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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 좋은 마흔이 되고 싶어 - 오늘보다 내일이 더 기대되는
오즈 마리코 지음, 양수현 옮김 / 시원북스 / 2026년 5월
평점 :
"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언젠가부터 새로 사고 싶은 것도, 가보고 싶은 곳도 줄어든다고 느꼈습니다. 그게 어른이 되는 거라고, 차분해지는 거라고 여겼는데 오즈 마리코의 <기분 좋은 마흔이 되고 싶어>는 그 생각을 슬쩍 흔들어 놓더군요. 줄어든 게 아니라 그냥 미뤄두고 있었던 거였어요.
북유럽 카페 서평단을 통해 받아 든 이 책은 손에 쥐자마자 좀 특별했습니다. 일반 책보다 얇고,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넘기는 일본식 제본이라 처음엔 손이 어색했는데, 웹툰을 보듯 한 칸씩 따라가다 보니 금세 끝까지 읽었어요. 노란 표지 속, 고양이를 곁에 두고 따끈한 아침을 먹는 그림부터가 이미 위로였습니다. 거창한 인생 조언이 아니라 누군가의 소소한 하루를 슬쩍 들여다보는 기분이라 부담이 없었거든요.

저자는 마흔을 앞두고 도쿄에서 간사이로 돌아옵니다. 처음엔 그저 부동산 사이트에서 집 구경을 실컷 하는 '놀이'로 시작했다고 해요. 마흔이 되면 살고 싶은 집을 상상하다가 도쿄의 높은 집값을 그제야 실감하고, 결국 넓은 교외의 집을 골라 짐을 옮깁니다. 도쿄에서 만화가가 되어 원룸에서 투룸으로 살림이 자라던 시절을 게임 레벨업처럼 그려낸 장면에선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났어요. 인생의 큰 결정을 이렇게 가볍게, 놀이처럼 시작해도 되는구나 싶었습니다.

제가 자주 들춰본 건 '미뤄둔 것에 손을 뻗는' 이야기들이었어요. 저자는 20대 초반까지 잡지를 오려 스크랩북을 만들며 갖고 싶은 물건을 모으던 사람이었습니다. 정작 가난한 대학생이라 한 번도 사지 못했고, 30대에 셰프들이 쓴다는 프랑스제 주물냄비를 선물 받고도 망가뜨릴까 겁이 나 카레밖에 못 해 먹었다고 해요. 그러다 마흔이 가까워지자 태도를 바꿉니다. 간사이 집 부엌에서는 마음껏 쓰기로 하고, 그냥 끓이기만 했는데 깊은 맛이 난다는 포토푀부터 도전하다가 어느새 "지금은 완전히 헤비 유저"가 돼요. 거의 20년을 담아둔 북유럽 브랜드 텀블러도 이참에 사고는 "쓸수록 이득을 보는 기분"이라며 흐뭇해합니다.
남몰래 꿈꿔온 다이닝 테이블을 들이는 대목은 특히 재미있었어요. "언젠가 갖고 싶다"던 바람에 "지금이 그때다"라고 답하고는, 곧바로 "벌써 마흔이거든…??"이라며 살짝 발끈하거든요. 미루던 걸 더는 미루지 않겠다는 다짐을 이렇게 능청스럽게 풀어내다니, 읽다가 피식 웃고 말았습니다.

가만 보면 저도 그래왔습니다. 좋은 그릇은 손님 올 때 쓰려고 아껴두고, 마음에 드는 물건엔 '나중에'를 붙여 서랍에 넣어두곤 했죠. 그 '나중'이 대체 언제냐고, 저자처럼 스스로 따져 묻게 되더군요.
혼자 떠난 오키나와 여행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마흔을 기념하며 물건 대신 경험을 선물하기로 하고, 20대에 친구와 갔던 추억의 장소를 다시 찾아가요. 어디 가도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성격이 콤플렉스였다는 저자는 난생처음 선글라스를 사고 밝은 노랑 옷을 챙겨 길을 나섭니다. 관광객다운 옷이 없어 현지 빈티지 매장에서 "한 시간 안에 관광객다운 옷을 겟하자"며 고전하는 모습은 또 어찌나 정겨운지요. 그러면서 깨닫습니다. 여행지에서는 캐릭터가 바뀌어 평소보다 사교적이 된다는 걸요. 처음 보는 사람과 바다와 고양이 이야기로 신나게 떠들던 저자가 "마흔에야 낮가림 졸업이군"이라고 적은 한 줄에서, 나이 듦이 위축이 아니라 해방일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그런데 이 책의 진짜 무게중심은 후반부 5장, 마음 다루는 법에 있습니다. 저자는 원래 포기를 잘 못하는 성격이라 밤을 새우고 남과 자신을 비교하며 자신감을 잃던 사람이었어요. 그러다 약한 부분에 너무 매달리지 말자고, 그러려면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한다고 마음을 고쳐먹습니다. 깨달음의 뿌리가 인상적이에요. 스물아홉, 만화가의 꿈을 접기로 하고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신기한 힘이 솟아"서 일 년간 매일 쓴 그림일기 블로그가 단행본이 되어 데뷔로 이어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자는 이렇게 적어요. "포기한다는 선택지 덕분에 진짜 나 자신을 내보일 수 있었던 것 같아." 무언가를 놓는 일이 꼭 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본모습으로 가는 길일 수 있다니, 일하며 사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곱씹을 만한 문장입니다.
여기에 '잊어버리기 스위치'와 '안테나를 다시 세우기'가 이어지는데, 세 이야기가 하나의 흐름처럼 읽혀요. 안 되는 일은 놓아주고, 나쁜 기억은 비워내고, 그렇게 생긴 빈자리에 새 호기심을 채워 넣는 순환이죠. 작은 실수를 곱씹으며 "혼자서 청문회를 열어요"라던 저자가 "좋지 않은 기억은 잊어버려도 되지 않을까"라고 방향을 틀고, 긴 일을 끝낸 뒤 텅 빈 머리를 도서관 책과 만화카페와 공연으로 천천히 채워가요. "문화생활 = 마음의 양식", "40대에도 여러 가지를 섭취하고 싶어요"라는 대목에선 괜히 응원하고 싶어지더군요.
아쉬운 점을 굳이 꼽자면, 짧은 에피소드들이 빠르게 지나가는 만큼 한 주제를 깊이 파고드는 호흡은 덜합니다. 다만 이건 단점이라기보다 이 책의 성격이에요. 무겁게 가르치지 않고 곁에서 슬쩍 거드는 도서라, 부담 없이 넘기다가 마음에 드는 칸에서 잠깐 멈추면 그걸로 족합니다.

다 읽고 나니 마흔이라는 시간이 무언가를 포기하고 정리하는 내리막이 아니라, 쥘 것과 놓을 것을 스스로 고를 수 있게 되는 자유의 출발선처럼 다가왔어요. 설렘이 줄었다고 느끼는 사람에게는 잃어버린 두근거림을, 그 시기를 한참 지나온 사람에게는 손에 쥔 것들을 조금 더 가볍게 바라볼 여유를 건네줍니다. 매일을 성실히 버텨내느라 정작 자신의 취향과 바람은 뒷전으로 미뤄둔 사람이라면, 이제 그 '나중'을 '지금'으로 바꿔도 괜찮다는 한마디를 이 얇은 책에서 듣게 될 거예요.
초여름 장마가 오락가락하는 요즘, 빗소리를 배경으로 한 자리에서 넘겨보기 좋은 책입니다. 다 읽고 나면 미뤄두었던 무언가에 슬쩍 손을 뻗고 싶어질지도 몰라요. 저자가 그랬던 것처럼요.
마흔은 포기하는 나이가 아니라, 쥘 것과 놓을 것을 스스로 고르며 미뤄둔 '나중'을 '지금'으로 바꾸는 자유의 시간이라고 다정하게 일러주는 만화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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