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의 질문법 - AI시대, 조직의 성과를 이끄는 최고의 리더십 전략 ㅣ 리더 시리즈
에드거 샤인.피터 샤인 지음, 노승영 옮김 / 심심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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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짙은 남색 바탕 위로 동심원이 번지고, 그 한가운데 은빛 글자로 HUMBLE이 얹혀 있습니다. 위쪽 카피는 AI 시대의 리더십 전략을 말하는데 표지가 내는 소리는 오히려 낮은 편이에요. 물결이 퍼져 나가는 자리에 겸손이라는 단어를 놓아둔 배치가, 책을 덮고 나서 보니 꽤 정확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리더의 질문법>은 조직심리학자 에드거 샤인이 세운 '겸손한 질문'이라는 개념을 다시 손본 개정판이에요. 저자가 2023년 세상을 떠난 뒤, 아들이자 조직문화 컨설턴트인 피터 샤인이 AI 도입과 원격 근무라는 달라진 조건에 맞춰 마무리했습니다. 판형도 두께도 부담이 없어서 며칠에 나눠 천천히 읽기 좋았습니다.


첫 장에서 저자가 겨누는 것은 단언입니다. 무턱대고 말하는 순간 상대를 낮추는 격이 되어 관계의 균형이 깨진다고 하면서, 그래서 단언은 요청받았을 때만 하는 것이 상책이라고 정리해요. 저는 이 대목에서 회의실 풍경이 겹쳐 보였습니다. 특히 청하지 않은 충고에 담긴 세 가지 오만을 번호까지 붙여 열거하는 부분이 그랬어요. 상대보다 많이 안다는 생각, 자기가 아는 게 옳다는 생각, 상대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그 사람의 경험을 좌지우지할 권리가 있다는 생각. 그리고 이어지는 한 문장이 조용히 정곡을 찌릅니다.


"돕고 싶다는 선한 의도는 변명거리가 될 수 없다."


같은 장에서 저자는 "의견 좀 드려도 될까요?"라는 말을 들으면 늘 신경이 곤두선다고 씁니다. 그 경우의 의견은 진심 어린 질문이 아니라 암묵적 평가가 담긴 단언이기 때문이라는 거예요. 조언이라는 이름으로 오가는 말의 절반쯤은 사실 판정문에 가깝다는 지적인데, 반박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책의 중반에는 실제 대화가 대본처럼 실려 있습니다. 조직 문화가 경직됐다고 호소하는 최고경영자에게 저자가 예를 들어달라고 되묻자, 곁에 있던 최고운영책임자가 회의실 일화를 꺼내요. 다섯 명만 참석한 자리인데도 사람들이 늘 앉던 자리에 띄엄띄엄 앉더라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셨느냐는 물음에 한참 뜸을 들이다 나온 대답이 "저, 그게, 아무것도 안 했습니다!"였어요. 외부 진단서 한 장 없이 당사자들이 스스로 도착한 결론이라는 점에서, 이 장면이 책 전체의 주장을 대신하고 있다고 봐도 될 것 같습니다.


다만 이 사례는 조금 매끄럽다는 인상도 남습니다. 질문 두어 개로 최고경영진이 곧장 자기 책임을 인정하는 전개가 현실 회의실에서 그대로 재현될지는 자신이 없어요. 자기 잘못을 인정할 만한 지위와 여유가 이미 있었기에 가능한 장면일 수도 있고요. 그런 점에서 저는 바로 뒤에 나오는 도시가스 회사 사례가 더 미더웠습니다. 안면 보호구를 벗어 해고된 기사를 앞에 두고 관리자가 대체 무슨 생각을 한 거냐며 힐난부터 쏟아내는 장면인데, 저자는 그 서툰 첫마디까지 그대로 옮겨둡니다. 이어진 질문들이 처벌이 아닌 사실 발견 쪽을 향하면서 이야기는 습한 날씨에 김이 서리는 보호구 문제로 옮겨가고, 결국 해고됐던 직원은 복직해 개선 태스크포스에 참여하게 돼요. 이 장의 결론은 이렇게 정리됩니다. 어떤 질문이 겸손한 질문인지는 어조와 맥락, 쌍방의 관계에 따라 달라진다고요. 정해진 문장 틀을 외워 쓰는 화법서가 아니라는 선을 저자가 스스로 그어둔 셈입니다.


개정판에서 새로 들어온 원격 근무 장은 이번 판을 다시 읽을 이유에 해당합니다. 영상회의가 대면회의보다 나을 수도 있다는 주장을 펴는데, 근거가 제법 구체적이에요. 누가 어디 앉느냐를 둘러싼 눈치 게임이 사라지고, 발언 순서 규칙 덕분에 가장 큰 목소리가 결론을 가져가는 일이 줄어든다는 것. 방 안에서 제일 요란한 목소리가 반드시 최선의 아이디어는 아니라는 말에는 여러 번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여기서는 물음표가 하나 남았습니다. 화면 회의에는 화면 회의 나름의 위계 신호가 새로 생기지 않았나 싶어서요. 카메라를 켜고 끄는 문제, 배열 순서, 윗사람이 말할 때 흐르는 특유의 침묵 같은 것들 말입니다. 저자도 영상회의가 이해타산적 관계를 오히려 부추길 수 있다고 인정하기는 하지만, 새로 생겨난 눈치의 결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말을 아낍니다. 한국 조직에서 이 장을 읽는 사람이라면 그 빈칸을 각자 채워 넣게 될 것 같아요.


책의 뒷부분에서 가장 오래 남은 것은 뜻밖에도 회사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자녀가 무슨 일을 겪고 있는지 물어보기에 가장 좋은 때는 부모가 운전하고 자녀는 뒷좌석에 앉아 창밖을 보고 있을 때라는 대목이에요. 정색하고 마주 앉아 얘기 좀 하자고 하는 자리보다, 시선이 서로를 비껴가는 시간에 말이 나온다는 겁니다. 노려보는 눈 맞춤은 강력한 신호를 주기는커녕 문을 쾅 닫게 할 뿐이라는 문장도 함께 붙어 있고요. 저자는 같은 원리를 워킹 미팅으로 확장합니다. 함께 걸으면 발 디디는 곳을 봐야 하기 때문에 상대를 눈으로 판단하지 않고 귀로 들을 수 있다는 것. 리더십을 다룬 안내서 한가운데에 이런 장면이 놓여 있다는 사실이 이 책의 온도를 말해줍니다.


그동안 여러 책을 이런 식으로 만나왔는데, 이번 도서는 읽는 동안 밑줄보다 침묵이 길었던 편이에요. 잘 이끄는 법을 알려주는 대신, 그동안 얼마나 자주 답부터 내밀었는지를 확인시키는 쪽에 가깝습니다. 위로라기보다 점검에 가까운데도 읽고 나면 마음이 무겁지만은 않은 것은, 겸손이 타고난 성품이 아니라 상황마다 선택할 수 있는 행동이라고 저자가 못 박아두었기 때문일 겁니다. 오만한 사람도 자기가 주도할 수 없는 자리에서는 겸손해지고, 겸손한 사람도 답을 안다고 여기는 순간 오만해진다고요. 그 말은 늦게 시작해도 늦지 않다는 뜻으로 읽혔습니다.


한여름 더위가 아직 물러가지 않은 8월입니다. 매미 소리가 한창인 이 계절에 어울리는 책은 아닐지 모르지만, 하반기 업무를 다시 짜는 시기와는 제법 맞아떨어집니다. 답을 하나 더 준비하기보다 질문을 하나 남겨두는 편이 나을 자리가 어디였는지, 지난 상반기를 훑어보게 하는 한 권이었어요. 조직을 맡고 있는 분들은 물론이고 아직 누구를 이끌 위치가 아닌 이들에게도 쓸모가 있을 겁니다. 질문은 직급과 함께 오는 권한이 아니니까요.


잘 답하는 법이 아니라 잘 묻는 법을 다시 배우게 하는, 조직심리학 대가의 마지막 리더십 안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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