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증을 이기는 몸 - 암과 치매를 예방하는 자연치유력의 힘
이토 도시노리 지음, 김동연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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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염증. 이 두 글자에서는 대개 붉고 뜨거운 무언가가 먼저 떠오릅니다. 그런데 <염증을 이기는 몸>의 표지는 그 예상을 조금 비껴가요. 흰 바탕 한가운데 노란 점들이 둥근 빛처럼 번져 있고, 그 안에 분홍빛 사람 형상이 조용히 서 있습니다. 경고판보다는 등을 데워 주는 온기 쪽에 가까운 배색이지요. 다 읽고 표지를 다시 들여다보니 이 색 선택이 내용과 정확히 맞물려 있었다는 걸 알겠더군요.


지은이 이토 도시노리는 췌장 이식의 권위자입니다. 일본 국내 1호 췌장·신장 동시 이식을 집도했고, 지금까지 70여 차례 같은 수술을 해왔습니다. 서양 의학의 최전방에 오래 서 있던 사람이지요. 그런 이력을 지닌 의사가 여섯 개 장 가운데 첫 장의 제목을 '몸을 고치려면 마음을 고쳐라'로 붙였습니다. 순서를 이렇게 잡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도서의 태도가 짐작됩니다.


앞부분에 이런 문장이 나옵니다.


"의사는 약으로 통증을 완화하거나 병든 장기를 절제하여 '병을 고칠' 수는 있어도 '몸을 살릴' 수는 없습니다."


수술로 생긴 상처를 몸이 스스로 아물게 하는 힘이 없다면 수술이라는 행위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설명이 뒤따릅니다. 평생 메스를 잡아온 사람이 자기 일의 한계를 이렇게 담담하게 적어 두는 게 쉽지는 않았을 텐데요. 여기에는 스승 격인 아쓰미 가즈히코 교수의 이야기가 겹칩니다. 인공심장과 레이저 치료 같은 최첨단 연구를 이끌던 도쿄대 명예교수가 60년의 현장 끝에 전하고자 했던 핵심이 '의사에게 의존하지 않는 삶'이었다고 해요. 저자는 이 말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적으면서, 곧바로 서양 의학을 무시하는 뜻이 아니니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고 덧붙입니다. 이 조심스러운 한 걸음이 있어서 뒤에 이어지는 통합의료 이야기가 미덥게 읽혔습니다.


미더웠던 이유가 하나 더 있어요. 저자는 통합의료 역시 근본적인 치료라고 할 수는 없다고 스스로 인정합니다. 침술이나 요가, 아로마테라피 같은 보완대체요법을 소개하면서도 만병통치의 언어를 쓰지 않아요. 20세기 의료가 완치를 겨눴다면 21세기는 관리 쪽으로 무게중심이 옮겨 갔다는 진단도 과장이 없고요. 고령자의 만성 질환처럼 되돌릴 수 없는 변화 앞에서는 원래대로 복구하는 일보다 그 병과 어떻게 동행할 것인지가 중요해진다는 말이 이 책 전체의 바닥에 깔려 있습니다.


2장으로 넘어가면 문체가 확 가벼워집니다. 인류가 왜 두 발로 서게 되었는지부터 시작해요. 빙하기를 향해 한랭화가 진행되면서 열대우림이 줄었고, 잘 익은 과일을 얻기 어려워지자 서서 걷는 편이 유리해졌다는 설명입니다. 그렇게 자유로워진 손이 도구를 만들고 문명을 낳았지만, 대가도 함께 따라왔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이를 진화적 트레이드오프라고 부르며, 오늘날 고령자들이 겪는 만성 질환의 뿌리를 여기서 찾습니다.


이 대목의 소제목이 '침팬지는 어깨결림을 모른다'입니다. 고개를 숙인 자세가 길어지면 목뼈의 완만한 곡선이 사라지고, 체중 60킬로그램 기준으로 목이 감당할 부담이 평소의 두 배까지 늘어난다는 계산이 도표와 함께 실려 있어요. 허리를 30도만 숙여도 등 근육에 80킬로그램에 가까운 하중이 걸린다는 숫자도 나옵니다. 딱딱해질 수 있는 해부학 설명 끝에 저자는 이렇게 씁니다.


"침팬지에게 직접 물어본 것은 아니지만, 그들이 '어깨결림'을 모른다는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이런 여유가 있어서 두꺼운 건강서를 끝까지 밀고 갈 수 있었습니다.


다만 이 장을 읽으면서 걸린 부분도 있어요. 목과 허리에 실리는 하중은 모멘트 방정식까지 동원해 소수점 단위로 제시하는데, 정작 장 제목에 걸린 '보폭'은 한참 뒤에야 모습을 드러냅니다. 600만 년의 진화사에서 출발해 스마트폰 자세까지 오는 흐름이 흥미롭긴 해도, 그 정교한 계산들이 걸음을 넓힌다는 실천으로 곧장 이어지는지는 읽는 동안 몇 번 의심이 들었습니다. 근거를 충분히 쌓고 나서 결론으로 가려는 성실함이겠지만, 실용서를 기대하고 펼친 독자라면 초반의 밀도에 조금 지칠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책의 뒤쪽, 치매를 다루는 장에서 걸음이 다시 느려졌습니다. 일본 후생노동성 자료를 근거로 돌봄이 필요해지는 원인 1위가 치매라는 사실을 짚는데, 몸이 부러지거나 쓰러지는 일보다 기억이 무너지는 일이 앞선다는 순서가 조용히 무겁게 다가옵니다. 최근 의학계가 치매를 생활습관병의 하나로 보기 시작했다는 관점, 당뇨와 고혈압과 이상지질혈증이 뇌혈관에 남기는 손상이 인지 기능 저하로 이어진다는 연구들도 정리되어 있고요. 의학 학술지 <란셋> 위원회가 꼽은 열네 가지 위험 요인을 모두 제거하면 이론상 치매의 45%는 예방할 수 있다고 합니다. 뒤집으면 절반 이상은 손쓰기 어렵다는 뜻이기도 한데, 저자는 그 45%를 붙잡자는 쪽으로 손을 내밉니다.


가장 오래 붙들려 있었던 서술은 시간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이상 단백질이 뇌에 쌓이는 과정은 20년 넘게 이어지고, 증상은 20~25년이 지나서야 겉으로 드러난다고 해요. 80세에 치매 증상이 나타났다면 55세나 60세 무렵부터 뇌 안에서 무언가가 이미 진행되고 있었다는 뜻이라는 문장 앞에서 마음이 서늘해졌습니다. 그때 적절한 대책을 세웠더라면 결과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는 저자의 덧붙임은 뒤늦은 후회처럼 들리지 않고, 아직 시간이 남은 사람들을 향한 말로 읽혔어요. 마흔 후반이라는 자리에서 읽으면 남의 이야기로 넘기기가 어렵습니다.


이 책은 북유럽 카페를 통해 받아 읽었습니다. 서평단으로 만나는 책들 가운데는 읽는 동안만 머무는 것도 있고, 다 읽고 나서 생활의 각도를 조금 틀어 놓는 것도 있는데요. 이 한 권은 후자에 가까웠습니다. 대단한 결심을 요구하지 않고, 고개를 덜 숙이고 걸음을 조금 넓히는 정도의 일을 오래 이어 가라고 말할 뿐이거든요. 병원 검사에서는 별말 없이 돌아왔는데 몸이 무겁게 느껴지는 시기를 지나는 분이라면 이 목소리가 반가울 겁니다. 부모님의 노년을 곁에서 지켜보며 자기 차례를 어렴풋이 계산해 보게 된 사람에게도 그럴 테고요. 통계가 전부 일본 자료라는 점은 아쉬웠지만, 고령화 속도를 생각하면 우리 이야기로 옮겨 읽는 데 큰 무리는 없었습니다.


한여름입니다. 열대야가 이어지고 낮에는 그늘을 찾아 걷게 되는 계절이라, 몸을 돌보자는 말이 가장 흐지부지되기 쉬운 때이기도 하지요. 그래도 해가 기운 저녁이면 걷기 좋은 바람이 붑니다. 오늘 걸음을 조금 넓혀 보는 일이 이십 년 뒤의 어떤 하루를 바꿔 놓을 수도 있다는 것, 이 책이 남긴 건 그 정도의 조용한 확신이었습니다.


병을 고치는 의학의 한계를 인정한 외과의가, 남은 시간 동안 몸을 살리는 법을 담담하게 일러 주는 안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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