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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한 사랑 이야기
도나쵸 지음 / 모티브 / 2026년 7월
평점 :
"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정사각에 가까운 판형이라 한 손에 들어옵니다. 두께도 얇아서 가방 안쪽에 넣으면 있는지 없는지 모를 정도예요. 흰 바탕 위에 굵은 선으로 그린 캐릭터가 노란 모자 같은 것을 얹고 붉은 하트를 두 손으로 감싸 안고 있는데, 그 하트가 반듯한 모양이 아닙니다. 한쪽이 눌린 채로 품에 들어 있어요. 표정은 점 두 개가 전부라 웃는 얼굴인지 참는 얼굴인지 분간이 되지 않습니다. 왼쪽 위에 놓인 한 줄이 그제야 눈에 들어옵니다. 사랑은 끝났고 마음만 남았다. 표지에 적힌 이 문장이 결국 책 전체의 요약이었다는 걸 다 읽고 나서 알았습니다.

<망한 사랑 이야기>는 도나쵸 작가가 짧은 만화로 엮은 에세이입니다. 짝사랑에서 출발해 플러팅과 썸, 연애를 지나 외사랑과 이별, 미련을 거쳐 새로운 사랑으로 닫히는 구성이에요. 목차를 먼저 훑었을 때 걸린 건 분량 배분이었습니다. 미련 장이 다른 어느 장보다 깁니다. 사랑이 끝나는 데 걸리는 시간과 그 뒤를 치우는 시간이 같지 않다는 걸, 작가는 차례만으로 이미 말해 두었더군요.
만화라 페이지는 빨리 넘어갑니다. 네 컷 안에 대사가 두세 마디뿐인 꼭지도 많아서, 마음먹으면 한 시간 남짓에 끝까지 갈 수 있어요. 그런데 속도가 붙다가 어느 지점에서 갑자기 걸립니다. 걸리는 자리는 사람마다 다를 텐데, 저는 외사랑 장이 시작되는 문 앞에서 처음 멈췄습니다.

그 장의 첫 페이지에는 접힌 쪽지 그림 하나가 놓여 있습니다. 사랑의 정의가 왜 어려운지 아느냐고 물어 놓고는, 사랑은 복잡하다고 스스로 답해 버려요. 그 아래 붉은 하트 안팎으로 감정 단어가 알약처럼 빼곡히 붙어 있습니다. 슬픔과 기쁨이 나란하고, 설렘 옆에 죄책감이 있고, 희망과 배신감이 같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어요. 사랑을 한 단어로 정리해 보려던 시도가 왜 번번이 실패했는지, 그림 한 장이 대신 설명해 줍니다.
같은 장 안에 하트 두 개만 등장하는 꼭지가 있습니다. 큰 하트가 작은 하트에게 너는 귀엽고 사랑스러운데 딱 하나가 부족하다고 말해요. 부족한 게 무엇이냐면 "내 사랑만큼 사랑이 크지 않은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칸에서 큰 하트는 상대를 탓하는 대신 "맞춰줄게"라고 말하고, 그 밑에 작은 글씨로 제목이 다시 적힙니다. 내 사랑도 작은 척. 이 네 컷 앞에서 생각이 좀 길어졌습니다. 젊을 때는 이런 조절을 비겁하다고 여겼던 것 같아요. 지금은 다르게 읽힙니다. 상대가 감당할 만큼만 내보이는 일도 배려의 한 형태라는 걸, 몇 번의 관계를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니까요.
인물이 아예 나오지 않는 페이지도 있습니다. 펼쳐진 공책 세 권과 연필만 그려져 있어요. 첫 장에는 서운하다고 적혀 있고, 다음 장에는 그 위에 다른 글씨가 겹쳐지고, 마지막 장에는 쩔 수 없지, 하는 말만 남습니다. 서운함을 썼다가 지우고 체념으로 고쳐 쓰는 과정이 필기 흔적만으로 보이는 셈이지요. 할 말을 삼키는 습관이 오래된 사람이라면 이 페이지에서 조금 머쓱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무거운 이야기만 이어지지는 않아요. 자러 간다고 인사해 놓고 엎드려서, 나중에는 아예 드러누워서 화면을 들여다보는 꼭지가 있습니다. 그림 밑에 '자러간다'의 의미, 라고 짧게 적혀 있고요. 보고 싶다고 해 놓고 지금 나오라는 말에는 아니라고 답하는 장면도 있습니다. 이런 페이지에서는 소리 내서 웃게 돼요. 슬픔을 정면으로 다루다가 슬쩍 농담으로 빠지는 리듬이 이 책의 호흡을 살립니다.
뒤쪽 미련 장으로 갈수록 색이 빠집니다. 세상에는 제 맘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다고 말하는 꼭지에서, 옆에서 날아오는 조언은 "너의 마음가짐."이라는 짧은 한마디예요. 화자는 "그게 제일 맘대로 안돼"라고 받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칸에는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은 빈 말풍선 하나만 놓여 있어요. 대화가 거기서 끊깁니다. 마음을 고쳐먹으라는 흔한 처방이 왜 잘 듣지 않는지, 이 책은 설명 대신 침묵을 그려 둡니다.
찻잔을 앞에 두고 앉은 장면도 좋았습니다. 후회도 미련도 잘 안 한다고 시작해 놓고, 두 번째 칸에서 검게 칠한 말풍선이 화면을 덮어요. 머리속에 시커먼 미련이 가득하다고요. 결국 마지막에 이렇게 인정합니다. "그 미련이 다 너야". 말풍선을 까맣게 칠해 속내의 무게를 드러낸 방식이 단순하면서도 정확합니다.
읽으면서 걸린 점도 있습니다. 미련 장에 실린 꼭지들이 서로 비슷한 감정을 조금씩 다른 각도로 되짚는데, 한자리에서 몰아 읽으면 어느 순간 구분이 흐려집니다. 미련이라는 감정 자체가 그렇게 반복되는 것이니 의도한 구성일 수도 있겠지만, 중간에 덮어 두었다가 며칠 뒤에 다시 여는 쪽이 이 도서에는 더 맞는 독법 같았어요. 하나 더 꼽자면, 연애 장에 행복은 쟁취하는 게 아니라 선택하는 것이라고 결론을 내려 주는 꼭지가 있는데, 저는 이 책의 힘이 그런 정답보다 대답을 미뤄 두는 태도에 있다고 봅니다. 빈 말풍선 하나로 끝내 버리던 바로 그 방식 말이지요.

그렇다고 독자를 어두운 자리에 두고 가지는 않습니다. 연애 장 안에 배경이 유독 어두운 짧은 꼭지가 하나 있어요.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뭉개진 검은 덩어리가 바닥에 늘어져서 힘들다고 한마디를 흘립니다. 붉은 하트가 다가와 일어나라고, 나아가자고 말하고, 검은 덩어리는 응, 하고 몸을 일으켜요. 설득하지도 나무라지도 않습니다. 그냥 옆에 와서 두 마디를 건넬 뿐이에요. 표지 속 캐릭터가 왜 하트를 그렇게 꼭 안고 있었는지, 이 장면을 보고 나면 짐작이 갑니다.
누구에게 권할 만한지 굳이 적어 보자면, 사랑이 끝난 자리에 아직 마음만 남아 있는 사람에게 가장 먼저 가 닿을 책입니다. 다만 그 시절이 한참 지난 사람에게도 읽을 자리가 있어요. 지나온 관계를 미화하지도 후회로 덮지도 않고 그런 일이 있었구나 하는 정도의 거리에서 넘겨다보는 일이, 이 나이쯤 되면 오히려 편하거든요. 문장이 짧고 그림이 커서 활자에 지친 날에도 부담이 없습니다.
서평단으로 여러 권을 만나다 보면 끝까지 읽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붙드는 책이 있고, 그냥 자꾸 손이 가는 책이 있는데 이 한 권은 후자였어요.
여름 끝자락입니다. 낮의 열기는 아직 그대로인데 저녁 공기는 조금씩 결이 달라지고 있어요. 계절이 바뀌는 자리에서는 지나간 것들이 이유 없이 떠오르곤 합니다. 그런 저녁에 이 얇은 책을 몇 장 넘기면, 정리되지 않은 감정을 서둘러 정리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쪽으로 마음이 기웁니다.
사랑이 끝난 뒤에도 남는 마음을 재촉하지 않는 책. 네 컷짜리 짧은 만화가 그 감정을 성급히 봉합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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