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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시 퇴근, 성과 두 배, 덴마크의 경쟁력 제3의 시간
하리카이 유카 지음, 정지영 옮김 / 센시오 / 2026년 6월
평점 :
"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오후 4시에 일을 마치고도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나라라니, 처음엔 그냥 부러운 남의 나라 이야기로 들렸습니다. 그런데 <제3의 시간>을 손에 쥐고 보니 생각이 조금씩 바뀌더군요. 핸드북 크기에 두께도 얇아서, 가방에 넣어두고 비는 틈마다 몇 장씩 넘기기에 딱 좋았습니다. 무거운 주제를 가볍게 들고 다닐 수 있다는 점이, 이상하게 이 책의 메시지와도 닮아 있었습니다.

표지를 들여다보면 나무 인형 다섯이 나란히 서 있습니다. 배터리가 가득 찬 가운데 인형만 환하게 웃고 있고, 나머지는 표정이 가라앉은 채 배터리도 바닥을 보이거나 절반쯤 닳아 있어요. 잘 충전된 사람이 결국 웃는다는 이 단순한 그림이, 사실 책이 하고 싶은 말의 전부일지도 모릅니다.
저자 하리카이 유카는 덴마크에 15년 넘게 살아온 문화 연구가입니다. 그가 던지는 핵심 개념이 바로 '제3의 시간'이에요. 일도 아니고 집안일도 아닌,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 중요한 건 이게 일을 다 끝내고 남는 잉여 시간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오히려 이걸 지키려고 필사적으로 효율을 끌어올려 일을 끝낸다는 거죠. 일을 위해 삶을 희생하면 결국 일도 희생된다, 방전된 사람은 일도 제대로 못 한다는 것. 표지의 그림이 다시 떠오르는 대목이었습니다.

책 초반에 나오는 한국·일본·덴마크의 국가경쟁력 비교표가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비즈니스 효율성에서 덴마크는 4년 연속 1위인데, 한국은 33위, 일본은 47위예요. 적게 일하는 나라가 효율은 압도적이라는 이 역설을 어떻게 설명할까 궁금했는데, 저자는 그 비밀을 '즐기면서 변화하는 힘'에서 찾습니다. 환경이라는 딱딱한 과제를 자전거 타는 즐거움으로 바꿔낸 코펜하겐 이야기가 그 좋은 예였어요. 의무를 즐길 거리로 바꾸는 발상, 그게 덴마크다웠습니다.
책장을 넘기다 가장 손이 멈춘 곳은 사람들의 육성이 담긴 부분이었습니다. 카트리네라는 분의 말이 그랬어요. "예전에 일만 했던 걸 지금은 후회합니다. 경력을 쌓기 위해서 밤늦게까지 일했거든요. 이젠 그렇게 일하고 싶지 않아요." 아이가 집을 떠나기 전에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그 말이, 비슷한 또래를 지나는 사람으로서 마음에 남았습니다. 세 아이를 키우며 아트홀을 운영하는 헬레네는 또 어떤가요. 힘들지 않냐는 물음에 "글쎄요, 힘들지 않아요. 일상이 여유롭습니다. 전 좋은 나날을 보내고 있어요"라고 답합니다. 비결은 단순했습니다. 우선순위를 정하고, 낮은 것은 과감히 끊어낸다는 것.

오래 곱씹게 된 한마디는 '테이크 백 타임'이라는 회사를 운영하는 페르닐레의 말이었습니다. "시간을 의식적으로 주의를 기울여 쓰지 않으면, 엉뚱한 데 시간을 낭비하다가 순식간에 나이가 들고 죽어갈 겁니다." 책의 다른 대목에서는 인생이란 잘게 쪼개진 순간들로 이루어져 있다고도 말합니다. 그러니 어떤 삶을 살고 싶으냐는 물음은, 지금 주어진 하루를 어떻게 보내고 싶으냐는 물음과 다르지 않다는 거죠. 마흔 중반을 넘기고 보니 이 말이 농담처럼 들리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줄어든 게 아니라 어디론가 새고 있었던 셈이니까요.
뒤로 갈수록 '일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이 깊어집니다. 덴마크 사람들은 처음 만난 상대에게 회사가 아니라 '하는 일'을 묻는다고 해요. "○○사에서 일합니다"는 자기소개가 못 된다는 겁니다. 회사 간판이 곧 내 이름표가 되는 우리 정서와는 사뭇 다르죠. 평균 이직 횟수가 7회, 머잖아 12회로 늘 거라는 대목은 한곳에 오래 머무는 걸 미덕으로 배워온 사람에게 낯선 풍경이었습니다. 그런데 오십을 앞두고 급여가 줄어드는데도 더 의미 있는 일을 찾아 NGO로 옮긴 카트리네의 선택을 보면, 그게 단순한 변덕이 아니라 '무엇을 위해 사는가'에 대한 대답이라는 걸 알게 됩니다.
세계 최고 성과를 낸다는 젊은 연구자 니클라스 브렌보르의 비결도 의외였습니다. 맹렬한 노력이 아니라 잘 자는 것, 머리가 맑은 오전에 가장 중요한 일을 하는 것, 그리고 좋아하는 일에 몰두하는 것이었어요. "아무리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도 좋아서 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습니다." 7~8시간 충분히 자고, 50분 집중한 뒤 10분 쉬는 그의 루틴은 당장 따라 해보고 싶을 만큼 구체적이었습니다.

아쉬운 점이 없진 않습니다. 덴마크의 높은 세금과 촘촘한 복지라는 토양 없이, 4시 퇴근과 과감한 이직 같은 결과만 우리 현실에 그대로 옮기기는 쉽지 않으니까요. 다만 이 책은 제도를 베끼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시간을 의식하고, 우선순위를 정하고, 낮은 것을 끊어내는 태도라면 제도 밖에서도 시작할 수 있다고 건넬 뿐이죠. 그 정도면 충분한 출발점이라 생각합니다.
읽고 나니 떠오르는 얼굴들이 있었습니다. 회사 이름을 빼면 자신을 어떻게 소개해야 할지 막막한 사람도, 쉬는 게 죄처럼 느껴져 늘 무언가에 쫓기는 사람도, 후반부의 삶을 어떤 결로 채울지 막 고민이 시작된 또래들도 함께 떠올랐어요. 이 책은 거창한 결심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오늘 하루, 온전히 내 것이라 부를 만한 한 조각이 있었는지 가만히 물어볼 뿐입니다.
여름으로 접어드는 요즘은 해가 길어져 저녁 일곱 시에도 바깥이 환합니다. 덴마크 사람들이 평일 오후 잔디밭에 누워 보내는 그 빛 좋은 한때를, 올여름엔 저도 조금쯤 흉내 내보고 싶어졌습니다. 일을 핑계로 자꾸 미뤄두기만 했던 그 한 조각을요.
<제3의 시간>은 게으름이 아니라 '잘 쉰 사람이 잘 일한다'는 단순한 진실을, 가장 경쟁력 있는 나라의 사례로 증명해 보이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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