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수학이 잘되는 수학책
송명진.박종하 지음 / 블랙피쉬 / 2026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받아 든 순간 먼저 느껴지는 건 두께입니다. 표지는 연한 버터색이라 한없이 가벼워 보이는데, 손에 얹으면 만만치 않은 무게가 옵니다. 빨강과 검정으로 큼직하게 박힌 제목 아래로 분홍과 하늘색 삼각형이 겹쳐 있고, 노랑 초록 캐릭터가 도형 위를 기어오르고 있어서 표정은 분명 명랑합니다. 그런데 안에 든 것이 185개의 문제라는 걸 알고 나면, 이 명랑함이 만만하다는 뜻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됩니다. 앉은자리에서 넘길 책은 아니라고 짐작했고, 실제로 그랬습니다.



첫 장에 '계산이 상상을 죽인다'라는 제목의 꼭지가 있습니다. 정사각형 세 개가 위로 쌓여 있고 아래 왼쪽에서 위 오른쪽까지 이은 길이가 10일 때 정사각형 하나의 넓이를 구하라는 문제인데,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쓰면 세 줄에 끝납니다. 저자들은 답을 내놓고도 멈추지 않고 같은 문제를 다시 붙잡습니다. 정리를 쓰지 않고, 도형을 복사해 90도씩 돌려 네 개를 붙이는 방식으로요. 그렇게 만든 큰 정사각형 하나가 작은 정사각형 열 개분이라는 걸 확인하며 같은 답에 도착합니다. 훨씬 길고 훨씬 번거로운 길입니다.


그 뒤에 붙은 문장이 이렇습니다. "때로는 단순 계산이 다양한 상상을 죽이기도 합니다." 절 제목보다 수위를 낮춘 표현인데, 조금 더 읽으면 저자들이 스스로 균형을 잡아 두는 대목도 나옵니다.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사용하지 말자는 말이 아니라고, 더 많이 공부하고 더 익숙하게 쓰면 좋겠다고 분명히 적어 둡니다. 정해진 조건 안에서 최대한 아이디어를 떠올려 보자는 게 요지였던 셈이죠. 자기 주장의 세기를 스스로 관리하는 책이라 읽는 쪽도 편안했습니다.


바로 다음 꼭지의 제목은 'Out of box'입니다. 숫자 카드 여덟 장을 두 줄로 놓고 두 개만 옮겨 양쪽 합을 맞추라는 문제인데, 여기서 저자들이 먼저 하는 일이 인상적입니다. 옮기기 시작하는 대신, 이 문제의 답이 존재하는지를 묻습니다. 두 줄의 합은 39이고 카드를 아무리 바꿔도 총합은 변하지 않으니 양쪽이 같아지려면 각각 19.5여야 하는데, 다루는 수는 모두 자연수입니다. 그러니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안 된다는 결론이 먼저 나옵니다. 서둘러 숫자를 옮기다 보면 계획도 전략도 없이 주먹구구로 접근하고 있구나 하는 자각이 든다는 서술도 곁들여 있는데, 사무실에서 급한 일을 붙잡고 있을 때의 감각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 오래 눈이 머물렀습니다.


그다음 해법은 숫자가 종이 카드로 주어졌다는 점을 이용해 9를 뒤집어 6으로 쓰는 것입니다. 무릎을 치게 되는 대목이긴 한데, 여기서 가벼운 의문이 하나 남았습니다. 이 트릭은 한 번 알고 나면 그 자리에서 소모됩니다. 반면 뒤쪽 장에서 다루는 닮음비나 도형을 복제해 붙이는 방법은 다른 문제로 그대로 옮겨 쓸 수 있는 도구로 남습니다. 성질이 다른 두 종류가 '아이디어'라는 한 이름으로 묶여 있어서, 여러 장을 이어 읽다 보면 어느 쪽이 이 책이 말하는 수학 근육인지 잠깐 헷갈립니다. 저자들도 그걸 의식했는지 같은 꼭지의 뒤 문제에서는 같은 트릭이 통하지 않게 조건을 바꿔 두었습니다.


중반의 닮음 이야기는 훨씬 단단합니다. 높이가 3미터와 4.5미터인 전신주 사이에 사람이 서 있을 때 그 사람의 키를 구하는 문제가 있는데, 닮은 삼각형 몇 개를 찾아내는 것만으로 답이 나옵니다. 직접 재지 않고도 알아내는 셈이죠. 이 장의 앞부분에 탈레스가 그림자 길이만으로 피라미드 높이를 알아냈다는 이야기가 실려 있는데, 그 오래된 방법이 전신주와 사람의 키로 내려와 있는 배치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같은 장에서 저자들은 어려운 미적분은 풀면서도 닮은 도형을 찾아 비교하는 데는 익숙하지 않아 비율 문제를 놓치는 고등학생이 많다고 적어 두었습니다. 진도를 얼마나 앞질렀느냐와 생각이 얼마나 깊어졌느냐가 따로 움직인다는 이야기로 읽혔습니다.


가장 오래 붙들고 있었던 건 '자기 복제'라는 꼭지였습니다. 빗변 길이 두 개만 주어진 도형의 넓이를 묻는데, 그 도형만 뚫어져라 바라본다고 답이 나오지는 않는다고 책은 말합니다. 네 개를 복사해 돌려 붙여야 비로소 한 변이 7인 정사각형 안에 한 변이 5인 정사각형이 비어 있는 틀이 드러납니다. 그런 배치를 떠올리는 일이 공감각적인 재능을 타고난 사람의 몫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고, 처음에는 생소해도 비슷한 경험을 쌓다 보면 익숙해질 것이라고 저자들은 덧붙입니다. 머리로만 하기 어렵다면 종이에 그려서 오려 붙여 보라는 권유까지 나옵니다. "누구나 경험할수록 익숙해집니다." 이 짧은 문장을 만나고서야 이 책이 왜 이렇게 두꺼운지 납득이 갔습니다. 요령 몇 개를 알려 주려는 책이 아니라, 같은 손놀림을 여러 장에 걸쳐 다르게 써 보게 하려고 이 부피를 감당한 것입니다.


읽는 방식에 대해서도 한마디 남기고 싶습니다. 문제를 건너뛰고 풀이만 읽으면 이 책은 정말 얄팍해집니다. 저자들이 준 것은 답이 아니라 손을 쓰는 시간이니까요. 그래서 하루에 한두 문제씩, 연필을 들고 천천히 가는 편이 맞습니다. 아이 문제집을 들여다보다 막혀 본 어른이라면 반가울 대목이 많고, 학교를 떠난 뒤로 도형을 만져 본 적 없는 사람에게도 진입 장벽이 낮습니다. 초등학생 수준의 지식으로 접근하게 설계했다는 저자들의 말은 과장이 아니었습니다. 반대로 빠른 답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이 책의 방식이 답답할 수도 있겠습니다.


서평단으로 만난 책 가운데 이렇게 오래 곁에 두고 조금씩 읽어야 하는 한 권은 드물었습니다. 마감에 맞춰 읽어 내는 종류가 아니라, 마감이 지나고도 계속 펼치게 되는 종류였습니다.


늦여름의 열기가 낮에는 여전한데 아침저녁으로는 바람의 결이 달라졌습니다. 이런 계절에 어울리는 책이 있다면, 급할 것 없이 한 문제씩 넘기며 손을 움직이게 하는 이 도서가 그중 하나일 것 같습니다. 가을이 깊어질 때까지도 아직 남은 문제가 많을 텐데, 그게 아깝지 않습니다.


공식으로 3초에 끝날 문제를 일부러 30분 동안 붙잡게 만드는 책, 그 30분에 남는 것이 있다고 조용히 설득하는 도서입니다.


#갑자기수학이잘되는수학책 #블랙피쉬 #송명진 #박종하 #수학책추천 #비주얼수학 #기하학퍼즐 #수학교양서 #어른수학 #수학다시공부 #사고력수학 #창의력 #문제해결력 #서평 #북유럽카페 #서평단 #신간도서 #독서기록 #수학근육 #보조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