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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하는 마음 - 직장인을 위한 일상 생존 에세이
이명진 지음 / 위즈앤북 / 2026년 4월
평점 :
"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서류가방을 든 사람이 꽃 한 송이 앞에 등을 돌리고 서 있습니다. 분홍빛 바탕에 청록색 마음 같은 덩어리가 번져 있고, 그 안에 핀 푸른 꽃을 올려다보는 뒷모습. <출근하는 마음>의 표지를 받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든 느낌은 따뜻함이었습니다. 무거운 가방을 들고도 잠깐 멈춰 꽃을 바라볼 줄 아는 사람의 풍경 같았거든요. 살구빛 톤 위에 놓인 일러스트가 어찌나 곱던지, 첫 장을 펼치기 전부터 마음이 한 뼘 누그러졌습니다.
북유럽 카페 서평단을 통해 받은 책입니다. 좋은생각만 한 핸드북 사이즈라 손에 쥐면 가볍고, 가방 한쪽에 넣어두기에도 부담이 없어요. 에세이라 호흡이 짧고, 한 편 한 편이 독립된 글이라 마음 가는 자리부터 펼쳐도 됩니다. 18년 차 직장인 이명진 작가가 쓴 글들인데, 부제가 '직장인을 위한 일상 생존 에세이'예요. 거창한 성공담이 아니라 매일 흔들리면서도 어떻게든 출근해온 사람의 꾸밈없는 기록이라는 점이 책 전체를 관통합니다.

읽다가 손이 멈춘 건 'PICK YOUR BATTLES!'라는 제목의 글에서였습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 싸움의 문 앞에 선다고 작가는 말해요. 아이와의 다툼, 사무실에서 날아드는 말 한마디, 사소한 의견 충돌까지. 그런데 모든 싸움에 다 나설 필요는 없다는 겁니다. 작가가 아이의 영어 선생님이자 미국인 친구였던 미셸이라는 분에게 배운 말이라는데, 'Pick your battles, honey'라는 한마디였다고 해요. 사회 규범에 어긋나거나 위험한 일이 아니라면 대부분 허용하고, 불필요한 감정 대응은 줄이라는 조언이었습니다.
이 말이 직장에서도 그대로 통한다는 대목이 인상적이었어요. 감정의 줄다리기가 가장 많이 벌어지는 곳이 사무실이잖아요. 우선순위가 서로 다르고, 기대만큼 협조가 안 되고, 일과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어긋나는 일이 하루에도 몇 번씩 일어나니까요. 작가는 육아한다고 매일 정시 퇴근하면 매출이 떨어지지 않겠냐는 동료의 말에 발끈하지 않고 담담하게 받아넘긴 일화를 들려줍니다. '이 논쟁이 싸울 만한 가치가 있는가'를 스스로에게 물었더니 아니라는 답이 분명했다는 거예요. 그렇게 적은 싸움을 하게 되었고 오히려 더 많은 결과를 얻었다고 적습니다.
연차가 쌓일수록 저 분별이 얼마나 어려운 기술인지 알게 됩니다. 다 받아치기에는 기운이 달리고, 다 참자니 속이 곪으니까요. 그래서 작가가 분명히 선을 긋는 지점이 좋았어요. 싸움을 고르라는 말이 모든 상황을 회피하라는 뜻은 아니라는 것. 불공정하거나 부당한 일이 반복된다면 최선을 다해 싸워야 한다고요. 그 질문을 통과한 문제에 한해 제대로 싸우자는 이야기입니다. 이 글 끝에 실린 아메리카 원주민 전설도 같은 자리를 가리킵니다. 내 안에서 두 마리 늑대가 싸우는데 어느 쪽이 이기느냐는 손자의 물음에 노인은 "네가 먹이를 주는 놈이 이기지"라고 답하죠. 결국 내가 무엇에 마음을 내어주느냐의 문제라는 말로 읽혔습니다.

책의 앞쪽에 놓인 '버티는 삶도 성장한다'는 어쩌면 더 오래 곱씹게 되는 글입니다. 해외 이직을 앞둔 지인이 두려움을 고백하는 장면에서 시작하는데, 그 말을 들은 작가가 문득 자기 삶은 주로 견디는 편에 있었구나, 하고 깨닫는 대목이 마음을 건드려요. 주변에서 이직과 휴직과 창업으로 도전을 택하는 사람이 늘어가는데 자신은 매번 머물렀다는 자조. 그런 작가에게 동기가 건넨 말이 좋았습니다. "버티는 것도 능력이야. 하루하루 버티는 동안 성장해온 네가 나는 보여." 도전하는 쪽이든 견디는 쪽이든 저마다의 자리에서 최선의 용기를 내고 있다는 문장에서, 버팀을 패배가 아니라 또 다른 용기로 다시 읽어주는 시선이 고마웠습니다. 떠나는 것만 용기라고 여기기 쉬운 나이에, 남아서 견디는 일에도 이름을 붙여주는 것 같았거든요.

책의 끝자락에 놓인 '나만큼은 내 편이 되어주기'에 이르면 이 이야기들이 한 곳으로 모입니다. 입사 후 첫 평가에서 스스로 점수를 매겨야 하는 게 당황스러워 화면만 노려보던 작가에게, 선배 차장이 다가와 이렇게 말했다고 해요. "나조차도 나를 인정하지 않는데 누가 나를 인정해 주겠어?" 그 뒤로 작가는 부족함을 알면서도 평가철마다 자신에게 최상위 등급을 넣는다고 합니다. 노력만큼 결과가 따라오지 않고 타인의 차가운 평가에 마음이 다칠 때에도 나를 변호하는 일, 그게 조직뿐 아니라 삶 전체에서 갖춰야 할 덕목이라고요.
여기 인용된 허준이 교수의 졸업식 축사가 책의 정서를 한데 묶어줍니다. '서로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친절하시길.' 사회로 나가 매번 절망하고 넘어질 후배들에게 건넨 당부였다는데, 부족함을 인정하고 자신을 너그럽게 대할 줄 알 때 비로소 타인에게도 관대해지고 나아가 성장할 수 있다는 작가의 결론과 닿습니다. 우리는 필요 이상으로 자신을 채찍질하며 사는지도 모른다는 문장 앞에서, 정작 가장 인색하게 대해온 상대가 나 자신이었다는 걸 새삼 돌아보게 됐어요.

이 책을 덮는다고 무슨 대단한 결심이 서는 건 아닙니다. 다만 매일 알람 소리에 눈을 비비고 일어나 각자의 자리를 지키는 일이 얼마나 위대한지, 그걸 다시 보게 돼요. 출근이 여전히 어렵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자신이 못마땅한 분이라면 이 얇은 안내서에서 작은 위안을 만나실 것 같습니다. 화려한 성취담에 지친 분, 버티는 일이 정말 의미가 있을까 의심이 드는 분께도 조용히 닿을 이야기고요. 서평단으로 만난 여러 책 사이에서, 이 한 권은 읽는 속도가 느려도 괜찮다고 등을 토닥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여름의 초입, 더위가 본격적으로 밀려오기 전의 이맘때는 하루가 길고 출근길도 어쩐지 더디게 느껴지는 계절이죠. 그런 아침에 이 책의 마지막 인사가 떠오를 것 같습니다. 오늘 하루도 애썼다고, 정말 수고했다고. 흔들리면서도 자기 자리를 지켜낸 모든 출근에 작은 응원을 보냅니다.
버티는 일도 성장이고, 누구보다 나부터 내 편이 되어주자고 일러주는 직장인 생존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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