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의 문장, 삶이 달라지는 기록 - 고전에서 길어 올린 인문 사유 100
김이율 지음 / 시원북스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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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요즘 같은 시기에 손으로 무언가를 쓴다는 게 점점 드문 일이 되어 갑니다. 메모도 일정도 다 화면 안에서 끝나니까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이가 들수록 펜을 쥐고 종이에 글자를 눌러 쓰던 감각이 그리워질 때가 있어요. <필사의 문장, 삶이 달라지는 기록>은 바로 그 감각을 다시 불러내는 책입니다. 북유럽 카페를 통해 서평단으로 받아 든 한 권인데, 표지를 처음 봤을 때부터 책장에 오래 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갈색과 베이지가 차분하게 어우러진 표지는 요란한 데가 없어요. 금색 곡선이 고서처럼 테두리를 두르고 있고, 펜촉을 닮은 깃털 문양이 단정하게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부제는 ‘고전에서 길어 올린 인문 사유 100’. 카피라이터로 오래 일한 김이율 작가가 카뮈와 카프카, 헤세와 톨스토이, 니체와 노자에 이르기까지 동서고금의 고전 백 편을 골라 핵심을 현대의 언어로 다시 풀어낸 안내서입니다.


구조가 재미있습니다. 왼쪽 페이지에는 고전을 압축한 작가의 짧은 글이 놓여 있고, 오른쪽은 그 문장을 직접 따라 쓸 수 있도록 줄만 그어진 채 비어 있어요. 읽고, 쓰고, 그다음 ‘삶의 질문’에 스스로 답해 보는 흐름입니다. 출판사가 적어둔 한 줄이 이 책의 태도를 잘 말해줍니다. “눈으로 스치면 기억에 남고, 입으로 읽으면 귀에 남지만, 손으로 적으면 뼈에 남습니다.” 지식을 머리에 쌓는 책이 아니라, 몸을 통과시켜 태도로 바꾸려는 책이라는 뜻이겠지요.


백 편은 ‘실존, 관계, 성장, 선택, 성숙’이라는 다섯 단계로 묶여 있습니다. 삶의 의미를 묻는 데서 출발해 관계 속에서 자신을 비춰 보고, 고통을 지나며 자라고, 자유와 책임의 무게를 감당하다가, 마침내 지혜롭게 깊어지는 순서예요. 목차를 죽 따라 읽다 보면 이게 단순한 분류가 아니라 한 사람이 살아가며 차례로 통과하는 시기처럼 느껴집니다. 마흔 후반의 자리에서 보니 더 그렇더군요.


나는 정말 살아온 것인가, 아니면 그저 맞춰온 것인가.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옮긴 글은 이 물음 하나로 사람을 멈춰 세웁니다. 흠 없이 사회의 기준에 맞춰 살아온 한 사람이, 끝이 다가올수록 어딘가 어긋나 있었다는 감각에 사로잡힌다는 이야기예요. 평소 우리는 죽음을 자꾸 멀리 밀어두지만, 끝을 떠올리는 순간 삶은 전혀 다른 얼굴을 드러내고 무엇이 중요한지가 분명해진다고 작가는 말합니다. 아래에 적힌 질문, “나는 진짜 살고 있는가, 그저 시간을 보내고 있는가”를 옮겨 쓰는데 펜이 쉽게 나가지 않았어요. 답을 알아서가 아니라, 답을 미뤄온 세월이 떠올라서였습니다.


플라톤의 <국가>를 풀어낸 ‘동굴 밖의 세계’는 좀 다른 방식으로 불편했습니다. 벽에 비친 그림자를 전부라 믿고 살던 사람이 밖으로 나가 진짜 세계를 보지만, 돌아와 말해도 아무도 믿어 주지 않는다는 그 오래된 비유 말입니다. 작가는 여기에 날을 하나 세웁니다. “익숙한 것, 편안한 것, 의심하지 않는 것. 그것이 전부라고 여기는 순간 동굴은 완성된다.” 나이가 들수록 굳은 판단과 익숙한 습관이 늘어나는데, 그걸 지혜라고만 여겼지 동굴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좀처럼 해보지 못했습니다. “진리는 불편하다. 눈을 아프게 한다”는 문장이 괜히 따라온 게 아니더군요.


관계를 다룬 장에서는 D.H. 로렌스의 <아들과 연인>을 옮긴 ‘사랑과 자유’가 가장 아팠습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의 감옥이 가장 빠져나오기 어렵다고 작가는 적습니다. 죄책감과 애정이 뒤엉켜 있기 때문이라고요. “붙잡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소유다”, “사랑은 상대가 온전히 자신으로 살도록 돕는 것이다.” 자식을 키우는 부모라면, 또 함께 늙어가는 배우자를 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걸려 넘어질 대목입니다. 곁에 두고 싶은 마음이 어느새 붙드는 손이 되어 있지는 않은지, 책은 답을 주는 대신 그 자리를 가만히 비춰 줍니다.


이 세 편이 가장 깊게 남았지만, 다른 글들도 곳곳에서 발걸음을 늦추게 했습니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을 옮긴 글에서는 “의미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반복되는 실천 속에서 만들어진다”는 문장이 이 책의 형식 자체와 겹쳐 보였고, 위니콧의 <놀이와 현실>을 풀어낸 ‘성장에는 멈춤이 필요하다’에서는 계속 움직이는 것이 실은 불안을 피하는 방식일 수 있다는 통찰에 한 방 맞은 기분이었어요. 멈추면 뒤처진다고만 믿어온 사람에게 “속도가 아니라 안정성에서 진짜 성장이 시작된다”는 말은 낯설면서도 위안이 되었습니다. 메이 사턴의 <일흔의 일기>를 옮긴 마지막 장에서는, 나이 듦을 소멸이 아니라 깊어짐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오래 남았고요.


좋은 책에도 작은 아쉬움은 있습니다. 제본이 그래요. 따라 쓰기를 권하는 책인데 정작 책이 끝까지 펼쳐지지 않아서, 글씨를 쓰는 동안 한 손으로 책을 눌러 잡아야 했습니다. 손으로 글자를 옮기는 시간이 본래 마음을 가라앉히는 데 도움이 되는데, 자꾸 책장이 닫히려 하니 그 고요함이 가끔 끊기더군요. 펼침이 편한 제본이었다면 이 책의 취지가 한층 살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이 책이 좋았던 이유는 분명합니다. 백 편의 고전을 ‘아는 지식’으로 늘어놓지 않고, 손으로 통과시켜 ‘살아가는 태도’로 바꾸려 한다는 점이에요. 빠르게 읽어 치우는 책이 아니라, 하루에 한 편씩 천천히 곁에 두는 책입니다. 서평단으로 만난 여러 책 중에서도 이렇게 오래 책상에 펼쳐두게 되는 경우는 흔치 않았습니다. 답보다 좋은 질문이 아쉬운 때가 있지요. 인생의 어떤 모퉁이에서 그런 갈증을 느끼는 분이라면, 이 책이 서두르지 않는 동행이 되어 줄 거라 생각합니다.


초여름으로 접어드는 요즘, 해가 길어져 저녁에도 환한 빛이 한참 남아 있습니다. 그 시간에 책상 앞에 앉아 문장 하나를 천천히 옮겨 적다 보면, 하루의 소란이 조금씩 가라앉는 걸 느낍니다. 이 책은 그렇게 하루의 끝자락에 잘 어울리는 한 권이었습니다.


백 편의 고전을 읽고, 쓰고, 묻는 사이에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물음 앞으로 천천히 데려다 놓는 필사 인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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