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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설계자들 - 트랜스휴머니즘에서 바이오해킹까지, 실리콘밸리 영생 프로젝트를 추적하다
알렉스 크로토스키 지음, 최정숙 옮김 / 미래의창 / 2026년 6월
평점 :
"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영생이라는 단어를 진지하게 입에 올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잘 몰랐습니다. 그것도 공상과학 작가나 종교인이 아니라 실리콘밸리의 가장 부유하고 영향력 있는 이들이 말이지요. 띠지에 박힌 "실리콘밸리의 영생주의자 선언"이라는 문구가 어딘가 신비롭게 느껴져서, 안에 어떤 이야기가 들었을지 궁금한 마음으로 책장을 열었습니다.
<불멸의 설계자들>은 BBC와 채널 4를 거친 방송인이자 학자인 알렉스 크로토스키가 실리콘밸리의 '영생 프로젝트'를 추적한 취재기입니다. 일론 머스크, 피터 틸, 샘 올트먼, 제프 베이조스, 비탈릭 부테린 같은 이름들이 막대한 돈을 쏟아부으며 죽음 자체를 정복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것, 그 욕망이 혈장 교환이나 바이오해킹을 넘어 '장수 국가'라는 새로운 정치 체제 구상으로까지 뻗어 있다는 사실을 저자는 차근차근 펼쳐 보입니다. 그러고 보니 표지의 나비가 그제야 이해되더군요. 푸른 날개는 살아 있는 생명의 것인데 몸통은 정교한 금속 마디로 분해되어 있었습니다. 자연스럽게 태어나 늙고 사라지는 존재를 고장 난 기계처럼 뜯어고치려는 사람들, 이 책은 그들에 관한 이야기였어요.

첫 챕터 '엔지니어 증후군'부터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저자는 이 욕망의 뿌리가 의외로 깊다고 짚어요. 르네상스 시대에 다 빈치가 인체를 "자연에서 가장 위대한 도구"라 불렀고, 데카르트가 인간을 '기계적인 몸'과 '비물질적인 정신'으로 갈라놓으면서, 사람들은 금속 부품 다루듯 신체를 해체하고 통제할 일종의 허가를 얻었다는 겁니다. 그렇게 굳어진 관념이 어찌나 뿌리 깊은지, 진화의학자 랜돌프 네스의 표현을 빌리면 "이제는 누구도 이 말이 비유임을 인지하지 않는" 수준이 되어버렸다고요. 신체는 기계이니 고장 나면 고치면 그만이라는 발상이지요.
그런데 저자가 들려주는 '구글 독감 트렌드' 사례가 이 믿음에 슬쩍 균열을 냅니다. 구글은 검색어를 추적하면 질병관리센터보다 빠르게 독감 유행을 예측할 수 있다고 자신했지만, 결국 실제보다 두 배나 많은 환자를 내다보는 과대 오류에 빠졌어요. 한 평론가의 표현이 기억에 오래 남습니다. "GFT 초기 버전의 절반은 독감 탐지기였고, 나머지 절반은 그냥 겨울 탐지기였다." 사람이 아플 때 모두 똑같은 검색어를 쓰리라 가정한 결과였지요. 저자는 이 대목에서 핵심을 짚습니다. "문제는 그들이 오로지 데이터만을 신뢰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인간이 컴퓨터보다 훨씬 복잡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람을 숫자로 분해할 때마다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 그게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물음입니다.

책의 한가운데에서 만난 한 가족의 이야기는 마음을 무겁게 눌렀습니다. 조지아주 남부에 사는 몰리와 크리스 부부는 두 아이를 데리고 캠핑카에서 살며, 생계를 위해 주말마다 두 시간씩 줄을 서서 혈장을 기증합니다. 미국은 세계 혈장 공급량의 약 70%를 생산하는 나라이고, 그 피는 "미국 극빈층의 생명줄"로 불린다더군요. 자신이 내준 혈장이 부유한 이들의 '역노화 상품' 재료로 흘러간다는 말을 들은 몰리는 격분합니다. "억만장자들이 내 혈장을 원한다면, 훨씬 더 많은 돈을 내야 할 거예요." 그리고 그녀가 덧붙인 한마디가 책장을 넘긴 뒤에도 자꾸 되살아났어요. "죽고 싶지 않다는 사람들은 마음의 평화를 얻지 못한 것 같네요."
저자는 여기에 차가운 숫자들을 나란히 놓습니다. 같은 도시 안에서도 우편번호에 따라 기대 수명이 갈리고, 런던에서는 동쪽으로 지하철역을 두 정거장 갈 때마다 기대 수명이 1년 이상 줄어든다는 통계 앞에서는 등골이 서늘했습니다. 게다가 AI 진단 모델의 토대가 되는 유전자 자료의 분석 대상자 중 80~90%가 유럽계 혈통이었다니, 그 정밀의학이라는 것이 애초에 인류의 극히 일부만 들여다본 셈이지요. "장수는 웰빙과는 무관한 이유로 이미 존재하는 불평등을 더욱 증폭시킬 뿐이다." 저자의 이 진단은 우리에게도 결코 먼 이야기로 들리지 않았습니다. 더 오래, 더 건강하게 사는 일이 결국 지갑의 두께에 달린 미래라면, 그 미래는 소수의 것일 뿐일 테니까요.

이 책의 진짜 무게는 마지막 장에 가서야 드러났습니다. 평생 의사이자 면역학자로 죽음의 최전선에 섰던 저자의 아버지가, 정작 자신의 죽음 앞에서는 극도로 쇠약해져 자력을 잃는 모습을 지켜본 이야기였어요. 종교도 내세에 대한 믿음도 없던 저자는 두 부모를 떠나보낸 뒤 길을 잃고 몇 년간 죽음에 매달렸다고 고백합니다. 그렇게 임종을 앞둔 사람들과 그들을 돌보는 이들을 만나며 다다른 결론은 이랬습니다. "그들이 답을 기술에서 찾았다면 나는 사람에게서 찾았다."
책을 닫으며 저자는 4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인류 최초의 서사시 속 길가메시 왕은 영원한 삶을 찾아 떠나지만, 여인숙 주인 시두리는 이렇게 일러주지요. "그대가 찾는 영원한 생명은 결코 찾을 수 없을 것이다. 끝이 오기 전까지는 삶을 즐겨라. 그대 손을 잡아주는 아이를 사랑하고, 아내를 품에 안아 기쁘게 만들어라. 그것이 인간이 살아가는 가장 좋은 방식이다." 결국 불멸을 얻지 못한 왕은 겸허해져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저자가 여기에 단 문장이 책의 마지막 울림이었어요. "우리가 하는 일은 우리보다 오래 남는다. 결국 우리를 불멸로 만드는 것은 우리가 무엇을 했는가이다."
그 반대편에는 'Don't Die'라는 종교를 만들겠다고 선언하는 억만장자 브라이언 존슨이 서 있습니다. 그가 던진 말이 책을 덮은 뒤에도 머릿속을 맴돌았어요. "인생 최고의 건강을 주는 알고리즘에 접근할 수 있다고 상상해보세요. 그 상태에 닿는 대가로 여러분은 알고리즘이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됩니다. 알고리즘이 먹으라고 할 때, 알고리즘이 짚어주는 것을 먹는 겁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하겠습니까?" 더 오래 사는 대가로 삶의 결정권을 알고리즘에 넘긴다면, 그렇게 늘어난 시간을 온전히 제 것이라 부르기는 어려울 것 같았습니다. 죽음을 정복하려는 사람들이 정작 죽음 자체에는 이상하리만치 호기심이 없다는 저자의 지적도 오래 곱씹게 되더군요.

읽는 내내 흥미로웠던 건 묵직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사례와 인물을 통해 술술 넘어간다는 점이었습니다. 기술이 어디까지 왔는지 알고 싶은 호기심으로 펼쳐도 좋고, 부모님의 노년을 곁에서 지켜보고 있거나 문득 제게 남은 시간을 헤아려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마지막 장에서 전혀 다른 울림을 받을 거예요. 영생이라는 거창한 화두를 빌려 결국 '잘 사는 일이 무엇인가'로 돌아오게 만드는 책이니까요.
북유럽 카페를 통해 서평단으로 이 책을 받았습니다. 솔직히 처음엔 실리콘밸리의 화려한 신기술 이야기를 기대했는데, 마지막 장을 덮을 무렵엔 전혀 다른 자리에 와 있더군요. 죽음을 어떻게 미룰까가 아니라,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살아낼까를 생각하게 만든 한 권이었습니다.
해가 길어진 6월입니다. 저녁이 늦도록 환한 이 계절에는, 영원히 사는 법보다 지금 곁에 있는 사람들과 보내는 시간이 더 귀하게 느껴졌어요. 길가메시가 4천 년 전에 들었던 그 충고처럼요.
죽음을 정복하려는 실리콘밸리의 욕망을 좇다가, 4천 년 전 길가메시가 이미 도달했던 결론으로 돌아오게 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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