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정약용의 인생 수업
정약용 지음, 정영훈 엮음, 김창준 옮김 / 메이트북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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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손바닥에 쏙 들어오는 작은 판형이었어요. 북유럽 카페 서평단으로 이 책을 받았을 때, 얇고 가벼워서 어디든 들고 다니며 편하게 읽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그런데 표지를 마주하고는 잠깐 마음이 달라지더군요. 검은 바탕에 목탄으로 그린 듯한 다산의 얼굴, 안경 너머의 눈빛이 생각보다 오래 눈길을 붙들었습니다. 그 아래로 흙빛 베이지가 받쳐주는데, 화려하지 않고 단정한 그 색감이 책의 성격을 미리 알려주는 것 같았어요.


<다산 정약용의 인생 수업>은 정약용이 남긴 방대한 저술과 편지에서 핵심만 골라 아포리즘 형태로 다듬은 책입니다. 정영훈 엮은이가 고르고 김창준 옮긴이가 우리말로 옮겼는데, 현대적으로 매끈하게 다듬기보다 다산의 육성을 최대한 살리려 한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위로를 건네기보다 기준을 세워주는 문장, 감정을 어루만지기보다 실천을 요구하는 문장이 대부분이라, 읽다 보면 자세가 조금씩 곧아지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책은 기록, 가계, 수양, 관계, 공부, 처세, 애민 일곱 개의 장으로 짜여 있어요. 저는 이 가운데 재물을 다루는 태도를 이야기한 가계, 나를 다스리는 법을 담은 수양, 그리고 빼앗기지 않는 것에 관한 공부, 이 세 갈래에 특히 마음이 갔습니다.


가계를 다룬 부분에서 다산은 살림의 근본이 들어오는 대로 쓰는 데 있지 않고 남겨 때를 대비하는 데 있다고 말합니다. "넉넉한 때에 남겨두는 곡식 한 섬이 어려운 때의 열 섬보다 귀하다"는 문장이 특히 그랬어요. 지금 넉넉하다고 방심하는 것을 맑은 날 지붕을 고치지 않는 일에 빗대는 대목에서는, 무리한 대출과 영끌이라는 말이 익숙해진 요즘 우리 형편이 겹쳐 보이더군요. 자식에게 재물보다 기술을 물려주라는 당부도 마음에 남았습니다. 재물은 한 번의 재앙으로 사라지지만 몸에 익힌 기술과 근검의 습관은 빼앗기지 않는다는 것, 스스로 살아내는 힘을 길러주는 편이 더 오래가는 유산이라는 말이었죠. 형제나 친척 사이일수록 돈거래를 하지 말라며 "그것은 이미 정이 아니라, 거래다"라고 못 박는 대목에서는 저도 모르게 고개가 끄덕여졌어요. 돈 이야기가 이렇게 담백하면서도 서늘하게 다가오는 책은 오랜만이었습니다.


수양을 다룬 장에서는 신독이라는 말이 이 책 전체의 열쇠처럼 느껴졌어요. 남은 속일 수 있어도 제 마음은 속일 수 없다는 것, 아무도 보지 않는 순간의 몸가짐과 마음가짐이 곧 제 수양의 실제 수준이라는 대목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남의 시선보다 혼자 있을 때의 제 모습이 더 무겁게 다가오는데, 그 자리를 정확히 짚어주는 문장이었어요. 말을 아끼는 법을 이야기하며 "입이 가벼운 자가 잃는 것은 말 한마디가 아니라, 그동안 쌓아온 신뢰 전부다"라고 한 대목도 오래 곱씹게 되더군요. 욕심을 덜어낼 때 마음이 맑아지고 판단이 날카로워진다는 지족의 이야기, 세상의 평가에 흔들리지 않아야 삶이 바로 선다는 이야기까지, 밖에서 오는 것에 휘둘리지 말고 안에 기준을 세우라는 한 방향을 나란히 가리키고 있었어요.


가장 힘이 실린 곳은 공부를 다룬 장이었습니다. "세상의 지위는 아침 이슬과 같아 바람 한 번에 흩어진다"로 시작해, 지위와 재물은 빼앗겨도 내면에 쌓인 것은 빼앗기지 않는다고 말하는 대목이죠. 공부를 무너진 자존을 다시 세우는 길이라 부르는 그 문장에는, 폐족이라 불리며 멸시받던 처지에서도 붓을 놓지 않았던 사람의 무게가 그대로 실려 있었습니다. "내가 벼슬길이 막힌 처지에서도 학문을 멈추지 않고 붓을 든 것은, 제 삶의 기준을 세상이 아닌 나 자신에게서 찾았기 때문이다"라는 한 줄에서는, 흔들릴 이유가 넘치는 자리에서 오히려 중심을 세운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어요. 다산은 재능의 부족을 탓하며 도망치지 말라고도 했습니다. 남이 한 번 읽을 때 열 번을 읽어 뜻을 뼈에 새기는 집요함이 평범함을 비범함으로 바꾼다고, 둔재라도 멈추지 않으면 수재를 앞선다고 말이죠. 다만 그 공부가 책상 안에 갇히는 것은 경계했습니다. 현실의 곤궁을 구제하지 못하는 공부는 잠꼬대일 뿐이라고, 삶을 바꾸지 못하는 지식은 허망할 뿐이라고 했으니까요. 백 권의 경전을 외우기보다 한 번의 실천에 정성을 다하라는 말로 매듭을 짓는데, 배운 것이 제 삶의 사소한 습관 하나라도 어떻게 바꾸었는지 늘 스스로에게 물으라는 그 당부가 책을 덮은 뒤에도 따라왔습니다.


읽는 내내 마음에 걸리는 지점이 아주 없지는 않았어요. 워낙 압축된 아포리즘 형식이라 문장 하나하나는 야무진데, 그 말이 나온 원래의 맥락이나 편지의 사연이 함께 있었다면 더 깊이 스몄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다산을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는 다소 강한 어조로 느껴질 수도 있고요. 그럼에도 이 얇은 판형이 오히려 장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겁게 각 잡고 읽기보다 가방에 넣어두었다가 흔들리는 날 아무 쪽이나 펼쳐 한 꼭지씩 곱씹기에 알맞은 책이니까요.


돈 문제로 마음이 자주 흔들리는 사람, 남들의 평가에 휘둘려 제 중심을 잃는다고 느끼는 사람이라면 이 책의 문장들이 조용히 어깨를 받쳐줄 거라 생각합니다. 무언가를 잃어본 뒤 다시 일어서는 중인 사람에게도 마찬가지고요. 서평단으로 여러 책을 만나오지만, 위로가 넘치는 시대에 위로 대신 기준을 건네는 책은 흔치 않았어요. 이 한 권은 바로 그 드문 자리에 놓이는 책이었습니다.


한여름의 열기가 가장 짙은 요즘, 밖은 뜨겁고 마음은 오히려 지치기 쉬운 계절입니다. 그런 날 손 닿는 곳에 두고 한 꼭지씩 읽어 내려가기에 이 작은 책이 참 알맞았어요. 흔들리는 하루 끝에 안쪽을 붙들어줄 기준 하나를 곁에 두고 싶은 분이라면, 조용히 펼쳐 보시길 권합니다.


읽고 나면 위로보다 기준이 남는 책, 흔들리는 날마다 다시 펴 들어 마음의 중심을 붙드는 든든한 손잡이 같은 한 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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