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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내가 쓰는 AI만 멍청해 보일까? - 같은 AI를 써도 결과가 달라지는 진짜 이유
이한빛 지음 / 생능북스 / 2026년 7월
평점 :
"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보라색 바탕 위에 노랑과 검정으로 눌러 쓴 제목이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그 아래에는 정장 차림의 사람이 끝없이 풀려 나오는 종이 두루마리를 두 손으로 붙들고 서 있고요. 뒤엉킨 종이가 커다란 퍼즐 조각 모양을 이루고 있어서, 답이 없다기보다 조각이 아직 안 맞았다는 쪽으로 읽혔습니다. 북유럽 카페 서평단으로 받은 도서인데, 표지 여백마다 손글씨로 흩어놓은 문구들을 훑어보다가 이건 기술서가 아니겠구나 싶었어요.

저자 이한빛은 데이터 분석가로 일하며 여러 기업의 프로젝트를 수행했고 지금은 연세대학교에서 AI와 데이터 분석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그런 이력을 가진 사람이 제일 먼저 꺼내는 말이 뜻밖입니다. "우리는 대부분 '설명하는 법'을 배워본 적이 없다." 여기서 말하는 설명은 말의 양이 아니라, 머릿속 전제와 판단 기준을 문장 안으로 옮기는 능력이라고 범위를 좁혀둡니다. 이 한정 덕분에 보고서도 쓰고 발표도 하는 사람들이 빠져나갈 구멍이 막힙니다. 빠르게 결론부터 말하면 일 잘하는 사람처럼 보이고 배경을 길게 늘어놓으면 말이 많은 사람처럼 보이니, 우리는 점점 짧게 말하고 기준은 생략하는 쪽으로 훈련되어 왔다는 것이지요. 이 대목은 오래 일한 사람일수록 뜨끔할 겁니다.
책이 드는 예시가 소박해서 더 잘 붙습니다. 'ㅇㅋ' 한 마디에 우리는 진짜 괜찮다는 건지 마지못해 알겠다는 건지까지 담아 보냅니다. 사람끼리는 그 여백이 눈치와 표정으로 알아서 메워지는데, AI 앞에서는 그대로 빈칸으로 남습니다. 그래서 결과가 틀리지는 않는데 어딘가 어긋나고, 정작 사용자는 자기 질문 실력을 의심하게 됩니다. 이 흐름 끝에 놓인 문장이 이 도서의 온도를 결정한다고 봤습니다. "우리는 설명을 안 하는 사람이 아니다. 다만, 말하지 않아도 통한다고 믿는 방식에 익숙해져 있을 뿐이다." 책망 대신 해명에 가까운 문장이라, 읽는 사람 어깨에서 힘이 조금 빠집니다.

중반으로 들어가면 논조가 단단해집니다. 조건을 말하지 않았으니 답도 중립적으로 나왔겠거니 여기지만, 답은 기준 없이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사용자가 기준을 비워두면 시스템의 기본값이 그 자리를 대신 채운다는 설명이 이어지고, 이 과정을 저자는 위임이라 부릅니다. "판단을 넘긴 것이 아니라 판단 기준을 넘긴 것이다." 삽화 한 장이 이 논지를 그대로 보여줍니다. 최종 결정 버튼은 사람 손에 있는데, 그 사람이 서 있는 출발선의 위치는 이미 화면 쪽에서 정해져 있습니다. 퇴사 여부, 연봉 협상, 공부 루틴, 투자 기준까지 차례로 맡기다 보면 "AI가 그렇게 말하던데"라는 말버릇이 남고, 무엇이 합리적인지 정의하는 잣대는 조금씩 바깥으로 옮겨갑니다. 여기에 덧붙는 지적이 서늘합니다. AI의 문장은 사과처럼도 조언처럼도 들리지만 그 말을 직접 한 사람은 없고, 말과 책임은 분리되어 있다는 것.
후반부는 처방입니다. 회의 일정 조율 메일을 두 번 시켜본 실험이 나오는데, 두 번째에 바꾼 것은 요청 문장이 아니라 그 앞에 붙인 세 줄뿐이었습니다. 읽는 사람은 외부 파트너, 이번 주 안에 확정, 첫 협업 일정 조율. 이 세 줄을 상태라 부르고 Who와 When과 Why로 정리합니다. 결과물에는 기한이 들어가고 상대가 취할 행동이 분명해졌지요. 저자의 요약은 담백합니다. 달라진 건 말솜씨가 아니라 판단이 시작되는 자리였다고. 상태를 뒤에 붙이면 보조 정보로 처리되기 쉬우니 앞에 두라는 조언까지, 오늘 당장 메일 창에서 써먹을 만합니다.
다만 읽으면서 걸린 데도 있습니다. 책은 퇴사할까, 대학원 가는 게 좋을까 같은 물음에 조건이 빠져 있다고 짚는데, 사실 그런 질문은 조건을 정리할 수 있는 사람이면 이미 절반쯤 답을 쥔 셈입니다. 실무에서 막히는 순간도 비슷해서, Who와 Why 자체가 흐릿한 채로 일이 시작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그럴 때 상태를 적어보라는 요구는 일을 처음부터 다시 생각하라는 말과 같아지는데, 그 앞 단계를 어떻게 통과할지에 대한 안내는 상대적으로 얇게 느껴졌어요. 저자도 상태는 출발선일 뿐이라며 선을 그어두긴 했습니다.

그래도 이 책이 서 있는 자리는 분명합니다. 프롬프트 요령을 모아둔 안내서가 아니고, 결국 사람이 자기 생각을 어떻게 문장으로 옮기는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AI에게 몇 번씩 다시 시켜보다 지쳐본 적 있는 분이라면 앞부분에서 벌써 표정이 달라질 것 같고, 팀원에게 일을 넘길 때 늘 되묻는 말을 듣는 실무자에게도 남는 게 있을 겁니다. 서평단으로 받아 읽은 책들 중에서, 읽은 뒤 다음 날 업무 방식이 한 칸 움직인 경우는 흔치 않은데 이 도서가 그랬습니다.

판형도 두께도 부담스럽지 않아 저녁 시간 며칠이면 넘어갑니다. 팔월의 열기가 아직 한창이라 창을 열어두면 밤공기가 미지근하게 들어오는 무렵인데, 머리를 무겁게 만들지 않으면서 생각은 한 번 정리해주는 쪽이라 이 계절과 잘 맞았어요. 여름이 물러가기 전에 일하는 방식 하나쯤 손봐두고 싶다면 곁에 두어도 좋겠습니다.
말하지 않은 만큼 판단을 넘겨주고 있었다는 사실을 조용히 일러주는, AI 활용서의 얼굴을 한 설명 훈련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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