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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을 읽는 40가지 이야기 - 중동으로의 첫 발걸음
박현도 외 지음 / 영진.com(영진닷컴) / 2026년 8월
평점 :
"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책이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한 일은 무게를 가늠하는 것이었습니다. 416쪽, 손바닥에 얹으면 제법 묵직합니다. 표지를 펼치기도 전에 며칠 만에 해치울 책은 아니겠다는 짐작이 들었고, 실제로도 그렇게 읽었어요. 목차 순서를 지키기보다 눈에 걸리는 제목부터 펼치는 식으로, 여러 날에 나눠서요.
표지 이야기를 조금 하고 싶습니다. 중동을 다룬 도서라면 으레 모래빛이나 황토색을 떠올리게 되는데 <중동을 읽는 40가지 이야기>는 짙은 초록을 깔았습니다. 그 위에 아치형 창을 내고 흰 기둥과 금빛 장식, 물에 비친 반영을 담았어요. 열기가 아니라 그늘과 물의 서늘함이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아래쪽에 적힌 '낯선 중동을 이해하는 가장 쉬운 안내서'라는 문구와도 결이 맞고요. 디자인 하나로 이미 한 가지 선입견을 건드리고 시작하는 셈입니다.

책의 앞머리, 중동을 보는 세 가지 시선이라는 대목에서 저자들은 뜻밖에도 축구로 문을 엽니다. 그라운드의 함성, 2002년의 기억, 국가대항전이 있는 날 치킨집 배달이 밀리고 아파트 곳곳에서 환호와 탄식이 흘러나오는 풍경. 그렇게 익숙한 자리로 독자를 데려다 놓은 다음, 방향을 틀어 극동과 중동이라는 말 자체를 뜯어봅니다. 극동은 동쪽의 끝, 중동은 동쪽의 중앙. 두 이름 모두 유럽이 기준점입니다. 함께 실린 지도에는 서양이 왼쪽에 있고 근동과 중동과 극동이 차례로 놓여 있는데, 캡션이 유럽 관점으로 본 극동과 중동이에요. 우리가 무심코 써온 지명이 실은 남의 자리에서 매긴 좌표라는 사실이 한 장으로 드러납니다.
여기서 저자들이 내놓는 설명이 이 챕터의 힘입니다. 언어도 종교도 민족도 다른 한국과 중국, 일본, 몽골, 시베리아를 한데 묶어 극동아시아라 부르는 것과 비슷하다는 겁니다. 이 문장을 읽는 순간 위치가 바뀝니다. 설명을 듣는 쪽에서 같이 이름 붙여진 쪽으로요. 챕터를 닫는 두 문장이 그 감각을 그대로 받아냅니다. "중동은 멀지 않다. 중동이 멀다고 느끼는 것은 어쩌면, 우리 마음속 낯설음의 거리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 걸리는 대목도 있었습니다. 유럽 중심의 명칭임을 그렇게 분명히 짚어놓고 저자들은 "어쨌든 이 고착화된 표현을 우선 빌려 써 보자."라며 넘어갑니다. 입문서라는 성격을 생각하면 현실적인 선택이고, 대안을 만드는 일이 이 책의 몫도 아니겠지요. 그래도 문제를 제기한 손끝에서 바로 관용을 인정하고 지나가니 조금 아쉬운 마음이 남더군요. 초반부터 지명과 분류가 촘촘하게 몰려 있어 처음 읽는 사람에게는 다소 빡빡한 구간이기도 합니다.

중반을 넘어서면 석유가 더 이상 나지 않는다면이라는 물음이 나옵니다. 도입은 또 화려합니다. 39억 원짜리 하이퍼카를 경찰차로 굴린 아부다비, 3백조 원을 들여 치른 카타르 월드컵. 그러고 나서 그 부의 내부를 보여줍니다. GCC 산유국의 석유산업이 1930년대 이후에야 개발되기 시작했다는 것, 지금의 풍요가 백 년이 채 안 된 일이라는 것. 카타르는 총인구 311만 명 중 자국민이 10% 남짓이라 자원 수입이 고스란히 돌아가고, 대학원 학비까지 국가가 대줍니다. 반면 사우디는 인구가 크고 자국민 비율도 60% 수준이라 개인에게 돌아가는 몫이 적을 수밖에 없다고 적혀 있어요. 그래서 저자들은 상상할 수 없이 많은 부를 가진 사람부터 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까지 있으니 다층적인 시선으로 아랍 산유국을 바라봐야 한다고 씁니다. 부자 나라라는 한 단어로 눌러놓았던 것이 여러 겹으로 갈라지는 순간입니다.
이 장에서 잠깐 손이 멈춘 곳은 따로 있었습니다. 1970년대 유가가 오르던 시절 우리나라에서도 중동 건설 붐을 따라 많은 노동자가 사막으로 떠났다는 문장이 지나갑니다. 그 이야기를 어른들 입을 통해 들으며 자란 세대라면 이 한 줄이 남의 나라 통계로만 읽히지는 않을 겁니다. 그때 그곳으로 갔던 사람들의 시간과, 지금 그 자리를 채우고 있는 인도와 방글라데시와 필리핀 사람들의 시간이 한 문단 안에서 겹칩니다.

그 겹침을 정면으로 다루는 곳이 뒤쪽의 이주민 교차로 이야기입니다. 사막 위에 발자국이 끊임없이 이어진다는 문장으로 조용하게 시작해서, 떠나는 사람과 받아들이는 나라를 나란히 놓아요. 2011년 이후 시리아를 떠난 수백만 명, 2015년 바닷가에 떠밀려온 세 살배기 쿠르디의 사진, 2020년 베이루트 항구 폭발 이후 레바논을 빠져나간 의료진과 기술직들. 예멘 사람들의 긴 여정을 두고 저자들은 그것이 단순한 탈출이면서 동시에 자신과 가족의 미래를 다시 설계하려는 인간적인 결단이기도 하다고 적습니다. 떠나는 이를 피해자 자리에만 두지 않고 판단하고 결정하는 사람으로 세우는 문장이라 오래 남았습니다.
받아들이는 쪽 이야기도 미화하지 않습니다. 걸프 산유국이 해외에서 공급받는 노동력은 약 2천 5백만 명 규모이고, 두바이와 아부다비는 외국인이 인구의 85% 이상입니다. 건설 현장부터 호텔과 가정 서비스까지 이들 없이는 나라가 돌아가지 않는다고 해놓고, 곧바로 열악한 숙소와 불안정한 고용, 출국을 제한하는 제도를 짚습니다. 경제적 풍요 뒤에 감춰진 이야기가 이주 구조의 또 다른 그림자라는 표현이 나오지요. 솔직히 말하면 이 부분은 한 문단으로 끝나는데, 앞에서 월드컵 개최 비용을 3백조 원이라고 그토록 구체적으로 적어둔 것에 비하면 저울이 조금 기울어 보였습니다. 네옴시티를 100% 재생에너지로 짓겠다는 계획이나 나라별 비전 연도를 발표 그대로 옮겨둔 대목도 마찬가지고요. 다만 40가지 이야기를 한 권에 담는 책에 그 이상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일 테고, 여기서 걸린 물음을 들고 다른 책으로 건너가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요르단과 레바논이 오랜 시간 난민 수용의 부담을 짊어져 왔고, 일부 국가에서는 국내 정치 갈등과 얽혀 난민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으로 변하기도 한다는 서술이 있습니다. 저자들은 한국을 언급하지 않지만, 최근 몇 해 사이 우리 사회가 통과해온 논쟁을 떠올리면 남의 이야기로 읽히지 않습니다. 이 책이 좋은 지점은 그런 연결을 독자에게 맡겨둔다는 데 있어요. 결론을 대신 내려주지 않고, 다층적으로 보라는 요구만 반복해서 남깁니다.

인용한 통계마다 퓨 리서치 센터와 유엔, OPEC, IMF 같은 출처를 각주로 밝혀둔 점도 신뢰가 갔습니다. 무슬림 인구 증가 그래프를 보여준 다음에 인구수 증가가 곧바로 절대적인 힘이나 헤게모니 장악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고 스스로 제동을 거는 문장에서는 저자들의 태도가 그대로 보였고요. 요즘 이슬람 인구 통계가 소비되는 방식을 생각하면 의도적으로 넣은 안전장치일 겁니다.
이번 한 권은 읽는 방식 자체를 바꿔놓았습니다. 마감에 맞춰 완독하고 정리하는 대신, 40개의 이야기를 며칠에 걸쳐 흩어 읽고 그중 몇 개를 다시 펼치는 쪽을 택하게 됐거든요. 두께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 챕터마다 다 아는 줄 알았던 것이 하나씩 흔들려서이기도 했습니다. 뉴스에서 중동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마다 전쟁과 석유 두 글자만 떠올리던 분이라면 이 안내서가 그 두 글자 사이에 놓인 나머지를 꽤 넓게 채워줄 겁니다. 여행 계획이 있는 분에게도, 아이가 세계사를 배우기 시작해 같이 읽을 교양서를 찾는 집에도 어울리겠고요. 무엇보다 이름을 붙이는 쪽과 불리는 쪽이 다르다는 감각을 한번 겪어보고 싶은 사람에게 권하고 싶습니다.
처서를 앞두고도 낮 볕은 아직 뜨겁습니다. 그래도 해가 지고 나면 창으로 들어오는 바람의 온도가 며칠 전과 다르지요. 여름이 물러가는 자리에서 이 초록 표지를 다시 봅니다. 뜨거운 땅을 다룬 책인데 서늘한 물그림자를 앞세운 이유를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낯선 곳을 이해하는 일은 온도를 낮추고 천천히 들여다보는 데서 시작되니까요. 가을이 깊어질 때까지 곁에 두고 남은 이야기들을 마저 읽어볼 생각입니다.
사막과 석유라는 두 단어로 묶어두었던 곳을 40개의 이야기로 하나씩 풀어내는, 낯설음의 거리를 좁혀주는 안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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