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차 쓰고 복수 좀 하고 오겠습니다 ㅣ 나비클럽 소설선
홍선주 지음 / 나비클럽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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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창밖으로 마천루가 늘어선 도심 사무실, 흩날리는 결재 서류, 그리고 한쪽에서 불길이 치솟는 와중에 단정한 셔츠 차림의 여성이 라이플을 들고 서 있습니다. <반차 쓰고 복수 좀 하고 오겠습니다>의 표지를 처음 봤을 때, 책상 위에 한참 세워두고 들여다봤어요. 일본 애니메이션 한 장면을 잘라 붙인 것처럼 강렬한 일러스트라, 평범한 회사 이야기가 아니라는 게 펴기도 전에 전해집니다. 일상과 비일상이 한 화면에서 부딪치는데 그 충돌이 어쩐지 속을 시원하게 만들어요.


제목도 농담이 아닙니다. 정말로 누군가 반차를 내고 복수를 하러 가요. 다만 그 복수가 험악한 그림이 아니라서, 책장을 넘길수록 자꾸 입꼬리가 올라갑니다.


주인공 최혜주의 인생 모토는 '재미'입니다. 효율을 앞세우는 인물 선웅과 정확히 대척점에 선 사람이죠. 이 사람이 회사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사건을 풀어가는데, 그 방식이 좀 독특해요. 힘으로 밀어붙이지 않고 관찰합니다. 작은 챕터 하나만 봐도 그 방식이 드러나요. 탕비실 커피믹스가 사라지는 시시한 사건을 두고 팀장이 사자성어까지 동원하며 거창하게 포장하는데, 혜주는 그 호들갑을 받아넘기면서도 정작 사건 자체는 숫자를 들여다보며 차분히 풀어냅니다. 예년 구매량과 올해 소비량을 맞춰보고 버려진 봉지 수의 어긋남을 짚어내는 식이죠. 영화처럼 용의자를 쫓게 됐다며 혼자 신나하는 대목에선 그만 웃고 말았습니다.


읽다 보면 직장인이라면 한 번쯤 마주쳤을 인물들이 줄줄이 나와요. 효율에 집착하는 사람, 남의 맞춤법을 물고 늘어지다 정작 자기 글에선 어색하게 단어를 굵게 처리하는 사람, 사소한 비용까지 회사에 청구하려는 사람까지. 작가가 실제 경험과 주변에서 들은 이야기를 상당 부분 녹였다고 밝혔는데, 그래서인지 과장이 아니라 어디서 본 듯한 생생함이 있습니다. 내 얘기가 아니라서 마음 편히 웃을 수 있고, 내 얘기 같아서 속이 후련해지는 묘한 지점에 이 소설이 있어요. 소설가 청예가 "복수와 유머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매력적인 코지 미스터리"라고 한 말이 빈말이 아니구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이 웃기고 끝나는 책이었다면 이렇게까지 길게 적지는 않았을 거예요. 뒤로 갈수록 온도가 달라집니다. 무대가 한국을 떠나 호주의 작은 카페로 옮겨가는 마지막 이야기에서, 혜주가 아닌 다른 인물이 전면에 나서요. 밝고 명랑하게 손님을 대하다가도 혼자 있을 때면 하늘을 올려다보는 그 인물의 뒷모습에, 앞선 챕터들의 유쾌함과는 사뭇 다른 쓸쓸함이 배어 있습니다. 밤늦게 홀로 누군가를 떠올리며 그리움에 잠기는 장면에 이르면, 이 책이 처음부터 가볍기만 한 이야기를 하려던 게 아니었다는 걸 알게 돼요. 웃음으로 시작해 마음 한켠을 데우며 닫히는 흐름이 참 좋았습니다.


작가의 말도 책과 잘 맞물려요. 유머를 사랑해 손글씨로 농담을 모으던 아버지와, 향유에는 큰 관심이 없으셨다는 어머니 이야기를 풀어놓는데, 그 둘이 섞여 자신이 되었다는 고백이 따뜻하면서도 능청스럽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한 줄, "인생 뭐 있습니까. 우리 모두 혜주처럼 재미있게 살아요(찡긋)." 이 문장 하나에 책 전체가 담겨 있다고 봐도 될 것 같아요.


회사 생활이라는 게 어쩔 수 없이 가면을 쓰고 정치를 견디는 일의 연속인데, 이 책은 그 답답함을 정면으로 들이받는 대신 가볍게 비틀어 보여줍니다. 그 비틀기가 후련하면서도 어느 순간 마음을 데워줘요. 매일 비슷한 하루를 견디며 어딘가 출구가 필요한 분이라면, 또 미스터리 특유의 긴장과 한 방의 시원함을 좋아하면서 가벼운 줄 알고 펼쳤다가 끝에서 뭉클해지는 책을 만나고 싶은 분이라면, 어느 쪽이든 기분 좋게 빠져들 만합니다.


비가 내리는 주말, 창에 빗줄기가 그어지는 걸 바라보며 펼치기 딱 좋은 책이었어요. 따뜻한 음료 한 잔 곁에 두고 혜주가 빌런들을 하나씩 정리해 나가는 걸 따라가다 보면, 빗소리에 묻혀 어느새 한 권을 다 넘기게 됩니다. 그렇게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재미있게 살자'는 가벼운 말 한마디가 의외로 단단한 삶의 태도로 남더라고요.


실컷 웃다가 시원했다가 끝에서 가만히 뭉클해지는, 직장인을 위한 가장 유쾌한 대리만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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