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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신이 빈틈없이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이혁 지음 / 새벽녘 / 2026년 8월
평점 :
"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제목을 한동안 눈으로 따라 읽었습니다. '빈틈없이'라는 말은 보통 일 처리나 계획에 붙는 단어인데, 이 책에서는 행복 앞에 놓여 있어요. 빠짐없이 행복하기를 바란다는 뜻으로도 읽히고, 틈이 생기더라도 그 틈까지 챙기라는 당부로도 읽힙니다. 이혁 작가의 첫 에세이 <나는 당신이 빈틈없이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는 그 제목이 품은 마음을 백 편 가까운 짧은 글로 나눠 담았습니다.

판형이 손바닥에 들어오는 정도라 두께에 부담이 없습니다. 한 편이 두세 쪽에서 끝나니 목차 순서를 지키지 않고 그날 눈에 걸리는 제목부터 펼쳐도 흐름이 끊기지 않아요. 표지도 잠깐 이야기해두고 싶습니다. 분홍과 노랑, 옅은 파랑이 서로 번지듯 섞인 둥근 덩이들이 위아래로 놓여 있는데, 색의 경계가 또렷하지 않고 스며듭니다. 딱 떨어지는 결론을 내주는 책은 아니겠다는 예감이 들었고, 읽어보니 실제로 그런 책이었습니다.
1부의 첫 글은 '사랑하는 사람과 낭비한 시간'입니다. 주말에 만나 침대에서 뒹굴며 예능을 보고, 졸음이 오면 잠깐 눈을 붙이고, 배가 고파지면 배달을 시켜 먹었던 하루를 적어둔 글이에요. 계획도 없었고 남에게 보여줄 결과물도 남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일정으로 꽉 채웠던 주말보다 그 나른한 오후가 더 오래 기억에 남았다고 해요. 발가락으로 서로를 툭 건드리던 순간, 늦잠을 자고 시계를 보며 함께 허탈하게 웃던 시간 같은 장면들이 근거로 놓입니다. 진짜 행복은 "별일 없는 하루를 별 탈 없이 보내는 순간에 깃들어 있습니다"라는 문장이 이 책 전체의 방향을 미리 알려주는 역할을 합니다.

2부에서 걸음이 늦어진 글은 '웃는 얼굴 뒤에 숨겨 둔 각자의 사정'이었어요. 이별을 예감한 날, 눈물을 참으며 할 일을 하러 나갔더니 주변 사람들은 한가롭게 농담을 주고받으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고 합니다. 혼자만 다른 세상에 있는 것 같아 부럽고 외로웠다는 대목이 솔직합니다. 시간이 지나서야 그 웃음 뒤편에도 저마다의 상실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됩니다. 아무렇지 않아 보이던 지인은 부모님을 떠나보낸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또 누군가는 오래된 연인과 파혼한 상태였다는 이야기가 이어져요. 작가는 사람을 빙산에 견줍니다. 물 위로 드러난 부분보다 잠긴 쪽이 훨씬 크다는 그 비유가, 나이가 어느 정도 들면 서로 묻지 않고 넘어가게 되는 사정들을 정확히 가리킵니다. 글은 "누구에게나 웃는 얼굴 뒤에 숨겨 둔 각자의 사정이 있다는 것을 잊지 않고 살아가야겠습니다"로 닫힙니다.

3부의 '관계는 생활이고 행복은 그 안에 있다'는 산문이 아니라 행을 끊은 시 형태입니다. 매일 보는 편의점 직원의 인사, 단골 커피집 직원이 말하기 전에 먼저 알아봐 주는 미소, 별것 아닌 말에도 크게 웃어주는 동료가 차례로 놓여요. 우리는 누구나 대단한 관계를 바라지만 정작 일상을 채우는 것은 주고받는 짧은 인사와 서툴지만 진심 어린 배려, 같이 울지는 못해도 가만히 옆에 있어 주는 사람들이라고 작가는 적습니다. 앞의 빙산 이야기와 나란히 놓고 보면 이 대목의 무게가 달라집니다. 서로의 사정을 다 알 수 없으니, 알지 못한 채 건네는 짧은 인사가 오히려 값진 것이 되겠지요.
책의 뒤쪽으로 갈수록 사랑을 다루는 방식이 조금 더 단단해집니다.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건'에서는 궁금해하는 마음이나 이해하려는 태도만으로는 모자라고, 상대가 살아온 방식과 지금 살아가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까지 닿아야 한다고 말해요. "말로는 쉽게 사랑이라고 부르지만, 실체로는 썩 복잡하고 조심스러운 일이다"라는 문장이 특히 그렇습니다. 미워지는 순간과 실망까지 인정한 다음에야 나오는 이야기라서 위로가 헐겁지 않습니다. 오래된 안 좋은 습관까지 포함해서 사랑하는 일에 가깝다는 정의는, 결혼 생활을 오래 해본 사람이라면 표현만 다르게 알고 있을 내용일 겁니다.

물론 아쉬운 대목도 있었습니다. 글마다 어투가 갈립니다. 존댓말로 쓴 산문이 있고, 반말로 편지처럼 쓴 글이 있고, 행을 끊은 시가 섞여 있어요. '당신을 사랑했던 내가 참 예뻤다'처럼 반말로 쓰인 글은 그 자체로 힘이 있는데("네가 몰라 줘도 괜찮아. 네가 돌아오지 않아도 괜찮아."), 앞뒤 글과 목소리가 달라 한 권으로 묶였을 때 결이 조금 흔들립니다. 비유가 물의 이미지에 몰려 있는 것도 눈에 들어왔습니다. 빙산, 파도, 모래성, 노을 내려앉는 바닷가, 등대까지 이어지니 인상이 겹치는 순간이 생겨요. 다만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내는 종류가 아니라 아무 데나 펼치는 쓰임에 가깝고, 그렇게 읽으면 단점이 크게 드러나지 않습니다.
서평단으로 만나는 책은 대개 정보나 주장을 담고 있어서 읽고 정리하는 일이 먼저인데, 이번 한 권은 그런 순서가 잘 맞지 않았어요. 밑줄을 긋고 요약하려 들면 남는 게 적고, 그냥 문장을 지나가게 두면 남는 게 있습니다. 미뤄둔 안부 하나를 떠올리게 하는 정도가 이 책의 실제 크기이고, 그만큼이 필요한 시기가 살면서 몇 번은 오는 것 같습니다.
9월로 들어서니 낮의 열기는 아직 남았는데 아침 공기가 하루하루 가벼워집니다. 여름을 어떻게든 통과했다는 안도가 옅게 도는 계절이고요. 이런 무렵에 잘 어울리는 책입니다. 무언가를 해내라고 요구하지 않고, 잘 버텼으니 이제 조금 웃어도 된다고 말해주는 쪽이니까요. 오늘 안부를 묻고 싶은 이름이 떠올랐다면, 그 사람에게 한 권 건네도 좋을 것 같습니다.
행복을 다음으로 미루는 습관에 조용히 제동을 걸어주는, 짧고 다정한 문장들의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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