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전략적 피벗 - AI 시대, 개인과 기업의 생존 공식을 바꾸는 법
최연성 지음 / 터닝페이지 / 2026년 6월
평점 :
"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두께부터 마음에 들었습니다. 검은 표지 위로 'STRATEGIC PIVOT'이 금속처럼 휘감겨 있고, 가운데 놓인 스패너와 드라이버에서 회로 같은 선이 뻗어 나가더군요. 도구를 새로 사는 게 아니라 가진 도구를 다시 배치한다는 이야기 같았어요. AI 때문에 사라질 직업, 살아남는 법, 이런 말은 유튜브만 켜도 쏟아지죠. 그런데 짧은 영상이 자극으로 끝나는 것과, 현장을 오래 통과한 사람의 생각이 한 권에 쌓이는 건 무게가 다릅니다. <전략적 피벗>은 그 차이를 분명히 보여준 책이었어요.

저자가 말하는 피벗은 흔히 떠올리는 이직이나 퇴사가 아닙니다. 농구에서 한 발을 땅에 고정한 채 다른 발로 방향을 바꾸듯, 핵심 역량은 붙들어둔 채 그 역량이 더 값나가는 곳으로 몸을 돌리는 일이에요. 저자 최연성은 이걸 말로만 풀지 않습니다. 뉴질랜드에서 식품 공장의 공정 엔지니어로 시작해 항공우주 기업 보잉, 그리고 아마존으로 무대를 옮겨온 자기 궤적을 그대로 내놓아요. 과자 만들던 사람이 비행기 만드는 데서 뭘 하겠느냐는 의심 속에서, 그가 옮긴 건 식품 지식이 아니라 '프로세스 최적화와 품질 보증'이라는 역량이었다고 합니다. 두 산업은 가격으로 보면 양극단이지만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다는 본질을 공유했고, 그래서 그는 항공 전문가들이 당연하게 지나친 비효율을 식품의 눈으로 다시 봤다는 거예요. 이 대목의 결론이 책장을 덮은 뒤에도 남았습니다. "나의 과거는 버려야 할 짐이 아니라 새로운 무대에서 나를 차별화시키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되어주었다."

제가 가장 오래 머문 곳은 5장이었어요. 저자는 일요일 저녁의 그 가라앉는 기분을 '나 주식회사'의 비즈니스 모델이 보내는 경고음으로 읽습니다. 그러면서 자산을 둘로 가르더군요. 성실함과 야근을 견디는 체력, 시키는 일을 군말 없이 해내는 태도는 시간이 갈수록 값이 떨어지는 감가상각 자산이고, 복잡한 문제를 풀어내는 통찰과 위기에 부를 수 있는 인맥, 이질적인 것을 잇는 능력은 시간이 갈수록 값이 오르는 증식 자산이라는 겁니다. 솔직히 이 부분에서 마음이 좀 복잡했어요. 오래 회사를 다닌 사람일수록 자랑으로 여겨온 것들이 대개 앞쪽 목록에 들어 있거든요. 지금 내 포트폴리오가 어느 쪽으로 채워져 있느냐는 물음을, 한동안 곱씹게 됐습니다.
이어지는 자가 진단도 펜을 들게 만들었습니다. 지난 여섯 달 동안 이력서에 한 줄 적을 새 성취가 있었는지, 모르겠다며 치열하게 공부한 순간이 있었는지, 회사 간판을 떼고도 나를 알아줄 사람을 밖에서 새로 만났는지. 셋 다 아니면 지금 부패하는 중이라는 진단이 따라옵니다. 모든 일이 손에 익어 눈 감고도 해내는 상태를 우리는 안정감이라 부르지만, 저자는 학습이 멈춘 신호로 봐요. 경고등이 켜졌을 때 정비소에 가야지 엔진이 터진 뒤엔 늦다는 말이, 늘 더 버티는 쪽을 택해온 저에게는 뼈 있는 조언이었습니다.

책이 여느 자기계발서와 갈라지는 지점은 후반부였어요. 저자는 한국형 그릿을 정면으로 다룹니다. 더크워스의 그릿이 열정에서 나온다면 우리의 그릿은 두려움과 책임감에서 나왔고, 그 절박함이 한 시대엔 미덕이었지만 지금은 양날의 검이라는 거죠. 이미 말라버린 우물을 파면서 조금만 더 파면 나온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는 건 끈기가 아니라 매몰 비용에 대한 집착이라는 문장에서, 평생 한 직장을 버틴 게 자랑이던 시절을 떠올렸습니다. 무조건 버티는 수동적 인내를 방법을 유연하게 바꾸는 전략적 끈기로 옮기자는 제안은, 버티는 것 말고 다른 길이 있다는 걸 모르고 살아온 세대에게 조용한 허락처럼 들리기도 했어요.
몸에 관한 이야기도 의외로 오래 남았습니다. 잠을 줄이고 몸을 혹사하는 걸 열정으로 미화하는 태도를, 저자는 뇌과학의 눈으로 인지적 자살 행위라 부르더군요. 아마존에서 전략을 짤 때 책상 앞에서 변수가 엉킬수록 퇴근 후 달리고 나면 오히려 정리되곤 했다는 경험담이 인상적이었어요. 멍 때리는 30분이 피곤한 야근 세 시간보다 나은 답을 줄 수 있다는 말은, 더 오래 앉아 있는 걸 미덕으로 알던 사람에겐 작은 위안이었습니다.
아쉬운 점도 있었어요. 슬랙이나 보잉처럼 또렷한 성공 사례가 거듭되다 보니, 방향을 틀고도 끝내 자리 잡지 못한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가 조금 더 있었으면 싶었습니다. 다만 위로보다 점검과 실행에 무게를 둔 책이라는 걸 떠올리면, 그 선택도 납득은 갑니다.

이 책은 한 부류만을 위한 것이 아니에요. 일요일 저녁마다 마음이 가라앉는 분이라면 5장의 자가 진단을 펜 들고 따라가 보면 좋겠고, AI 이야기에 막연히 불안한 분이라면 자기 경력 속에 숨은 전이 가능한 역량을 찾는 앞부분이 출발점이 될 겁니다. 조직을 이끄는 자리라면 기업의 여섯 가지 피벗 축을 다룬 후반부가 실무에 바로 닿고요. 공통점은 하나예요. 변화에 떠밀린 다음 수습하려는 사람이 아니라, 변화가 오기 전에 먼저 방향을 가늠하려는 사람에게 이 책은 친절합니다.
서평단으로 만난 건 운이 좋았다 싶어요. 평소라면 제목만 보고 또 그런 생존 담론이겠거니 지나쳤을 책인데, 끝까지 읽으며 제 안의 자산 목록을 새로 헤아려보게 됐으니까요.
해가 길어져 저녁까지 환한 요즘입니다. 무더위가 본격적으로 닥치기 전, 마음이 조금 한가한 밤에 자신을 한 번 점검해보고 싶은 분이라면 곁에 두고 천천히 넘겨볼 만한 책이에요.
가진 역량을 버리지 않고 더 값나가는 곳으로 방향만 바꾸는 법, 떠밀리기 전에 먼저 몸을 돌리는 기술을 일러주는 책.
#전략적피벗 #최연성 #터닝페이지 #피벗 #커리어전략 #직장인책추천 #자기계발서 #AI시대 #생존전략 #북유럽카페 #서평단 #북유럽카페서평단 #이직고민 #40대직장인 #커리어피벗 #회복탄력성 #성장마인드셋 #업스킬링 #책추천 #독서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