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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의 탄생 - 의식은 혼돈에서 어떻게 태어날까?
오기 오거스.사이 개덤 지음, 김아림 옮김 / 진성북스 / 2026년 5월
평점 :
"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북유럽 카페를 통해 <의식의 탄생>을 받았습니다. 처음 들었을 때 든 생각은 솔직히 ‘무겁다’였어요. 두께도 두께지만, 표지부터 별자리 같은 점선과 뇌, 파리와 거북과 작은 생명체들이 그려져 있어서 가볍게 넘길 책이 아니구나 싶었습니다. 460쪽에 가까운 분량에, 전문 서적이나 교과서에 가까운 과학서라 읽어 나가는 데 힘든 부분이 없지 않아 있었어요. 학자들의 이름과 실험 설계가 빠르게 지나가는 대목에서는 한 번씩 호흡을 가다듬어야 했고, 아예 낯선 대목은 빨리 넘어가자 마음먹고 평소보다 호흡을 빠르게 가져갔습니다. 그렇게 읽었는데도 며칠 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장면들이 꽤 있었습니다.
저자인 오기 오거스와 사이 개덤은 보스턴대학교에서 신경과학을 공부한 학자들입니다. 두 사람은 의식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가를, 고세균과 아메바부터 물고기와 개구리, 침팬지와 인간, 그리고 인간이 만들어낸 ‘슈퍼마인드’까지 4단계로 따라갑니다. 이 책의 가장 큰 주장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의식은 특별한 재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것들의 특별한 배열에서 나온다는 것. 마음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에 가깝다는 것. 그래서 30억 년 전 빛을 향해 1 cm 움직이던 고세균과 오늘 신호등을 보고 발걸음을 옮기는 사람 사이에 본질적으로 같은 원리가 흐른다고 말합니다.

처음에는 이 비유가 과장처럼 들렸습니다. 그런데 책을 따라가다 보니 정말 그렇게 느껴지더군요. 대장균 ‘에스카’ 이야기에서 “공간의 문제가 시간의 문제로 바뀌는 것이다”라는 문장이 나옵니다. 작은 몸으로는 두 지점의 농도를 동시에 비교할 수 없으니, 조금 전의 자기와 지금의 자기를 비교하는 방식으로 기억을 만들어 낸다는 설명이에요. 우리가 흔히 ‘경험’이라고 부르는 것도 결국 시간으로 환산된 비교 작업이라는 사실이, 작은 세균의 이야기 안에 이미 들어 있었던 셈입니다.
3단계 ‘모듈적 마음’으로 넘어가면 스티븐 그로스버그라는 신경과학자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한 살에 아버지를 잃은 그는 평생 마음의 작동 원리를 좇아 60년 동안 같은 질문을 다듬어 왔다고 합니다. 그가 남긴 “시간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마음의 구조 자체에 꿰매져 있다”라는 문장에서 한참 멈춰 있었습니다. 시간이 흘러가는 어떤 것이 아니라 마음을 만드는 재료 자체라는 말은, 시간을 ‘남는 것’과 ‘부족한 것’으로만 셈하던 감각을 조금 다르게 열어 줍니다.

12장 ‘공명’ 이야기도 오래 남았습니다. 의식은 어떤 표상에 ‘여분의 자유도’를 더해주는 일이고, 그것은 마치 중요한 메일에 깃발을 다는 것과 비슷하다고 비유합니다. 하루에도 수많은 정보가 쏟아지는데 그중 어떤 것은 의식의 무대 위로 올라오고 어떤 것은 그냥 흘러갑니다. 그 차이가 결국 ‘공명’이라는 단어 하나로 정리되는 순간, 무엇에 깃발을 다는지가 결국 그 사람을 만든다는 사실이 조용히 다가옵니다.
18장 ‘자아’ 후반부의 한 장면도 인상 깊었습니다. 인류 역사상 최초로 기록된 개인의 이름이 왕도 장군도 영웅도 아닌, 곡식 장부에 적힌 회계 담당자 ‘쿠심’이었다는 대목이에요. 거창한 업적이 아니라 일상의 기록 속에 사람의 이름이 남는다는 사실이, 마음은 평범한 배열에서 비롯된다는 이 책의 주제와 정확히 포개진다는 점이 좋았습니다.

마지막 19장 ‘슈퍼마인드’에서 저자는 의외로 따뜻한 결론을 내려놓습니다. 자유 의지는 우리가 그 존재를 믿는 한에서만 존재한다고, 그러나 그것을 선택할 때 비로소 우리는 슈퍼마인드의 방향에 영향을 미친다고. “마음이 적응력의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는 유일한 방법은 협력뿐이다”라는 문장에서 책장을 덮었습니다. AI를 둘러싼 논의가 매일 쏟아지는 시기에, 신경과학자가 쓴 책의 결론이 결국 협력과 사랑이라는 단어로 돌아온다는 점이 의외였고, 그래서 더 오래 남았습니다.
아쉬운 점도 있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분량과 전문성 때문에 중간중간 호흡이 끊기는 구간이 있었고, 고유명사와 학자 이름이 빠르게 지나갈 때는 한 번 더 돌아와 읽어야 할 때도 있었어요. 그래도 모르는 부분을 가볍게 넘기면서 읽어도 큰 흐름은 잡힙니다. 오히려 이 책은 정독보다 멈추고 싶은 곳에 충분히 머무는 독법이 더 잘 어울리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AI라는 단어 앞에서 마음이 자주 복잡해지는 요즘, 의식이라는 것이 도대체 어디서 시작되었을까 같은 질문이 가끔 떠오르는 분이라면 이 책을 천천히 권하고 싶습니다. 두께에 한 번 놀라고 첫 장의 학술적인 결에 한 번 더 망설일 수 있지만, 고세균의 1 cm 이동에서 시작해 인간의 자유 의지까지 이어지는 긴 여정이 끝나갈 즈음에는 평소 보던 풍경이 조금 다르게 보일 거예요. 좋은 책을 먼저 만나볼 기회를 준 북유럽 카페에도 고마운 마음을 적어 둡니다.

5월의 끝자락, 해가 길어진 저녁이 늘었습니다. 30억 년이라는 시간을 따라 걸었다는 감각이, 하루의 끝을 조금 천천히 닫게 해 주는 책이었습니다.
한 줄 요약 – 고세균에서 슈퍼마인드까지, 마음은 특별한 재료가 아니라 평범한 것들의 특별한 배열에서 태어난다는 사실을 천천히 일러주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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