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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기의 지금 다시 경제학
최진기 지음 / 스마트북스 / 2026년 6월
평점 :
"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요즘 마트 계산대 앞에 서면 영수증 숫자가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분명히 늘 사던 것들인데 합계는 자꾸 올라가 있고, 그에 비해 통장에 찍히는 숫자는 좀처럼 움직이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최진기의 지금 다시 경제학> 표지에 적힌 "왜 내 월급만 빼고, 모든 게 다 오르는가?"라는 한 줄을 봤을 때, 이건 그냥 마케팅 문구가 아니라 제 속마음을 그대로 옮겨 적은 것 같았어요. 북유럽 카페 서평단으로 이 책을 받게 되었을 때 가장 먼저 펼쳐보고 싶었던 것도 바로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이었습니다.
저자 최진기는 오랫동안 어려운 경제를 쉬운 말로 풀어온 분이죠. 이번 책에서는 아예 도표나 그래프를 한 장도 쓰지 않았다고 하는데, 처음엔 의아했지만 읽다 보니 이유를 알겠더라고요. 지금처럼 돈의 가격 자체가 비정상이 된 시대는 숫자만 들여다봐서는 풀리지 않고, 경제를 정치와 철학의 눈으로 봤던 옛 경제학자들의 지혜로 돌아가야 한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었습니다. 비트코인 급등, 소득과 무관하게 치솟는 집값, 여전히 강한 달러, 트럼프의 보호무역, 갈수록 벌어지는 빈부격차 같은 여섯 장면을 거시·미시·경제사·화폐금융이라는 네 개의 창으로 차례차례 들여다보는 구성입니다.

가장 먼저 무릎을 친 건 물가를 다룬 부분이었어요. 우리가 뉴스에서 "물가가 3% 올랐다"는 말을 들을 때, 그 숫자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저는 한 번도 제대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거든요. 책에 따르면 같은 상황도 단순물가지수로 계산하면 60% 상승으로 나오지만, 거래 빈도에 가중치를 주는 종합물가지수로 다시 정리하면 30% 상승으로 줄어든다고 합니다. 어느 쪽이 틀린 게 아니라, 무엇에 무게를 두느냐에 따라 같은 현실이 전혀 다른 숫자로 둔갑하는 거예요.
더 인상적이었던 건 그 숫자를 낮게 잡으려는 동기가 따로 있다는 대목입니다. 물가가 올랐다는 지표는 금리 인상으로, 다시 경기 침체와 집권 세력의 실패로 이어지기 때문에, "모든 세계의 모든 집권 정당이 이끄는 정부는 물가지표를 낮게 잡으려고 노력한다"고 책은 짚습니다. 기업도 슬그머니 양을 줄이는 슈링크플레이션, 품질을 몰래 낮추는 스니크플레이션으로 가격을 숨긴다고 하니, 체감 물가가 발표 수치보다 늘 높게 느껴지는 게 제 착각이 아니었던 셈이에요. 슬라이스 치즈가 어느새 열 장에서 여덟 장으로 줄어 있었다는 예시는 누구나 한 번쯤 겪어봤을 일이라 더 와닿았습니다.

책의 뒷부분으로 갈수록 이야기는 더 깊어집니다. 화폐와 금융을 다룬 장에 나오는 폴 볼커의 이야기가 특히 그랬어요. "파티장에서 펀치볼을 치워서 분위기를 깨던 연준이, 어쩌다 파티를 개최하는 연준이 되었을까?"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데, 1980년대 초 물가를 잡겠다고 금리를 20%까지 끌어올렸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그 고통스러운 긴축이 어떻게 신자유주의와 금융화의 길을 열었는지, 그리고 레이건이 규제를 풀고 볼커를 그린스펀으로 교체하면서 자산 버블과 빈부격차가 어떻게 구조로 굳어졌는지를 짚어가는 솜씨가 단단했습니다. "활황이 노동자의 단결을 만들어낸다면, 긴축은 노동자의 분열을 만들어냈다"는 한 문장이 그 시대 전체를 요약해주는 듯했고요. 결국 값싼 수입 덕에 물가는 안정된 듯 보였지만, 그 이면에서 "자산 버블은 성장의 결실로, 불평등은 능력주의의 결과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는 진단은 지금 우리 현실에도 그대로 포개집니다.
경제사를 다룬 장에서는 오스트리아 학파를 소개하는 부분이 흥미로웠습니다. 물과 다이아몬드를 비교하면서, 결국 물건의 값은 그 자체에 정해져 있는 게 아니라 사람이 처한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고 설명하는 대목이 그렇습니다. 사막에서는 생수 한 병이 다이아몬드보다 귀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경제학을 모르는 사람도 고개를 끄덕이게 되죠. 노동자와 자본가의 관계를 착취가 아니라 위험을 감수한 대가로 다시 읽어내는 관점은 동의 여부를 떠나 모두가 받아들이긴 어렵겠지만,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던 틀을 한 번쯤 흔들어본다는 점에서 읽을 가치가 충분했어요. 저자도 특정 답을 강요하기보다, 오래된 논쟁들을 꺼내 지금의 혼란을 비춰보게 하는 쪽에 가깝습니다.

이 책의 미덕은 불안한 시대를 손쉬운 투자 기회로 포장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고 생각해요. 흔한 재테크 책처럼 "지금이 기회"라고 부추기는 대신, 왜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의 돈만 자꾸 가벼워지는지 그 구조를 차분히 설명해줍니다. 답을 떠먹여주지는 않지만, 적어도 내가 발 딛고 선 자리가 어떤 지형인지는 알게 해주는 책이에요. 굳이 아쉬움을 꼽자면 다루는 주제가 워낙 넓다 보니 어떤 장은 더 깊이 들어갔으면 싶은 대목에서 다음으로 넘어가기도 하는데, 입문서이자 안내서라는 성격을 생각하면 큰 흠은 아니었습니다.

매달 월급으로 살림을 꾸리면서 뉴스 속 경제 이야기가 늘 남의 나라 말처럼 들렸던 분이라면, 이 책이 좋은 통역사가 되어줄 겁니다. 자산을 어떻게 굴릴지 고민하기 전에 지금 이 시대가 왜 이렇게 굴러가는지부터 이해하고 싶을 때 펼치기에도 좋고요. 무엇보다 경제를 숫자가 아니라 사람과 권력의 이야기로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더없이 반가운 한 권일 거예요.
장마를 앞둔 유월의 눅눅한 공기 속에서 이 책을 덮으며, 막막하게만 느껴지던 경제라는 안개가 조금은 걷힌 기분이 들었습니다. 모든 것을 알게 된 건 아니지만, 적어도 내 월급만 제자리인 이유가 게으름 탓이 아니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더라고요.
내 월급만 빼고 다 오르는 시대, 그 비정상의 정체를 차분히 들여다보게 해주는 친절한 안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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