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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피로사회 - 몸과 싸우지 않기로 했다
해준 지음 / 힘찬북스(HCbooks) / 2026년 7월
평점 :
"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표지 한가운데 둥근 문이 하나 서 있습니다. 문 안쪽에는 빈 의자가 놓여 있고, 사람은 없어요. 건강을 다루는 책이라면 대개 달리는 사람이나 잘 만들어진 몸을 앞세우는데, <건강피로사회>는 아무도 앉지 않은 의자를 내걸었습니다. 크림빛 여백에 먹색 제목만 얹은 표지가 서늘할 만큼 조용해서, 처음에는 건강서인 줄도 몰랐습니다. 다 읽고 나서 표지를 다시 보니 그 비어 있는 자리가 무슨 뜻인지 알겠더군요. 저기 와서 좀 앉으라는 이야기였습니다.
손에 쥐어 보니 두께도 무게도 만만치 않아서, 며칠에 걸쳐 나눠 읽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게 이 책과 맞는 속도였다고 생각합니다. 45개 장이 짧게 끊어져 있는데도 한 번에 몰아 읽기가 쉽지 않아요. 한 장씩 읽고 나면 뭔가 정리할 시간이 필요해집니다.

저자는 25년차 트레이너이고, 그중 20년을 재벌 총수와 그 가족들의 건강을 전담해 왔다고 소개됩니다. 이력만 보면 관리의 정점에 있는 사람들의 비법을 기대하게 되는데, 책은 정반대 방향으로 걸어갑니다. 가장 완벽하게 관리하는 사람이 가장 자주 무너지더라는 것. 현장에서 마주한 그 역설이 이 한 권의 출발점입니다.
초반부에 체중계 이야기가 나옵니다. 처음에는 일주일에 한 번이던 것이 아침마다로 바뀌고, 어느 순간 몸이 아니라 숫자와 살고 있었다는 사람의 사례입니다. "몸은 똑같은데 수치에 따라 하루가 달라졌다"는 문장에서 잠깐 손이 멈췄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몸 상태를 느끼는 대신 오늘 나올 숫자부터 계산한다는 대목도 그렇고요. 저자는 수면 앱에 대해서도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앱을 깔기 전에는 피곤하면 눕고 눈이 떠지면 일어났는데, 깊은 수면이 부족하다는 표시를 본 날은 하루가 그 점수 위에서 시작된다는 것이죠. 건강 앱의 구조를 뜯어보는 부분이 특히 날카롭습니다. 수면이 괜찮으면 활동량이 부족하고, 활동량을 채우면 스트레스 지수가 올라갑니다. 앱은 언제나 다음 문제를 찾아냅니다. 저자는 이걸 완료되지 않는 할 일 목록을 매일 들고 사는 것과 같다고 표현했어요.
"측정은 원래 도구다. 도구가 주인이 되는 순간 문제가 시작된다."

이 챕터에서 제 마음을 붙든 건 회복을 쉽게 그리지 않는 태도였습니다. 체중계를 치운 첫 주에 사람들이 허공에 발을 딛는 기분이라고 말한다는 것, 판단을 기계에 넘긴 세월이 길수록 감각이 돌아오는 데도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저자는 굳이 적어 둡니다. 안 쓰던 감각은 처음엔 삐걱거린다고, 그러다 조금씩 살아난다고요. 이렇게 하면 낫는다고 말하지 않는 사람의 문장이라 오히려 믿음이 갔습니다.
책의 중반으로 갈수록 이야기의 무게중심이 몸 바깥으로 옮겨 갑니다. 3년 동안 식단을 지키고 주 5회 운동하고 술을 끊어서, 담당 의사가 이 나이에 이런 결과는 처음 봤다고 할 만한 검사지를 받아 든 사람이 나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병원 주차장에서 시동을 걸지 못했다고 해요. 결과를 함께 기뻐할 사람이 한 명도 떠오르지 않아서였습니다. 술자리를 끊으면서 그 자리의 사람들과 멀어졌고, 주말 운동을 지키면서 주말의 약속을 미뤘던 3년이었습니다.
"결과지의 숫자가 좋아질수록, 그 숫자를 함께 볼 사람은 줄어들었다. 건강이라는 이름의 고립이었다."

여기서 저자는 1938년에 시작된 하버드 성인발달연구를 끌어옵니다. 노년의 건강과 행복을 가장 잘 예측한 것이 부나 명예가 아니라 따뜻하고 안정적인 인간관계였다는, 이제는 제법 알려진 이야기죠. 다만 이 책에서는 그 결론이 사례 위에 얹혀 있어서 훈훈한 교훈으로만 흘러가지 않습니다. 외로움이 막 시작된 사람은 외롭다고 말하는데 오래된 사람은 담담하게 말한다는 관찰, 아픈 걸 당연하게 여기기 시작하면 회복의 필요조차 느끼지 못한다는 진단이 뒤따르거든요. 건강이라는 주제로 연결됐지만 사람으로는 연결되지 못한 자리들이 있다는 문장도 오래 남았습니다.
사십 대 후반을 지나는 입장에서 가장 실감 나게 읽힌 대목은 나이 드는 몸을 다룬 장이었습니다. 거울 앞에서 낯선 얼굴을 만난 날의 이야기로 시작하는데, 나이가 든 것뿐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뭔가 잘못됐다는 감각이 먼저 왔다고 저자는 씁니다. 막아야 했는데 못 막은 것 같은 느낌이라는 표현이 정확했어요. 이어서 저자는 20대의 몸을 기준점으로 삼는 순간 그 뒤의 모든 세월이 잃어버린 것의 목록이 된다고 지적합니다. 40대는 20대에서 무언가 빠진 상태가 되고, 50대는 더 많이 빠진 상태가 되는 셈이죠. 이 계산법으로는 평생 만족할 수 없습니다.
"문제는 몸이 늙는 게 아니라, 늙지 않은 몸을 정답으로 붙들고 있는 것이었다."
전환은 질문을 바꾸는 데서 옵니다. 무엇을 잃었느냐 대신, 지금 이 몸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걷기와 요가와 수영이 답으로 나왔다는 흐름입니다. 몸은 시간을 담는다고, 출산과 병과 스트레스와 기쁨을 다 담고 지금 여기 있는 것이 흔적이고 역사이고 증거라고 적은 문장이 이 장의 가장 좋은 자리였습니다. 나이 드는 몸과 화해한 날 그 사람이 더 젊어진 것은 아니었다는 마무리도 담백하고요.
25년이 남긴 원칙을 정리한 뒷부분에서 저자는 처음의 믿음을 스스로 지웁니다. 규칙적인 생활과 강도 있는 운동과 좋은 음식이 건강의 전부라고 여겼는데, 25년이 지난 지금 그중 진짜로 남은 건 하나도 없다고요. 대신 남은 것으로 꼽은 것들은 소박합니다. 주변을 정리하는 것, 남의 몸을 따라가지 않는 것, 스스로가 스스로를 지키고 판단하는 것. 주변이 편안하면 사람도 덩달아 건강해지고 주변이 지옥 같으면 결국 병든다는 이야기를 저자는 수천 명의 몸에서 확인했다고 말합니다. 몸과의 싸움이 애초에 이길 수 없는 싸움인 이유도 여기서 정리돼요. 싸우는 쪽도 몸이고 싸움의 상대도 몸이니, 출구는 승리가 아니라 중단이라는 것입니다.

책의 끝자락에는 10년 넘게 지켜본 클라이언트가 등장합니다. 처음 왔을 때 몸과 전쟁 중이던 사람이 요즘은 몸이 쉬고 싶다고 하면 쉰다고 말하더랍니다. 더 잘 된다는 게 뭐냐고 물었더니 돌아온 답이 이랬습니다. 몸이 좋아진 게 아니라 삶이 편안해졌다고. 먹고 나서 생각이 없어졌고, 운동하고 나서 기분이 좋아졌고, 자고 일어났을 때 오늘 하루가 기대된다고요. 싸움이 줄어든 자리에 조용한 것이 온다는 저자의 표현이 여기서 설득력을 얻습니다.
다만 읽으면서 걸리는 지점도 있었습니다. 주변 환경을 정리하고 좋은 사람들 곁에 있으라는 조언은 자기 시간과 관계를 어느 정도 고를 수 있는 사람에게 유효한 처방입니다. 일터와 가족 구성을 스스로 선택하기 어려운 자리에 있는 사람에게 이 원칙이 어떻게 번역되는지는 책 안에서 충분히 답해지지 않아요. 매주 수영을 다니게 된 사례도 마찬가지고요. 관리 조건이 좋은 사람들을 오래 지켜본 이력이 이 책의 강점이면서 동시에 한계로 읽히는 대목입니다. 수치를 놓아도 괜찮은 사람과 반드시 관리해야 하는 사람의 경계도 조금 더 분명했으면 싶었습니다. 물론 이 책이 처음부터 처방전을 자처하지 않으니, 그 몫은 읽는 사람이 자기 사정에 맞춰 재는 수밖에 없겠지요.
권말에는 몸 감각 회복 필사 노트가 붙어 있습니다. 본문의 문장을 직접 손으로 옮겨 적게 해 둔 구성인데, 숫자에 내주었던 감각을 되찾자는 이 책의 주장과 형식이 맞아떨어집니다. 서평단으로 여러 책을 받아 읽어 왔지만, 다 읽고 나서 책장에 꽂아 두는 대신 손이 닿는 곳에 두고 싶어진 도서는 오랜만이었습니다. 빨리 읽고 정리해야 한다는 마음 자체가 이 책이 지적하는 그 조급함과 닮아 있다는 걸 중간쯤에서 알아차렸거든요.
입추가 지났는데도 한낮의 열기는 그대로입니다. 이런 계절에는 몸이 저절로 처지고, 그럴 때마다 관리를 놓쳤다는 기분이 따라붙기 쉽죠. 이 책은 그 자책을 조용히 거둬 갑니다. 오늘 컨디션이 좋지 않은 건 실패가 아니라 살아 있는 몸의 정상적인 모습이라고, 완벽하게 맑은 날만 골라 살 수는 없다고요. 건강 정보에 지쳐 본 적 있는 분이라면, 그리고 체중계 눈금 하나로 하루의 기분이 좌우된 아침을 겪어 본 적 있다면 이 한 권이 건네는 말이 남다르게 들릴 겁니다. 저는 이 책을 위로서로 읽었습니다.
몸을 이기려는 마음을 내려놓는 순간, 건강은 목표에서 삶으로 자리를 옮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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