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우리를 속일지라도 - 영국 베이비부머 세대 노동 계급의 사랑과 긍지
브래디 미카코 지음, 노수경 옮김 / 사계절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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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세상의 문제들에 관심을 갖고 살펴본다면

보통은 나이 든 사람들, 나이 든 남자들이 길을 막고 서 있을 겁니다.

2019년 12월 미국 버락 오바마가 한 연설 중에서

('인생이 우리를 속일지라도' p5에서)

책은 정말 진짜 엄청 재미있다!

시간이 금방 지나가는 줄도 모르고 읽었다.

마침 세대가 비슷해서 읽는 동안 엄청 공감도 되고 웃기기도 하고 즐겁기도 하고 감동하기까지 했다.

중년 이후, 아저씨들의 삶이란 바로 이런 모습이구나!

새삼 거울을 보듯 지금 나의 삶도 투영해 보았다.

'인생이 우리를 속일지라도'는 영국 50대 전후 아저씨들의 삶을 풀어 놓은 에세이이다.

작가는 일본인으로 영국에서 25여 년 이상을 살면서 겪은 노동과 복지, 인종 차별과 이민, 브렉시트 등 영국 사회의 일면을 '아저씨'라는 시각에서 유쾌하게 그려내고 있다.

 

('인생이 우리를 속일지라도'표지)

첫 장 '들어가며'를 읽는 순간부터! 이 책은 남다른 책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 것도 아저씨들 탓이고, 유럽 연한 탈퇴도 아저씨들 탓이다. 그들을 어째서 과거의 '좋았던 시절'만 되뇔 뿐 새로운 기대의 가치관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것일까? 성희롱과 약자에 대한 괴롭힘도 아저씨들 탓이며, 정치가 부패하고 기득권 세력만 잘 사는 것도 아저씨들 탓이다. 자유주의가 후퇴하는 것도, 살기 힘든 세상이 된 것도 모두 아저씨들 탓이며, 배외주의도 사회가 악화되는 것도 전부 아저씨들이 나빠서다.

('인생이 우리를 속일지라도' - 들어가며 에서-)

50대를 전후한 아저씨들은 대체로 한 사회의 기득권이다. 경제적인 부를 쟁취하지 못했고 권력이 없다 하더라도 그들의 사고방식과 삶의 방식이 나라를 지탱하는 힘이 되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여전히 기득권이다.

이들은 누구보다 정치가 삶에 얼마나 영향을 주는지 몸소 체험한 세대이기도 하다.

브렉시트, 이민자, 불법 체류, 의료 체계, 복지 혜택..... 등등을 둘러싼 여러 정치적, 경제적 이슈를 영국 아저씨들의 삶 속에서 같이 들여다보자. 그러면 '아저씨'라는 어리석고 복잡하고 아이러니하면서도 순수하고 따뜻한 그들의 삶을 조금 너그럽게 봐 줄 수 있다.

 
 

('인생이 우리를 속일지라도' 표지 일부들)

'인생이 우리를 속일지라도' - 어떤 책일까?

  1. 에세이 ; 각 장마다 어떤 영국 아저씨에 얽힌 에피소드를 읽을 수 있다. 옆집에 놀러 갔다가 듣는 사람들 이야기 같아서 정말 부담 없고 진짜 재미있다.

  2. 단순하게 꿰뚫는 시대 통찰 ; 브렉시트, 긴축재정, 영국 공공 의료 시스템 .... 등 정치적 결정이 사회 구성원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정확히 판단하고 글을 쓰고 있다. 영국 사회를 통찰하는 힘이 생긴다. 단지 책을 읽기만 해도. 그 힘으로 우리 사회도 볼 줄 아는 눈이 생긴다.

  3. 우리나라 사회와 비교 ; 한국 사회가 얼마나 경직되고 보수화된 사회인지 일면을 알 수 있다. 특히 여성의 결혼과 양육의 문제에서.

영국 아저씨들은 무엇으로 사는가?

 

('인생이 우리를 속일지라도' 내용 일부 )

똑같이 나이 든 아줌마는 그렇지 않은데

아저씨들은 왜 그렇게 미움을 받을까?

작가는 영국에서 미움받는 아저씨로 '노동 계급 아저씨'를 꼽는다. 이들은 '문제적인 존재'이다. 시대에 뒤처졌고, 배외주의적이며, 우익 애국자들이라 불린다.(책 p7)

그럼 우리나라는?

우리도 나이 든 아저씨들을 '꼰대'라고 부르는데 특정 계급을 지칭하기보다는 나이 든 사람이나 지위가 높거나 한 아저씨, 아줌마(딱히 성별을 가리지도 않는다) 즉, 윗사람의 부당한 권위를 '꼰대'라고 부른다.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는 계급으로 구분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사회는 윗사람과 아랫사람으로 또는 나이가 많고 적거나로 차이를 둔다.

나의 계급이 어디에 속하는가는 인식할 수 없다는 것은 노동 시장에서 내 권리가 무엇인지 인식하는데도 많은 제약이 따른다.

또한 연대 의식도 약해서 동료를 경쟁자로 보는데 더 익숙하다.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란 책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능력에 따른 차별에 익숙한 사회다.

그러나 영국 아저씨들은 정체성을 분명히 한다. 그런 바탕에서 정치적인 농담도 주고받고.

그러나 노동 계급이라는 이름에 갇히지도 않는다.

브렉시트를 찬성하는 이유 중 하나는

(*브렉시트는 '영국 탈출',즉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말함)

단지, 영국의 공공 의료 시스템에 더 많은 예산을 쏟을 수 있다는 가짜 뉴스도 한몫했다.

영국 의료 시스템은 공짜다. 대신 한번 진료를 하는데 몇 달을 기다려야 한다.

아니면 많은 돈을 내고 민영화된 의료 시설을 찾아야 한다.

영국 사람들은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공공 의료 시스템에 많은 자부심도 가지고 있고 많은 기대도 한다. 그곳에 더 많은 예산을 쓸 수 있다는 이유로(가짜 뉴스였지만)

브렉시트에 찬성했다는 것이다.

즉, 노동 계급이지만 브렉시트에 찬성한 이유가 계급적이지 않다.

 

('인생이 우리를 속일지라도' 내용 일부 )

영국 정부의 긴축 재정으로 인한 복지 예산 삭감이

저소득층을 더 단합시켰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코로나로 어려워졌을 때

본인도 어려운 가게를 이끌고 있는데 더 어려운 이웃을 돕는 미담들이 많이 전해져서 마음을 울렸었다.

긴축재정으로 경제적으로 힘들어진 영국 사회는 지역의 도서관마저 폐쇄했다.

어리석은 민중은 책 따위 읽지 않을 거라 생각하는 걸까.

그들은 몰랐던 거다. 일하지 않는 기간이 긴 노동자들 중에는 할 일이 너무 없어서 도서관에 다니며 책을 읽고 특정 분야에 별다른 쓸모도 없는 지식을 잔뜩 쌓는 '오타쿠'들이 있었음을.

('인생이 우리를 속일지라도' p69)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노동의 배신'에 보면 저임금 노동자들 대다수가 글을 쓰고 있었다.

책을 읽지 않고 글을 쓰지 않는 민중을 누가 만들어 냈나?

결국, 영유아 놀이방 한구석으로 밀려난, 아이들로 시끄럽고 좁은 곳에서 '긴축 재정에 항거하는 민중'의 모습으로 꿋꿋이 책을 읽는 스티브 아저씨다.

쉬운 이혼, 파트너들과의 동거

우리나라에서 출산율을 높이려면 영국 사회처럼!

쉬운 이혼과 파트너들과의 동거가 자연스러운 사회여야 한다.

우리나라는 결혼해야만 출산한다. 그래서 비율이 5%. 서구 유럽 사회는 비혼 출산이 30~60%.

지금보다 더 이혼이 쉬워져야 하고 비혼 출산과 양육에 대한 지원도 많이 따라야 한다.

영국 사회는 이혼 시 친권은 압도적으로 여성이 가진다. 그래서 싱글맘이 많고 아버지가 다른 아이들을 키우는 여성들도 종종 있다.

책을 읽으면서 '파트너'라는 개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읽다 보니 결혼은 하지 않으면서 같이 사는 동거인을 그렇게 부른다는 것을 알았다.

해리 포터의 작가 조앤 롤링이 탄생할 수 있었던 배경 중 하나가 여성에 대한 영국 사회의 지원이 아닐까 한다. 조앤 롤링이 국가 보조금을 받으며 아이를 키운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자기 자식이 아님에도 전업주부로 세 아이를 키우는 레이 아저씨의 이야기는 우리나라에서는 완전 달나라 이야기다.

 

('인생이 우리를 속일지라도' 내용 일부 )

노동자와 노동조합

나는 온 세상을 여행하며 알게 되었어.

노동조합이 약한 나라의 노동자는 슬픈 존재라는걸.

신자유주의가 세상을 비참하게 만든다느니 하지만 책임의 반은

묵묵히 노예가 되어버린 노동자에게 있다고

('인생이 우리를 속일지라도' p123, p125에서)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플래카드'를 만드는 사이먼 아저씨. 게다가 '불꽃처럼 터지는 기쁨'이 없다면 물건을 정리하라는 정리 법에 따라 집을 병원처럼 만들어 버리기도 했다.

영국 아저씨들의 사랑

유튜브 영상에서 본 적 있다. 중년의 여성들이 타로 점을 보러 오면 꼭 묻는 말이 있다고 한다. 뭐냐면!

'다시 나에게 사랑이 올까요?'

영국 아저씨들에게 묻는다면 아마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죽을 때까지 사랑할 거야!'

영국 아저씨들은 죽을 때까지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고 사랑을 찾아낸다.

영국 아저씨에게 닥친 시련과 고난

('인생이 우리를 속일지라도' 띠지 일부)

영국 아저씨는 웬만한 시련에도 다시 일어난다.

왜냐하면 나라고 예외는 없으니까. 시련과 고난이 나에게도 닥칠 수 있는 일이니까.

굳이 신이 나만을 예외로 정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그래서 멋진 여자와 헤어졌지만 애초에 그런 여자랑 사는 것이 이상했다고 마음을 정리하고 다시 구직 활동을 나서는 레이 아저씨다.

영국 아저씨들.... 어떻게 지낼까?

이 책은 2020년에 첫 출간되었기 때문에 코로나 이전의 영국을 이해할 수 있다.

2년간 코로나를 통과하면서 영국 아저씨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책을 한 권 읽으면서 영국 아저씨들의 근황이 궁금하다.

그새 정들었나 보다.

지은이 - 브래디 미카코

 

('인생이 우리를 속일지라도' 표지 일부)

글이 쿨하다. 제3자의 입장에서 전하는 듯 쓰고 있다.

영국 아저씨들의 모습을 묘사하는 데 핵심을 놓치지 않는다.

불쌍한 상황이나 힘든 일을 겪는 아저씨들을 신파적으로 그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 담백하게 담아낸다. 그런 묘사에서 오히려 유머도 느껴진다.

삶이 원래 그렇다.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일이 있고 나의 진심과 관계없이 뒤통수 맞기도 하고 그래서 그 한순간으로는 잘된 일인지 잘못된 일인지 판단할 수 없다.

'인생이 우리를 속일지라도'; 영국 아저씨들이 보여주는 찌질하면서 유쾌한 새로운 삶

('인생이 우리를 속일지라도' 책등 일부)

혹시나 책 광고를 보고

어렵고 복잡한 정치, 사회 문제를 해석하고 알리는 책이라고 생각하면 정말 오해다.

책은 새로운 삶을 보여준다. 우리랑 비슷한 연배에 비슷한 물질적 조건을 가지고 있지만

다르게 살아가는 어떤 삶들을 이야기한다.

50대 나이면 그간 살아온 내력으로 사회에 대한 자신만의 시각과 판단이 생긴다. 그런 가치관과 사고가 변화하는 사회에 어떻게 발맞추어 살아 나가는지 영국 아저씨들을 지켜보는 일은 정말 즐겁다.

책은 영국 아저씨들의 지난 20년간의 이력과 삶을 압축해서 현재 실제 생활을 이야기하고 있다. 에세이니까 겪은 일을 중심으로 경험을 쓰고 있다. 그 경험들이 우리나라에서는 새롭다. 이야기니까 잘 읽힌다.

따라서 그 어떤 철학 책보다 심리학 책보다 새로운 시각을 열어줄 것이다.

지금 혹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길이 안 보인다거나, 희망이 안 보이거나 삶이 지겹거나 무기력하다면 '인생이 우리를 속일지라도' 추천한다.

영국 아저씨들은 우리와 다른 사회 조건으로 힘들어하지만,

어떻게 그 삶을 관통해 내는지 과정을 함께 하다 보면 나에게도 새로운 삶에 대한 의지가 생길 것이다.

영국 아저씨들의

고집 세고 찌질하면서도 솔직하고 유쾌하고 따뜻한 삶을 잘 보여준 '인생이 우리를 속일지라도'이다.

('인생이 우리를 속일지라도' 표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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