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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완벽한 장례식
조현선 지음 / 북로망스 / 2026년 1월
평점 :

가끔 마음이 가라앉는 날에는 이상하게도 죽음을 다룬 이야기에 더 손이 갑니다. 무겁게 짓누르는 이야기가 아니라, 가만히 옆에 앉아 어깨를 토닥여 주는 그런 이야기 말입니다. 북로망스 출판사를 통해 직접 받아 본 조현선 작가의 <나의 완벽한 장례식>이 꼭 그런 책이었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표지에 먼저 마음이 갔습니다. 주황빛과 보랏빛이 부드럽게 어우러진, 한눈에 봐도 세련된 디자인이었습니다. 작은 가게에서 새어 나오는 등불 같은 불빛, 챙 넓은 모자를 쓴 누군가의 실루엣. 어딘가 동화 같으면서도 묘하게 마음을 끄는 그림이었지요. 그런데 그 그림 위에 얹힌 제목이 결정적이었습니다. <나의 완벽한 장례식>. '완벽한 장례식'이라니, 도대체 어떤 장례식이 완벽할 수 있다는 걸까. 그 호기심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습니다.

저처럼 나이가 들수록 '장례식'이라는 단어는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게 됩니다. 최근 몇 달 사이에도 장례식장을 두 번이나 다녀왔습니다. 검은 옷을 입고 돌아오는 길마다, 떠난 이들이 마지막 순간에 무슨 생각을 했을지 자꾸 떠올리게 되더군요. 그런 마음이 이 책의 제목에 더 깊이 끌렸던 이유였습니다.
이야기는 작은 병원 곁에 딸린 매점에서 펼쳐집니다. 갓 스무 살이 된 나희는 분식집을 하시는 아버지의 형편이 넉넉지 않아, 대학 등록금을 스스로 마련하려고 이 병원 매점의 야간 근무를 시작합니다. 그런데 새벽 두 시, 이 매점에는 평범하지 않은 손님들이 찾아옵니다. 그림자가 없고, 존재감이 희미한 사람들. 바로 세상을 떠난 이들입니다.
나희는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능력으로 그들을 볼 수 있습니다. 오래전 어머니를 떠나보내며 한동안 닫혀 있던 그 능력이, 스무 살 무렵 다시 열린 것이지요. 처음에는 무서워서 음악 소리를 키우고 휴대폰만 들여다보던 나희가, 차츰 이 손님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되는 과정이 이 책의 큰 줄기입니다.

이 죽은 이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떠나기 전 미처 끝내지 못한, 마음에 걸리는 단 하나의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작중에서 죽은 사람을 볼 수 있는 또 다른 인물 김수영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들은 죽는 순간 마음을 꽉 잡고 있던 한 가지만 기억해. 죽음의 충격이 너무 커서 진짜 원하는 바를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거지."
표지에도 적힌 이 문장은, 책을 다 읽고 나면 그 무게가 사뭇 다르게 다가옵니다. 우리가 끝내 붙잡고 놓지 못하는 그 한 가지는 무엇일까. 나희는 그들이 미처 전하지 못한 마지막 부탁을 하나씩 들어주고, 그렇게 그들은 비로소 가벼운 마음으로 작별 인사를 남기고 떠납니다.
가장 마음이 오래 머문 대목은 떠난 청년 윤성우와 작은 떠돌이 개 황구의 이야기였습니다. 녹슨 목걸이를 한 작은 개가 며칠째 매점 앞을 맴돌며 주인을 애타게 찾고, 윤성우가 그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는 장면에서는 저도 모르게 책장을 한참 붙들고 있었습니다. 떠난 존재들 사이에도 남는 온기가 있다는 것, 그 사실이 묘하게 위로가 되었습니다.
이 책이 단순한 '귀신 이야기'에서 한 발 더 깊어지는 지점은 후반부입니다. 새벽 두 시마다 매점 시계 밑에 말없이 서 있던, 어딘가 무섭게만 느껴지던 할머니 유령. 그 정체가 서서히 드러나면서 이야기는 전혀 다른 결로 접어듭니다. 누군가를 오래 미워해 온 사람의 마음과, 그 미움 뒤에 가려져 있던 사연이 천천히 포개지는 과정은 직접 읽으며 따라가시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다만 한 문장만은 옮겨 두고 싶습니다. 매점 사장님 미수가 오래 묻어 둔 가족 이야기를 꺼내며 무심하게 던지는 말입니다.
"평생 나한테 연락하려고 애썼다고는 하더라. 근데 뭐, 내가 사느라 바빴으니까."
그 짧은 말 속에 얼마나 많은 회한이 눌려 있는지요. 그리고 작가가 그려 내는 통찰 한 줄이 오래 남습니다. "도저히 자기 힘으로 이겨낼 수 없는 상황에 오랜 세월 처해 있던 사람은 제정신이기 힘들다." 누군가를 끝내 미워하기 전에, 그 사람이 견뎌야 했던 시간을 한 번쯤 헤아려 보게 만드는 문장이었습니다.
결말은 굳이 옮기지 않겠습니다. 다만 어느 날부터 그 무섭던 할머니 유령이 더 이상 나타나지 않게 되고, 미수가 "다 잘 해결됐어"라고 말하며 웃는 장면을 잊을 수 없습니다.
"그 웃음에는 행복과 슬픔이 함께 묻어 있어서 나희는 더 물을 수가 없었다."

행복과 슬픔이 함께 묻어 있는 웃음. 떠나보냄이란 결국 그런 것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리고 이 책이 말하는 '완벽한 장례식'이 무엇인지, 마지막 장을 덮으며 비로소 알 것 같았습니다. 그것은 화려한 의식이 아니었습니다. 두려움도 미안함도 없이 가볍게 떠나는 일, 그리고 남은 이들이 끝내 마음을 정리하고 서로를 놓아 주는 일. 그렇게 잘 떠나보내는 모든 순간이 곧 완벽한 장례식이었습니다.
읽는 내내 무서운 책이라기보다 따뜻한 책이었습니다. 동화처럼 잔잔하게 흘러가다가도, 어느 대목에서는 가만히 책을 덮고 한참을 앉아 있게 했습니다. 어디 하나 모나지 않게, 차분하게 잘 마무리되는 이야기였습니다.
소중한 사람을 떠나보낸 기억이 있는 분, 마음 한편에 끝내 전하지 못한 말을 품고 계신 분, 혹은 저처럼 인생의 어느 길목에서 '잘 떠나보낸다는 것'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 보고 싶은 분들께 권하고 싶습니다. 무겁지 않게, 그러나 오래 마음에 남는 위로를 건네는 책입니다.
읽고 나니 김수영의 그 말이 자꾸 맴돕니다. 우리는 죽는 순간 단 한 가지만을 기억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가장 꽉 붙잡고 있는 그 한 가지는 무엇일까요. 이 책은 그렇게, 살아 있는 우리에게 가만히 질문을 건네는 듯합니다.
이 글은 북로망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직접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