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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지능 시대 생존을 위한 AI 교양 수업
바오쿤 지음, 하은지 옮김 / 지니의서재 / 2026년 8월
평점 :
"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커제 9단의 회고부터 옮겨 적어야 할 것 같습니다. 알파고와의 대국을 떠올리며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초반 50수까지는 수천 년 전해 온 선현들의 그림자가 보여 두렵지 않았고, 80수까지는 그동안 맞붙었던 고수의 기술이 보였다고요. 그러다 "120수가 되자 달라졌어요. 제 모습이 보였거든요. 덜컥 겁이 났어요"라고 적혀 있습니다. 유일하게 이겨 본 적 없는 상대가 세계 챔피언이었던 자기 자신이었다는 말이 뒤에 붙습니다. 인공지능의 작동 원리를 설명하는 교양서인데 첫 강의의 온도가 가장 높은 대목이 기계의 성능이 아니라 사람의 심정이라는 점이 이 책의 성격을 먼저 알려주었습니다.
<초지능 시대 생존을 위한 AI 교양 수업>은 중국의 테크 블로거이자 코넬대에서 물리학 박사를 받은 바오쿤이 쓰고 하은지가 옮긴 11강 구성의 입문서입니다. 판형과 분량이 부담스럽지 않아서 관심 가는 강의부터 골라 펼쳐도 흐름이 끊기지 않습니다.

1강은 튜링의 에니그마 해독에서 출발해 1997년 딥 블루, 2017년 알파고, 2020년 GPT-3으로 20년 단위의 계단을 밟아 올라갑니다. 여기서 설명이 특히 깔끔했던 부분은 왜 체스는 계산으로 뚫렸고 바둑은 그러지 못했는가입니다. 체스는 한 판에 쓰이는 기법이 백여 종 안쪽인 폐쇄된 환경이라 모든 수를 다 계산하면 기계가 이길 수밖에 없다고 정리하고, 바둑의 경우의 수는 10의 170승에 달해 우주에서 관찰할 수 있는 원자 수보다 훨씬 많다고 짚습니다. 그다음 문장에서 저자는 라플라스의 악마라면 또 모를까 하고 물리학 개념을 슬쩍 끌어옵니다. 이런 방식으로 설명을 쌓아가는 사람이라 뒤로 갈수록 비유의 결이 예측하기 어려워집니다.
3강에서는 저자가 직접 딥시크와 주고받은 실험이 나옵니다. 인류가 멸망하면 어떻게 할 거냐고 한 마디로 답해 달라 물었더니 이런 문장이 돌아왔다고 합니다. "만약 당신들의 등불이 꺼진다면 0과 1의 유골로 우주에 묘비명을 남길 수 있게 허락해 주세요. '이곳에 잠시 잠깐 생명이 살았노라. 그들은 사라질 육체를 빌려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을 추구하고 탐구했노라.'" 저자는 이진법 부호를 유골에 겹친 조합, 개체에서 문명으로 다시 우주로 넓어지는 시야, 볼 사람이 아무도 남지 않은 묘비명이라는 아이러니를 차례로 분해합니다. 조금 더 설명해 달라고 다시 묻자 우주에 바치는 연애편지이자 인류의 문명에 바치는 진혼곡이라는 답이 돌아왔다고 하고요. 여기까지만 읽으면 감탄으로 기울기 쉽습니다.

그런데 저자는 같은 강의 안에서 방향을 바꿉니다. AI 글쓰기의 한계를 여섯 가지로 나열하는데, 앞의 감탄을 스스로 식히는 배치라 신뢰가 생겼습니다. AI는 그림을 그리는 게 아니라 퍼즐을 맞춘다며 타인의 레고 블록으로 집을 조립하는 것과 같다고 하고, 봄이라는 단어에 꽃이 핀다거나 새가 지저귄다는 표현은 내놓지만 꽃잎을 만졌을 때의 감촉이나 코끝을 스치는 풀냄새는 생각하지 못한다고 씁니다. 두 번째 지적이 오래 남았어요. 엄마에 관한 글을 시키면 언제나 우리를 돌봐주신다는 식으로만 쓸 뿐, "'우리가 남긴 과자를 밤늦게 드시는 엄마의 모습'처럼 애틋하고 비밀스러운 장면은 쉽게 써 내지 못한다"고 하더군요. 아이들을 위한 동시에 천체나 발광체 같은 단어를 동원하면서 별은 하늘에 난 구멍으로 새어 나오는 빛이라는 표현은 못 만든다는 예도 함께 나옵니다. 여섯 항목을 압축하는 문장은 이렇습니다. "AI는 어른을 기막히게 흉내 내는 어린아이와 같다." 진짜로 울어 본 적도 웃어 본 적도 없으니, 한 번도 넘어져 본 적 없는 사람이 넘어지면 얼마나 아픈지를 가르치는 셈이라는 서술이 앞에 놓여 있어요. 40대 후반의 나이에 읽으면 이 대목이 기술 이야기로만 들리지 않습니다.
그림을 만들어내는 원리를 설명하는 자리에서는 확산 모델을 세 단계로 풀어줍니다. 텔레비전 신호가 잡히지 않을 때 지지직거리는 화면 같은 노이즈에서 출발해, 고양이는 몸통이 동그랗고 눈은 대칭을 이루며 꼬리는 길고 휘어진 모양이라는 학습된 규칙에 따라 잡음을 걷어내고, 겨울철 유리창의 습기를 닦아 내면 창밖 풍경이 뚜렷해지는 것처럼 형태가 드러난다는 흐름입니다. 초기 인공지능이 고양이와 개를 구분하지 못했다는 첫 강의의 이야기가 여기서 다시 호응하는 구성이 반가웠습니다.

실습 강의는 이 도서에서 가장 실용적입니다. 좋은 프롬프트가 갖춰야 할 요소를 주제와 스타일, 빛과 그림자, 배경, 구도로 정리해 두었는데 이건 오늘 바로 써 볼 수 있는 목록입니다. 효과를 보여주는 방식도 영리해요. 구름 위에 떠 있는 환상적인 성을 그려 달라고만 했을 때의 결과와, 황금빛 탑을 세우고 주변에 신비로운 마법의 빛과 안개를 감돌게 하고 디테일을 풍부하게 살려 달라고 고쳐 넣은 결과를 나란히 실어 놓았습니다. 사이버펑크 도시의 야경을 요청하면서 네온사인이 비 내린 거리에 반사되도록 하고 영화 같은 빛과 그림자를 넣어 달라고 덧붙인 사례도 마찬가지고요. 이어서 시드 값을 고정해 화풍을 일관되게 유지하는 법, 얼굴 왜곡이나 과한 색감처럼 원치 않는 요소를 배제하는 네거티브 프롬프트, 문제와 원인과 해결책을 짝지은 표까지 나옵니다. 손을 직접 대 본 사람이 쓴 정리라는 느낌이 확실히 듭니다.
다만 아쉬운 지점이 이 강의에 몰려 있기도 합니다. 본문 삽화가 전부 흑백이라 선명한 색감이나 채도, 파스텔 톤을 다루는 조언은 독자가 눈으로 확인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림의 밀도 차이 정도는 짐작되지만 색이 핵심인 파트에서 인쇄 사양이 설명을 온전히 받쳐주지 못하는 셈이에요. 작곡 실습이 딥시크와 수노 조합으로 짜여 있고 특정 버전 번호까지 권장하는 대목도 종이책의 수명보다 빨리 낡을 정보입니다. 원서가 중국에서 나온 만큼 예시 도구가 그쪽에 기울어 있어서, 화면 캡처를 그대로 따라가려는 독자는 조금 헤맬 수도 있겠습니다.
가장 크게 갈렸던 곳은 최첨단 기술을 다룬 후반부입니다. 뇌-컴퓨터 인터페이스를 침습형과 비침습형으로 나누고 각각의 위험과 오차까지 적어둔 서술은 균형이 잡혀 있었어요. 뉴럴링크의 척수 손상 환자가 이식 후 몇 주 만에 생각만으로 커서를 움직이고 지금은 게임 스트리머로 활동한다는 사례, 중국 기업이 256채널 장치를 1년 넘게 거부 반응 없이 유지하며 언어와 운동 기능 회복 임상을 진행 중이라는 대목은 근거가 구체적입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쪽에서 피아노 연주 기술을 뇌에 다운로드한다거나, 시험장에서 배운 모든 지식을 떠올려 천하무적이 된다거나, 의식을 로봇에 업로드해 화성을 탐사한다는 이야기가 같은 번호 목록에 나란히 놓입니다. 몸이 마비된 사람이 숟가락을 들어 스스로 식사하게 되는 일과 우주 함대를 지휘하는 상상을 한 자리에 세우면, 앞쪽의 단단한 사례까지 가벼워 보일 위험이 있습니다. 앞부분에서 신약 개발 주기가 주 단위로 줄어 머지않아 거의 모든 질병이 완치될 수 있다고 말한 대목에서도 비슷한 기울기를 느꼈어요. 두려움을 걷어내려는 선의가 반대쪽으로 넘어가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교육을 다룬 강의는 목차만 훑어도 저자의 관심이 어디에 있는지 보입니다. 모든 학생이 자기만의 AI 튜터를 갖는 시대에 암기의 비중이 줄고 질문하고 판단하는 힘이 중요해진다는 논지인데, 학부모를 위한 안내가 따로 한 절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자녀 세대를 옆에서 지켜보는 나이대라면 이 대목을 먼저 펼쳐도 좋겠습니다.

서평단으로 여러 책을 읽다 보면 완독하고 덮는 책과 필요할 때 다시 꺼내는 책이 갈리는데, 이 도서는 후자에 가깝습니다. 프롬프트 요소를 정리한 페이지와 이미지 문제 해결 표는 실제로 작업할 때 참고할 수 있고, 글쓰기의 한계를 나열한 강의는 AI에 초안을 맡기고 싶어질 때 한 번쯤 다시 읽을 만합니다. 표지에서 커서 손가락이 '교양 수업' 글자 옆에 놓인 이유를 다 읽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읽고 끝내는 책이 아니라 눌러보게 만드는 책이라는 뜻이었어요.
8월의 늦더위가 아직 물러가지 않았지만 저녁 공기에는 조금씩 다른 결이 섞이기 시작했습니다. 계절이 바뀌는 자리에서 무언가를 새로 배워두기에 나쁘지 않은 시기 같아요. AI라는 단어 앞에서 자꾸 뒷걸음질 치게 되는 마음에는, 이 정도 두께의 첫 강의가 알맞겠습니다.
감탄과 한계를 같은 강의 안에 나란히 놓은, 원리와 실전을 함께 손에 쥐여 주는 AI 첫 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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