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나에게, 고전이 말했다 - 하루 한 문장, 읽고 쓰는 동양 고전 수업
오평선 지음 / 이너북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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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표지를 오래 들여다보게 되는 책입니다. 화면의 절반 가까이가 옅은 하늘빛으로 비어 있고, 오른쪽 위에 주황 해가 크게 걸려 있습니다. 흩어져 날아가는 새떼 아래, 물가 끝에 붉은 옷을 입은 사람이 아주 작게 앉아 있고요. 그 작은 형상이 오히려 그림 전체의 무게를 잡습니다. 흔들린다는 제목과 가만히 앉아 있는 자세가 한 화면에 같이 놓여 있는 셈인데, 책을 다 읽고 나서 표지를 다시 보니 이 구도가 우연이 아니었구나 싶었어요.


오평선 작가의 <흔들리는 나에게, 고전이 말했다>는 주역과 논어, 맹자, 도덕경, 장자 같은 동양 고전에서 문장을 골라 오늘의 질문 앞에 놓아 둔 책입니다. 특이한 점은 목차입니다. 고전 원문이 아니라 "비교하지 않고도 행복해질 수 있을까", "일은 많은데 내 삶은 사라진 것 같을 때"처럼 생활의 말로 꼭지 제목이 붙어 있어요. 읽는 사람 쪽에서 먼저 질문을 꺼내 놓고, 거기에 어울리는 오래된 문장을 데려오는 방식입니다. 판형도 보통 크기에 보통 두께라 손에 편하게 잡히고요.


구성은 꼭지마다 일정합니다. 제목이 나오고, 우리말로 풀어 쓴 문장이 먼저 놓이고, 그 아래 한자 원문과 독음, 출처가 따라옵니다. 해설이 서너 쪽 이어진 뒤에는 질문 하나와 필사 라인이 기다립니다. 매일 한 꼭지씩 천천히 가져가라는 설계로 읽혔어요.


첫 장에 실린 주역의 문장이 이 책 전체의 뼈대 같았습니다. 한 번은 음이었다 한 번은 양이었다 하는 것을 도라 이른다는 대목인데, 저자는 도를 멈춤이 아닌 흐름으로 읽습니다. 밝고 드러나고 인정받는 시기만 값지게 여기는 습관을 조용히 건드리면서, 반대편의 시간도 같은 무게로 받아들이라고 말하지요.


"우리들의 인생은 결코 앞으로 나아가는 시기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 대목에서 저자가 내놓는 해석이 꽤 단단합니다. 우리는 흔히 내리막을 실패로 옮겨 적어 버리는데, 도의 관점에서 보면 내리막은 방향을 바꾸는 순간일 뿐이라는 것이죠. 오르막이 길어지면 숨이 가빠지니 내리막이 호흡을 고르게 해 준다는 설명이 뒤따릅니다. 성과로 스스로를 증명해 온 사람일수록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 말일 텐데, 그래서 더 필요한 말이기도 합니다. 장을 닫는 문장은 이렇습니다. "지금 당신이 인생의 어떠한 명암의 순간에 서 있든 괜찮다, 다 괜찮다." 쉼표 하나를 두고 같은 말을 한 번 더 얹은 그 자리에서 저자의 온도가 느껴집니다.


책 곳곳에 텃밭이 등장하는 것도 인상적이었어요. 씨 뿌리고 싹 틔우는 일만 농사가 아니고, 흙을 고르고 거름을 만들고 땅을 쉬게 하는 오랜 시간이 쌓여야 다음 계절의 생명이 자란다는 서술이 나옵니다. 저자가 실제로 작은 밭을 가꾸는 사람이라 그런지 비유가 책상에서 만들어진 것 같지 않고요.


자연과 순리를 다룬 장에서는 기온이 영하로 떨어진다기에 배추와 무를 모두 뽑고 밭을 비우는 장면으로 글이 시작됩니다. 밭이 비었으니 이제 흙이 쉴 차례라는 것이죠. 여기서 저자는 자신을 돌보는 일을 지혜로운 행동 쪽으로 옮겨 놓습니다. 근거로 삼는 문장이 담백해요. "충전되지 않은 사람은 타인을 위로할 힘이 없다." 누군가를 챙기는 자리에 오래 서 있던 사람이라면 이 문장 앞에서 마음이 조금 풀릴 겁니다. 이 꼭지의 마지막 줄이 특히 좋았습니다. "하늘이 그랬고, 땅이 그랬고, 바람이 그러했다." 설명을 더 붙이지 않고 거기서 멈추는 감각이 고전을 다루는 책답습니다. 이어지는 필사면의 질문은 "나는 나에게 맞는 일과 쉼을 조화롭게 실천하고 있을까?"인데, 답을 적기 전에 펜을 든 채 가만히 있게 되더군요.


뒤쪽 도전과 용기를 다룬 장에서는 저자 자신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기쁨보다 어려움이 많았던 긴 회사 생활을 마치고 새 길로 옮겼지만 그 길이 과거와 무관하지 않았고, 그때 쌓은 경험이 지금 하는 일을 떠받치는 기반이 되었다는 고백입니다. 그러면서 "그 흔적은 짐이 아니라 자산이다"라고 적어요. 인생 후반을 두고 망설이는 마음의 정체를 저자는 처음부터 전부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부담으로 진단하는데, 저는 이 진단이 정확하다고 봤습니다. 삶은 새로 시작되는 것이라기보다 지금까지의 경험을 다른 방식으로 바꾸어 쓰며 더 깊어지는 쪽으로 이어진다는 것, 마흔 후반쯤 되면 이 말이 위로이면서 동시에 숙제처럼 들립니다.



서평단으로 여러 책을 만나다 보면 빠르게 읽고 빠르게 정리하는 습관이 붙는데, 이 한 권은 그 속도를 허락하지 않았어요. 한 꼭지가 짧은데도 다음 장으로 바로 넘어가지지 않아서, 결국 하루에 한두 꼭지씩만 떼어 읽었습니다. 그렇게 읽으라고 만든 책이라는 걸 뒤늦게 알았고요.


고전 해설서로서의 깊이를 기대한다면 다소 얕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원문의 맥락이나 주석을 파고드는 책은 아니니까요. 대신 하루가 잘 풀리지 않은 저녁에 아무 데나 펼쳐도 문장 하나쯤은 건져 올릴 수 있는 종류의 책입니다. 방향을 잃은 것 같은 시기를 지나는 분, 회사 안에서 소진되어 가는 느낌을 오래 안고 있는 분이라면 특히요. 쉰을 앞두고 남은 시간을 어떻게 쓸지 헤아려 보는 자리에서도 꺼내 볼 만합니다.


9월도 중순으로 들어섰습니다. 아침저녁 공기가 확실히 달라졌고, 낮의 열기도 한 겹씩 물러나고 있어요. 이 책 여섯 번째 장에는 내 인생에도 가을이 와주기를 바라는 꼭지가 있습니다. 밭을 비우고 흙을 쉬게 하는 계절이 책 속에서는 조금 앞서 와 있는데, 창밖의 계절이 그쪽으로 가는 중이라 읽는 감각이 잘 맞아떨어졌습니다. 올여름 어지간히 지쳐 계셨다면, 이 가을에는 스스로를 조금 쉬게 해 주셔도 좋겠습니다.


빛나지 않는 시간까지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게 해 주는, 천천히 읽고 따라 쓰는 동양 고전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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