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인 삶을 위한 열 가지 철학 - 단어가 바뀌면 세계가 바뀐다
오카모토 유이치로 지음, 곽현아 옮김 / 이든서재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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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표지를 처음 봤을 때 눈이 먼저 간 건 색이었습니다. 형광 초록 바탕에 낡은 브라운관 화면 같은 사각형이 박혀 있고, 그 안에 Justice, Power, Freedom, War 같은 영단어가 흐릿한 모니터 글자처럼 떠 있어요. 요란한 색과 달리 아래쪽 문구는 담담합니다. "같은 뉴스를 보고도 왜 다른 결론에 도달하는가." 북유럽 카페 서평단으로 받은 이 책은, 이 한 문장 덕분에 펼치기도 전에 이미 말을 걸어오는 듯했습니다.


<지적인 삶을 위한 열 가지 철학>은 일본의 대중 철학자 오카모토 유이치로가 쓴 책입니다. 정의, 기술, 권력, 폭력, 자유, 노동, 소외, 국가, 종교, 전쟁. 매일 입에 올리면서도 정작 그 속을 들여다본 적 없는 열 개의 단어를, 고대 그리스부터 지금까지의 철학자들을 불러와 하나씩 헤집습니다. 저자의 진단은 명료해요. 우리는 같은 말을 주고받으면서도 머릿속으로는 서로 다른 세계를 그리고 있고, 그래서 대화가 깊어질수록 도리어 멀어진다는 겁니다. 판형도 두께도 넉넉하지 않아 손에 쥐기 편하고, 무거운 주제인데도 읽는 걸음이 무겁지 않았습니다.


열 개의 단어를 다 지나온 지금 가장 여운이 긴 건 '노동'을 다룬 장입니다.


저자는 노동이 고생인지 기쁨인지를 곧장 묻는 대신, 그 질문을 세 방향으로 벌려 놓습니다. 먼저 오스트리아 철학자 이반 일리치의 '그림자 노동'이 나와요. 임금으로 값이 매겨지는 일 뒤편에는, 사회가 굴러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지만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 노동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식사 준비, 가족 돌봄, 양육 같은 것들. 이런 수고가 받쳐 주어야 비로소 임금 노동도 성립한다는데, 그동안 얼마나 많은 손길을 그저 배경쯤으로 여겨 왔나 되짚게 되더군요.


이어 마르쿠제와 푸리에가 등장해 노동이 놀이가 될 수 있는가를 묻습니다. '땀 흘려 일한다'는 말에는 늘 고통의 그림자가 붙어 있고, 그래서 일과 놀이는 서로 반대편에 있는 것처럼 여겨지죠. 그런데 푸리에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그저 아침부터 저녁까지 즐기기만 하면 된다. 즐거움 때문에 노동에 참여하게 되고, 그 노동은 오늘날의 구경거리나 무도회보다도 더 매력적인 것이 될 것이다."


19세기에는 몽상처럼 들렸을 이 구상이 지금은 조금씩 현실의 문턱을 넘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저자는 덧붙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가 AI 시대의 노동입니다. 기계가 생산의 대부분을 떠맡으면 인간은 생존을 위한 노동에서 풀려날 수 있다는 전망이지요. 고대 그리스에서 노예가 노동을 도맡고 자유 시민은 정치와 철학, 예술에 몰두했던 것처럼, 이제는 AI가 그 자리를 대신할 수 있다는 겁니다. 홀가분해질 법도 한 대목인데, 장을 닫으며 저자가 남긴 문장은 오히려 자리에서 일어서려던 저를 다시 앉혀 놓았습니다.


"결국 남는 질문은 노동으로부터 해방된 인간이 무엇을 하며 살아갈지 그리고 그 시간과 삶을 어떻게 구성해 나갈지에 관한 것입니다."


일에서 놓여난다는 게 곧 편안함은 아니더군요. 오래 일하며 살아온 사람일수록, 일이 빠져나간 자리에 무엇을 채울 것인가라는 물음이 낯설고도 묵직하게 다가옵니다. 노동이 곧 나였던 시간이 길었던 만큼, 그 없는 자리를 상상하는 일이 쉽지 않았어요.


노동에서 붙든 이 물음은 '자유' 장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이사야 벌린은 자유에 두 얼굴이 있다고 했어요. 무언가로부터 벗어나는 자유와, 무언가를 향해 나아가는 자유. 앞의 것이 소극적 자유, 뒤의 것이 적극적 자유입니다. 흥미로운 건 같은 개념을 두고 벌린과 에리히 프롬이 정반대 길로 갈라진다는 점이었어요. 프롬은 적극적 자유야말로 진정한 자유이며 민주주의로 이어진다고 본 반면, 벌린은 바로 그 적극적 자유가 집단의 열광과 맞물리면 개인을 억누르는 논리로 뒤집힐 수 있다고 경계했습니다. 나치즘의 출발에도 사람들이 '스스로 선택했다'는 참여의 감각이 있었다는 지적 앞에서, 자유라는 익숙한 말이 이토록 다르게 읽힐 수 있다는 사실에 한동안 생각이 붙들렸습니다.


권력을 다룬 장은 지금 이 시대를 정면으로 겨눕니다. 푸코가 말한 감옥 모델, 중앙 감시탑에서 모두를 내려다보는 파놉티콘이 이제는 감시자가 사라진 '슈퍼 파놉티콘'으로 바뀌었다고 해요. 신용카드로 결제하고, 내비게이션으로 길을 찾고, 검색하고, SNS에 남기는 흔적이 저절로 쌓입니다. 지켜보는 사람이 없는데도 우리는 통제받고, 정작 그것을 통제라고 느끼지도 못하죠. 여기에 다수가 소수를 지켜보는 '시놉티콘'까지 겹칩니다. 전철에서 다들 스마트폰 화면에 얼굴을 묻은 그 익숙한 풍경이 실은 감시의 또 다른 얼굴이라는 겁니다. 저자가 푸코의 문장을 지금의 언어로 옮겨 놓은 대목, "모든 디지털 네트워크에는 권력이 내재해 있다"는 표현은 사원증 없이는 문조차 열리지 않는 하루하루를 떠올리게 해 쉽게 넘겨지지 않았어요.


세 장을 지나며 분명해진 게 있습니다. 이 책은 열 개의 단어에 정답을 붙여 주려는 책이 아니에요. 오히려 익숙한 단어가 실은 얼마나 여러 겹으로 갈라져 있는지를 펼쳐 보이면서, 읽는 사람이 스스로 그 겹을 헤아리도록 옆구리를 툭 건드립니다. 뉴스를 볼 때든 누군가와 의견이 부딪힐 때든, 그 말이 어떤 뜻으로 쓰이는지 한 번 더 되묻게 되는 것. 그 작은 습관이 만드는 차이를 마지막 장에서 조용히 납득했습니다.


서평단으로 여러 책을 만나 왔지만, 읽는 손을 자꾸 되돌려 세우는 책은 흔치 않았어요. 지식을 채운다기보다 세상을 바라보는 렌즈를 한 겹 새로 끼우는 쪽에 가까운 경험이었습니다.


한낮 볕이 가장 뜨거운 계절이지만, 해가 늦게까지 남아 저녁이 길어진 덕에 서두르지 않고 한 장씩 곱씹어 읽기 좋았어요. 정의니 자유니 하는 말들이 뉴스마다 부딪히는 시절에, 그 단어들의 속을 천천히 들여다보고 싶은 분이라면 오래 곁에 두고 펼쳐 볼 만합니다. 세상을 더 잘 설득하려는 마음이 아니라, 나와 다른 세계를 조금 더 이해해 보려는 마음으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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