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범죄실록 - 조선을 뒤흔든 범죄, 수사, 재판 이야기
정명섭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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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표지가 먼저 말을 겁니다. 미색 한지 같은 바탕 위에 먹으로 그은 소나무 가지, 그 아래 갓을 쓰고 돌아선 흰 도포 차림의 뒷모습. 여기까지는 눈에 익은 사극 한 장면인데, 도포 자락 끝과 발치에 붉은 얼룩이 번져 있습니다. 표지 아래쪽 붉은 띠에는 범죄로 들추어낸 조선의 민낯이라는 문구가 박혀 있고요. 단정한 먹그림에 핏자국 하나를 얹어 놓은 셈이라, 정명섭 작가가 이 한 권으로 무엇을 하려는지 표지에서 대충 짐작이 됩니다.


구성은 다섯 갈래입니다. 포도청과 포교, 오작인과 검시, 의금부와 국문, 한양에서 벌어진 잔혹한 사건들, 그리고 범죄 언저리에서 살아간 사람들. 판형도 분량도 부담스럽지 않아서 읽는 호흡이 편했습니다. 다만 편하게 넘어가는 페이지 안에 담긴 이야기는 결코 편하지 않아요.


가장 오래 붙들려 있던 대목은 2부의 오작인이었습니다. 살인사건이 나면 시신을 살펴 사인을 밝히던 사람들인데, <경국대전>에는 이들의 직위나 녹봉 규정이 없습니다. 국가가 반드시 필요로 하면서도 법전 안에 자리 하나를 내주지 않은 직책이라는 뜻이지요. 검시는 수령이 직접 지휘해야 하는 중대한 공무였고, 아전에게 떠넘긴 사실이 드러나면 관직에서 영원히 추방될 만큼 무겁게 다뤄졌습니다. 그런데 현장에서 수령은 지휘봉만 쥐었고, 손을 움직인 쪽은 오작인이었어요.


저자는 여기에 담담한 한 줄을 얹습니다.


"동서고금을 가리지 않고 어렵고 힘든 일은 항상 가장 아랫사람에게 주어졌다."


시신을 만지는 일이라는 이유로 불결하다는 인식과 귀신이 붙는다는 미신에 시달렸고, 실록에도 승정원일기에도 이름이 거의 남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살인사건이 터질 때마다 수령이 가장 먼저 찾은 사람은 오작인이었다고 하니, 천대받으면서도 없어서는 안 되는 자리에 서 있었던 셈입니다. 죽은 사람의 몸에 남은 흔적을 읽어 억울함을 풀어주는 일을, 정작 자기 억울함은 어디에도 적지 못한 이들이 감당했다는 사실이 오래 남았어요.


4부에서 만난 개춘의 이야기는 읽는 속도를 늦추게 합니다. 1533년 용산강에서 대여섯 살 여자아이가 두 발이 잘린 채 발견된 사건인데, 저자는 잔혹함을 전시하는 쪽으로 가지 않습니다. 아이가 전해 가을에 집을 나와 겨울을 어디서 났는지 알 수 없다는 것, 데려갔다가 도로 버린 사람이 한 명이 아니었다는 것, 조사가 끝내 미궁에 빠졌다는 것을 차례로 적을 뿐이에요. 억울한 사람을 죄인으로 만들면 안 된다는 신하들의 건의를 받아들여 중종이 조사를 멈춥니다. 무고를 막으려던 신중함이 결과적으로 피해 아동을 놓아버린 자리인데, 저자는 이 충돌을 따로 지적하지 않고 지나갑니다. 대신 이렇게 닫아요.


"두 발목이 잘린 개춘이 이후에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기록으로 남겨지지 않았다."


같은 시대에 청계천 주변과 성문 근처에서 버려진 아이들이 여러 차례 발견되었다는 기록도 함께 실려 있습니다. 영조가 자휼전칙을 두어 국가가 거두려 했지만 실효는 제한적이었고요. 아이를 버린 부모의 사정으로 지목되는 것이 극심한 생활고와 신분입니다. 자신의 처지를 물려주느니 차라리, 라는 마음 앞에서는 뭐라 정리할 말을 찾기 어려웠습니다.


5부의 외지부 장은 결이 조금 다릅니다. 글을 모르거나 법에 어두운 백성을 대신해 소장을 써주고 소송을 대리하던 사설 법률가들인데, 조선은 이들을 단속했습니다. 명분은 소송을 조장한다는 것이었어요. 1478년에는 붙잡아 가족과 함께 변경으로 보냈다는 기록까지 남아 있는데도 몇 년 지나지 않아 다시 나타납니다. 법을 잘 아니 법망을 빠져나갔고, 소송이 계속되는 한 필요가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봅니다.


이 장에서 마음이 무거워지는 부분은 하의삼도 이야기입니다. 왕실과 연결된 가문이 섬 주민들의 땅에 소유권을 주장하면서 시작된 다툼이 300년을 갔습니다. 1723년 주민들이 수백 장의 문서를 들고 한성부까지 올라갔지만 서류에 관아 인준이 없다는 이유로 패소했어요. 서류의 형식을 아는 사람이 곁에 없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저자가 붙인 문장은 짧습니다.


"법은 강한 자의 편이었다."


윤선도가 노비 소송에 직접 뛰어들어 상대편 외지부를 맹비난한 대목도 흥미롭게 읽힙니다. 어부사시사를 쓴 문인의 다른 얼굴이 거기 있어요.


읽으면서 갸웃했던 지점도 있습니다. 저자는 외지부의 후예가 훗날 독립운동가의 법정을 지키는 변호사로 이어졌다고 마무리하는데, 이야기로는 시원하지만 그 사이 갑오개혁 이후 근대 법제가 통째로 이식된 과정이 꽤 얇게 처리된 인상이었어요. 두 흐름을 곧장 하나로 잇기에는 건너뛴 계단이 있어 보입니다. 오작인 장도 비슷합니다. 하찮으나 존엄하다는 소제목을 걸어두었지만 실제로 인용된 실록 기록은 아이를 버리거나 신체 일부를 팔았다는 어두운 사례 쪽에 몰려 있어요. 기록 자체가 남지 않은 직업이니 저자로서도 어쩔 수 없었겠으나, 존엄이라는 단어를 받쳐줄 근거는 조금 더 있었으면 싶었습니다.


그런 아쉬움에도 이 책이 좋았던 이유는, 사건의 자극에서 멈추지 않고 그 뒤의 구조를 보려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염매 같은 이야기를 다룰 때도 성호사설은 관찬 사서가 아니어서 진위를 알 수 없다고 먼저 밝히고 넘어가요. 그런 태도가 있어서 뒤의 서술을 믿고 따라갈 수 있었습니다.


책을 덮고 나서 남은 건 사건 목록이 아니라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검시관, 이후의 삶이 적히지 않은 아이, 무뢰배로 불리며 쫓겨 다닌 대리인. 조선의 사법 체계가 제법 촘촘했다는 사실과, 그 촘촘한 그물이 끝내 건지지 못한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이 나란히 놓입니다. 광화문역 8번 출구 근처 세종문화회관 뒤편에 장예원 표지석만 남아 있다는 대목을 읽고는, 오늘 지나다니는 길 아래에 그런 이야기가 깔려 있구나 싶어 잠깐 멈칫했어요.


서평단으로 여러 책을 읽다 보면 마음이 편해지는 책과 마음이 불편해지는 책이 있는데, 이 한 권은 후자였고 그래서 더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늦더위가 물러가려다 만 8월 끝자락에 읽기 좋은 책이었습니다. 서늘한 이야기들이 많은데도 이상하게 읽고 나면 마음이 차가워지지만은 않아요. 억울한 죽음이 없도록 하라는 원칙을 지키려 애쓴 사람들이 그 안에 분명히 있었으니까요. 가을로 넘어가기 전, 역사책 한 권을 천천히 읽고 싶은 분이라면 목차 어느 부에서 시작해도 좋을 겁니다. 사극에서 본 조선과 실제 기록 속 조선의 간격이 궁금했던 분께도 잘 맞을 거예요.


조선의 범죄 기록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기록에 이름을 남기지 못한 사람들의 얼굴이 남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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