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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딩 피플
앨리슨 에스파흐 지음, 김보람 옮김 / 북로망스 / 2026년 5월
평점 :
"이 글은 북로망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직접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며칠 전 북로망스에서 책 한 권을 받았습니다. 앨리슨 에스파흐의 <웨딩 피플>. 겉은 깊은 블루인데 표지를 넘기면 안쪽이 환한 핑크였습니다. 푸른 밤하늘에서 분홍빛 새벽으로 넘어가는 듯한 이 색의 대비가, 책을 다 읽고 나니 그저 디자인이 아니라 이야기 전체를 한 장으로 압축한 그림이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미국 로드아일랜드의 절벽 위, 19세기풍 고급 호텔이 무대입니다. 화요일부터 그다음 주 월요일까지, 한 결혼식 주간 동안 벌어지는 일을 요일별로 따라갑니다. 그런데 이 호텔에 빈손으로 들어온 여자가 있습니다. 이혼한 대학교수 피비. 짐 가방 하나 없이 녹옥색 원피스만 걸치고 와서, 프런트 직원이 짐을 묻자 “없다”고 답합니다. 그가 이곳에 온 이유는 조용히 생을 마치기 위해서였습니다.
읽는 내내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죽으러 온 사람의 이야기인데, 페이지마다 웃음이 터집니다. 카일리 제너와 킴 카다시안 농담, 21달러짜리 땅콩호박 토스트를 두고 티격태격하는 사람들, 159개나 되는 입가심 숟가락. 결혼식 문화의 허세를 콕콕 찌르는 위트가 어찌나 촘촘한지, 헐리우드 로맨틱 코미디 한 편을 보는 듯한 장면이 줄줄이 이어집니다. 그러면서도 그 웃음 바로 밑에는 죽음과 상실이 깔려 있습니다. 가벼운 농담 한 줄과 무거운 슬픔 한 줄이 같은 문장 안에서 서로를 붙들고 있는데, 그 솜씨가 어찌나 자연스러운지 읽다가 몇 번이나 멈칫했습니다.

이야기의 또 다른 축은 신부 라일라입니다. 100만 달러를 들여 완벽한 결혼식을 준비하는 여자. 프랑스에서 6개월 전에 배송받은 샴페인 잔까지 갖췄지만, 정작 결혼식 당일 차가 평범한 세단이라는 이유로 입구 계단에 주저앉습니다. 죽으려는 여자와 완벽을 좇는 신부. 정반대로 보이는 두 사람이 일주일을 함께 보내며, 서로가 쓰고 있던 가면을 한 겹씩 벗겨 냅니다.
이 소설을 읽는 즐거움 가운데 하나는, 변화의 순간들이 결코 무겁게 쏟아지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제가 특히 오래 들여다본 대목 세 군데를 적어 봅니다.
첫 번째는 화요일, 도착 장면입니다. 모두가 새로운 시작을 축하하러 온 호텔에 죽으러 온 사람이 섞여 있다는 설정 자체가 지독한 아이러니입니다. 피비를 기다리는 호텔을 “위엄 있는 늙은 개”에 빗대고, 체크인 줄에 선 사람들을 “티타늄 급 강도의 튼튼한 여행객”이라 부르는 문장들에서, 이 작가가 슬픔을 다루는 손길이 얼마나 가벼운지 짐작했습니다. 그러나 그 가벼움은 결코 얕은 자리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두 번째는 목요일, 처녀파티가 열리던 날의 낚시터입니다. 피비가 “위험한 추락”이라 적힌 경고판을 무시하고 절벽으로 내려가 어부를 돕고, 떠돌이 개와 달리기를 하고, 어두운 물속에서 물고기 한 마리를 끌어 올립니다. 깊고 캄캄한 물에서 환하고 충격적인 세상으로 끌려 나온 물고기의 ‘살려는 의지’가, 죽으려던 사람의 마음에 처음으로 균열을 냅니다. 죽는 건 쉽지만 하루를 더 살아내는 일이야말로 큰 행운이라는 깨달음. 강아지 한 마리를 키우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이 회복의 첫걸음이 되는 그 흐름이 무척 좋았습니다.

세 번째는 일요일, 본식입니다. 자동차 한 대 때문에 무너진 라일라가 사실은 더 깊은 진실을 꺼내는 장면. “게리 씨는 저를 안 사랑해요. 내가 받고 싶은 사랑이 아니에요”라고 말하고, 곧이어 자기도 게리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인정합니다. 이때 피비는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저 입을 닫습니다. 어설픈 거짓말로 자기 상태를 둘러대던 화요일의 피비와 가장 멀어진 지점이 바로 이 침묵이었습니다.
그 직후, 피비가 라일라에게 건네는 들러리 축사가 이 책에서 제가 가장 아낀 대목입니다. 피비는 “이 결혼식은 결코 낭비가 아니라는 것도 사실이에요. 전 이곳에 죽으러 온 사람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지금 내 모습을 봐요”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라일라에게, “라일라 씨 덕분에 이번 주 내내 저한테 아침에 일어날 이유가 있었어요. 예쁜 원피스를 입을 이유가, 무언가의 일부가 될 이유가 있었어요. 평생 잊지 않고 고마워할게요”라고 합니다. 두 사람이 함께 눈물을 흘리는 그 자리에서, 죽으러 온 사람이 살아갈 이유를 결혼식에서 찾았다는 이야기의 한가운데에 닿게 됩니다.

결말은 어느 하나 깔끔하게 매듭짓지 않으면서도 환합니다. 라일라는 면사포를 벗어 들고 결혼식을 멈추고 캐나다로 떠나, 어머니와 푸틴을 먹는 여자가 됩니다. 게리는 묘지에서 잠든 밤을 지나 처음으로 자기 감정을 솔직히 들여다보고, 피비는 호텔의 ‘겨울 관리인’이 되기로 합니다. 마지막 페이지에서 피비는 로비 책장에 <댈러웨이 부인>을 다시 꽂고, 처음 왔던 날처럼 세상을 무대 소품처럼 바라보고 싶은 유혹을 느끼지만, “이내 암적색 옷을 입은 남자에게 팁을 건네고, 세상 속으로 걸음을 내딛”습니다. 빈손으로 들어왔던 여자가 여행 가방을 끌고 세상 밖으로 걸어 나가는 장면. 시작과 끝이 정확히 마주 보며 닫히는 이 마무리가 오래 남았습니다.
버지니아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을 현대로 옮겨 놓은 듯한 작품이라는 평이 괜한 말이 아니었습니다. 단 며칠의 시간 안에 한 사람의 생 전체를 압축해 담는 솜씨가 그렇습니다. 다만 울프가 의식의 흐름으로 무겁게 가라앉는다면, 에스파흐는 같은 깊이를 유머로 떠올립니다. 그래서 더 많은 독자에게 가닿을 수 있는 이야기가 되었다고 봅니다.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영화 한 편이 머릿속에 그려집니다. 절벽 위 호텔, 화려한 결혼식, 정반대의 두 여자, 그리고 죽음과 웃음이 손을 맞잡는 대사들. 실제로 소니 픽처스에서 영화화가 확정됐다고 하니, 이 장면들이 스크린에서 어떻게 살아날지 벌써부터 기다려집니다. 책장을 덮으며 든 생각도 비슷했습니다. 완벽한 결혼식이 아니어도, 빈손으로 도착했어도, 하루를 더 살아내는 일에는 그 자체로 값이 있다는 것. 무언가를 빈틈없이 ‘진행’시켜야만 제대로 살고 있다고 믿어 온 마음에, 이 책은 조용히 다른 길을 일러 줍니다.

여름의 초입, 바깥 공기가 점점 무르익는 이맘때 읽기에 잘 어울리는 책이었습니다. 햇살은 환한데 마음 한쪽이 자꾸 서늘해지는 날이 있다면, 그런 날 이 호텔에 며칠 머물다 오시면 좋겠습니다.웨딩피플 속으로...
죽으러 온 여자가 남의 결혼식에서 살아갈 이유를 되찾는, 죽음을 말하면서 이만큼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하는 드문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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