 번 다시 세워 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요. 이 책이 그 점검의 출발점 역할을 해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엇을 먹지 말라는 목록보다, 매일 반복하는 식탁을 의심해 보라는 관점을 남기는 건강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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