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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절(들)
클레르 마랭 지음, 류재화 옮김 / 사람in / 2026년 5월
평점 :
"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파란색이 이렇게 세게 다가올 줄 몰랐습니다. 코발트블루가 표지를 가득 메우고, 오른쪽 위 붉은 칸에는 검은 새 한 마리가 오렌지빛 부리를 들이밀고 있어요. 아래엔 목선을 드러낸 흑백 사진과 오렌지 색면이 겹칩니다. <단절(들)>, 그리고 원제 Rupture(s). 복수의 s를 굳이 괄호에 가둔 그 표기가 처음엔 눈에만 걸렸는데, 마지막 장을 넘길 즈음엔 왜 저렇게 써야 했는지 수긍이 갔습니다.

북유럽 카페 서평 활동으로 받은 책입니다. 핸드북 사이즈에 얇고 가벼워 가방 한구석에 넣고 다니기 좋겠다 싶었어요. 실제로 그렇게 읽었습니다. 두께에 비해 한 페이지에 붙들리는 시간이 길었던 것도 사실이고요.
프랑스 철학자 클레르 마랭의 인문 에세이입니다. "우리의 삶은 오직 단절로 이루어져 있을 뿐이다." 이 한 문장을 축으로, 진로를 바꾸고 거처를 옮기고 병을 앓는 내밀한 균열부터 결별과 절연, 사별 같은 관계의 끊어짐까지를 훑습니다. 니체와 키르케고르, 뒤라스와 에르노가 쉴 새 없이 불려 나오는데도 벽처럼 느껴지진 않았어요. 결국 다루는 게 우리 모두가 한 번쯤 통과하는 일이라 그런가 봅니다.

책을 읽다 보면 저자가 단절을 실패나 상처로만 그리지 않는다는 게 서서히 드러납니다. 「연인과의 결별」에서부터 그래요. 헤어짐을 관계의 파탄이 아니라 정체성의 사건으로 봅니다. 우리가 끝내기로 마음먹는 건 이미 내면에서 무언가 어긋나고 있기 때문이고, 그 갈라진 틈은 상대가 낸 게 아니라 처음부터 내 안에 있던 것이라는 거죠. "내가 도망치는 대상은 옛 애인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다." 미셸 뷔토르의 <변경>을 끌어오는 대목이 오래 눈에 밟혔습니다. 아내를 떠나 로마의 연인에게 가려던 남자가 여정 내내 떨쳐 내지 못하는 불안이, 알고 보니 상대에게서 온 게 아니라 이미 제 안에 나 있던 균열이었다는 이야기예요. 장소를 바꾸고 사람을 바꿔도 그 불안은 짐처럼 따라옵니다. 떠나는 사람도 떠나오는 사람만큼 상처받는다는 말이, 이 나이가 되니 오히려 담백하게 들렸습니다.

여러 장 가운데 제가 가장 자주 되짚은 곳은 「분산의 기쁨」이었습니다. 여기서 저자는 앞서 깔아 둔 판을 스스로 뒤집어요. 우리는 진짜 자아가 하나 있고 나머지는 가면이라 믿지만, 앙리 미쇼를 빌려 "우린 단 하나의 자아를 위해 만들어지진 않았을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자아가 하나여야 한다는 믿음조차, 주어를 앞세워 문장을 짓는 유럽 언어의 문법이 만든 습관일 수 있다는 니체의 통찰이 뒤따르고요.
이 장에서 저를 붙든 건 넥타이 이야기였습니다. 퇴근한 사람이 넥타이를 풀어헤치는 장면을 두고, 저자는 그것이 실은 목줄이나 밧줄이었을지 모른다고 씁니다. 재킷을 벗고 소파에 몸을 던지는 그 순간, 우리는 다른 사람이 될 필요를 느낀다고요. 하나의 역할로만 오그라든 삶을 "자동인형처럼 사는 죽은 삶"이라 부르는 문장에서 마음이 서늘하게 걸렸습니다. 오래 일해 온 사람으로서 남 일 같지가 않았어요. 그런데 저자는 이 여러 겹의 나를 흠이 아니라 살아 있다는 증거로 읽습니다. "내 정체성의 팔레트는 넓다." 돌릴 때마다 무늬가 달라지는 만화경처럼, 나라는 사람도 그렇게 여러 얼굴을 품고 있어도 된다는 허락처럼 다가왔습니다. 이 대목에서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어요.
무게가 가장 무거운 장은 「가족과의 절연」입니다. 사랑이 사람을 망가뜨릴 수도 있다는, 입에 올리기 껄끄러운 이야기를 저자는 피하지 않아요. 안 뒤푸르망텔의 <모성의 야만성>을 인용하며 어머니와 아이의 피부가 겹쳐 아이가 숨 막히는 관계를 그립니다. 다만 짚어 둘 게 있어요. 이 장이 말하는 건 흔한 가족 갈등이 아니라 학대와 폭력이라는 극단의 자리이고, 저자가 꺼내는 근본적 단절도 그런 관계에서 목숨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이탈로 제시됩니다. "어머니 추방은 정신적 재생이며, 지금까지는 존재하지 않았던 내밀한 공간을 만드는 일이다." 끊어냄이 파괴가 아니라 비로소 나로서 태어나는 일일 수 있다는 것. 관계가 늘 지켜야 할 미덕만은 아니라는 사실, 어떤 끊어냄은 살아남기 위한 선택이라는 사실이 묵직하게 남았습니다.

책은 「계약 파기」에서 나직이 닫힙니다. 저자는 우리가 저마다 상상의 울타리를 세워 두고 그 안이 안전하다 믿는다고 말해요. 성실히 일하면 보상받고, 바르게 살면 큰불행은 비껴가리라는, 신이나 운명과 은밀히 맺었다고 여기는 계약 말입니다. 병이나 사고, 가까운 이의 죽음은 그 계약을 예고도 없이 찢어 버리죠. "계약서에는 없었잖아." 병원 부속 사제로 일하던 마리옹 밀러콜라르가 정작 제 아이와 함께 중환자실에 들어서며 내뱉는 이 항변 앞에서, 저 역시 말문이 막혔습니다. 그런데 저자가 내미는 답은 원래 자리로 돌아가는 회복이 아니에요. 단절을 통과한 나는 이전의 내가 아니고, 그 사실을 받아들인 자리에서만 새로운 결속과 신뢰가 싹튼다는 겁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뜻밖에 기쁨으로 향합니다. "비극적인 밤을 보낼 때조차, 자신 안에 깃든 기쁨의 작은 불꽃을 기억하는 힘을 갖기." 확신도 완벽함도 절대적 안전함도 없지만 그래도 아침이면 다시 몸을 일으켜 살아갈 수 있다는 것, 아이들의 웃음 같은 데서 존재할 용기를 되찾는다는 것. 이 온기가 책장을 덮은 뒤에도 남았습니다.
아쉬움을 굳이 들자면, 인용되는 프랑스 문학과 철학의 결이 촘촘해서 배경이 낯선 독자는 초반에 걸음이 더뎌질 수 있다는 정도예요. 그 간극은 옮긴이 류재화 님의 역주가 성실히 메워 줍니다. 번역가 스스로 역주를 "소맷부리 같은 것"이라 했다는데, 막히는 자리마다 슬쩍 당겨 정돈해 주는 그 손끝이 고마웠습니다.
크고 작은 끊어짐을 이미 여러 번 지나온 사람이라면, 그 경험이 나를 무너뜨린 실패가 아니라 다시 빚어낸 사건이었다고 말해 주는 이 책에서 조용한 위안을 얻을 겁니다. 지금 무언가를 놓아야 할지 저울질하는 중이라면, 끝이 곧 파국은 아니라는 담담한 목소리가 곁을 지켜 주고요.
장마가 시작된 한여름입니다. 매미 소리가 창을 넘고 해가 길게 늘어진 계절에, 이런 책을 느리게 읽는 일이 뜻밖의 그늘이 되어 주었어요. 무언가를 끊어 내고 지나온 자리마다 결국 다른 계절이 오더라는 것을, 이 얇은 한 권이 나직이 일러 주는 듯했습니다.
잃어버린 것 앞에서도 우리는 계속 우리를 새로 지어 갈 수 있다고, 낮은 목소리로 건네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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