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고요한 것은 걷는사람 소설집 18
홍명진 지음 / 걷는사람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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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고요한 것은' 표지)

지금을 사는 우리들 이야기

우리가 주인공이 되는 소설을 정말 오랜만에 읽었다.

왠지, 가슴이 먹먹하다. 잊고 있었던 내 안의 무언가를 건드린 기분.

우리의 삶이란 이렇게 남루하고 보잘것없고 초라했던 건가.

그런 삶을 들여다보는 일이라서 인지, 모른척하고 싶었던 마음 한 조각이 드디어 드러났기 때문이지

마음에 무언가가 남았다. 무겁게 가라앉는 차분함, 우울, 슬픔.

뭔가 아련한 감정이 흐른다.

분명 우울한 우리 현실을 말하는 소설인데 오히려 마음은 맑아진다.

누추한 삶까지 인정하고 보듬는 일이 우리 삶을 사랑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밤이 고요한 것은' 표지)

지금 우리 삶은 어디에 있나?

우리의 진짜 인생은 20대부터이다. 대체로.

왜 그런가 생각해 보니, 그전까지는 주로 짜인 생활을 했었다면, 20대부터는 '내'가 선택하는 삶을 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선택하는 인생이라고 하더라도 2030 사람들의 목표와 삶은 대체로 비슷하다. 직업을 얻고 결혼을 하는 등 생애 첫 독립이 이때 목표다.

그 뒤로 4050대부터 인생은 또 달라진다. 다양한 이유로.

결혼하고 직업을 가졌던 사람들이 또 다른 직업이나 가정을 가진다. 혹을 잃거나.

이렇게 인생은 앞으로, 직선으로 나아가는 것인 줄 알았는데

살아보니, 제자리에서 계속 달리는 앨리스에 나오는 '붉은 여왕'의 모습과 같은 것이었다.


8개의 단편, 8개의 삶


('밤이 고요한 것은' 내용 일부)


이 책에는 8개의 단편이 나온다.

각 8편에 담긴 각기 다른 삶과 사람들의 이야기가 우리를 생각에 잠기게 한다.

삶의 한순간, 한 조각을 살짝 잘라내어 우리 앞에 펼쳐놓았다.

첫 번째 이야기에서는 한 노부부의 모습이 나온다.

막내아들의 뜻밖의 죽음으로 상심하던 부인이 병을 얻었다.

부인을 돌보며 사는 남편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 삶의 끝자락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두 번째 이야기에서 분홍 여사는 소파와 함께 어디로 사라졌을까?

세 번째 이야기에서 소야는 왜 러시아 여행에서 트루퍼, 즉 군밤 모자 샀다고 했을까? 소야는 러시아 여행을 한 적이 없다.

네 번째 이야기, '미조' 잊을 수 없는 안타까운 그 이름.

밥 한번 해 먹이고 싶었던 은범에게 도리어 안타까운 식사 대접을 받게 된 다섯 번째 이야기.

솔의 얼굴에서 자신을 들여다본 연경. 삶이라는 무대를 생각하게 한 여섯 번째 이야기.

자정이 되어도 들어오지 않는 남편, 그러나 그 남편마저 사라진다면? 이것은 일곱 번째 이야기.

마지막 이야기는 '커피 이모 장귀자'를 찾아 그의 삶을 기록하는 내용이다.



('밤이 고요한 것은' 내용 일부)


'빈곤'이라는 단어를 이렇게 쓸 수도 있다니!

누구도 자신의 이야기를 남기지 않고 죽을 만큼 빈곤한 삶을 살지 않는다고 말한 사람이

누구였더라? 모연은 다만, 모든 날이 고요하길 바랄 뿐이었다.

('밤이 고요한 것은' p74)

삶을 제대로 살지 않으면 남길 이야기도 없다.

삶이 빈곤하다는 것이 이 얼마나 슬픈 일인지.....

여러 다양한 이유로 아무런 도전도 선택도 하지 않는다면, 아마 삶은 빈곤해지지 않을까?

결국, 갑작스럽게 죽거나, 실패하거나, 떠나거나, 이해받을 수 없거나, 인정받지 못했다 하더라도

내가 선택한 인생에서는 내가 이야기 주인공이다.

최소한 내 이야기가 남아 누군가에게 전해진다면 내가 남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닐까.

그 누군가는 내 이야기에서 다시 시작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우리는 모두 비극의 주인공이 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내가 주인공인 이야기를 만들고자 한다면, 그 비극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다만 우리의 모든 밤이 고요하길 바랄 뿐입니다'라는 저자의 사인처럼

지금 내가 고요한 밤들을 지내고 있다면

내 이야기를 고마워해야 한다.

(청춘 시절이) 세상이 운명을 시험하는 줄도 모르던 그때,

스스로 빛을 발하면서도 그 눈부심이 마냥 초라하게만 보였던

엽기적인 시절이었다.

('밤이 고요한 것은' p117)

('밤이 고요한 것은' 내용 일부)



인스타**을 비롯한 각종 SNS에서 잊힌 이야기



소비적이고 화려한 삶만 있는 줄 안다.

그러니 더 소외되고 우울한지도 모르겠다.

"밤이 고요한 것은"에 나오는 인물들은 대체로 여성들이 많다. '죽음'도 많이 나온다.

남들이 많이 하지 않는 이야기, 숨어 있는 이야기다.

길을 가다가 또는 모임에서 한 번씩 마주쳤을 지도 모를 사람들.

화려하지 않은, 주류 문화에서 살짝 벗어나 묵묵히 주변부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

어쩌면 이런 사람들이, 여성들이 더 많을 텐데 그들의 삶은 어디에도 없다. 잘 눈에 안 띈다.

이번에 "밤이 고요한 것은"을 읽었을 때, 흥미롭게 읽혔던 이유가

나와 닮은 사람들 이야기라서 그런가 보다.

작가는 그런 사람들에게 의미를 부여한다.

지금 이 시대 각자 삶을 사는 방식 그대로 소중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었던 것이라 믿는다.

위로를 받고 싶을 때는 소설책을 읽으라고 누군가 말한 것 같은데,

이 소설 "밤이 고요한 것은"은 진정 우리 삶에 큰 위로가 된다.

그때 내 옆에 내 앞일을 걱정해 주고 말 한마디 보태 주는 사람만 있었어도

다른 삶을 만나지 않았을까.

('밤이 고요한 것은' p273)



('밤이 고요한 것은' 내용 일부)


지금 나 말고 또 다른 나로 살아 보고 싶다면


소설을 읽을 것을 권한다.

나의 감정을 직면하게 되기도 하고 새로운 희망을 품기도 하고

나도 모르게 숨어있던 어떤 감정들이 해소되기도 한다.

내가 원하는 삶이 어떤 것인지도 알 수 있고, 나는 어떤 선택을 할까 먼저 생각하는 기회가 된다.

올 추석 연휴, "밤이 고요한 시간"은 어떨까

안타깝고 슬프지만 위로 받는 8개의 단편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밤이 고요한 것은' 표지)

*걷는사람 출판으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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