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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날 확률, 100%
김빵 지음 / 자음과모음 / 2026년 7월
평점 :
"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손에 쥐자마자 든 생각은 가볍다는 것이었습니다. 핸드북 판형이라 가방 아무 데나 넣어도 자리를 차지하지 않고, 두께도 만만해서 며칠이면 끝까지 갈 수 있는 분량이에요. 표지는 위쪽이 구름 번진 하늘색, 가운데가 형광에 가까운 분홍 띠, 아래가 짙은 파랑 물결로 나뉘어 있습니다. 흰 선으로 그린 새와 꽃, 별과 하트가 낙서처럼 흩어져 있어서, 소개 글에 적힌 신수와 신물이라는 단어를 읽기 전까지는 판타지일 거라고 짐작하지 못했습니다.

첫 장을 펴면 그 인상이 더 굳어집니다. <다시 만날 확률, 100%>는 옥주라는 바닷가 시골 마을의 개학 날 아침으로 문을 열어요. 단짝이 돈을 벌겠다며 실습을 나가는 바람에 혼자 남게 된 고3 탁현진의 막막함이 앞부분을 채웁니다. 초등학교도 중학교도 고등학교도 하나씩뿐이라 그 나물에 그 밥, 다 아는 얼굴이라는 곳. 관광객이 없어 상권이 죽었고, 담임은 새 학기 첫날 이제 진짜 몇 명 안 남았다는 인사부터 건넵니다. 판타지의 문을 열기 전에 지방 소멸의 풍경을 먼저 깔아 두는 구성인데, 이 순서 덕분에 뒤에 오는 설화가 붕 뜨지 않았어요.

전학생 서수인이 들어서는 장면은 색으로 처리됩니다. 준비를 못 한 건지 안 한 건지 다른 학교 교복을 그대로 입고 온 아이 하나만, 주황색으로 물든 교실에서 청색으로 튀었다고요. 표지의 분홍과 파랑이 그대로 문장이 된 것 같아서 이 대목이 반가웠습니다.
두 사람의 첫 대화가 학생증을 주워 주며 시작된다는 점도 좋았습니다. 사진이 실물과 다르다는 타박에 현진이 엄지로 사진을 가리고 이름만 내밀며 "이 학교에서 탁 씨는 나뿐이거든." 하고 답하는 식이에요. 그날 오후 책상에 놓이는 딸기우유도 거창하지 않습니다. 편의점 투플러스원으로 남은 걸 건네는 거고, 급식실에서 옆자리를 두드리며 "왜 거기 앉아? 혼자 먹게? 같이 먹자." 하는 말에 현진은 "됐어. 혼자가 편해."라고 대꾸한 뒤 속으로 곧장 그 말을 뒤집습니다. 겉으로 튕기고 속으로 흔들리는 열여덟의 화법이 두 줄 만에 끝나는데, 이 소설의 로맨스가 어떤 속도로 갈지 여기서 짐작이 됐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 책을 오래 붙들고 있었던 이유는 다른 쪽에 있습니다. 가운데쯤 놓인 이장 허영철의 장이에요.
여기서 옥주의 용신 설화가 통째로 펼쳐집니다. 승천하다 떨어진 용을 나그네가 돌봐 주고, 보답으로 소원을 묻자 나그네는 용이 이곳에 계속 머물기를 빌었다는 이야기. 소원이 이루어져 용은 하늘로 가지 못한 채 인간의 행색으로 함께 살고, 여의주를 탐낸 누군가가 그것을 훔쳐 달아나면서 둘 다 무너집니다. 나그네를 잃은 용이 울다가 바다가 되었다는 결말까지 듣고 나면, 옥주라는 지명이 왜 바다에 보배가 머문다는 뜻인지도 자연스럽게 이어져요.
문제는 그 설화가 현재로 넘어오는 방식입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재난이 먼저 옵니다. 축사의 돼지가 떼로 죽고, 멀쩡하던 과수원 나무가 병들고, 무른 곳 없던 열매가 떨어집니다. 하필 해무가 마을을 덮고 있어서 카메라에 잡히는 것도 없고요. 마을회관에 모인 사람들은 서로의 멱살부터 잡습니다. 그러다 바이러스가 도는 것 같다며 축산과 신고 이야기를 꺼내는 대목에서, 이 작가가 초자연을 다루면서도 생활의 감각을 놓지 않는다는 걸 알았습니다.

화살이 열여덟 아이 하나에게 모이는 과정에는 뚜렷한 악당이 없습니다. 당집의 무당은 제단 훼손이 사실인지 묻는 이장에게 "그건 중요한 게 아니고, 여기서 중요한 건 소문이라고, 소문."이라고 잘라 말하고, 가진 걸 다 잃은 사람들이 무슨 마음을 모으겠냐는 반문에는 "가진 걸 다 잃었으니 더 선동되기 쉽지."라고 받습니다. 군수는 여의주를 손에 넣으면 세상이 우리 것이 될 수 있다며 이장의 약점을 쥐고 흔들고요. 이장이 끝내 무너지는 지점이 아들의 서울 역세권 전세금이라는 사실은 조금 아프게 읽혔습니다. 신물이니 신수니 하는 이야기의 한복판에서 사람을 움직이는 것이 결국 자식 앞으로 남겨 줄 방 한 칸이라는 설정이니까요.
그리고 소문은 아주 시시하게 시작됩니다. 이장이 보행기를 밀고 가는 할머니에게 다가가 그 이야기 들으셨냐고 묻는 장면인데, 동기가 대단한 악의도 아니에요. 숙제를 빨리 털어 버리고 싶은 마음이었다고 적혀 있습니다. 필요한 사람은 딱 하나, 제 말을 다른 사람에게 옮겨 줄 사람뿐이라고요. 그 문단은 이렇게 닫힙니다. "소문이란 건 전염병처럼 어쩔 도리 없이 번지는 것이니까." 앞에서 마을 사람들이 가축 폐사를 두고 전염병을 걱정하던 장면과 겹쳐 놓으면, 정작 마을을 덮친 역병이 무엇이었는지가 선명해집니다.
다만 갸웃한 대목도 있었습니다. 무당의 처방은 소문으로 아이를 압박해 여의주를 찾게 만들자는 것인데, 계산이 좀 헐겁습니다. 몰린 사람은 도망칠 수도 있고, 흥분한 마을 사람들이 손을 대기라도 하면 신물 회수는 영영 어려워지니까요. 굿 값을 부르는 장면이 바로 뒤에 붙어 있어서 신념과 잇속 중 어느 쪽이 앞선 건지 끝까지 애매하게 남습니다. 인물의 이중성으로 읽으면 그럴듯하지만, 계획으로 보면 성기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려웠어요. 설화가 중반에야 등장하는 배치도 취향이 갈릴 것 같습니다. 앞쪽 백여 쪽을 근거 없이 따라가야 하는 셈이라, 설정의 윤곽을 먼저 쥐고 읽는 걸 좋아하는 분이라면 초반이 다소 헐겁게 느껴질 수 있겠습니다.
그럼에도 이 책을 덮고 나서 오래 남은 건 에필로그였습니다. 청보리밭 한가운데, 날개가 밟혀 날지 못하는 나비 앞에 두 아이가 마주 앉습니다. 남자아이가 두 손으로 나비 위에 작은 지붕을 만들며 "사람들이 밟고 가면 어떡해. 지켜주자." 하고, 여자아이가 그 위에 제 손을 포갭니다. 부모가 부르는 소리에 아이는 손을 빼야 하고, 이름을 묻고 답하는 짧은 인사가 오갑니다. "수인이구나. 잊지 않고 기억할게. 우리 다음에 또 만나." 제목이 회수되는 자리이자, 설화 속 나그네가 용에게 빌었던 소원과 같은 자리이기도 합니다.
이 장면의 풍경 묘사가 표지와 그대로 포개진다는 점도 적어 두고 싶어요. 새파란 하늘과 푸르스름한 들판이 한가운데 선을 그어 나눈 것처럼 보이고, 바다 같기도 하고 과거와 미래 같기도 하고, 하나인 것 같으면서 둘인 것 같은 세계라고 적혀 있습니다. 죽을 것처럼 보이던 나비가 손을 벌리자 날아오르고, 아이도 나비도 시야에서 사라진 뒤에 다시 청보리 이삭 끝에 앉아 하얀 날개를 반짝이는 마무리도 좋았습니다. 다시 만난다는 약속이 이미 한 번 지켜진 셈이니까요.
표지에 뽑힌 "죽을 만큼 싫었나 보지. 너를 잊는 게."라는 한 줄을 처음 봤을 때는 흔한 로맨스 카피로 읽었습니다. 다 읽고 나니 저 문장의 무게가 조금 달라집니다. 잊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키는 일이 왜 그렇게 어려운지, 그 사이에서 어른들이 무엇을 덮고 무엇을 옮겨 놓았는지를 지나온 뒤라서요.

서평단으로 만나는 책 중에는 표지와 소개 글에서 받은 인상 그대로 끝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한 권은 그 예상을 두어 번 비껴갔어요. 로맨스판타지의 옷을 입고 있지만 안쪽에는 공동체가 사람 하나를 골라내는 절차가 꽤 정교하게 깔려 있고, 그 절차를 굴리는 사람들이 전부 제 자식과 제 살림을 걱정하는 평범한 얼굴이라는 점에서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십 대의 연애담을 기대하고 펼친 분에게는 예상 밖의 무게가 될 수도 있고, 반대로 그 무게 때문에 로맨스의 온기가 더 선명해지기도 합니다. 학교와 마을이라는 좁은 세계에서 눈치를 보며 자란 기억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장의 장에서 오래 멈추게 될 거예요.
작가는 마지막 장에서 이 글이 더워지는 여름에 잠시나마 시원한 바람처럼 곁을 지나갈 수 있다면 좋겠다고 적었습니다. 광복절이 지나고 아침저녁 공기가 슬쩍 물러서기 시작한 요즘 읽으니, 여름이 완전히 물러나기 전에 남겨 두는 한 줄기 바람 같았습니다. 폭염이 꺾이는 자리에서 읽기에 알맞은 두께이고, 알맞은 온도입니다.
소문이 전염병처럼 번지는 바닷마을에서, 잊지 않겠다는 약속 하나가 두 생을 건너오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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