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컬러링 필사북 어린왕자 - 손을 쓰는 컬러링 필사가 뇌를 깨운다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지음, 서상원 옮김 / starlogo(스타로고)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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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표지를 한동안 들여다봤습니다. 아이보리 바탕에 금빛 별이 흩어져 있고, 그 가운데 어린 왕자가 둘 서 있어요. 앞에 선 쪽은 초록 외투와 붉은 안감까지 색이 다 들어갔고, 뒤에 선 쪽은 윤곽선만 남은 채 비어 있습니다. 완성된 그림과 아직 비어 있는 그림을 나란히 세워둔 구성인데, 이 책이 어떤 물건인지 표지 한 장으로 이미 설명하고 있더군요. 절반은 만들어져 있고, 나머지 절반은 읽는 사람이 채워야 합니다.


<시니어 컬러링 필사북 어린 왕자>는 생텍쥐페리의 원작을 스물일곱 개 장면으로 추려 담았습니다. 각 장면은 채색이 끝난 삽화 한 점과 짧게 줄인 본문, 그 아래 대여섯 줄의 빈 선으로 이루어져 있고, 뒷면에는 같은 그림이 선화로 놓입니다. 읽고, 옮겨 적고, 칠하는 순서로 흘러가는 구조예요.


첫 장이 보아뱀 이야기라는 점이 좋았습니다. 여섯 살 아이가 색연필을 들어 생애 첫 그림을 그리고, 어른들에게 무섭지 않으냐고 묻고, 모자가 뭐가 무섭냐는 대답을 듣는 장면이죠. 그리고 이런 조언이 따라붙습니다. "그런 그림은 그만두고 지리, 역사, 산수, 문법 공부나 해라." 화가의 꿈을 접었다는 문장으로 첫 장이 닫혀요. 색연필을 다시 쥐라고 만든 책이 색연필을 내려놓은 사연부터 꺼내는 배치가 재미있습니다.


이어지는 면에서 조종사가 된 그는 현명해 보이는 사람을 만날 때마다 1호 그림을 내밀어 봅니다. 돌아오는 대답은 늘 모자였고요. 그럴 때면 보아뱀도 원시림도 접어두고 브리지게임과 골프와 정치와 넥타이를 이야기했다고 적혀 있습니다. 속마음을 터놓을 사람 하나 없이 혼자 살아왔다는 문장이 그 뒤에 옵니다. 어른의 대화 목록이 그대로 외로움의 목록이 되는 셈이죠.


책의 앞머리에는 컬러링 필사가 뇌 활성화와 기억력에 좋은 이유를 다섯 가지로 정리한 안내가 실려 있습니다. 측두엽과 전두엽과 후두엽이 함께 작동한다는 설명, 손으로 쓸 때 해마가 강하게 자극된다는 노르웨이 스타방에르 대학교 연구, 알파파와 코르티솔 이야기까지 꼼꼼합니다. 다만 근거를 대는 방식에 편차가 있어요. 이름이 분명한 연구가 있는가 하면, 미국의 어느 저널이나 미국의 미술 치료 전문가들처럼 출처가 흐릿하게 처리된 대목도 섞여 있습니다. 밀도를 고르게 맞췄다면 설득력이 더 붙었을 것 같아요. 사실 손을 쓰는 동안 마음이 가라앉는다는 것은 뇌 부위 이름을 빌리지 않아도 웬만한 사람은 이미 아는 감각이기도 하고요.


뒷부분으로 갈수록 문장이 조용해집니다. 사막에서 우물을 찾은 장면에서 도르래가 삐걱거리자 어린 왕자가 말해요. "우리가 이 우물을 깨우니까 우물이 노래를 부르잖아……" 별빛 아래를 걸어와 도르래 소리를 들으며 팔의 힘으로 길어 올린 물이었다고, 양식 이외의 어떤 다른 의미였다고 적혀 있습니다. 오래 일해온 사람에게는 이 대목이 조금 다르게 읽힐 겁니다. 애써서 얻은 것에만 붙는 맛이 따로 있다는 이야기니까요.


지구에 닿은 어린 왕자가 사막이 쓸쓸하다고 하자 뱀이 답하는 말도 오래 남습니다. "사람들과 같이 있어도 역시 외로워." 사막에 홀로 핀 꽃은 사람들에게 뿌리가 없어서 바람에 실려 다닌다고 일러주고요. 뿌리 없음이라는 표현이 지금 우리 사는 모양과 겹쳐 보였습니다. 몇 년 단위로 사는 곳을 옮기고, 일자리를 따라 도시를 바꾸고, 은퇴 무렵에는 다시 어디에 자리를 잡을지 고민하는 흐름이 낯설지 않으니까요.



마지막 장에는 그림이 없습니다. 글만 놓여 있어요. 별들이 5억 개의 방울과 같다는 문장이 나오고, 양이 꽃을 먹었을지 모른다는 걱정과 유리 덮개를 씌웠을 거라는 위안이 번갈아 이어지다가, 독자에게 청을 남기며 끝납니다. 언젠가 아프리카 사막을 지나게 되면 서두르지 말고 그 별 아래에서 잠시 기다려보라고, 금발의 아이가 웃으며 다가오면 친절을 베풀어달라고, 그리고 그 아이가 돌아왔다고 편지를 보내달라고요. 빈 줄이 계속 따라붙는 책이어서인지, 그 마지막 부탁이 답장을 기다리는 편지처럼 읽혔습니다.


부모님께 드릴 무언가를 고르고 있다면 후보로 올려둘 만합니다. 은퇴 이후나 자녀가 독립한 뒤에 찾아오는 공허함을 안내 글이 꽤 정확하게 짚고 있어서, 그 시기를 지나는 분들에게는 특히 맞을 듯해요. 시니어라는 단어가 아직 남의 옷처럼 느껴지는 사람도, 원작을 다시 읽는 기분으로 펼치면 그럭저럭 어울립니다. 색을 잘 칠할 필요는 없습니다. 여우를 초록으로 칠해도 뭐라 할 사람이 없는 책이니까요.


서평단으로 여러 권을 읽어오는 동안, 읽고 덮으면 끝나는 책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손을 움직이게 만드는 쪽은 드물었고요. 그런 점에서 이 한 권은 서가에 꽂히기보다 책상 위에 놓여 있을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8월로 넘어왔습니다. 한낮에는 바깥 일을 줄이고 실내에 머무르게 되는 철이죠. 색연필 몇 자루와 볼펜 하나면 시작되는 책이라, 에어컨 바람 아래 길게 늘어지는 여름 오후와 잘 맞습니다. 별이 잘 보이는 계절이기도 하고요.


원작의 문장을 손으로 옮기고 빈 그림을 채우는 동안, 어른의 언어에 밀려났던 감각이 조용히 돌아오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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