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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뿐인 내 인생, 어떻게 살 것인가
한창욱 지음 / 정민미디어 / 2026년 8월
평점 :
"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표지를 먼저 한참 봤습니다. 위쪽은 맑은 하늘색이었다가 아래로 내려올수록 색이 옅어지고, 분홍빛 능선 아래 백사장에 사람 하나가 팔베개를 하고 누워 있어요. 새 세 마리가 높은 곳에 떠 있고 나머지는 전부 여백입니다.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큰 물음을 얹은 표지치고는 서두르는 기색이 전혀 없더군요. 아래쪽에 비워둔 밑줄 두 칸을 보고서야, 답을 내주는 대신 적어보라고 건네는 책이겠구나 짐작했습니다.
판형은 손에 쥐기 좋은 크기고 두께도 부담 없는 편이라, 한 번에 몰아 읽기보다 며칠에 걸쳐 몇 꼭지씩 넘기기에 알맞았어요. 실제로 서른아홉 개 꼭지가 고르게 짧습니다. 생명과 시간과 자아를 묻는 1장에서 출발해 마음의 습관, 실행의 습관을 지나 관계로 닫히는 구성이고요. 문학에서 질문을 길어 올린 뒤 철학과 심리학, 뇌과학으로 근거를 대는 방식이 꼭지마다 반복되는데, 이 리듬이 익숙해지면 읽는 속도가 붙습니다.

가장 오래 붙들었던 곳은 폭풍우를 이야기하는 대목이었어요. 스무 해 남짓 살아온 디자이너가 사고로 하반신 마비 판정을 받고 방 안에 스스로를 가두는 시기가 길게 그려집니다. 그를 돌려세운 건 대단한 결심이 아니었습니다. 화가가 된 친구가 안고 온 작은 화분, 며칠을 방치했다가 무심코 만져본 마른 흙, 그리고 물을 주는 일의 반복이었어요. 싹이 오르고 초여름에 빨간 백일홍이 피자 대학 시절 꽃밭에서 그림을 그리던 기억이 따라옵니다. 창고에 넣어둔 이젤을 꺼내고, 시선이 부담스러워 되돌아갈까 망설이면서도 바퀴를 굴려 공원까지 나가고요. 회복이 이렇게 굼뜨고 사소한 순서로 온다는 점이 오히려 신뢰가 갔습니다. 뒤에 전시회 이야기가 나오면서 그가 이렇게 답하는 장면이 있어요. "내 생이 꽃처럼 아름답게 반짝일 때." 시기를 정하지 않고 그렇게 말할 수 있게 되기까지의 거리가, 앞서 읽은 네 쪽 안에 다 들어 있었습니다.

다만 여기서 걸리는 지점도 있었어요. 이 챕터의 인물도, 뒤에 나오는 대기업 과장도 삶의 방향이 바뀌기까지 상당히 큰 사건을 겪습니다. 한쪽은 사고였고 한쪽은 회의실에서 쓰러진 과로였죠. 그런데 대다수는 그만한 충격 없이 그냥 조금씩 지칩니다. 특별히 무너진 적도 없고 크게 아픈 적도 없는데 어느 순간 마음이 헐거워져 있는 쪽이요. 사례가 선명할수록 그 사이에 놓인 사람들은 어디서 실마리를 잡아야 하나 싶더군요. 저자가 그 질문에 답을 안 한 건 아닙니다. 다만 답이 사례만큼 극적이지 않아서, 조금 더 조용히 읽어야 눈에 들어옵니다.
그 조용한 답이 모여 있는 곳이 행복을 다루는 꼭지였어요. 성실하다는 평판 하나로 달려온 사람이 병실에서 아내가 건넨 찻잔을 받아 들고서야 계절이 바뀐 걸 알아차립니다. 바람에 단풍잎 몇 장이 떠올랐다 내려앉는 걸 보면서 이 정도면 충분하구나 하는 생각이 처음 들었다고 나오고요. 퇴원 뒤의 변화가 거창하지 않다는 점이 좋았습니다. 완벽을 고집하지 않으니 퇴근이 빨라지고, 주말에는 아이들과 이불 속에서 만화책을 봅니다. 공원에서 딸아이가 개미 행렬을 가리키며 부르는 장면에서, 사진을 찍으려 휴대폰을 꺼내다 말고 손을 멈추고 아이 옆에 나란히 앉는 대목이 나옵니다. 기록을 남기는 대신 그 자리에 함께 있기를 고른 동작 하나가 이 꼭지의 주제를 전부 대신하고 있었어요.
뒤이어 나오는 네 가지 제안은 담백합니다. 하루 일 분이라도 멈춰 서기, 비교를 줄이고 자기만의 즐거움을 찾기, 만족의 기준을 낮추기, 매일 보는 것을 낯설게 바라보기. 이 대목에서 인용된 벤담의 문장이 오래 남습니다. "별을 따려고 손을 뻗는 사람은 자기 발밑의 꽃을 잊어버린다." 행복이 선물이라면 그 선물은 발견할 준비가 된 사람에게 간다는 말도 이 근처에 놓여 있어요. 준비라는 단어가 노력보다 태도에 가깝게 쓰였다는 게 이 책의 성격을 잘 보여줍니다.

책은 관계로 닫힙니다. 마지막 꼭지에 팔 년을 만난 연인이 카페에서 다투는 장면이 길게 나와요. 고맙다는 말 한마디를 두고 그걸 꼭 말로 해야 아느냐고 되받는 순간, 쌓아 올린 것들이 한꺼번에 무너집니다. 화가 가라앉은 뒤 그녀가 먼저 연락하지만 보름이 지나도록 읽히지 않고, 그 침묵이 그 자체로 가장 확실한 대답이었다는 걸 뒤늦게 알아차리죠. 저자는 이 사례에서 관계를 훼손하는 다섯 가지를 뽑아냅니다. 무시나 냉소, 지난 실수의 반복적인 소환, 사적 영역 침범, 감사에 대한 무반응, 그리고 긴 침묵. 앞 장면을 다시 펼쳐보게 만드는 정리였어요.
관계를 살리는 쪽으로 넘어가면 여섯 가지가 이어지는데, 공감을 다루는 마지막 항목이 특히 정확했습니다. 상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저도 그런 적 있다며 화제를 가져오거나 네가 예민한 거라고 판단을 앞세우면 공감은 그 자리에서 훈수로 바뀐다는 지적이요. 진짜 공감은 해결책을 내놓기보다 상대의 감정이 스스로 흘러갈 자리를 마련해 주는 데서 시작된다고 하고, 그랬구나 많이 힘들었겠다는 짧은 한마디가 백 마디 조언보다 위로가 되는 이유를 여기서 찾습니다. 앞서 카페 장면에서 실제로 오갔던 말들이 반례로 고스란히 회수되는 구조라 설득력이 있었어요.
삼백 쪽이 넘는 책의 마지막 문장이 독자에게 건네는 실천 하나라는 점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오늘은 잊지 말고 가까운 사람에게 이렇게 말해보자면서 놓아둔 그 한 줄, "당신은 나의 가장 소중한 사람입니다." 표지 아래 비워둔 밑줄과 같은 방향을 보고 있는 마무리라고 생각합니다.

서평단으로 여러 책을 받아 읽어왔지만, 이 한 권은 다 읽고 나서 책장에 바로 꽂지 않고 손 닿는 자리에 두게 되네요. 통독보다 필요할 때 한 꼭지씩 펼쳐 읽는 쓰임에 더 맞는 도서 같아서요. 인생의 답을 정리해주는 안내서를 기대하면 조금 밋밋할 수 있고, 대신 스스로 답을 적어볼 자리를 원한다면 서른아홉 개 물음이 꽤 성실하게 놓여 있습니다. 자기 삶을 한 번쯤 되짚어보려는 분들, 성취 쪽으로만 기울어 있던 무게중심을 조금 옮겨보고 싶은 분들이 읽으면 남는 게 있을 겁니다.
여름 끝자락입니다. 매미 소리가 하루가 다르게 얇아지고 저녁 공기에 서늘한 기운이 섞이기 시작했어요. 책 속 인물이 병실 창밖으로 계절이 바뀐 걸 알아차리던 장면이 지금과 겹칩니다. 표지의 그 사람처럼 잠시 누워 하늘을 올려다보기에 나쁘지 않은 때고요. 발밑에 무엇이 피어 있는지 확인하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 이 한 권이 남긴 건 그 정도의 담백한 사실입니다.
인생의 정답을 쥐여주는 대신, 답을 적어 넣을 서른아홉 개의 빈칸을 건네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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