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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 생각은 어떻게 무기가 되는가 - 최고의 질문으로 결과를 바꾸는 문제해결의 기술
변창우 지음 / 세이코리아 / 2026년 7월
평점 :
"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표지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큼직한 쉼표였습니다. 위쪽은 흰 바탕에 짙은 청회색 글자가 화면을 꽉 채우고, 아래로 내려오면 바탕색이 따뜻한 베이지로 바뀝니다. 차가운 색과 사람 손때 묻은 색이 위아래로 나뉜 그 경계에 쉼표가 하나 찍혀 있어요. <AI 시대, 생각은 어떻게 무기가 되는가>라는 제목에서 그 부호가 단순한 문법 기호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급하게 달려가는 쪽을 잠깐 붙잡아 세우는 표시 같았거든요.
무게도 제법 나가고 두께도 있습니다. 처음 펼쳤을 때 며칠에 나눠 천천히 봐야겠다 싶었는데, 다 읽고 나니 그 판단이 책의 주장과 얼추 맞아떨어졌더군요.

1부 초반에는 신입사원 한 명이 등장합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어느 대학 출신에, 무슨 주제를 물어도 막힘없이 답을 내놓고, 주 7일 24시간 일할 준비가 되어 있는 친구요. 보고서를 다시 써 오라 해도 금방 고쳐 오고 엑셀과 코딩도 능숙합니다. 그런데 몇 달 지내보니 이상한 구석이 보이기 시작해요. 묻지 않으면 먼저 말하는 법이 없고, 없는 얘기를 그럴싸하게 지어내고, 결과물은 무난하지만 자기 관점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 정체는 짐작하시는 대로 생성형 AI입니다. 능청스러운 설정이라 웃으며 읽었는데, 저자가 붙인 결론은 담백합니다. 아직 독립적으로 일을 맡기기엔 적합하지 않지만 옆에 두고 필요할 때마다 부리기에는 더할 나위 없다는 것. 월 20달러 남짓이면 되는 비서라는 계산까지 함께요.
이어서 BCG와 미국 교수들이 경영 컨설턴트를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가 소개됩니다. AI를 쓴 쪽이 12.2퍼센트 더 많은 일을 25.1퍼센트 더 빠르게 처리했고 결과물의 질도 40퍼센트 이상 좋았다는 수치. 여기까지는 예상 범위였습니다. 그런데 같은 연구의 다른 면이 바로 뒤에 붙습니다. 데이터와 인터뷰를 세밀하게 통합해야 풀리는 문제에서는 AI를 쓰지 않은 그룹이 84퍼센트 정답을 맞혔고, 쓴 그룹은 오답이 더 많았다는 것. 결과를 검증하지 않고 그대로 사용한 사람이 상당수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솔직히 이 구성에서는 잠깐 갸웃했습니다. 저자는 독자들이 은퇴하기 전까지 AI가 자리를 빼앗는 일은 없다는 쪽에 한 표를 걸겠다고 해놓고, 곧바로 방심의 대가를 보여주는 연구를 붙여둡니다. 안심시키는 말과 경계하라는 말이 한 호흡 안에 나란히 놓여 있어서 어느 쪽에 무게를 실어야 할지 헷갈리는 자리가 있어요. 다만 읽어나가다 보면 그 배치가 의도였겠다 싶어집니다. 저자가 겨냥하는 대상은 기술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능숙하게 부리는 옆자리 동료의 성과니까요.
2부로 넘어가기 전, 2장에 실린 회의실 장면은 읽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월요일 아침 여덟 시 반, 꼭대기 층 회의실에서 해외영업 활성화 전략을 놓고 임원 회의가 열립니다. 삼십 분짜리 발표가 끝나자 CEO의 첫마디가 뭐 새로운 거는 별로 없구먼, 이었어요. CFO는 숫자를 들어 예산과 인력 감축을 꺼내고, 해외영업 임원은 초기 투자가 필요하니 시기상조라고 맞서고, CMO는 온라인 채널과 브랜딩 투자를 말합니다. 각자 자기 자리에서 틀리지 않은 말을 하는데 대화는 도무지 이어지지 않습니다. 두 사람이 그 건으로 상의해봤느냐는 CEO의 물음에 돌아온 답은 "아직…, 요청이 오지 않아서…"였고, 몇 마디 뒤에는 이런 말도 나옵니다. "해보지도 않고 안 된다는 얘기부터 먼저 하네."

장면 끝에 붙은 손그림 한 장이 오래 눈에 남습니다. CEO 말풍선에는 '맞는 질문 제일 많이 하실 분'이라 적혀 있고, 맨 아래 김 대리는 '좀 갑갑합니다' 한마디를 달고 있어요. 저자는 마지막에 김 대리가 임원들을 제치고 상황을 정리해내는 장면을 통쾌하게 그려놓고도, 현실에서 대리가 그렇게 나섰다간 뒷감당이 안 된다고 곧바로 인정합니다. 그 솔직함 덕분에 이 안내서를 좀 더 믿고 읽게 됐습니다.
책의 뼈대는 HIPS 프로세스입니다. 인간지능 문제해결이라는 뜻이고, 핵심 질문을 던져 문제를 구조화하는 1단계, 분석적 접근과 창의적 접근을 병행하는 2단계, 핵심 과제를 개발하고 실행하는 3단계로 이어집니다. 로직트리와 고객여정지도, 디자인 씽킹, 프로토타입처럼 현장에서 쓰이는 도구들이 차례로 나오는데, 실무서로 읽으면 이쪽이 본론일 겁니다. 다만 제 눈길이 오래 머문 자리는 조금 달랐어요.
2단계 후반에 '고뇌 구간'이라는 이름이 붙은 꼭지가 있습니다. 아이디어는 다 꺼내놨는데 답이 보이지 않아 답답한 지점을 가리키는 말이에요. 저자는 당황하지 말라고 하면서, 문제해결 과정이 애초에 선형적이지 않다고 짚습니다. 하다가 막히면 되돌아가 반복해야 하고, 확산에서 수렴으로 넘어가는 사이에 반드시 지나야 하는 구간이 있다는 것.
여기서 짧은 이야기가 하나 나옵니다. 사과를 가득 실은 농부가 울퉁불퉁한 시골길을 서둘러 가다 노인을 만나 장터까지 얼마나 걸리는지 묻습니다. 노인의 대답이 이랬어요. "천천히 가면 30분이고 지금처럼 가면 온종일도 걸릴 거요." 무슨 소리인가 싶던 농부는 노인이 길에 떨어진 사과를 주워 짐칸에 실어주는 모습을 보고 뜻을 알아차립니다.

일터에서 흘리고 다닌 사과가 몇 개나 될지 세어보게 만드는 대목이었습니다. 급하니까 예전 하던 방식대로 결정하고, 불편하니까 어긋난 의견은 덮고 넘어가고, 그렇게 아낀 시간은 나중에 몇 배로 청구되곤 하지요. 저자는 불편함과 무력함 때문에 선택을 서두르면 과거의 익숙한 솔루션을 고르게 되고 그것이 지금에 적합한 답일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적어두었습니다. 고뇌 구간을 지나는 요령 중에는 휴식과 숙려 기간도 들어 있어요. 우리의 두뇌는 근육과 같아서 무리한 후에는 휴식기를 가져야 한다면서, 쉬는 사이 뜻밖의 해결책이 떠오르기도 한다고요. 괄호 안에 붙은 한마디가 이 책의 온도를 잘 보여줍니다. 그러면 고뇌 구간이 아니라 환희 구간이 된다.
1부에 나오는 π자형 인재라는 개념도 적어두고 싶습니다. 자기 전문 분야 하나에 다른 영역의 이해를 더해 서로 다른 지식을 연결해내는 사람을 가리켜요. 정형화된 문제는 AI가 더 잘 풀겠지만 여러 분야가 뒤엉킨 현실의 문제에는 여전히 사람의 통합적 사고가 필요하다는 게 저자의 견해입니다. 한 가지 일을 오래 붙들어온 사람에게는 이 부분이 조용한 응원처럼 읽힐 것 같습니다. 쌓아온 경력이 두 번째 기둥을 만날 때 비로소 값이 매겨진다는 이야기니까요.
책의 뒷부분으로 갈수록 저자의 개인적인 취향이 드러나는데, 핵심 과제를 고르는 단계를 설명하다 말고 역사 이야기로 빠지는 대목이 그렇습니다. 스스로 역사 덕후라 밝히면서 런던의 커피하우스, 파리의 카페, 독일 바우하우스를 나란히 놓아요. 뉴턴과 핼리가 돌고래를 해부하며 놀던 자리에서 주식 거래소와 보험사가 태어났고, 파리의 카페에서는 헤밍웨이와 사르트르가 하루를 통째로 죽쳤습니다. 사르트르는 카페 드 플로르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고 하네요. "이상해 보이지만, 카페 드 플로르는 우리에게 집과 같은 곳입니다." 세 장소의 공통점을 저자는 이질적인 사람들이 얼굴을 맞대고 격 없이 수다를 떨었다는 데서 찾습니다.
그러고는 우리에게도 그런 자리가 있는지 살펴본 뒤 각자 만들어보자고 권합니다. 온라인 독서토론 모임도 좋고, 나와 다른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면 충분하다고요. 어딘가에 나만의 커피하우스가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다는 문장으로 이 꼭지를 닫습니다. 한국에는 아직 그런 공간이 없다고 단정한 부분에는 살짝 다른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도서관과 크고 작은 독서모임, 이런저런 살롱 형태의 자리는 이미 여기저기 생겨나는 중이고, 다만 서로 다른 배경이 한자리에 섞이는 일이 드물 뿐이라는 쪽이 실감에 가깝습니다.
이 도서는 북유럽 카페를 통해 받았습니다. 같은 한 권을 놓고 전혀 다른 일을 하는 사람들이 각자의 언어로 감상을 남기는 풍경이 저자가 말한 커피하우스와 크게 멀지 않겠더군요. 서평을 쓰는 일도 결국 남의 생각에 제 생각을 부딪혀보는 절차에 가깝고요.
이 안내서의 무게중심은 처음부터 끝까지 문제해결 절차에 놓여 있습니다. AI는 그 과정을 거드는 도구로 등장할 뿐이에요. 부록에 생성형 AI로 HIPS를 돌리는 프롬프트 설계 가이드가 실려 있어서 당장 써먹고 싶은 분이라면 그쪽부터 펴봐도 되지만, 앞을 건너뛰면 손에 도구만 남을 것 같습니다. 회의를 주재하는 자리에 있는 분들께 특히 할 말이 많은 책이고, 자기 일하는 방식을 한 번 점검해보려는 사람에게도 쓸모가 있습니다. 2024년에 나온 <인공지능 시대, 무기가 되는 생각법>의 개정판이라는 점도 적어둡니다. 초판이 HIPS라는 틀을 세웠다면 이번 판은 그 틀을 생성형 AI 위에서 굴려보는 예문을 더한 셈이에요.

저자가 던지는 맞는 질문은 하나로 정리됩니다. AI가 인간의 역할을 대체할 것인가가 아니라, "이제 우리가 뭘 하면 되지?"라는 물음이요. 그 뒤에 인용된 미래학자 로이 아마라의 문장이 이 책 전체를 요약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기술의 영향을 단기적으로는 과대평가하고 장기적으로는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8월 첫 주, 낮이고 밤이고 더위가 물러가지 않는 계절입니다. 이런 시기에는 진도가 더뎌도 조바심이 덜 나서, 두께 있는 한 권을 붙들기에 오히려 나쁘지 않겠다 싶어요. 서둘러 넘긴 페이지는 어차피 다시 돌아와 읽게 되니까요. 천천히 가면 30분이라던 노인의 말을 이 여름 내내 떠올릴 것 같습니다.
AI를 어떻게 쓸지 배우기 전에 무엇을 풀어야 하는지부터 정하게 만드는, 사람을 위한 문제해결 안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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