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기원 - 고대 DNA가 말하는 호모 사피엔스의 ‘위대한 여행’
시노다 겐이치 지음, 김소연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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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책을 받고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건 표지의 노란색이었어요. 핸드북 크기인데도 제법 두툼해서 손에 묵직하게 잡히더라고요. 원시인을 닮은 붉은 형상에 이중나선이 겹쳐진 그림이, 동굴 벽화 같기도 하고 생물 교과서 도판 같기도 했어요. 책을 펴기도 전에 '우리는 대체 어디서 왔을까' 하는 질문이 표지에 먼저 적혀 있는 기분이었습니다.


저는 진화나 유전학을 따로 공부한 적 없는 평범한 직장인이거든요. 그래서 고대 게놈 분석이라는 어려운 이야기를 일반 독자 눈높이로 풀어 준 책이 늘 반가웠어요. 북유럽카페 서평단으로 이 책을 받았을 때 망설임 없이 손을 든 것도 그래서였고요. 뼈 한 조각에서 수십만 년 전의 사연을 읽어 낸다니, 그것만으로 책장을 넘기고 싶어졌습니다.


멸종이 아니라 숨은 조상이었다는 발견

제일 먼저 마음을 붙든 건 2장이었어요. 네안데르탈인은 1856년 독일에서 처음 발견된 뒤로 오랫동안 우리와 무관하게 사라진 존재로 여겨졌거든요. 1997년 미토콘드리아 DNA 분석은 이들과 우리 사이에 교류가 없었다는 쪽으로 기울었는데, 이후 핵 게놈 해독이 그 결론을 뒤집었어요. 2010년 빈디야 동굴 표본 분석을 통해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를 제외한 현대인의 게놈에 네안데르탈인 DNA가 일정 비율 섞여 있고, 그 비율이 유럽인보다 동아시아인에게서 조금 더 높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저자가 적은 "네안데르탈인은 그냥 멸종된 게 아니라 우리의 숨은 조상이었다"는 문장 앞에서 책장을 한참 넘기지 못했어요. 학창 시절 교과서에서 진화의 곁가지로만 배웠던 존재가, 알고 보니 제 몸 안에도 흔적을 남긴 조상이었던 셈이거든요.


데니소바인 이야기는 또 다른 결의 놀라움을 안겨 줬어요. 손가락뼈 한 조각과 DNA만으로 정체가 규명된 최초의 인류라는 점도 흥미로웠지만, 고지대에 적응한 현대 티베트인의 유전자가 데니소바인에게서 비롯되었다는 대목이 특히 그랬습니다. 인류의 역사가 단선이 아니라 여러 갈래가 얽힌 그물이었다는 걸 그제야 알게 됐어요. 단백질 질량분석법인 ZooMS로 13만 점이 넘는 미세한 뼛조각 가운데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의 혼혈 소녀를 찾아낸 과정은, 작은 단서를 끈질기게 붙드는 과학의 태도를 그대로 보여 줍니다.


우리에게로 이어지는 긴 여정

후반부로 갈수록 이야기는 동아시아와 일본열도로 가까이 다가와요. 아프리카를 떠난 호모 사피엔스가 남방과 북방의 두 경로로 갈라져 아시아 곳곳에 자리 잡는 과정, 그리고 베이징 부근의 톈위안 동굴 게놈이나 1만 3천 년에 걸쳐 이어진 조몬인의 계통이 차례로 등장하거든요.


눈길이 오래 머문 건 조몬인이 단일한 집단이 아니라 서로 다른 두 계통이 합류해 형성된 복합 집단이었다는 설명이었어요. 미토콘드리아 하플로그룹 M7a와 N9b가 동서로 나뉘어 분포한다는 분석, 그리고 규슈의 특수한 N9 계통이 한반도를 거쳐 들어왔을 가능성을 짚는 대목에서는, 한국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우리 땅이 이 거대한 이동의 한 길목이었다는 걸 떠올렸습니다. 조몬인과 가장 많은 유전체를 공유하는 집단이 아이누이고, 그다음이 오키나와, 그 뒤로 본토 일본인이라는 순서도 쉽게 지나치지 못했어요. 한국인과 연해주 원주민, 대만 원주민이 소량이나마 그 흐름에 닿아 있다는 사실은, 국경으로 나뉜 오늘의 지도와는 사뭇 다른 그림을 펼쳐 보여 줍니다.


차이보다 큰 공통성

책을 덮으며 가장 깊이 남은 건 종장이었어요. 폴 고갱의 그림 제목에서 빌려 온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라는 물음을 따라, 저자는 게놈이 들려주는 의외의 진실을 담담히 풀어냅니다.


핵심은 단순하면서도 묵직했어요. 우리가 흔히 의식하는 집단 사이의 차이가, 정작 같은 집단 안에서 두 사람이 지닌 차이보다 작다는 거예요. 인종이 뚜렷이 갈리는 듯 보이다가도 비교 대상을 넓히면 그 경계가 연속적으로 풀어져 사라진다고 저자는 설명하거든요. 그래서 "인종 구분은 과학적, 객관적인 것이 아니라 자의적인 것임을 알아야 한다"고 단언하면서, 이 책에서 '인종'이라는 말을 쓰지 않았다고 밝힙니다.


민족이라는 개념도 인류사의 척도에서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고,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점차 생물학적 실체를 잃어 갈 거라고 저자는 내다봐요. 현재를 도달점으로 여기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당부도 자꾸 곱씹게 됩니다. 각 개인을 호모 사피엔스라는 거대한 망의 한 매듭에 빗댄 비유가 특히 마음에 남았어요. 밝은 빛도 차가운 빛도 있겠지만 정작 중요한 건 개개의 색이 아니라 매듭이 있다는 사실 자체라는 문장은, 우열을 따지는 일이 얼마나 부질없는지를 일러 줍니다. 차이를 헤아리는 데 익숙한 사회에서 그 차이보다 훨씬 큰 공통성을 과학의 언어로 짚어 주는 일이, 생각보다 큰 위로가 됐어요.


아쉬운 점을 굳이 꼽자면, 분야 특성상 유전학 용어와 표본 이름이 잇따라 나오는 대목에서는 처음 접하는 독자가 잠깐 걸음을 멈추게 될 수 있다는 정도예요. 다만 저자가 곳곳에 비유와 정리를 놓아 둔 덕분에, 천천히 따라가면 길을 잃을 만큼은 아니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이 책은 인류의 기원이 궁금하지만 전문서는 부담스러웠던 분, 그리고 오늘의 갈등과 구분 너머에서 우리가 본래 얼마나 가까운 존재인지를 차분히 들여다보고 싶은 분께 잘 어울립니다.


초여름의 긴 해가 저무는 저녁, 손바닥만 한 이 책이 펼쳐 보인 수십만 년의 이야기는 의외로 따뜻했어요. 멀리 떨어진 듯 보이는 우리가 실은 하나의 그물로 이어진 매듭이라는 것, 그게 이 책이 남긴 가장 큰 울림이었습니다.


뼈 한 조각과 게놈이 들려주는 수십만 년의 여정 끝에서, 차이보다 큰 공통성과 만나게 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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