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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가 좋아지는 자존감 대화법 - 말 때문에 상처받는 사람들을 위한 대화 기술
임세화 지음 / 밀크북스 / 2026년 7월
평점 :
"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옅은 하늘빛 바탕 위에 '자존감 대화법' 다섯 글자만 크게 앉힌 표지였습니다. 아래쪽 짙은 남색 띠에는 저자 사진과 별 다섯 개짜리 배지가 나란히 놓여 있어서, 강연장에서 건네받는 자료집 같은 인상도 조금 섞여 있었고요. 부제에서 '상처받는'이라는 세 글자만 붉게 처리한 점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누구를 향해 쓴 책인지 표지가 먼저 밝히고 들어가는 셈이더군요. 판형과 분량이 크게 부담스럽지 않아 며칠에 나눠 편하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임세화 작가의 <관계가 좋아지는 자존감 대화법>은 말솜씨를 다루는 책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붙잡고 있는 질문은 조금 더 안쪽에 있습니다. 같은 말을 듣고도 어떤 날은 흘려보내고 어떤 날은 며칠씩 품고 있게 되는 이유를 대화 기술이 아니라 그 말을 받는 사람의 자기 존중에서 찾습니다. 그래서 목차가 자존감의 정의에서 출발해 말 습관, 관계별 적용, 셀프 대화, 실천 도구 순으로 좁혀집니다.
책에서 오래 붙잡고 있었던 대목은 2장 뒤쪽의 '나를 지키는 3단계 번역 듣기의 기술'이었습니다. 저자는 <비폭력 대화>의 마셜 B. 로젠버그를 빌려 이렇게 적습니다. "세상의 모든 말은 두 가지로 귀결된다. 바로 부탁하는 말 아니면 고맙다는 말이다." 이 전제 위에서 들은 말을 부탁인지 감사인지 먼저 나누고, 화자의 의중을 번역해 본 뒤, 그 번역을 상대에게 들려주는 순서를 제안합니다. 표로 정리된 예시가 꽤 구체적이에요. "넌 왜 이런 것 하나도 제대로 못 하니?"를 하나라도 잘 해줬으면 좋겠다는 부탁으로 옮기고, "뭐 하러 이렇게까지 애를 쓰고 난리야?"를 애써줘서 고맙다는 말로 옮기는 식입니다.

솔직히 여기서 한 번 걸렸습니다. 모든 말이 부탁 아니면 감사로 귀결된다는 전제는 명쾌하지만, 살다 보면 선의가 아예 없는 말도 있으니까요. 무례한 말까지 좋은 뜻으로 번역해 되돌려 주는 일이 스스로를 더 눌러 앉히는 방향이 될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다행히 저자도 그 여지를 남겨 두었습니다. 이 챕터의 끝에서, 번역한 말을 상대에게 들려주기 어렵거나 부탁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그 말을 자기 자신에게 들려주고 마음을 보듬는 시간을 꼭 가지라고 당부하거든요. 기법 설명으로 끝날 수도 있었을 챕터가 이 한 문단 덕분에 위로 쪽으로 방향을 틉니다.
3장의 거절 편은 결이 또 다릅니다. 저자는 거절을 어려워하는 이유를 여섯 갈래로 나누는데, 그중 가정환경의 영향을 짚은 대목이 한국 독자에게는 남다르게 읽힐 것 같습니다. 가족 구성원이 거절하지 못하는 모습을 반복해 보고 자라면 자기희생이 당연해지고 거절은 옳지 못한 행위로 자리 잡는다는 설명이었어요. 공감으로 시작해 상황을 공유하고 감사를 표한 뒤 부드럽지만 명확하게 거절하고 대안까지 얹는 다섯 단계는, 순서만 보면 사무실에서 오가는 부탁의 속도에 비해 여유로워 보이기도 합니다. 다만 저자가 뒤이어 강조하는 세 원칙 가운데 일관성이 그 빈틈을 메웁니다. 상황마다 태도가 달라지면 신뢰를 잃는다는 지적은 오래 일한 사람일수록 아프게 들릴 만합니다. 그리고 이 챕터를 닫는 문장이 좋았습니다. 존중하는 태도로 거절했는데도 관계가 악화되었다면, 자책할 필요는 없다는 것. 거절이 관계 지속과 무관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라는 말이 담백해서 오히려 든든했어요.

4장으로 넘어가면 이 기술들이 실제로 부딪히는 자리가 나옵니다. 금요일 오후 다섯 시에 걸려 온 팀장의 전화로 시작하는 사례는 읽으면서 여러 얼굴이 스쳤습니다. 주말을 갈아 넣어 자료를 보냈는데 월요일 아침에 돌아온 대답이 이따 보겠다는 한마디였고, 그 일이 반복되며 A 사원은 의욕 없이 적당히 일하는 직원이 되고 맙니다. 저자는 같은 상황을 존중이 오가는 버전으로 다시 씁니다. 미안하다는 말과 되는 데까지만 해 달라는 배려, 마지막의 고맙다는 인사가 들어간 짧은 대화 하나로 결과가 달라지는 걸 보여주지요.
주말을 캐묻는 상급자 앞에서 웃으며 화제를 돌리라는 조언에는 조금 갸웃했습니다. 부드럽게 넘기는 기술은 분명 필요하지만, 반복해서 선을 넘는 상대에게 웃음으로 답하는 일이 그 질문을 계속 허용하는 신호가 되기도 하니까요. 그럼에도 이 장의 결론에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직장은 철저히 업무와 협력의 자리이고, 모두가 제 입맛에 맞는 공간은 어디에도 없다는 것. 비즈니스 관계에서 너무 많은 것을 바라지 말자는 문장이 차갑게 들리지 않았던 이유는, 기준점에 자기 자신을 두라는 말이 바로 뒤에 붙어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책은 결국 자기에게 건네는 말로 돌아옵니다. 5장에서 실수와 자책을 다루면서 저자는 사실과 해석을 갈라 보라고 권합니다. 회의에서 표현을 잘못 말한 것은 사실이고, 사람들이 나를 무능하다고 여겼을 것이며 나는 제대로 하는 게 없다는 판단은 그 사건에 붙인 해석이라는 구분입니다. 실수 뒤에 곧장 자책으로 넘어가는 익숙한 경로 대신 십 초쯤 멈추고 원인을 한두 개만 찾아 기록해 두라는 절차도 현실적이었습니다. 원인을 한두 개로 제한하라는 단서가 특히 그랬어요. 끝에 소개된 문구도 기억에 남습니다. 트위터 본사에 걸려 있다는 "내일은 더 좋은 실수를 하자(Let's make better mistakes tomorrow)."라는 말이요.
읽고 나서 남은 인상은 이렇습니다. 이 책은 상처받지 않는 사람이 되는 법을 알려주지 않습니다. 대신 상처가 오는 길목마다 잠깐 멈춰 설 자리를 만들어 둡니다. 로젠버그 척도와 감정 일기, 관계 점검표까지 실린 뒷부분을 보면 읽고 덮는 책보다는 곁에 두고 써 보는 안내서에 가깝고요. 자존감이 타고나는 성격이 아니라 매일의 선택으로 쌓이는 힘이라는 저자의 관점이 이 구성과 잘 맞아떨어집니다. 서평단으로 여러 권을 만나오면서, 읽는 동안 좋았다가 덮으면 흐려지는 책도 적지 않았습니다. 이 한 권은 표를 다시 펼쳐 보게 되는 쪽이었어요.

말 한마디에 오래 흔들려 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2장부터 천천히 읽어도 좋겠습니다. 거절이 늘 어려워 일을 떠안게 되는 자리에 있다면 3장이 먼저 눈에 들어올 테고요. 조직에서 사람을 대하는 언어를 다듬고 싶은 분들에게도 4장의 사례들이 쓸모가 있을 겁니다.
늦더위가 아직 남아 있지만 저녁 공기에는 슬며시 결이 바뀌는 기미가 돕니다. 여름을 지나오며 삼켰던 말들이 있다면, 그 말을 어떻게 되돌려 줄지 조용히 정리해 두기 좋은 계절입니다. 가을이 오기 전에 한 번쯤 자기 말투를 점검해 보고 싶은 분들께 이 도서를 권합니다.
남의 말을 바꿀 수는 없지만, 그 말을 받아드는 방식은 연습으로 바꿀 수 있다고 알려주는 실천형 대화 안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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