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팝 데몬 헌터스 오리지널 무비 코믹북 ㅣ 케이팝 데몬 헌터스 공식 시리즈
김민정 옮김 / 서울문화사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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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넷플릭스에서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처음 봤을 때의 감정이 아직 남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서울문화사에서 나온 <케이팝 데몬 헌터스 오리지널 무비 코믹북>을 펼치기 전부터 조금 설렜어요. 그 화면 속 이야기가 종이 위에서는 어떻게 살아날지 궁금했거든요.


책을 손에 쥔 첫 느낌은 예상 밖이었습니다. 두께가 상당하고 표지도 단단해서, 아이용 만화책이라기보다 잘 만든 일러스트북 한 권을 받아 든 기분이 들었어요. 짙은 남색 위로 형광 핑크와 하늘색이 튀어 오르는 화면을 보고 있으면, 원작의 강렬한 색감을 지면에 그대로 옮기겠다는 의지가 읽힙니다.


넷플릭스로 보신 분은 아실 거예요. 낮에는 케이팝 아이돌로 무대에 서고, 밤에는 악귀를 사냥하는 헌터로 사는 세 사람. 루미와 미라, 조이로 이뤄진 그룹 헌트릭스의 이야기죠. 애니메이션에서 이미 한 번 마음이 움직였던 터라, 그 장면들을 다시 만나면 어떨지 기대가 컸는데, 화면으로 흘려보냈던 대목이 지면에서는 오히려 더 또렷하게 붙잡히더라고요.


책의 앞부분은 웃음이 참 많습니다. 큰 공연을 끝낸 헌트릭스가 무대 뒤에서 "우리가 진짜 해냈어!" 하며 들뜨는 장면, 정작 신곡 준비를 앞두고도 목욕 가운 차림으로 소파에 널브러져 "역시 소파에 앉아서 쉬는 게 최고라니까" 하고 뒹구는 장면 같은 것들이요. 세계를 지키는 헌터라는 거창한 임무를 짊어진 아이들이 결국은 소파에서 김밥 먹으며 쉬고 싶어 하는 모습이라니, 화려한 무대 뒤의 이 소소함이 캐릭터를 훨씬 사랑스럽게 만듭니다. 사람들이 진짜 악귀 퇴치를 그저 잘 만든 특수 효과로만 여기는 대목도 재미있고요. 진심은 늘 이렇게, 무대 밖에서는 오해받기 쉬운 법이구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책장을 넘길수록 이야기의 결이 깊어져요. 이 도서가 인기 애니메이션의 장면을 옮겨 담은 데서 그치지 않는다고 느낀 건 후반부에서였습니다. 무대 위에서 가장 화려하게 빛나야 할 순간, 루미가 평생 감춰온 비밀이 드러나거든요. 헌터인 줄로만 알았던 그의 몸에 악귀의 문양이 번지기 시작하고, 가장 가까운 동료 앞에서 "제발 믿어 줘"라고 매달려야 하는 상황에 놓입니다. 남에게 완벽하게 보여주고 싶은 모습과, 들키고 싶지 않은 진짜 자신 사이의 거리. 그 간극이 무대 조명 아래에서 가장 잔인하게 벌어진다는 게 오래 기억에 남았어요.


라이벌인 진우의 사연도 그냥 지나칠 수 없었습니다. 그가 악귀가 된 이유가 대단한 악의가 아니라, 가족을 버리고 혼자만 편해지려 했던 나약함에서 비롯됐다는 고백은 뜻밖에 서늘하게 다가옵니다. "동생과 어머니를 버리고 나만 궁에서 배불리 먹으며 밤마다 비단 이불을 덮었어!" 이 대목은 어른 독자에게 다르게 읽힐 것 같아요. 누군가를 위해 짊어져야 할 자리에서 슬쩍 물러나 나만 편하고 싶었던 순간, 그런 부끄러움이라면 나이를 먹을수록 짐작이 가니까요. 케이팝이라는 반짝이는 외피 안에 죄책감과 후회, 그럼에도 다시 관계를 회복하려는 마음을 담아낸 점이 이 이야기의 진짜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책으로서의 완성도도 짚고 싶어요. 원서보다 큰 판형이라 컷마다 색감이 시원하게 살아 있고, 대사를 걷어내고 이미지만으로 밀어붙이는 페이지들은 만화라는 매체를 제대로 이해하고 만들었다는 인상을 줍니다. 특히 한옥 지붕 위를 날아다니는 헌터의 액션은 한국적인 배경과 어우러져 눈이 즐거웠어요. 양장으로 단단하게 묶여 있어 아이가 험하게 봐도 견딜 것 같고, 동시에 작품을 아끼는 어른이 책장에 세워두고 소장하기에도 손색이 없습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도서를 여럿 옮긴 번역가가 참여해서인지, 대사의 결도 원작의 유머와 감정을 자연스럽게 살렸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 책을 '북유럽 카페' 서평단으로 만났는데, 여러 신간을 접하다 보면 아이용과 어른용의 경계가 생각보다 뚜렷하다는 걸 느끼곤 합니다. 그런데 이 한 권은 그 경계 위에 서 있어요. 아이는 헌트릭스의 활약과 유쾌한 장면에 빠져들 테고, 어른은 그 아래 깔린 정체성과 관계, 죄책감의 이야기를 읽어낼 테니까요. 무엇보다 아이와 나란히 앉아 같은 책을 넘기면서 서로 다른 지점에서 마음이 움직인다면, 그 자체로 근사한 시간이 될 것 같습니다. 원작을 여러 번 돌려봤든, 아직 넷플릭스로 만나지 못했든, 어느 쪽이 펼쳐도 각자의 방식으로 이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될 거예요.


한여름의 열기가 짙어지는 요즘, 시원한 실내에서 이 두툼한 한 권을 천천히 넘겨보는 것도 꽤 괜찮은 피서입니다. 화려한 무대의 빛과 그 뒤에 감춰진 마음을 나란히 들여다보다 보면, 어느새 마지막 장에 닿아 있을 거예요.


케이팝의 반짝임 아래 정체성과 상처, 그리고 다시 이어지려는 마음을 담아낸, 아이와 어른이 서로 다르게 읽어낼 수 있는 소장용 코믹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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