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50세에 다시 태어났다
정솜결 지음 / 작가의집 / 202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손에 쥐면 가볍습니다. 핸드북 판형에 두께도 얇아서 종이 뒷면 글자가 희미하게 비칠 정도인데, 들고 다니며 짬짬이 넘기기에는 이만한 물성이 없더군요. 안에 담긴 이야기는 결코 가볍지 않은데 판형은 반대쪽으로 갔습니다. 독자가 부담 없이 첫 장을 열도록 배려한 선택처럼 보였어요.


표지 이야기를 먼저 하고 싶습니다. 연보라가 아래로 내려오면서 살구빛으로 풀리고, 가운데에 금빛 나비 한 마리가 날개를 펴고 있습니다. 그런데 눈길이 오래 가는 쪽은 왼쪽 위였어요. 마른 가지에 아직 열리지 않은 번데기가 그대로 매달려 있습니다. 날아오른 형태와 갇혀 있던 형태를 한 화면에 나란히 둔 구성이라, 표지가 이미 이 한 권의 성격을 말해 주는 셈이죠. 표지 아래쪽에 적힌 "지금도 늦지 않습니다 / 당신의 50대는 새로운 시작점입니다"라는 문구는 조금 뜨겁게 느껴졌는데, 본문의 온도는 그보다 한참 낮고 차분합니다.


이야기는 거울에서 시작합니다. 저자는 일흔이 넘은 친정어머니보다 기력 없어 보이는 자신을 보고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마음먹습니다. 그런데 막상 문을 열고 나서려니 발목을 잡은 것은 무릎이나 숨이 아니었어요. 사람들 시선이었습니다. 초췌해 보인다는 눈빛을 받을 것 같아 망설였다고 적혀 있습니다. 헬스장 등록비가 부담스러워 돈 안 드는 운동을 검색하다가 떠올린 것이 아파트 계단이었고, 비용도 거리도 눈치도 필요 없는 공간이라는 판단이 뒤따릅니다. 그렇게 18층까지 올라가자고 다짐한 첫날, 2층에서 숨이 막혔고 결국 두 시간이 걸려 집 앞에 닿습니다. 현관문 비밀번호를 누르다 눈물이 쏟아졌다는 대목 바로 다음이 이 도서의 결을 보여 줍니다.


"눈물을 훔치고 집에 들어가서는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설거지를 시작했습니다."


울음을 길게 설명하지 않고 곧바로 싱크대 앞으로 갑니다. 이런 문장이 어떤 성공담의 절정보다 오래 남습니다.


다음 날의 선택이 더 마음에 걸렸어요. 새벽 네 시에 일어난 까닭이 의지나 자기관리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가족들이 일어나기 전에 운동을 끝내고 싶었고, 힘든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고 합니다. 회복을 막 시작한 자리에서도 남의 눈을 먼저 살피는 습관이 남아 있다는 뜻이고, 이 짧은 고백이 뒤쪽 장들을 미리 설명해 줍니다. 계단도 한 번에 오르지 않고 새벽과 오전, 정오와 저녁 준비 전으로 네 번에 쪼갰는데, 그 시각표가 남편 출근과 식사 준비를 기준으로 짜여 있다는 점도 함께 눈에 들어옵니다.


블로그를 시작하는 장면도 비슷한 온도로 흘러갑니다. 계정을 찾아보니 10년 전 둘째 아들이 만들어 둔 아이디가 이미 있었고, 글쓰기 버튼 앞에서 오래 망설이다 첫 글을 올립니다.


"오늘부터 블로그를 쓰기 시작합니다. 무슨 말을 써야 할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시작해야 제 인생이 바뀔 것 같아서 한 줄이라도 쓰고 갑니다."


발행 버튼을 누른 직후에 밀려온 감정이 후회였다는 서술이 이어집니다. 이런 글을 올려도 되는 건지, 누가 볼지, 창피하지 않을지 하는 생각이 몰려왔다고 해요. 시작의 순간을 근사하게 포장하지 않는 정직함이 책 전체에 깔려 있습니다.


글감이 없어 남편을 관찰하기 시작했다는 대목은 이 기록에서 가장 실용적인 발견처럼 읽혔습니다. 다투다 말고 오늘 당신이 한 말로 글을 쓴다고 알리면 남편이 엄지를 들며 웃어넘겼고, 그러면서 대화가 늘고 다툼은 줄었다고 합니다. 자기 이야기를 빼면 쓸 게 없다고 핀잔을 주면서도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게 된 남편의 변화를 저자는 담담하게 적어 둡니다. 글쓰기가 감정을 한 번 걸러 주는 장치로 작동한 셈이죠. 부부가 다시 말을 트는 과정을 이만큼 소박하게 남긴 글은 흔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중반을 넘기면 숫자가 등장합니다. 다섯 달 만에 이웃 5천 명, 103명이 신청한 첫 무료강의, 4개월 만에 1,000명이 모인 오픈채팅방, 그리고 월 100만 원. 오픈채팅방 개설과 운영, 무료강의 설계, 요일별 일정으로 기대감을 만드는 방식까지 단계별로 정리되어 있어 실용서로 읽어도 손해는 없습니다. 다만 저에게는 통장 잔고를 확인하는 장면보다 그 앞뒤의 작은 서술이 더 선명했어요. 몇 년 전만 해도 남편 카드로 커피 한 잔 사 마시는 것도 눈치를 봤다는 문장, 처음 번 돈으로 친정어머니께 건강식품을 보내고 비싼 걸 왜 샀느냐는 핀잔을 들으며 뿌듯했다는 대목입니다. 회복의 크기가 통장 액수보다 그 돈을 어디에 쓸 수 있게 되었는지에서 드러납니다.


목표를 채운 뒤에 찾아온 감정도 숨기지 않습니다.


"마치 목적지에 도착했는데, 정작 그곳이 제가 정말 가고 싶었던 곳이 아닌 것 같은 기분이었달까요."


이 비유가 4장의 중심입니다. 이후 저자는 의미를 느낀 순간들이 하나같이 돈과 무관한 때였다고 정리해요. 수강생의 성장을 지켜볼 때, 누군가의 고민을 들어줄 때. 그리고 그 금액의 의미를 다르게 짚습니다. 누군가에게 의존하지 않고도 스스로 가치를 창조할 수 있다는 증명이었다는 겁니다. 오랜 시간 집안 살림을 맡아 온 사람에게 이 문장이 어떻게 읽힐지는 짐작이 갑니다.


읽다가 걸린 곳도 있습니다. 4장에서는 100만 원보다 값진 것을 얻었다는 결론이 몇 쪽 사이에 거의 같은 어휘로 세 번쯤 되풀이됩니다. 블로그 글의 호흡이 종이로 그대로 옮겨 온 편집이라 그렇게 됐나 싶었는데, 한 번만 말해도 독자는 충분히 알아들었을 것 같아요. 소절 끝마다 기성 격언을 한 줄씩 붙이는 방식도 사족처럼 느껴졌습니다. 이 책에서 오래 남는 말은 늘 저자 자신의 문장이었으니까요.


뒷부분으로 가면서 무게가 옮겨 갑니다. 자기수용을 다룬 장에서 이 한 권이 완성된다고 봅니다. 반세기 동안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큰딸이니 모범이 되어야 했고, 결혼한 뒤로는 완벽한 아내와 며느리가 되어야 했다는 이력이 나오는데, 앞 장에서 자신의 주특기라고 적었던 끈기의 출처와 정확히 같은 자리입니다. 버티게 해 준 힘과 스스로를 몰아세운 힘이 하나였다는 뜻이죠. 이 연결을 알고 나서 앞쪽을 다시 넘겨 봤습니다.


일화 하나를 더 옮기고 싶습니다. 강의 중 화면 공유를 잘못해 개인 메모장이 노출되는데, 거기 적혀 있던 것이 "긴장하지 말자", "천천히 말하자" 같은 다짐이었어요. 당황해서 사과하자 사람들은 귀엽다고, 그럴 수 있다고 답했다고 합니다. 감추려던 것이 드러난 순간에 관계가 오히려 가까워지는 과정을 설명 하나 없이 보여 주는 장면입니다.


아쉬움을 하나 덧붙이면, 자기수용을 말하는 장에서도 그 증거가 대체로 타인의 반응으로 제시됩니다. 부족함을 인정하니 사람들이 편하게 다가와 주었고, 수강생들도 따라 변했고, 누군가에게 희망이 되었다는 순서입니다. 스스로를 받아들인 근거를 다시 바깥에서 구하는 구조인데, 조금 더 생각해 보면 평생을 남의 기준에 맞춰 살아온 사람에게는 그 순서가 가장 현실적인 경로였을지도 모르겠어요. 남의 눈을 통해서라도 자기 자리를 확인하고, 그러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말을 건네는 데까지 가는 과정. 그 자기 대화가 끝난 일로 적혀 있지 않고 지금도 진행 중인 일로 남아 있다는 점이 오히려 신뢰를 줬습니다. 완벽주의에서 벗어나는 일이 하루아침에 되지 않았고 여전히 가끔 그 생각이 든다고 인정하는 문장도 그렇고요.


제목만 보면 오십 줄에 들어선 여성 독자를 향한 안내서처럼 보입니다. 실제로 읽어 보면 범위가 좀 더 넓어요. 어딘가에서 한 번 멈춰 서 본 사람이라면 나이와 무관하게 걸리는 문장이 있을 테고, 사십 대 후반에 이 기록을 펼치면 몇 걸음 앞서 걸어간 사람의 발자국을 미리 살펴보는 일이 됩니다.


서평단으로 여러 권을 만나다 보면 정보가 빼곡한 책보다 사람의 목소리가 남는 책이 더 오래 기억됩니다. 이 한 권은 뒤쪽에 가까웠어요. 채팅방 운영 노하우는 검색으로도 어느 정도 찾을 수 있지만, 2층에서 숨이 막혔던 사람이 다음 날 다시 계단으로 나서는 마음은 다른 데서 구할 수가 없으니까요.


표지의 번데기를 다시 봤습니다. 날아오른 모습만 남기지 않고 그 전의 형태를 굳이 같은 화면에 둔 선택이 이 책의 태도와 닮아 있습니다. 아침저녁 바람이 달라지고 낮의 열기가 한 겹씩 벗겨지는 시기예요. 여름을 지나느라 지친 몸과 마음을 추스르기에 이만한 계절도 없고, 가벼운 판형이라 가방에 넣고 다니며 조금씩 넘기기에도 잘 맞습니다.


2층에서 멈춰 선 사람의 기록이자, 나이라는 두 글자 앞에서 한 번 물러서 본 이들에게 건네는 담백한 회복기.


#나는50세에다시태어났다 #정솜결 #작가의집 #서평 #북유럽카페 #서평단 #중년독서 #인생2막 #50대도전 #자기수용 #완벽주의 #회복에세이 #블로그시작 #오픈채팅방 #경제적자립 #에세이추천 #중장년재도전 #가을독서 #BOOKULOVE #책추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