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스토리 - 공유되는 순간 완성되는 브랜드 스토리텔링의 원칙
로빈 랜다.그레그 브라운 지음, 최은아 옮김 / 알레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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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검정 바탕 위로 형광 초록 원들이 조용히 번져 나가는 표지입니다. 손에 쥐어 보니 생각보다 묵직해서, 며칠 안에 다 읽겠다는 마음은 처음부터 접게 되더라고요. 그런데 그 두께가 부담스럽기보다 오히려 다행스러웠습니다. 천천히 읽어도 된다고 책이 먼저 말해주는 것 같았거든요.


그레그 브라운과 로빈 랜다가 쓰고 최은아가 옮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스토리>는 광고인이 쓴 광고 책인데요. 덮고 나서 남은 건 기술이 아니라, 사람을 어떤 자리에 놓고 이야기를 시작할 것인가 하는 질문이었습니다. 잘 만들었다는 말보다 누군가에게 가닿았다는 말이 훨씬 어려운 칭찬이라는 걸 읽는 내내 생각했습니다.


책 중반에 제레미 불모어의 오래된 비유가 나옵니다. 인사이트는 냉장고 안의 불빛과 같아서 문을 열 때에만 켜진다는 이야기인데요. 이 대목에서 한참 머물렀습니다. 우리가 답이라고 믿는 것들 대부분은 문을 열어야만 보이는데, 정작 그 문을 여는 일은 자주 생략되니까요.


아디다스와 하바스 미들 이스트가 두바이 해수욕장에 실제로 수영할 수 있는 광고판을 세운 이야기가 그렇습니다. 전 세계 여성의 32퍼센트가 공공장소에서 수영하는 걸 불편해하고 중동에서는 그 비율이 89퍼센트라는 데이터가 있었는데요. 담당자는 그 숫자가 답을 주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리서치 파트너들과 함께 그 지역 여성들을 오래 들여다본 뒤에야 인사이트가 나왔다고 하더군요. 숫자는 문고리였을 뿐이고, 불이 켜진 자리에 있던 건 수영을 포기해온 사람들의 마음이었습니다.


존중이라는 말이 이 책에 자주 나오는데요. 뉴욕 타임스 캠페인에서 그 말이 가장 잘 보였습니다. 언론에 대한 신뢰가 바닥을 치던 시기에 나온 광고인데, 결론을 말하는 대신 "진실은…"이라고 문장을 열어둔 채 판단을 독자에게 넘깁니다. 무엇을 믿으라고 설득하지 않고, 믿을지 말지를 정할 사람이 누구인지만 분명히 해두는 방식이지요. 뒤에 붙은 성과 수치보다 그 태도가 오래 남았습니다.


말한 대로 행동하라는 이야기가 이어지는 장에서는 자꾸 손이 멈췄습니다. 파타고니아가 신문 한 면에 실은 시는 위에서부터 읽으면 절망인데, 아래에서부터 읽으면 선언이 됩니다. 읽는 방향을 바꾸라고 요구하는 광고이면서 그 요구 자체가 메시지인 셈입니다. 중고 가구를 되사는 아이케아 캠페인에 붙은 연구도 마음에 남았는데요. 사회적 책임을 말할 때 스스로를 지나치게 칭찬하는 어조는 오히려 신뢰를 떨어뜨린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캠페인은 목소리를 낮췄다고 해요. 좋은 일을 하고도 조용히 말하는 편이 낫다는 걸 광고가 먼저 알고 있었던 셈입니다.


현대자동차 슈퍼볼 광고를 만든 데이비드 메스핀의 인터뷰에는 촬영 직전의 작은 결정 하나가 나옵니다. 준비해둔 VR 고글이 군인들의 표정을 가릴 것 같아 쓰지 않기로 했다는 이야기인데요. 몇 달을 준비한 장치를 현장에서 내려놓은 이유가 사람의 얼굴을 가리지 않기 위해서였다니, 이 책이 말하는 존중이 어디까지 내려와 있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가장 오래 붙들려 있던 대목은 삼성 아이테스트를 만든 브렛 콜리버의 인터뷰였습니다. 아이폰 사용자들이 갤럭시폰으로 바꾸는 일을 두고 "새로운 언어를 배워야 할 것처럼" 느낀다는 관찰에서 시작한 아이디어인데요. 정작 그 인사이트는 당시 받은 브리프에 맞지 않았다고 합니다. 팀은 브리프를 푸는 작업과 별도로 그 생각을 따로 챙겨 함께 제안했고, 클라이언트는 이렇게 답했다고 해요. "무척 마음에 들어요. 그런데 하나의 제품에만 국한되기에는 너무 큰 아이디어인데요."


여기까지는 흔한 성공담인데, 인터뷰의 마지막 문장이 달랐습니다.


"인사이트에서 아이디어로 도약하는 과정은 비교적 단순했지만, 이를 실제로 구현하는 일은 훨씬 더 어려운 도전이었다."


이 한 줄을 접어두었습니다. 회의실에서 박수를 받은 생각이 실제로 굴러가기까지 무엇이 필요한지, 그 사이에서 몇 번이나 주저앉게 되는지를 아는 분이라면 이 문장이 위로처럼 들리실 것 같습니다. 원래 어려운 일이었다고, 부족해서가 아니었다고 말해주는 문장이라서요.


물론 읽으면서 고개가 갸웃해지는 대목도 있었는데요. 이 책은 성과를 숫자로 증명하는 편이라, 낭포성 섬유증 아이들의 하루를 바꾼 조끼 이야기와 협업 화장품이 44분 만에 팔린 이야기가 같은 무게로 나란히 놓입니다. 방법은 같아도 남는 것이 다를 텐데 책은 그 차이를 굳이 나누지 않습니다. 존중이 있었기에 이런 결과가 나왔다는 설명도, 그 사이가 늘 그렇게 곧게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걸 오래 일해본 분들은 아실 겁니다. 사례가 대부분 큰 브랜드라 예산과 조직이 다른 자리에서는 그대로 옮겨오기 어렵기도 하고요. 그래도 이 책이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결과를 흉내 내지 말고 태도만 가져오면 충분하겠다 싶었습니다.


다양성과 형평성을 다룬 장, 정해진 공식이 없는 미래를 이야기하는 마지막 장은 이 글에 다 담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쪽에 저자들의 생각이 더 또렷해서, 읽으실 분들은 그 두 장을 아껴두셔도 좋겠습니다.


포르투갈의 한 페스티벌 포스터를 AI로 만든 팀은 중요한 것이 어떤 도구를 쓰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능숙하게 다룰 수 있는가이며, "그것이 곧 자신만의 언어를 만들어내는 방식이다"라고 말합니다. 도구는 계속 바뀔 것이고 이 책에 실린 기술도 몇 해 지나면 평범해지겠지요. 그래도 자기 언어를 가진 사람은 도구가 바뀌어도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는 말로 읽혔습니다.


오래 일해온 사람에게 이 책이 건네는 말은 아마 이쯤일 겁니다. 브리프에 맞지 않아 접어둔 생각이 있다면 그건 틀린 게 아니었다고, 좋은 안이 실행 앞에서 무너진 경험이 여러 번이라면 그건 원래 그만큼 어려운 일이었다고요. 화려한 사례들 사이사이에 그런 문장이 조용히 놓여 있습니다.


8월의 한낮은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기 좋은 계절은 아닙니다. 그래서 이런 책이 오히려 어울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서두를 수 없어 하루에 한 챕터씩만 넘기게 되는데, 그 속도가 책의 두께와 잘 맞더라고요. 여름이 다 가기 전에 절반쯤 읽어두면, 가을에 남은 절반이 조금 다르게 읽힐 것 같습니다.


설득하는 법을 배우려고 펼쳤다가, 접어두었던 생각들을 오래 들여다보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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