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열의 교양 - 알고도 모른 척해야 하는 지위의 법칙 ㅣ 세계척학전집 7
이클립스 지음 / 모티브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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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표지를 한동안 들여다보게 만드는 책입니다. 짙은 자줏빛 바탕 정중앙에 개기일식이 걸려 있고, 둘레를 육각형 창처럼 나눈 칸마다 공작과 사자, 유니콘, 두루미가 들어앉아 있어요. 그리고 딱 한 칸에만 사람이 서 있습니다. 꼬리를 활짝 편 새와 문장(紋章) 속 맹수들 사이에 팔짱을 낀 채 어정쩡하게 서 있는 사람 하나. 저자 이름이 이클립스이고 그림도 일식이니, 빛이 가려진 다음에야 겨우 보이는 것들에 관한 이야기겠구나 짐작하며 첫 장을 열었습니다.



<서열의 교양>은 모티브에서 펴낸 세계척학전집의 일곱 번째 권입니다. 시리즈 이름의 '척학'은 오타가 아니라 '알고도 모른 척'의 그 척을 노린 표기로 보여요. 부제가 알고도 모른 척해야 하는 지위의 법칙이니 앞뒤가 맞습니다. 400쪽에 손에 무리 없는 판형이고, 24명의 학자를 불러 모았다기에 학술서를 각오했는데 막상 읽어보면 사례 하나에 짧은 문장 서너 개로 끊어가는 리듬이라 진도가 수월했습니다.


1부에서 발이 묶인 자리는 사폴스키의 서열 스트레스였어요. 챕터 문을 여는 문장이 이미 서늘합니다. 영국 공무원 1만 8천 명을 수십 년 추적했더니, 흡연이며 운동 부족 같은 위험요인을 전부 보정하고도 직급에 따른 사망 위험 차이가 남았다는 겁니다. 이어지는 개코원숭이 이야기는 더 구체적이고요. 무리의 일인자였던 솔로몬은 매일 아침 덤벼드는 젊은 수컷을 매번 이겼는데, 이기는 쪽도 솔로몬이고 야위는 쪽도 솔로몬이었습니다. 살이 빠지고 얼굴에 상처가 늘다가 언젠가부터는 이기고도 먼저 물러났다고 해요.


이 챕터에서 가장 오래 남은 문장은 이겁니다. "배를 채우고도 남은 시간에 서로를 괴롭히는 짐승. 개코원숭이, 그리고 인간이다." 사폴스키가 개코원숭이를 연구 대상으로 고른 이유가 초원에 먹이가 넘쳐 하루 세 시간이면 배를 채우고 남는 시간을 서로 괴롭히는 데 쓰기 때문이었다는 대목에서, 저 문장은 비유가 아니라 관찰 기록에 가깝게 읽힙니다.


책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갑니다. 사자에게 쫓긴 얼룩말은 몇 분 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풀을 뜯는데, 인간을 덮치는 사자는 다음 달 실적이나 상사의 표정이나 통장 잔고라서 몇 분 만에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 게다가 우리는 닥치지도 않은 마감과 일어나지도 않은 해고를 머릿속으로 미리 겪는 재주가 있어서 장치가 좀처럼 꺼지지 않습니다. 몸을 상하게 하는 것은 사자 쪽이 아니라 꺼지지 않는 스위치라는 설명이었어요.


그다음이 위로 쪽으로 방향을 트는 대목입니다. 쥐 두 마리에게 세기와 시간까지 완전히 같은 충격을 주는데 한쪽 우리에만 바퀴가 있었고, 바퀴를 돌릴 수 있었던 쥐는 멀쩡했고 아무것도 못 한 채 견딘 쥐만 위장이 상했다는 실험이 나옵니다. 뉴욕 횡단보도 버튼 천 개 중 구백 개가 아무 데도 연결되어 있지 않은데도 아무도 떼어내지 않는 이유, 요양원에서 화분을 직접 고르고 물을 준 노인들이 3주 만에 더 활발해졌다는 관찰이 뒤를 잇고요. 저자가 정리한 변수는 두 가지입니다. 통제감과 예측 가능성. 자리를 바꾸기 어렵다면 마음대로 되는 구석 하나부터 만들어보라는 조언이 여기 붙어 있는데, 조직 생활을 오래 해온 사람에게는 꽤 현실적인 처방으로 들립니다.


3부의 켈트너 챕터는 방향이 정반대입니다. 앞에서 아래에 있는 몸을 다뤘다면 여기서는 위로 올라간 뇌를 봅니다. 모노폴리 실험이 인상적이었어요. 동전을 던져 부자 역할을 맡은 사람은 시작 자금도 주사위도 급여도 두 배를 받고, 두 참가자 모두 그 조건을 알고 게임을 시작합니다. 십오 분 뒤 부자로 배정된 사람은 목소리가 커지고 말을 판에 놓을 때 소리를 내고 프레첼 그릇으로 손이 자꾸 갔다고 해요. 게임이 끝난 뒤 왜 이겼느냐고 물으니 전략이 좋았고 판단이 빨랐다고 답합니다. 저자의 정리가 서늘합니다. "유리한 조건은 대답에서 사라진다."


삼십 분짜리 무작위 리더 역할을 맡은 사람이 남은 쿠키에 먼저 손을 뻗고 입을 벌린 채 씹더라는 관찰, 권력을 느끼도록 유도된 사람의 거울 뉴런 반응이 약해졌다는 실험까지 읽고 나면 켈트너가 말한 권력의 역설이 선명해집니다. 권력에 오르는 데 필요했던 특성이 권력을 가진 사람에게서 가장 먼저 사라지고, 정작 본인은 자기가 변했다는 걸 알아채지 못한다는 겁니다. 마흔을 넘기면 누군가를 평가하고 결정하는 자리에 조금씩 서게 되니, 이 챕터는 남의 이야기로 넘기기가 어려웠습니다. 윗사람이 사정을 못 알아듣는다면 실제로 이해하는 회로가 약해진 것일 수 있으니 마음을 알아달라고 호소하기보다 알아들을 언어로 바꿔 말하라는 조언도 실무적이었고요.


다만 걸리는 대목도 있었습니다. 저자는 앞선 챕터에서 요양원 화분 연구의 사망률 수치를 소개한 뒤, 바로 다음 쪽에 그 통계값이 나중에 정정되어 통상적인 기준으로는 유의하지 않게 됐다는 단서를 스스로 달아둡니다. 대중 교양서에서 흔치 않은 태도라 신뢰가 갔어요. 그런데 3부의 고급차 관찰처럼 재현을 두고 말이 오간 연구에는 같은 수준의 단서가 붙어 있지 않습니다. 사례를 다루는 온도가 챕터마다 조금 다르게 느껴졌고, 앞에서 보여준 신중함을 끝까지 밀고 갔으면 더 단단했겠다 싶었습니다. 마키아벨리가 틀렸다고 잘라 말하는 부분도, 1부에서 두렵게 하는 길과 닮고 싶게 하는 길을 나란히 놓았던 서술과 완전히 포개지지는 않더군요. 강연에 가까운 리듬을 쓰는 저자라 의도된 단순화일 수도 있겠습니다.


4부에 이르면 책이 판 자체를 내려다봅니다. 브룩스의 두 이력서 챕터는 2011년 스티브 잡스의 추도식 장면으로 문을 여는데, 단상에 오른 여동생이 먼저 꺼낸 것은 애플의 부활도 아이폰도 아니었다고 해요. 오빠가 사랑을 진지하게 여긴 사람이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이력을 남긴 사람의 장례식에서 성취가 이력서처럼 낭독되지 않았다는 문장이 이 챕터의 출발점입니다.


브룩스는 덕목을 두 종류로 나눕니다. 이력서 덕목은 학위와 경력과 매출처럼 시장이 값을 매겨주는 것들이고, 조사 덕목은 친절했다거나 어려운 순간에 옆을 지켰다처럼 이력서에 적을 자리조차 없는 것들이에요. 앞의 문서는 오늘 밤에도 열어서 다듬을 수 있지만 뒤의 문서는 제가 쓰지 못하고 저를 오래 지켜본 누군가가 씁니다. 창세기의 두 인간을 아담 I과 아담 II로 나눈 랍비 솔로베이치크의 구분을 가져와, 한쪽은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묻고 다른 한쪽은 나는 왜 여기 있는가를 묻는다고 정리한 대목도 오래 남았습니다.


이 챕터에서 제일 조용하게 아픈 문장은 이거였어요. "상황에 지친 사람은 상황이 바뀌면 회복된다. 자기 자신에게 지친 사람은 상황이 바뀌어도 회복되지 않는다." 이력서 쪽으로만 시간을 몰아쓴 사람의 피로는 대개 뒤쪽이라고 저자는 덧붙입니다. 성취해도 채워지지 않고 사다리는 끝없이 위로 이어지며 계단마다 자기존중감의 유효기간이 짧다는 진단이 앞에 깔려 있어서, 이 문장이 훈계처럼 들리지는 않았습니다. 브룩스 본인이 성공한 사람들의 삶을 매일 다뤄오면서 정작 자기 삶은 그 성공을 좇는 쪽으로 짜여 있었다고 먼저 자백해두었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한 가지 덧붙이자면, 자기 확대 문화에 대한 진단은 우리 사정과 그대로 포개지지는 않는 듯합니다. 당신은 특별하다는 말이 사방에서 반복되어 결함을 응시할 언어가 사라졌다는 관찰은 미국 사회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인데, 이곳은 오히려 스스로를 낮게 매기고 남과 비교하며 깎아내리는 말이 더 익숙한 편이니까요. 결함을 세 개 적어보라는 권유가 그런 독자에게 어떻게 가닿을지, 저자가 한국 상황에 맞춘 한 문단을 보태줬다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만 좋은 삶이란 결함을 없앤 상태보다 평생 그것과 씨름해온 상태에 가깝다는 정의는, 완성이 아니라 지속을 말한다는 점에서 충분히 따뜻했어요.


조사 덕목은 아무도 보지 않는 자리에서 사소한 결정이 쌓여 자란다고 책은 말합니다. 식당 직원에게 어떻게 말했는지, 아파트 경비원에게 인사를 했는지, 회의에서 말하지 못한 후배에게 나중에 의견을 물었는지. 한 번이면 무게가 없지만 매일 반복하는 방식이라면 그것이 십 년 뒤 사람들이 저를 기억하는 방식이 된다는 대목에서, 이 책이 왜 마지막 파트에 초연이라는 이름을 붙였는지 납득이 갔습니다. 확인은 늦게 올 뿐 언젠가는 반드시 온다고 저자는 썼어요.


띠지에는 교실에 두 명의 왕이 있었고 그 작은 교실은 첫 판에 불과했다는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학생회장과 일진이라는 두 갈래 왕좌가 성적표와 명함과 아파트 평수로 이름만 갈아입은 채 계속되고 있다는 뜻일 텐데, 이 책의 미덕은 그 판을 벗어나라고 다그치지 않는 데 있는 것 같아요. 대신 판의 구조를 보여주고, 어느 자리에 있든 몸이 상하는 지점이 어디인지 짚어줍니다. 인정 욕구에 지쳐 있으면서도 그런 게임을 하고 있다는 사실만은 인정하기 싫었던 사람이라면, 읽는 내내 여러 번 걸음을 멈추게 될 겁니다. 조직에서 위로 올라가는 중인 사람에게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불편하게 읽힐 테고요.


서평단으로 만나는 책은 대개 정해진 기간 안에 읽고 감상을 정리해야 하는데, 이번 한 권은 마감을 의식하기 어려웠어요. 어느 대목에서는 밑줄을 긋다가 스스로를 변호하고 싶어지고, 어느 대목에서는 그냥 조용해졌습니다. 산에 오르는 동안은 산이 보이지 않는다는 저자의 문장이, 다 읽고 나서야 제자리를 찾아가는 느낌이었어요.


처서가 지나면서 밤공기가 한 겹 식었습니다. 낮의 열기는 아직 남아 있지만 저녁이 확실히 짧아졌고, 이맘때는 한 해의 절기가 어디쯤 왔는지 세어보게 되죠. 올해 무엇을 이뤘는지 세는 목록과 어떤 사람이었는지 남는 목록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이 책이 알려준 셈입니다. 서늘해지는 계절에 읽기 알맞은 한 권이었습니다.


서열은 사라진 적이 없고, 이 책은 그 판을 벗어나라고 말하는 대신 판의 규칙을 읽는 눈을 쥐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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