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매일 맛있는 고기 요리 레시피 55 - 프렌치 셰프가 알려주는
후카자와 아야 지음, 최선아 옮김 / 시그마북스 / 2026년 8월
평점 :
"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굽지 않아도 된다는 말로 문을 여는 요리책은 처음이었습니다. <매일 맛있는 고기 요리 레시피 55>의 첫 레시피가 그렇습니다. "굽지 않고 전기밥솥에 1시간 30분 동안 그대로 넣어 두기만 하면 입에서 녹아내리는 로스트포크가 완성됩니다." 준비물은 돼지 목살 한 덩이와 소금, 설탕, 마른 허브 조금, 월계수 잎 한 장. 밑간해서 랩으로 감싸고 지퍼백의 공기를 뺀 다음, 뜨거운 물을 부은 내솥에 잠기도록 넣고 보온 버튼을 누르면 됩니다. 프렌치 셰프가 알려주는 고기 요리라고 해서 조금 긴장했는데, 첫 장부터 힘이 빠지는 기분이었어요.

표지도 그 태도를 미리 말해 주고 있었습니다. 이끼빛 도자기 접시에 로스트비프가 담겨 있고, 겉면은 진하게 익었는데 안쪽은 곱게 분홍입니다. 크레송 몇 줄기 말고는 장식이랄 게 없고 나머지는 흰 여백이에요. 아래쪽 띠에 놓인 네 컷이 재미있습니다. 얼음 띄운 오차즈케, 치즈가 흘러내리는 핫샌드위치, 냉파스타, 스프링롤. 고기 요리책의 얼굴에 밥과 빵과 면이 나란히 올라와 있는 셈인데, 목차를 펼치면 그게 편집자의 취향이 아니라 이 책의 구조라는 걸 알게 됩니다.
이 도서는 북유럽 카페 서평단을 통해 받았습니다.
로스트포크 한 덩이는 세 갈래로 흩어집니다. 두껍게 썰어 홀그레인 머스터드와 치즈를 얹고 겉에 버터를 발라 약한 불로 천천히 구우면 핫샌드위치가 되고, 막대 모양으로 잘라 시소잎과 오이, 당근과 함께 라이스페이퍼에 말면 스프링롤이 됩니다. 세 번째가 인상적이었어요. 식은 밥에 얇게 썬 고기를 올리고 차게 식힌 다시마 육수를 붓는 것으로 끝나는 오차즈케입니다. 조리 단계가 두 줄이에요. 우메보시와 양하, 와사비, 얼음 몇 조각을 곁들이라는 말이 붙어 있고, 사진 속 초록 그릇에 얼음이 떠 있는 장면이 이 책에서 가장 시원한 컷입니다.
밑간에 설탕이 소금과 같은 분량으로 들어가는 게 처음엔 의아했는데, 단맛을 내려는 게 아니라 고기가 수분을 붙들게 하려는 장치더군요. 그리고 저자가 여러 레시피에서 반복해 권하는 습관이 하나 있습니다. 냉장고에서 하룻밤 재워 두라는 것. 특별한 기술은 거의 요구하지 않으면서 기다림만은 양보하지 않는 셈입니다.
닭 근위 콩피도 같은 방식입니다. 정통 콩피는 재료가 잠기도록 기름을 붓고 아주 오래 익히는 프랑스식 보존 조리법인데, 가정에서 그대로 하기는 부담스럽습니다. 그래서 이 책은 적은 기름으로 20분, 이름도 '콩피 스타일'이라고 붙였습니다. 흉내 낼 수 있는 데까지만 가져오고 나머지는 솔직하게 비워 둔 태도가 제목에 그대로 드러나요. 근위의 질긴 막을 칼로 저며 내는 손질 사진이 실려 있는 것도 고마웠습니다. 손이 잘 가지 않던 재료라 그 한 컷이 실제로는 가장 큰 도움이 될 것 같더군요.

버리는 것이 거의 없다는 점도 눈에 들어왔습니다. 콩피에 썼던 기름은 감자를 굽는 데 다시 쓰이고, 마무리로 살짝 데워 샐러드 위에 두르는 것까지 이어집니다. 소고기 자투리살은 리예트가 되었다가 감자와 섞여 크로켓 속으로 들어가고요. 레시피마다 냉장 보관 며칠이라고 작은 상자에 적어 둔 것도 인상적이었어요. 처음부터 남기고 다시 꺼내 먹는 걸 전제로 짜인 책이라는 뜻이니까요.
가장 마음에 남은 페이지는 뜻밖에도 프렌치와 거리가 먼 쪽이었습니다. 소고기 우엉 생강 조림. 우엉을 연필 깎듯 얇게 어슷썰라는 설명이 붙어 있고, 소개 문장에는 만든 다음 날 맛이 더 배어들고 식어도 맛있으니 도시락으로도 좋다고 적혀 있습니다. 이 한 문장이 책 전체의 성격을 대신 말해 주는 것 같았어요. 다음 날 더 맛있어지는 음식을 알려주는 요리책은 결국 오늘 저녁 한 끼만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이니까요. 그 조림에 지단 채와 밥을 섞어 삼각형으로 뭉치면 다음 날 주먹밥이 됩니다.

다만 크로켓 페이지에서는 한 번 멈칫했습니다. 제목은 구운 크로켓인데 마지막 단계에는 튀김기름에서 노릇해질 때까지 튀긴다고 되어 있어요. 빵가루를 미리 볶아 쓰는 오븐식 조리와 튀김 조리 사이 어디쯤인 것 같은데, 원서 표기의 문제인지 옮기는 과정에서 생긴 차이인지는 알기 어려웠습니다. 사소한 대목이지만 요리책은 문장 한 줄이 곧 동선이 되는 책이라, 이런 부분은 조금 더 또렷했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남았어요.
리예트 챕터에는 이런 설명이 있습니다. "차갑게 잘 식히면 버터가 굳으면서, 폭신하게 완성됩니다." 왜 이 음식이 식혀야 하는 음식인지를 길게 늘어놓지 않고 한 줄로 정리해 버립니다. 프라이팬 하나로 10분이면 된다는 리예트가 덩어리 고기 책 한복판에 놓여 있는 것도 저자 나름의 배려로 읽혔습니다.
사진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겠네요. 완성된 접시가 페이지마다 큼직하게 들어가 있고, 손질하고 끓이는 중간 과정도 사진으로 이어집니다. 글자만 따라가는 책이 아니라 넘기는 재미가 있어요. 오래 들여다보게 되는 컷이 여럿이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밥상에 바라는 게 조금씩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가짓수를 늘리기보다 하나를 제대로 익혀 접시에 담아 내고 싶어지는 쪽으로요. 이 책이 위로가 되는 지점도 거기 있었습니다. 재우고, 넣어 두고, 그다음은 도구에 맡기라고 말해 주니까요. 서평단으로 여러 책을 만나 왔지만 읽고 나서 냉장고 문을 한 번 열어 보게 만드는 경우는 흔치 않은데, 이 한 권이 그랬습니다.

불 조절에 몇 번 실패한 뒤로 큰 고깃덩이를 슬며시 피해 온 분이라면 얻어 갈 게 많을 겁니다. 손님상 메뉴가 늘 비슷해서 고민이라면 응용 레시피 쪽만 훑어도 실마리가 잡힐 거예요. 이미 수비드 장비를 갖추고 저온 조리에 익숙한 분에게는 새로운 정보가 그리 많지 않을 수 있습니다.
처서가 지나면서 저녁 공기가 슬쩍 달라졌습니다. 아직 한낮은 덥지만 곧 주방에 오래 서 있어도 견딜 만한 계절이 올 테고, 그 전까지는 차가운 오차즈케 쪽이 어울리겠지요. 여름 끝과 가을 초입을 한 권 안에서 오갈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이 책은 지금 꺼내 보기 좋은 도서입니다.
밥솥에 맡기고 하룻밤 기다리면 되는, 다음 날 더 맛있어지는 고기 요리 55가지.
#매일맛있는고기요리레시피55 #시그마북스 #후카자와아야 #최선아 #북유럽카페 #서평단 #요리책추천 #고기요리레시피 #전기밥솥요리 #로스트포크 #로스트비프 #콩피 #리예트 #수제햄 #집밥레시피 #홈파티요리 #저온조리 #프렌치요리 #오차즈케 #책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