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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사랑받는 1등의 언어
유미라 지음 / 모티브 / 2026년 6월
평점 :
"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말을 잘한다는 게 도대체 뭘까. 이 책의 첫 장을 넘기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물음이었습니다. 회사에서 윗사람의 마음을 단번에 붙드는 동료, 한마디로 분위기를 부드럽게 푸는 사람을 보면서 저 사람은 원래 저렇게 타고났나 싶었던 적이 있거든요. <결국, 사랑받는 1등의 언어>는 바로 그 자리에서 출발합니다. 말 잘하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진심이 엉뚱하게 도착하지 않도록 전할 줄 아는 사람이 있을 뿐이라는 이야기로요.

저자 유미라는 연합뉴스TV 현직 아나운서이자 기업 임직원을 대상으로 스피치와 이미지를 가르쳐온 분입니다. 이 책은 북유럽 카페 서평단을 통해 받았는데, 표지부터 마음이 차분해지더군요. 옅은 미색 바탕에 보랏빛 음파가 잔잔히 번지는 디자인이, 제목이 말하는 '말의 온도'를 눈으로 먼저 느끼게 해 주었어요. 띠지의 한 줄도 오래 눈에 남았습니다. "말을 조금 바꿨을 뿐인데, 내게 다가오는 세상의 온도가 달라졌다."
이 책에서 제가 가장 깊이 머문 자리는 뜻밖에도 뒤쪽, 경청을 다루는 장이었습니다. 처음엔 직장인다운 마음으로 회의와 협상 파트를 기대하며 펼쳤거든요. 실제로 그 부분도 알찼습니다. 기 센 사람 앞에서 작아지는 게 목소리 크기 때문이 아니라 흔들리지 않는 중심에서 주도권이 나온다는 설명, 날카로운 반대를 부정으로 받지 않고 푹신하게 흡수하는 쿠션 언어, '하지만' 대신 '그리고 거기에 덧붙여'를 써서 두 의견이 함께 가는 모양새를 만들라는 조언까지. 당장 다음 회의에서 시험해보고 싶을 만큼 손에 잡혔습니다. 협상은 이기는 게임이 아니라 상대를 내 편으로 만드는 예술이라는 저자의 말처럼, 이기려는 마음을 내려놓을 때 오히려 결과가 따라온다는 역설이 자기계발서답지 않게 담백했고요.

그런데 책장을 넘길수록 무게 중심이 슬며시 옮겨갑니다. 비즈니스의 날카로움으로 문을 열어놓고, 뒤로 갈수록 사람 쪽으로, 관계 쪽으로 걸음을 돌리거든요. 가장 소중한 사람에게 가장 큰 상처를 주기도 하고 가장 큰 위로를 얻기도 한다는 대목 앞에서 읽는 속도가 한 번 느려졌습니다. 익숙하다는 이유로 예의를 잊거나, 위한다는 명목으로 내 방식을 밀어붙이며 사랑의 온도를 떨어뜨린다는 지적이 영 남 얘기 같지 않더군요.

경청을 진정한 의미에서 다시 정의하는 부분이 그래서 오래 남았습니다. 저자는 그것을 입을 닫고 온몸으로 상대의 세계에 들어가는 환대의 행위라고 부릅니다. 특히 상대를 위한답시고 건네는 "나도 그런 적 있어"가 실은 대화의 주인공 자리를 내 쪽으로 슬쩍 가져오는 가로채기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은, 읽으면서 뜨끔했습니다. 좋은 뜻으로 한 말이 오히려 듣기를 멈추게 만든다는 걸 짚어주거든요. 경청은 내 이야기를 들려주는 시간이 아니라 상대의 이야기가 길을 잃지 않도록 끝까지 함께 걷는 시간이라는 말. 세상 모두가 자기 말만 하려 할 때 묵묵히 끝까지 들어주는 한 사람만 있어도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는 문장에 이르면, 이 책이 말하기 기술서가 아니라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 관한 책이었다는 걸 알게 됩니다.
여기까지 따라오면 앞쪽의 진단 이야기가 새삼 다르게 읽힙니다. 성격을 보는 검사에는 그렇게 관심이 많으면서 정작 인생을 좌우하는 말하기 방식에는 무심하지 않았느냐는 물음, 그동안 입만 열면 손해 봤던 게 인격 탓이 아니라 그저 유형과 상황이 어긋났을 뿐이라는 진단. 결국 나를 들여다보는 일과 남을 듣는 일이 한 뿌리였던 셈입니다.

말의 내용 못지않게 몸짓이 먼저 말을 건다는 후반부도 인상적이었습니다. 펜을 딸깍이거나 다리를 떠는 무심한 습관, 저자가 비주얼 노이즈라 부르는 것들 말이죠. 품격은 화려한 제스처를 더하는 게 아니라 불필요한 소음을 덜어내는 정돈된 멈춤에서 시작된다는 관점이, 더하기보다 빼기에 가깝다는 점에서 표지의 그 한 줄과 정확히 맞닿습니다. 미팅 자리에는 따뜻한 파스텔 톤이 상대의 경계심을 누그러뜨린다는 조언을 읽으며, 표지의 부드러운 색감을 한 번 더 들여다보기도 했고요.
아쉬운 점을 굳이 꼽자면, 영어로 정리된 개념이 더러 많아 처음에는 빠르게 눈에 들어오지 않을 수 있습니다. 다만 하나하나 일상의 장면으로 풀어주는 구성이라, 천천히 따라 읽으면 결국 손에 잡히게 정리되더군요.
읽고 나서 떠오른 얼굴들이 있었습니다. 회의실에서 늘 한 박자 밀린다고 느끼며 스스로를 탓해온 사람, 그리고 정작 가까운 이 앞에서 말이 자꾸 엇나가 마음이 무거웠던 사람. 서평단으로 만난 책이지만, 다 읽고 나니 책장 잘 보이는 곳에 두고 가끔 펼쳐볼 안내서가 한 권 늘었습니다.
창밖으로 비가 종일 내리는 주말입니다. 빗소리에 바깥의 소음이 한 겹 걸러지니, 평소보다 말과 마음을 들여다보기에 더없이 좋은 시간이더군요. 말의 온도를 다룬 이 책이 이런 날과 잘 어울리는 건, 빗소리에 기대 가만히 누군가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일이 어떤 건지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해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건네는 말의 결을 차분히 점검해보고 싶은 분이라면, 이런 주말 오후에 곁에 두기 좋은 한 권입니다.
말을 조금 바꾸는 일이 결국 사람과의 거리를 바꾼다는 것. 이 한 권이 담담하게 일러주는 건 그 한 가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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