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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이 무기가 될 때 - 선행 없이 하위권으로 시작한 과학고 실전 분투기
김현주 지음 / 청림Life / 2026년 7월
평점 :
"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책상 위에 올려 두고 표지를 한동안 바라봤습니다. 새하얀 바탕에 잘 깎인 연필심 하나. 화려한 장식도, 요란한 색도 없이 그저 뾰족하게 다듬어진 흑연 끝이 놓여 있을 뿐인데, 그 담백함이 오히려 많은 걸 건네더군요. 결국 손으로 밀어붙인 시간이 아니면 저렇게 깎일 수 없으니까요. 김현주 작가의 <노력이 무기가 될 때>는 그 연필 한 자루의 인상 그대로, 요령이 아니라 우직함으로 채운 3년의 기록입니다.

이 책은 선행 없이 하위권에서 출발해 과학고에 진학한 아들과 지은이가 함께 건넌 시간을 담고 있습니다. 중학교 때 전교 1, 2등을 놓치지 않던 아이가 입학과 동시에 중하위권으로 내려앉고, 비상한 아이들이 1분 1초를 다투는 곳에서 낯선 방대함과 씨름하는 이야기죠. 흔히 상상하는 성공 신화와는 결이 다릅니다. 콘크리트 내신이라 불리는 그곳에서 6학기 연속 우상향을 이뤄 냈다는 결과가 있긴 하지만, 정작 오래 들여다보는 건 성적 그래프가 아니라 흔들리는 부모의 마음과 아이의 내면입니다.
제게 오래 남은 건 '노력에 건네는 꽃다발'이라는 장이에요. 작가는 애씀이 결과를 얻기 위한 필수 전제일 뿐 필연적인 성공을 담보하지는 않는다고 담담히 적습니다. 그런데도 부모는 아이가 받아 든 결과를 아이가 덜 애쓴 탓으로 가장 많이 돌린다는 거예요. 자기 잣대로 재단하다 보니 터무니없는 성적표 앞에서 화가 나기까지 한다는 대목에서,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100점이나 A만 박수받을 자격이 있는 게 아니라는 말이 특히 그랬어요. 40점이 50점이 되었다면 그 10점 사이에 아이의 남모르는 고군분투가 숨어 있고, C를 받던 아이가 B를 받았다면 거기에도 마땅한 인정과 칭찬이 따라야 한다고요. 결과가 아니라 그 과정을 알아봐 주는 언어, 그것이 아이를 지키는 일이라는 태도가 책 전체를 관통합니다.

이 장에서 밑줄을 여러 번 그었습니다.
"성적과 공부의 고민을 부모에게 안심하고 털어놓으며 상의하는 아이의 안정감은 결코 아이의 착한 성정에서 오지 않습니다. 이것은 긴 시간 공들여 쌓아 올린 견고한 신뢰가 바탕이 된 결과입니다."
성적을 숨기지 않고 말하는 아이의 태도가 착해서가 아니라 오래 쌓은 믿음 때문이라는 이 문장은, 사실 아이 키우는 일에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 어른들의 관계에서도 누군가 제 약점을 편히 털어놓는다면, 그건 그 사람이 무던해서가 아니라 그만한 신뢰가 오간 뒤일 테니까요.

'성적 말고 마음이 걱정'이라는 장도 마음을 붙듭니다. 아이가 성적 차이가 별로 없다는 말을 변명처럼 꺼냈을 때, 작가는 그것을 점수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로 읽습니다. 기약 없는 시간을 홀로 헤맸을 아이의 속, 오직 그것만이 걱정이었다고요. 이미 마음이 꺾인 상태에서 성적표 숫자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물음 앞에서는 저도 한동안 시선을 거두지 못했습니다. 반 동기의 못된 언행에 아이가 온라인 끝말잇기라는 게임으로 도피했던 시기의 서술은 특히 아프게 읽혔어요. 이 국면을 지은이는 부모의 힘만으로 건너지 않았습니다. 담임 선생님께 알렸고, 선생님이 건넨 처방은 뜻밖에도 '산책'이었죠. 아이를 살리는 데는 부모의 노력뿐 아니라 아이를 마음으로 지켜봐 줄 또 다른 어른의 연대가 필요했다는 서술이, 각자도생처럼 굳어 가는 요즘 정서에 잔잔한 반문을 던집니다.
제목이기도 한 '노력이 무기가 될 때'에서는, 세상이 애씀을 대하는 이중성부터 짚습니다. 부족하면 게으르다 질타하고, 부단히 매달리는데도 결과가 없으면 미련하다며 동정한다고요. 그래서 아이들조차 결과만으로 자신을 판단하고, 상처받지 않으려 서서히 노력을 거두어들이다 끝내 그것을 부끄러워하게 된다는 진단은 서늘할 만큼 정확했습니다. 작가가 말하는 무기의 정의는 이렇습니다. "제가 말하는 무기는 성적을 올리는 기술이 아닙니다. '노력을 기울일 줄 아는 태도'와 '노력하는 나에게 만족할 줄 아는 마음'입니다. 결과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어제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오늘의 나를 긍정하는 기쁨. 그것이야말로 노력을 무기로 삼은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입니다."
읽으면서, 이건 입시를 지나는 아이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흘린 땀 한 방울, 미루다 끝낸 정리, 다 읽어 낸 책 한 권 같은 매일의 작은 성취가 자존감의 뿌리가 된다는 말은, 성과로만 사람을 재는 세상에서 오래 버텨 온 이라면 누구나 조용히 끄덕일 만한 문장이었어요.

책이 마냥 따뜻하기만 한 건 아닙니다. '골수까지 빼먹을 모양새'라는 장에서는 대치동 내신학원의 공포 마케팅을 꽤 날카롭게 벗겨 냅니다. 자정이 다 된 시각에도 쏟아지는 문자, 시험 끝난 다음 날부터 시작되는 내신 대비 수업, 추석 연휴가 성수기라 '추특'이라는 줄임말까지 생겼다는 대목은 우리 사교육 현실을 아는 사람이라면 씁쓸하게 웃을 수밖에 없을 겁니다. "상위권은 추특을 듣고, 하위권은 친척을 만난다"는 광고 문구까지 등장하니까요. 그럼에도 지은이가 내놓는 결론은 냉소가 아니라 중심 잡기입니다. 공포 마케팅의 소음 속에서도 내 아이의 진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 그것이 거친 사교육 시장에서 부모가 아이를 지켜 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요. 불안을 파는 시장 한복판에서 흔들리지 않는 기준을 세워 두는 일. 말은 쉬워도 실천은 어려운 그 균형을, 작가는 자신의 시행착오까지 다 드러내며 보여 줍니다.
이 도서는 북유럽 카페 서평단을 통해 만났는데, 함께 온 별책부록 <과학고 졸업생의 114문 114답>도 반가운 구성이었습니다. 본책이 엄마의 시선이라면 부록은 아이의 시선을 담은 인터뷰집이에요. 과학고 입시와 입학 초기, 친구 관계, 방황과 회복, 기숙사 생활, 부모와의 관계, 대학 입시까지 열 가지 주제를 아이의 목소리로 풀어 두어서, 같은 3년을 부모와 아이가 얼마나 닮게, 또 얼마나 다르게 기억하는지 나란히 견줘 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진학을 앞둔 자녀를 둔 분이라면 실질적인 참고 자료로도 요긴하겠습니다.
판형은 보통이고 두께도 부담스럽지 않아 손에 잡고 편하게 넘기기 좋았습니다. 입시서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지만, 다 읽고 나면 남는 건 공부법이 아니라 태도에 관한 이야기예요. 성적표 숫자보다 마음을 먼저 살피는 시선, 결과의 공을 가로채지 않는 겸손, 그리고 혼자가 아니라 어른들이 함께 아이를 건네는 연대. 지금 입시의 한복판에서 매 시험마다 흔들리는 부모라면 분명 위로를 얻을 겁니다. 그런데 아이 없이 자기 일을 밀고 가는 어른이 읽어도, 성과 앞에서 스스로를 어떻게 대해 왔는지 한 번쯤 돌아보게 만드는 힘이 이 안에 있습니다.
장마가 시작하고 매미 소리가 부쩍 짙어진 요즘, 후텁지근한 오후를 이 책과 함께 천천히 흘려보냈습니다. 뜨겁게 몰아붙이는 계절일수록, 결과보다 과정을 먼저 안아 주는 이런 이야기 한 권이 곁에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성적표가 아니라 마음과 애씀을 먼저 알아봐 주는 법에 관한, 담담하고 단단한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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