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스 히어로 vs 오피스 빌런 - 일보다 사람이 어려운 직장인을 위한 인간관계 리더십
길군(길상훈) 지음 / 밥북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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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표지가 먼저 말을 겁니다. 검은 배경 위로 빌딩 골조가 솟아 있고, 그 사이에서 파랑과 분홍이 정면으로 부딪칩니다. 히어로와 빌런이라는 단어는 만화처럼 가볍게 걸려 있는데, 아래에 붙은 문구는 일보다 사람이 어려운 직장인을 위한 인간관계 리더십이에요. 색은 요란하고 부제는 담백해서, 웃기려고 만든 책만은 아니겠다는 짐작이 들었습니다.


<오피스 히어로 vs 오피스 빌런>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한 줄이 에필로그 첫머리에 실려 있습니다. 브런치 작가 모도 님이 남긴 "이 책은 매우 위험한 책이오. 너무 재밌어서 위험하오."라는 문장인데, 읽어보면 그 말이 농담만은 아닙니다. 저자 길군은 서문에서 본문을 읽기 전에 에필로그를 펼치지 말라고 당부해 놓고, 정작 그 자리에 와서는 독자를 믿겠다며 슬쩍 넘어갑니다. 이런 능청이 책 전체에 깔려 있어요.


구성은 세 갈래입니다. 실무자 시선으로 조직의 인간 군상을 훑는 오피스 빌런, 관리자 자리에서 사람을 움직이는 법을 묻는 오피스 히어로, 그리고 그 힘의 정체를 밝히는 히어로 스톤입니다.


인상적인 건 첫 문장부터 저자가 자기 이름표를 먼저 단다는 점이었습니다. 스스로를 빌런 레벨 0, 일 안 하는 담당자였다고 적어요. 공기업을 고른 이유가 어린 시절의 꿈일 리 없었고 그냥 영업이 싫었을 뿐이라는 고백이 이어집니다. 그러다 지자체 위탁으로 문화센터를 맡게 되고, 위에서는 회원이 없다는 말만 내려옵니다. 이유를 설명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요. 밀어붙임을 견디다 나온 혼잣말이 '회원 수, 늘려주지 뭐'였다는 대목에서, 이 책이 다루려는 게 성과 기술이 아니라는 걸 알겠더군요. 여덟 달 만에 회원이 두 배 넘게 늘었다는 숫자가 나오긴 하지만, 저자는 곧바로 자기가 하려는 말은 영업 전략이 아니라고 못을 박습니다. 사람은 돈 때문에 일하지만 존중받기 때문에 일하기도 한다는 문장, 이 한 줄을 위해 앞의 이야기를 다 깔아둔 셈입니다.


2부에서 만나는 팀장 이야기는 이 책에서 가장 재미있는 대목입니다. 수영장 수질 관리 시스템이 자꾸 멈춰 업체를 갈아치워도 소용없던 일에 그가 내놓은 답은, 습기에 굳은 소금을 깨서 넣으라는 것이었습니다. "문제는 사람이지, 기계가 아닙니다."라는 말이 여기서 나옵니다. 저녁에 하던 수영장 청소를 새벽으로 옮기고, 화단을 직접 파보니 폐건축자재가 나오고, 짝수 층 엘리베이터가 자꾸 멈추자 홀수 층 짝수 층 구분을 아예 없애버리라고 합니다. 화장실에서 약품 냄새가 진동하는 이유를 두고는, 청소한 사람이 티를 내고 싶을 때 그렇게 한다고 짚어요. 담당자가 미화 직원만 탓하니 그렇게라도 표시를 낼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다만 읽으면서 걸린 부분도 있었습니다. 팀장이 등장할 때마다 짧은 한마디로 상황이 정리되고 감탄이 따라붙는 흐름이 반복되다 보니, 인물이 조금 이상적으로 그려진 인상을 받았어요. 현실에서는 옳은 판단을 가진 사람도 조직 안에서 번번이 밀리는 경우가 훨씬 많고, 그 마찰이야말로 오래 일한 사람들이 가장 지치는 지점일 텐데 그 자리가 매끄럽게 지워져 있습니다. 물론 저자가 존경을 담아 쓴 인물이라는 게 문장에 배어 있어서, 그 마음까지 탓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책이 진짜 하고 싶은 말은 안내데스크 챕터에 있습니다. 남의 운동화를 신고 가려다 걸려도, 쓰레기를 몰래 버리다 들켜도, 주차 시비를 CCTV로 확인해줘도 화는 안내데스크 직원에게 쏟아집니다. 그러다 저자가 질문 자체를 고쳐 씁니다. 직원들이 불친절한 것이 아니라 불친절해 보이는 것이라고요. 본질은 책임 전가라는 결론이 여기서 나옵니다. 그리고 최종 빌런으로 지목되는 건 진상 고객이 아니라, 고객 앞에서 "그냥 한번 해드리세요."라는 한마디로 실무자의 권위를 무너뜨리는 관리자입니다.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지고 목소리에서 감정이 사라진 직원들 이야기는 담담해서 오히려 아팠습니다.


이 챕터가 힘을 얻는 건 마지막 한 문장 때문이에요. 그 멍청한 인간이 누구였는지 너무 늦게 깨달았다면서, 저자가 그 자리에 자신을 앉힙니다. 한참을 성토해놓고 스스로를 범인으로 지목하는 구성이라 앞의 모든 문장이 다르게 읽힙니다. 그다음에 오는 해법도 거창하지 않아요. 무리한 요구를 절대 안 된다고 자르는 대신 검토해보겠다는 여유를 주고, 등록 안내는 강사들 손을 빌리고, 마지막에 "결과는 제가 책임지겠습니다."라고 말해주는 것. 이 책이 내내 반복하는 권위는 책임지는 순서라는 명제가 여기서 실물이 됩니다. 저자가 다른 대목에서 그 명제를 스스로 비틀어 보는 장면도 있는데, 정말 그렇다면 승진이라도 먼저 했을 거라고 적어둔 부분이요. 자기 논리에 취하지 않으려는 태도가 보여서 오히려 신뢰가 갔습니다.


책의 끝자락은 사무실을 떠나 집으로 향합니다. 가정에서 벌어지는 갈등의 범인으로 지목되는 목소리가 "그냥 한번 해 줘라."인데, 사무실에서 실무자의 권위를 무너뜨리던 그 말과 문형이 똑같아요. 자리를 옮겨도 사람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의 구조는 같다는 뜻이겠지요. 다만 이 대목에서 저자가 세우는 부부 구도는 위트로 읽는 사람과 불편하게 읽는 사람이 갈릴 것 같습니다. 판단은 각자의 몫으로 남겨두는 편이 좋겠어요.


북유럽 카페를 통해 서평단으로 받은 도서입니다. 서평단으로 여러 권을 만나다 보면 읽고 나서 할 말이 금방 정리되는 책이 있고, 자꾸 제 쪽을 돌아보게 만드는 책이 있는데 이번 한 권은 확실히 후자였습니다. 실무자로 억울했던 기억과 관리자로 무심했던 순간이 같은 페이지 안에 들어 있어서, 어느 쪽에 서 있든 마음이 편치만은 않습니다. 조직에서 사람 때문에 지쳐본 사람, 아래를 움직여야 하는 자리에 처음 올라선 사람이라면 자기 이야기로 읽힐 대목이 분명 있을 겁니다. 각 챕터 끝에 붙은 체크 포인트 질문들도 그 몫을 합니다.


칠월이 저물어 갑니다. 장마가 지나가고 더위가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은 요즘, 사무실에서 사람 때문에 마음이 식어가는 분들이 적지 않을 것 같아요. 이 책은 그 마음을 다독여주기보다 왜 그런 일이 벌어지는지를 차분히 설명해줍니다. 그런데 설명을 다 듣고 나면 이상하게 조금 가벼워집니다. 미워했던 얼굴 하나가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하거든요. 여름이 다 가기 전에 한 권 붙들고 계실 분들께 권해봅니다.


사무실에서 사람에게 지쳐본 사람이, 그 사람을 다시 이해해보려 애쓴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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